읽어야 산다
정회일 지음 | 생각정원
읽어야 산다
정회일 지음
생각정원 / 2012년 11월 / 272쪽 / 13,000원
My Story 잃다 읽다 일다
얼굴 빨개지는 소년: 나는 아토피 때문인지 어려서부터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 탓에 늘 소심했고, 조금이라도 긴장하거나 창피해지면 금세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초등 고학년 때 마포동에서 성산동으로 이사를 했다가 6학년 때에는 안산으로까지 내려갔다. 하지만 안산에서 지낸 시간은 두 달밖에 안 된다. 엄마의 완강한 요구에 서울 방배동으로 다시 이사를 했기 때문이다. 중학생 때 엄마 손에 이끌려 처음 피부과를 찾아가 아토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지금 상태로 봐서는 크게 심각하지 않습니다. 처방대로만 잘 따르면 얼마든지 완치됩니다. 일단 연고를 발라보세요." 의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하며 연고를 처방해주었다. 연고를 바르니 증세가 호전되기는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증세가 나타났다. "선생님, 처음에는 효과가 있는 것 같더니 이제는 연고를 발라도 안 낫네요. 어쩌죠?" 의사는 다시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나서는 "전보다 심해졌어요. 이제부터는 약을 먹어야겠네요."라고 태연하게 말했다. 나중에는 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자 독성이 더 강한 약을 처방했고, 그래도 효과가 없자 의사는 "약을 먹어도 안 듣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주사를 맞아보죠. 사실 주사 처방이 가장 좋아요."라며 점점 강도를 높여갔다. 물론 그사이 병원도 여러 곳을 전전했지만 비슷한 말만 들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피부과를 전전하는 동안 내 몸은 스테로이드제에 속수무책 중독돼갔다.
꿈꾸지 않는 삶: 고등학교 3학년 들어 첫 성적표를 받아보고 나는 충격을 받았다. 반에서 39등! 나도 뭔가를 시작해야 했다. 대학입시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효율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나는 가장 취약했던 수학을 과감히 포기하는 대신, 암기 과목에서 점수를 만회하기로 하고 국어ㆍ영어ㆍ생물ㆍ지구과학 등에 집중했다. 공부하느라 신경을 많이 쓴 탓일까. 아토피 증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근 5년 동안 연고ㆍ약ㆍ주사 등 각종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다 보니 그새 저항이 형성돼 어지간한 처방으로는 효과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나는 명지대학교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오래 다니지 못했다. 아버지의 연이은 사업 실패로 1학년 1학기를 다니고 휴학해야 했기 때문이다.
휴학하고 온종일 게임을 하고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집에서 빈둥거리며 지냈다. 그러다 부모님의 성화에 못 이겨 떠밀리다시피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역시 성격이 문제였다. 흔히 아르바이트라고 하면 육체노동을 생각하겠지만, 내게는 '감정' 노동이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고 소심한 성격 탓에 사람들을 대하는 게 너무 어려웠다. 그럼에도 전단지 돌리기, 스티커 아르바이트, 식당 서빙, 분식집 배달 등 잠시 잠깐씩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아르바이트를 몇 시간 하고 나면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노래에 조금 더 재미를 붙인 것도 그래서였는지 모르겠다.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서 집중해서 노래를 들었고, 노래방 동호회에 나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당시 노래방이 아니면 노래를 연습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부끄럼을 많이 타는 나로서는 집에서 연습하기도 곤란했다. 걸으면서 노래 연습을 한 것도 그래서다. 방배역에서 서초ㆍ교대역을 거쳐 강남역까지 걸으면 한 시간가량 걸렸다. 대로지만 보행자가 드물어 발성 연습하기에 좋았다. 걷다가 신이 나면 속도를 올려 달리기도 했다. 땀을 흘리고 심장이 뛰고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을 몸으로 느껴보니 소소한 변화 하나하나까지 모두 신기했다. '살아 숨 쉰다는 게 바로 이런 것이구나!' 훗날 다비드 르 브르통의 에세이 『걷기 예찬』을 읽으며 무릎을 탁 쳤다. 걷는 행위 하나를 주제로 지적 유희와 작가적 감수성을 자랑한 것도 멋있었지만, 무엇보다 직접 걸어본 사람만 아는 생동감이 고스란히 전해져, 전날 내가 느낀 짜릿한 흥분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아토피 증세는 여전했다. 아니 갈수록 악화됐다. 심각한 스테로이드제 중독 상태였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내 상황이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짐작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었다. 같은 질병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스테로이드제를 끊으려 한다며, 조언을 구하고 정보를 모았다. 대부분 단칼에 끊으면 부작용이 매우 심각하게 진행될 수 있으므로, 서서히 약을 줄여가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투약도 지겨웠고 무엇보다 내 마음이 다급했다. 나는 부모님께 "지금 이 시간 이후로 스테로이드제를 완전히 끊을 거예요. 스테로이드제로 완치할 수 있다고 했던 의사들 모두 사기꾼이에요. 그들 때문에 내가 죽어가고 있단 말이에요."라 말하고, 스테로이드제를 중단했다.
스테로이드제를 중단하자 약 기운에 억눌려 있던 아토피들이 득달같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온몸에 열이 나면서 부풀어 오르고 심하게 가렵더니 피부가 터지고 진물이 났다. 손발이 붓고 피부가 갈라져 일어서지도 못했고 걸을 수도 없었다. 가려움증도 참기 어려웠다. 발열 증세도 심각했다. 나중에는 천식 발작까지 일어났다. 체력이 약해지자 정신력도 버티지 못했다. "엄마, 미안해요. 이제 나 더 이상 버틸 의지가 없어요." 견디다 못해 결국 입 밖으로 말해버리고 말았다. "그런 말 하면 안 돼. 우리 아들, 꼭 이겨낼 수 있어." 엄마가 다소 나무라듯 이와 비슷한 말을 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나니 엄마에게 미안했다. '내 삶이 나 혼자만의 것은 아닌데, 내가 힘들다고 포기해버리면 부모님은 어떻게 해.'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이겨내야 했다.
내 몸의 상태가 극도로 나빠지자 부모님은 2000년 여름, 수지로 이사했다. 수지로 이사한 뒤로 발의 붓기가 조금이라도 가라앉으면 집 앞을 거닐었다. 느리지만 차도는 보였다. 2년쯤 지나자 상처 아래로 하얗게 새살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4년쯤 지나자 확실히 건강이 회복됐다. 그 무렵에는 두세 시간 정도 움직이는 게 가능했는데, 주로 게임을 하고 텔레비전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차츰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책을 봤다. 당시 행위는 독서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읽은 게 아니라 봤을 뿐이다. 그저 주체할 수 없는 시간을 때우기 위한 소일거리였을 뿐이다. 내 인생을 바꿀 수 있었던 책과의 운명적인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4년 만의 외출: 2005년은 내게 매우 특별한 시간이다. 같이 교회를 다니던 대학생들 가운데 혼자서 좋아한 여학생이 있었다. 한눈에 봐도 아주 도도한 이화여대생이었다. 나는 소심한 성격 탓에 멀찍이 서서 훔쳐만 볼 뿐, 제대로 인사 한 번 나누지 못했다. 그해 여름, 교회에서 해외 선교를 갔다. 나도 꼭 참가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여러 가지로 서운하고 짜증이 났는데, 갔다 온 대학생들이 자랑을 하고 다니는 통에 더 화가 치밀었다. 그러던 차에 목사님이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을 했다. "『신약성서』를 가장 많이 읽은 사람에게 상을 수여하겠습니다. 얼마나 읽었는지는 본인의 양심에 맡기겠습니다." 그 순간 내 안에 숨어 한 번도 정체를 드러낸 적 없던 승부욕이 화들짝 일어났다. 곧장 전략 수립에 들어가 7독을 하기로 했다. 남은 시간이 11일, 전체 분량이 423쪽이었다. 423쪽을 7독하자면 총 3,000여 쪽을 읽어야 했고, 남은 11일 동안 하루에 약 300쪽을 읽어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다. 우선 한 쪽을 읽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확인했더니 1분 정도가 걸렸다. 계산대로라면 하루에 다섯 시간만 투자하면 됐지만, 집중력과 체력이 따라주지 않았다. 그래도 남아도는 게 시간이어서 잘하면 7독이 가능해 보였다. 온종일 읽고 또 읽었다. 내용 파악이나 이해 따위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오로지 7독을 향해 내달렸고 마침내 7독을 달성했다! 예상대로 내가 1등이었다. 그날 저녁 그녀가 내 싸이월드를 방문해 "축하해. 정말 대단하다. 동생인 줄 알았더니 오빠네"라며 글을 남겼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나는 고맙다는 댓글을 남겼고, 이후 인터넷상에서 그녀와 몇 마디를 더 주고받았다. 하지만 이후로도 나는 그녀의 주위만 서성일 뿐, 대화를 제대로 나눠보지 못했다.
신약성서를 7독해 1등을 하고 나서 발견한 성과는 책 읽는 남자가 멋져 보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유치하게 들리겠지만 책과의 본격적인 운명은 이렇게 시작됐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도서관으로 달려가 2주일간 읽을 책을 다섯 권씩 대출받았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관심사를 좇아 무조건 읽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반드시 책을 폈다. 설령 집중이 안 돼 내용이 파악되지 않더라도 열심히 책을 읽는 척했다. 운 좋게도 책을 읽기 시작한 초기에 독서의 묘미를 알려준 책들을 만났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대부분 학창 시절에 완독했을 법한 『갈매기의 꿈』,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 『빵장수 야곱』 등을 나는 이십 대 중반이 돼서야 읽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 책에 중독돼갔다. 중독되는 속도는 어떤 책을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영혼을 위한 닭고기 스프』 같은 책의 매력은 그야말로 치명적이어서 중독의 가속도를 몇 곱절 높여주었다. 특히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을 통해 나는 진정한 위로를 받았고, 순수한 공감의 감동을 느꼈다. 또 상처 입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포기하거나 외면했던 시간들이 후회됐다. 이 책은 진정한 나로 살기 위해 두려움 없이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나라고 자극해 주었다.
멘토를 만나다: 건강을 회복한 뒤 둘러보니 내 상황이 매우 나빴다. 집안 형편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당연히 복학을 할 형편이 못 됐다. 변화에 대한 간절함은 컸는데, 변화를 갈망하던 내게 가장 큰 자극이 됐던 책이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다. 내가 왜 끊임없이 변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나의 한계를 극복하고 왜 자신감을 길러야 하는지에 대해 이 책만큼 강렬하게 질타한 적이 없었다. 또한 변화는 나를 둘러싼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상황의 변화에 내가 어떤 자세로 대처해야 하는지도 이 책만큼 명확하게 알려주는 책이 없었다.
긴긴 투병의 시간을 지나온 뒤에도 나는 예전처럼 게으르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 늦은 식사를 한 뒤 텔레비전을 보고 게임을 하는 등 어슬렁거리며 하루를 보냈다. 어머니가 곱게 볼 리 없었다. 뒤통수에 와 닿는 어머니의 날카로운 시선이 따가워 책장으로 가 "읽을 만한 책이 있나"라고 중얼거리며 두리번거렸다. 예전에 읽었던 책이 한 권 보였다. 책장을 넘기는데 느낌이 답답했다. 분명히 읽었던 책이어서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낯설었다. 새로운 문장이 눈에 띄었다. "두렵지 않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기억에 전혀 없는 문장이었다. 눈을 뗄 수 없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왜 이렇게 집에만 있는 거지? 두렵지 않다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충격이었다. 책을 한 번 읽으면 어느 정도 내용을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의문이 들었다. '읽었던 책도 다시 보면 전혀 새로울 수 있는 걸까?' 그러면서 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는 생각하며 살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움직였을 뿐 생각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진정한 생각을 하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머리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한 경험을 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났다. 중학교 이후로 거의 내 삶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책을 다시 불러들였고 이후 약 2년 동안은 '한 번 본 책에서 새로운 것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품고 책을 봤다. 그러면서 '책은 내용을 보는 것보다 내용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깨달았고, 나의 발견을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이 과정에서 저자가 궁금해졌다. 나를 위로하고 자극한 책의 저자들을 직접 만나 응원을 듣고 싶었다. 그래서 강연회를 찾아다녔다.
당시 강연장에서 만난 저자들은 책에서 받은 느낌보다 훨씬 강렬했다. 이후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가 강연을 한다고 하면 최대한 참석하려고 애썼다. 강연을 쫓아다니다 보니 강연자마다 스타일이 조금씩 달랐고, 차별화된 전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들 역시 타고난 강연자가 아니라 거듭된 훈련을 거쳐 지금의 능력을 갖췄다고 생각하니 '나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생겼다. 하지만 강연을 듣고 돌아오는 걸음이 마냥 가볍지는 않았다. 좀 더 진솔한 저자의 모습을 보고 싶고, 책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는 갈증이 더 커졌다. 그래서 다짜고짜 저자들에게 전자메일을 보내 만나기를 청했다. 짐작했겠지만 거의 연락이 오지 않았다. 지칠 만도 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전략을 일부 수정해 젊은 저자들에게 다시 연락을 했다. 그리고 몇몇 저자를 만났다.
개인적으로 저자를 만나다 보면, 인간적인 면면을 확인하게 마련이다. 편집되거나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저자와 마주쳤을 때 가끔은 기대에 못 미쳐 실망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난 뒤 곰곰 생각해보니 누구나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그동안 나는 단점을 찾아 비판하기에 급급했음을 깨달았다. 누군가에게서 장점을 발견할지 단점을 엿볼지는 내 안의 기준에 달렸다. 그러므로 저자의 미미한 허물을 확대해 보느라 내재된 장점을 읽지 못한다면, 그것은 저자의 잘못이 아니라 전적으로 내 책임이요 내 어리석음이라는 사실을 뉘우쳤다. 독서도 마찬가지였다. 비판하거나 비난하면서 읽는 독서는 감정 소모, 시간 낭비일 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 권의 책에서 삶을 성장시키고 윤택하게 할 만한 메시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나의 시각이 왜곡돼 있지 않은지 냉정하게 살펴봐야 한다.
한편 노래 강사로 일할 수 있을까 싶어 녹음실을 드나들던 때 보았던 녹음실 실장님은 당시까지 내가 본 최고의 매력남이었다. 하루는 신문을 보던 실장님이 "내 친구 중에 엄청나게 똑똑한 녀석이 있어. 지금은 유명하지 않지만 장담하건대 머잖아 분명 크게 될 놈이야"라며 이지성 작가의 이야기를 종종 했다. 그때만 해도 이지성 작가는 무명의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의 책을 읽고 난 뒤 만나고 싶다며 전자메일을 보냈더니 "학교로 와라"며 답장이 왔다. 직접 본 그는 장발이 인상적인 '동네 형'이었다. 그 뒤 내가 소심한 성격 탓에 먼저 연락하지 못해도 이지성 작가가 수시로 연락을 해왔고, 만나면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려줬다. 하지만 당시는 내가 배움이 짧아 그의 말을 모두 알아듣지 못했다.
어느 날 그가 다짜고짜 "한 달에 책을 얼마나 읽니?"라고 물었다. "일고여덟 권 정도요." "한심한 놈. 한 달에 서른 권을 읽지 않으면 나한테 연락하지 마."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듣고 잠시 놀랐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그 뒤로 짬이 생길 때마다 책을 읽었다. 컴퓨터를 부팅하는 사이, 엘리베이터나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이 등 초 단위의 시간이라도 생기면 무조건 읽었다. 그러면서 일상에서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해 봄날 이지성 작가의 『꿈꾸는 다락방』이 출간됐고, 신간이 나왔다며 내게도 한 권 선물로 주며 말했다. "잠깐 우체국에 들르자. 소포 부칠 게 있어. 잠시면 되니까 여기서 기다려." 이지성 작가가 볼일을 보는 사이, 나는 우체국의 소파에 앉아 『꿈꾸는 다락방』을 읽었다. 책장이 쉽게 넘어갔다. 성공의 법칙을 실천해 삶을 변화시킨 사람들의 스토리는 위력적이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한참을 읽다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려보니 이지성 작가가 보이지 않았다. 나를 두고 혼자서 가버린 것은 아닌가 싶어 두리번거렸더니 그가 내 뒤에서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왜 그냥 계셨어요? 일 다 보셨으면 저한테 말씀을 하시지 그랬어요." "기다렸다. 가능성 있는 놈이 책을 읽고 있는데 방해할 수 있나." 얼마나 멋진 사람인가. 이지성 작가를 만나는 동안 그의 호칭은 수년에 걸쳐 형에서 형님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4년 뒤에는 '스승님'으로 '격상'됐다. 나는 그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나의 무지를 훨씬 더 많이 깨뜨렸다. 첫 만남 뒤로 줄곧 혼났지만, 그게 모두 나의 성장을 자극하고 응원해서라는 것을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