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한계
이영직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성장의 한계
이영직 지음
스마트비즈니스 / 2012년 8월 / 264쪽 / 13,000원
인류 지구촌의 한계
로마클럽 이야기
‘성장의 한계’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은 로마클럽이었다. 로마클럽은 지구촌 인구가 지금의 속도로 증가하고 자원소비와 환경오염이 지금의 속도로 진행된다면 지구는 ‘100년 이내’에 한계에 도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 보고서가 나왔을 때가 1972년이었으니 2072년이면 로마클럽이 경고한 한계에 도달하는 시기이다. 지구촌의 위기를 가장 먼저 경고한 사람은 영국의 경제학자 맬서스였다. 그는 인구증가와 식량증가를 토끼와 거북이의 달리기에 비유하면서 머지않아 지구촌 인구는 식량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렇게 되면 인류는 모자라는 식량을 위해 치열한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고, 여기에서 식량의 수용한계 밖에 있는 인구는 심각한 기아와 질병에 직면하게 되리라는 예언이었다. 그는 인구 억제를 위해서는 강제적인 피임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런 그가 결혼하자마자 자녀를 셋씩이나 낳아 사람들의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맬서스가 지구촌의 위기를 예언했다는 점에서는 선각자였지만 그의 예언은 엉터리가 되고 말았다. 그가 인구론을 쓸 당시인 1798년의 지구촌 인구는 고작 8억 명 정도였고 그가 예측한 지구촌의 수용한계는 20억 명 정도였다. 그러나 2011년 10월 31일을 기점으로 지구촌의 인구시계는 70억 명을 돌파했으니 그의 예측은 틀려도 한참 틀렸다. 그의 예언을 빗나가게 한 가장 큰 원인은 농업혁명과 의료기술의 발달이었다. 비료의 발명과 농업 기계화로 농업 생산력은 한동안 인구증가를 앞질렀다. 또 의료기술의 발달로 영, 유아 사망률이 줄어들었고 평균수명도 획기적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도 지구촌 인구 10억 명이 굶주리고 있으며 70억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자원을 소비해야 하고 매년 남한 크기 면적의 밀림을 베어내야 한다. 지구촌 인구는 지금도 과잉이며 20세기와 같은 인구폭발은 막아야 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 등 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남의 일’로 보고 있다. 오히려 선진국들과 우리나라에서는 인구감소를 걱정하고 있다. 이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소비자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입장에서 보면 인구는 노동력이며 동시에 소비자이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두 얼굴이다. 인구증가는 식량문제와 환경문제로 이어지기 때문에 지구촌의 수용 능력은 점점 더 좁아지게 되어 결국 한계에 직면하게 된다. 경제의 성장을 위해서는 인구증가가 필요하지만 인구증가는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억제하고 환경도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이것이 역설이다.
1968년 이탈리아의 실업가 아우렐리오 페체이와 영국의 과학자 알레산더 킹 두 사람이 인류의 미래를 논의하기 위한 기구를 창설하자고 제의했다. 여기에 관심을 가진 유럽의 학자, 기업인 36명이 로마에서 첫 회의를 열어 인류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논의했다. ‘로마클럽’이라는 이름은 거기서 비롯된 것이다. 여기서 논의된 주제들은 인구문제, 투자, 자원, 환경, 식량 등 지구촌이 당면한 과제들이었다. 로마클럽은 논의의 결과를 계량화하기 위해 미국 MIT 대학에 정량적인 분석을 의뢰했다. 분석팀은 인구증가, 공업생산, 식량생산, 환경오염, 자원고갈 다섯 분야에 대해 1900년부터 1970년까지의 자료를 가지고 2100년까지의 추이를 예측하는 모델을 완성했다. 로마클럽은 이 분석 모델을 가지고 1972년에 「성장의 한계」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했다. 빠른 인구증가로 인해 부존자원이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머지않은 장래에 증가하는 인구를 지탱할 수 없을 거라는 비관적인 보고서였다. 마치 18세기의 맬서스가 살아나서 인류의 위기를 다시 한 번 경고하는 듯하다. 여기서 제기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인구, 공업, 식량, 환경, 자원은 상호의존적이어서 어느 하나를 해결한다고 하여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문제가 더욱 악화된다. 둘째,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자원을 감소시키고 환경을 악화시킨다. 성장과 자원, 환경은 되먹임 관계(negative-feedback)로 얽혀 있기 때문에 양립할 수가 없다. 성장을 하면 할수록 자원이 감소되어 성장 여력을 갉아먹게 된다. 성장이 성장의 발목을 잡는 현상이다. 셋째, 인구증가, 자원감소, 환경오염 모두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어느 분야든 문제가 불거지면 말기 암처럼 이미 손을 쓸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 넷째, 지금의 성장과 생활양식을 그대로 둔 채 기술적인 해결책은 한계가 있다. 즉 현재의 가치관, 생활양식, 성장을 유지하는 한 기술적인 해결책은 나오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다섯째, 마지막으로 인구증가와 공업생산이 지금의 속도로 진행된다면 자원고갈, 환경파괴, 식량부족으로 100년 후인 2072년이면 인류는 성장의 한계에 부딪힐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보고서가 나왔던 1972년 당시에는 지구촌 경제가 성장 가도를 달리던 때여서 많은 사람들은 이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보고서에서는 가장 먼저 고갈될 자원으로 동선의 재료가 되는 구리를 꼽았으나 구리보다 성능이 뛰어난 광섬유가 등장하면서 틀린 예측이 되고 말았다. 인류의 미래에 대해 낙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비록 인류가 많은 문제를 가지고는 있다고 해도 인간의 지혜는 인류가 당면하는 문제들을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이보다 좀 더 심각한 문제점은 로마클럽에서 주장하는 해결책이 대부분 개발도상국들의 몫이라는 점에 있다. 바람직한 해결책은 지구촌 모두가 인구증가를 억제하고 자원낭비적인 생산방식을 바꾸고,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이고, 친환경적인 삶을 살아야 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개발도상국들만의 ‘의무’라는 것이다. 사실 지구환경을 오염시킨 주범은 모두 개발을 완료한 선진국들이기 때문이다. 개발도상국들에게 탄산가스를 내뿜는 공장을 짓지 말라고 하기 이전에 선진국의 자동차 운행부터 줄여야 한다는 지적인 것이다.
인간 문명의 한계
짧아지는 문명의 수명
지구상에 존재했던 60여 개 문명의 평균수명은 421년이었으며 길게는 1000년, 짧게는 60년 정도였다. 근현대 문명 28개의 수명은 평균 305년으로 116년이나 짧아졌다. 그 이유를 미국의 역사학자 조셉 테인터는 현대로 내려올수록 문명을 지탱하는 기술 수준이 점점 더 복잡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대문명이 자전거 수준이었다면 근대에 이르러서는 자동차 수준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시스템이 복잡해지면 고장도 많아지게 마련이다. 시스템이 자전거 수준이었을 때는 간단히 고칠 수가 있지만 시스템이 자동차 수준으로 복잡해지면 한 번의 큰 고장이나 몇 개의 작은 고장이 동시적으로 발생하면 시스템 전체가 마비되어 버리는 것이다.
발달한 문명사회는 정교하게 짜인 생태계와 흡사하다. 여기서 어느 문제 하나를 해결한다는 것은 평형을 이룬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것과 같다. MIT 대학의 제이 포레스터 교수는 기술적인 문제 해결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 “우리는 기술로 성장의 한계를 넘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할수록 우리는 더욱 더 해결하기 어려운 성장의 한계를 맞게 된다. 어떤 기술적 해결책도 결국에는 실패한다.” 문명의 붕괴는 과거의 사례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현대 문명도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자원고갈, 환경재난, 사회적인 시스템의 복잡화, 국가나 집단 간의 이해충돌, 매년 새로 등장하는 새로운 바이러스 등이 현대문명을 위협하는 요소들이다.
문명사회 초기의 문제들은 비교적 간단한 것들이었다. 농경지를 개간하고 수로를 만들고 성곽을 쌓는 일 등이었을 것이다. 또 초기의 문제들은 구성원 모두가 쉽게 동의할 수 있는 해결책들이었다. 그러나 사회가 계급이 생겨나고 다양한 직업이 등장하면 사회를 움직이는 시스템도 복잡해진다. 여기서 불거지는 문제들은 이전의 방식으로는 잘 해결되지 않는다. 문제 자체가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또 사회가 복잡해진 다음에는 하나의 문제 해결이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오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이는 로마클럽이 지적한 문제이기도 하다. 인구가 늘어나 식량이 부족해지면 더 많은 숲을 베어내고 농경지를 만들어야 하지만 이는 다시 홍수나 가뭄 등 자연재해에 취약한 구조로 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제원리가 지나치게 팽배해지면서 인류를 위해 꼭 필요한 수많은 과제들은 무시되고 만다.
미국의 사회생물학자 레베카 코스타는 복잡해진 문명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다음 세대로 전가하면서 사회가 정체되기 시작하는 것이 몰락의 첫 번째 징후이며, 그릇된 믿음이 사실을 대체할 때가 두 번째 몰락의 징후라고 지적하고 있다. 첫째, 당면한 문제들을 다음 세대로 전가하는 시기이다. 예를 들면 삼림 파괴와 지나친 화석연료의 사용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에 대한 대책은 차일피일 뒤로 미루게 된다. 이것이 누적되면서 문명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둘째, 믿음과 지식 사이에 불균형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홍수, 가뭄, 흉년의 원인을 숲의 파괴나 토지의 염화현상에서 찾지 않고 수호신의 노여움 때문이라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믿음’이 지식과 사실을 대신할 때가 두 번째 몰락의 징후라는 지적이다. 사회가 복잡해지면 ‘믿음’이 지식을 대신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자연재해나 전염병, 외침이나 내분이 일어나면서 문명은 몰락을 맞이하게 된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한계
자본주의의 한계, ‘반복되는 불황’
자본주의는 크고 작은 불황이 주기적으로 되풀이된다. 1907년 미국의 금융공황, 1930년대의 세계적인 공황, 1970년대에 있었던 두 차례의 석유위기, 1980년대의 남미 국가들의 연쇄부도, 1997~8년에 있었던 아시아권의 경제위기 그리고 가장 최근에 있었던 2008년도 미국 월가의 금융위기 등이 그러하다. 이처럼 반복되는 위기는 자본주의의 내재적인 한계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본질은 모든 것을 개인의 자유에 맡겨 놓으면 수요와 공급이 조화를 이루며 사회 전체가 발전할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모든 경제주체들이 이기적인 선택을 한다면 확률적으로 주기적인 불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라는 단어가 때로는 타락한 단어로 들리는 것이다. 과잉생산에 의한 불황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점친 사람은 영국의 경제학자 맬서스였다. 당대의 경제학자였던 맬서스와 리카르도 두 사람은 불황의 가능성을 놓고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맬서스는 공급과잉으로 인한 불황의 가능성을 주장했고 리카르도는 어떤 경우에도 불황은 없다는 주장이었다. 그 토론에서는 말 잘하는 리카르도가 이겼다고 한다.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언했던 마르크스는 19세기 들어 거의 10년마다 되풀이되는 불황의 정체를 규명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서 어디에서도 공황의 원인을 어느 하나 상세하게 기술하지 않고 여러 곳에서 다양하게 불황의 원인을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재화와 서비스가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목적에서가 아니라 자본가들의 이윤획득에서 출발한다는 점, 자본가들은 자신이 만드는 상품은 모두 팔려 나가기를 희망하여 과잉생산을 하는 반면 노동자들의 임금은 되도록 적게 지불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공급과 수요의 괴리가 발생한다는 점, 신용붕괴와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위기 등을 불황의 원인으로 언급하고 있다. 결국 마르크스가 지적한 불황의 요인은 공급과잉과 이윤저하의 법칙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두 가지 요인으로 자본주의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고 예측한 것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종말을 예언했지만 그가 자본주의를 일방적으로 매도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자본주의의 역동성과 경이로운 생산성이 역사상 그 어떤 지배계급이 이룩한 것보다 월등함을 인정했다. 그러나 나라의 경제를 탐욕스러운 자본가들에게 맡겨 놓으면 과잉생산과 구조적인 이윤저하로 주기적으로 공황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내다보았다. 과잉생산이 궁극적으로 공황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자. 자본가들은 늘 과잉생산의 유혹을 떨치기가 어렵다. 자신이 만들어내는 상품이 모두 팔려 나가리라는 가정하에 생산계획을 수립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과잉생산된 상품이 수요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공장이 문을 닫아야 하고 근로자들은 직장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아야 한다. 근로자들의 수입이 없어지면 수요는 더욱 위축되어 공황으로 이어지게 된다.
1930년대 미국에서 대공황이 일어나자 미국은 물론 세계 전체가 휘청거렸다. 미국은 1920년대 말에 이미 과도한 신용공여와 과잉투자가 누적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미 생산은 과잉상태, 오갈 데 없는 자금이 증권시장으로 몰리면서 거대한 거품을 만들었다가 그 거품이 꺼지면서 공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은 마르크스의 예언대로 자본주의가 종말을 고하는 게 아닐까 우려했다.
여기서 등장한 구원투수가 영국의 경제학자 케인즈였다. 그 역시 공황의 원인을 유효 수요의 부족으로 진단하고서 지금까지의 자유방임적인 경제운용을 그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관여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았다. 정부도 경제주체의 하나로 민간이 하기 어려운 기간산업의 건설, 사회적 인프라 확충, 공공사업 등에 대한 투자로 유효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렇게 하여 시작된 것이 테네시 강 개발사업 등 정부의 공공 부문 투자였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엄청난 전쟁 수요가 일어나면서 1930년대의 공황과 같은 불황은 언제 그랬냐는 듯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이것 역시 자본주의의 내재적인 모순이다.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전쟁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불황을 탈출하기 위해 일부러 전쟁을 일으켰다는 주장도 상당한 설득력을 가진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늘 ‘미국’이라는 이름 뒤에 ‘제국주의’라는 단어를 덧붙였다.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구축한 서구 열강은 가공할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나머지 세계를 약탈하기 시작했다. 자원과 시장을 확보하기 위한 정복전쟁이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본질이므로 제국주의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자본주의가 제국주의의 동의어로 비난받는 이유이다.
마르크스가 두 번째로 지적한 것은 구조적 불황으로 ‘이윤율 저하의 법칙’이다. 생산성 증가를 위해 설비를 늘려가지만 투하 자본에 대한 잉여가치의 비율, 즉 이윤은 점점 더 줄어든다. 그리하여 불황은 주기적으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구소련이 붕괴될 당시만 해도 자본주의의 완벽한 승리를 노래했던 사람들이 다시 자본론을 꺼내 든다고 한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세계적인 불황 때문이다. 2008년 발생한 미국 금융위기 이후, 세계 전체가 불황에 허덕이고 있으며 경제학자는 물론이고 사회학자들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론을 꺼내는 것이다.
지금 유럽 여러 나라들과 일본의 대학에 다시 자본론 강의가 개설되었다. 사람들이 다시 자본론을 읽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점을 찾기 위한 것도 있지만 마르크스가 그토록 부르짖었던 ‘인간회복’의 문제가 지금의 화두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시스템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문제만은 자본주의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한계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한계, ‘포퓰리즘’
20세기 들어 민주주의 열풍이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제3의 물결』을 쓴 사무엘 헌팅턴에 의하면 1996년을 기준으로 20년 전에는 민주주의 체제를 택한 나라가 30%였으나 지금은 60%의 국가들이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이제 민주주의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민주주의의 근간은 다수결에 의한 의사결정 원칙이다. 정권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한 정책을 결정하는 것도 다수결에 의한다. 그러나 다수결이 항상 옳은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의문이 남는다. 정치학자들에 의하면 민주주의는 최선책이 아니라 차선책이라고 한다. 민주국가가 아닌 전제국가나 독재국가 지도자들이 훨씬 더 좋은 정책으로 국가를 부흥시키고 국민을 편안하게 해준 사례도 얼마든지 있다. 반대로 국민에 의해 선출된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수행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다만 최악의 선택은 막아보자는 것이 민주주의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