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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따르는 힘

심윤섭 지음 | 시간여행
기꺼이 따르는 힘

심윤섭 지음

시간여행 / 2012년 5월 / 231쪽 / 12,800원





1장. 출발점 인식: 나는 어떤 팔로워인가?



팔로워는 누구이며, 팔로워십은 무엇인가: 팔로워는 '추종자, 누군가를 따르는 사람'을 의미한다. 조직 차원에서 말하자면 리더를 따르는 사람, 상사와 업무적·위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부하직원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그러므로 팔로워라는 용어 자체를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일부 서적이나 학자들이 팔로워라는 단어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해서 기본적인 이해마저 어렵게 만든 부분이 있다. 팔로워십에 대한 원활한 이해를 위해서라면 위에서 정리한 개념을 숙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B사에 해외개발본부가 있고 그 산하에 수출 팀이 있다. 수출 팀은 책임자인 김 부장과 열 명의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열 명의 직원은 김 부장의 팔로워이다. 김 부장은 본부장의 팔로워이고, 본부장은 이사진의 팔로워, 이사진은 대표이사의 팔로워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팔로워에게 팔로워십이 있는지 없는지의 여부이다. 팔로워십이 충만한 팔로워는 상사와 조직이 모두 원하는 인재이며 성과를 창출하고 스스로 발전하는 사람이다. 반면 팔로워십이 부족하거나 아예 없는 팔로워라면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이 상대적으로 적고 자기발전에서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당신이 리더라면 어떤 팔로워와 비전을 함께 성취하고 싶겠는가?

팔로워십은 리더를 잘 보좌하고 리더가 성공할 수 있도록 최대한 자원해주는 것을 말한다. 원래 기업 등 수직적 조직에서 경영자에 대해 구성원이 따르는 방식으로 출발했으나 최근에는 그 의미가 확대되어 법질서와 합의, 권위에 대한 존중 등을 포괄한다. 다양한 학자들의 정의와 견해가 있지만 그것들을 모두 종합해 보면 팔로워십은 리더를 따르는 태도와 능력에 따라 나뉘며 핵심 의미는 대동소이하다. 팔로워십이란 '리더와 조화를 이루며 자기주도적으로 일을 수행하는 팔로워의 태도와 능력'이다. 탁월한 팔로워는 '헌신, 자기주도성과 열정, 실력, 조언, 조화'라는 팔로워십의 핵심 요소를 겸비함으로써 일터에서 성장하며 스스로 성공을 만들어간다.

자기 일과 남의 일을 구분하며 방어적으로 일하는가: "의자를 구매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소음이 심하네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전화를 받는 사람이 말했다. "저희 소관이 아니니 담당 부서로 돌려 드릴게요."

연결음이 한동안 이어진 후 누군가 다시 전화를 받았다.

"의자를 구매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소음이 심하네요."

"어디서 구매하셨죠?"

"인터넷 쇼핑몰 OOO입니다."

"저희 담당이 아니니 이쪽으로 전화를 해보세요. 여기서는 직접 연결이 안 돼서요."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그러고 나서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의자를 구매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소음이 심하네요."

"어디서 구매하셨죠?"

"인터넷 쇼핑몰 OOO입니다."

"AS를 해드리겠습니다,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담당자에게 전화를 드리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담당이 아니라서요."그렇게 며칠을 기다렸지만 전화는 끝내 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가구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의자를 구매한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소음이 심하네요."

"AS를 해드리겠습니다. 연락처를 남겨주시면 담당자에게 전화를 드리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담당이 아니라서요."

결국 나는 소음이 나는 그 의자를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가구회사의 직원들은 서로 자기의 일이 아니라며 핑퐁 게임을 했고, 무상으로 AS가 가능한 기간이 지나도록 연락을 받을 수 없었다. 물론 담당자의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모두 가지고 있었고, 이후 몇 차례 직접 전화를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자기 일과 남의 일을 구분하며 서로 떠넘기는 담당자들 덕분에 그 회사는 고객 한 명을 영원히 잃어버렸다. 한때 국내 가구판매 1위까지 했던 이 기업의 직원들은 한마디로 형편없었다. 최근에는 실적 부진과 판로 개척 실패로 지속적인 위기 상황에 놓여 있는 상태이다. 자기 일과 남의 일을 구분하며 방어적으로 일하는 팔로워들 때문에 회사가 이 지경이 된 것일까? 아니면 이러한 회사 사정이 팔로워들로 하여금 방어적으로 일하도록 만든 것일까? 앞뒤를 바꾸더라도 공식은 성립된다. 안 되는 조직에는 자기 일과 남의 일을 구분하며 방어적으로 일하는 팔로워가 많다는 것이다.

일터에는 분명 내가 해야 할 일과 다른 사람이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 부서가 다르고 임무가 다르기 때문에 자기가 맡은 고유의 영역과 일이 있다. 그러나 칼로 무를 자르듯 정확하게 나눌 수 없는 사각지대 업무가 존재하기 마련이고, 구성원들이 이 사각지대의 업무를 나의 일처럼 여기고 행동할 때 조직과 나는 함께 발전한다. 나의 일은 여기까지라고 스스로 선을 긋고, 새롭게 추가되는 일에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사각지대의 업무에서 늘 문제가 발생한다.

새롭게 주어진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우리는 방어적으로 일하는 사람과 자기주도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자기주도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새로운 일이 주어졌을 때 한번 해보겠다는 자세와 내 인생에 도움이 된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임하기 위해 나름의 애를 쓴다. 반면 방어적으로 일하는 사람은 내 몸만 피곤해지는 일, 나만 손해 보는 일이라는 판단하에 주어진 일을 거절하거나 회피한다. 그럴 경우 당장 내 몸은 편할지 모르지만 하는 일이 단조롭고 제한된 업무만 하다 보니 성장이 더디다. 그렇다 보니 조직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함께 입사한 동기와의 경쟁에서도 뒤처진다. 이는 결국 조직과 동료들의 불만을 야기하게 되고, 또다시 방어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는 자기 일과 남의 일을 구분하며 방어적으로 일하는 태도가 만들어낸 굴레이다. 자기 일과 남의 일을 구분하며 일하지 말자. 자기주도적으로 일하면서 성장한다는 큰 틀의 사고로 임하자.



2장. 헌신: 헌신하며 똑똑하게 일하기



리더를 따르는 것이 리더가 되는 첫 단추: 아리스토텔레스는 '남을 따르는 법을 모르는 사람은 결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했다. 이처럼 우리는 리더가 되기 위한 올바른 과정으로서 리더를 따르는 연습부터 할 필요가 있다. 리더를 따른다는 것은 리더의 말에 절대 복종하며 리더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로봇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리더가 원하는 바를 이해하고 리더를 도우며 성심성의껏 일함을 의미한다.

부모를 공경할 줄 모르는 자식은 결코 훌륭한 부모가 될 수 없으며, 스승을 업신여기는 제자는 존경받는 스승이 될 수 없다. 리더를 제대로 보필하지 않던 사람이 리더가 된 이후 부하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도록 강요한다면 그들은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을 것이다. 워렌 베니스는 『위대한 이인자들』에서 중국의 위대한 지도자 마오쩌둥을 만든 사람은 그의 든든한 팔로워 저우언라이였음을 강조한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는 정치적 동맹으로 인연을 시작한 이후, 그리고 오늘날 마오쩌둥의 훌륭한 팔로워였던 저우언라이는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리더로 추앙받고 있다.

전 미국 국무부장관 헨리 키신저는 '저우언라이는 공자와 같은 인물이며, 60년의 공직생활 동안 그보다 더 강렬한 인물을 만난 적이 없었다.'고 칭송했다. 저우언라이는 마오쩌둥과 위대한 협력관계를 맺은 중국 혁명의 동반자였다. 1939년 두 사람은 연합을 맺고 역사적인 승리를 거머쥔다. 1949년 10월 1일에는 중국 인민공화국의 정부수립을 이루어냈으며 그 결과 마오쩌둥은 중국의 지도자가, 저우언라이는 총리가 되었다. 54세의 투박하고 거칠며 세속적인 마오쩌둥에게서는 세계 지도자들이 지니고 있는 세련된 교양미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반면 저우언라이는 검은 머리, 강렬한 눈빛 그리고 조각같이 잘생긴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이 30년 가까이, 마오쩌둥은 국가의 주석으로서 그리고 저우언라이는 총리 겸 외무부장관으로서 훌륭한 협력을 이루어냈다.

이렇듯 두 사람의 협력관계가 계속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마오쩌둥 그리고 귀족 집안의 자제로 태어난 저우언라이, 두 사람의 성장배경과 활동경력 그리고 성격은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후세의 사람들은 둘 사이의 관계가 공고히 유지될 수 있었던 요인으로 저우언라이의 뛰어난 팔로워십에 주목한다. 그가 리더를 기꺼이 따르고 리더와 뜻을 같이하며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에 마오쩌둥 또한 저우언라이를 신임하고 그에게 막강한 권한을 부여했던 것이다. 만일 그가 동맹 초기부터 마오쩌둥을 리더로 인정하지 않거나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의 총리이자 존경받는 리더 '저우언라이'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삼성 재건의 일등 공신 김재소와 이창업: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기업 삼성의 창업주는 고 이병철 회장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삼성그룹으로 성장하기 전 이병철 회장이 재기하는 데 훌륭한 조력자가 곁에 있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과거 이병철 회장이 6·25 한국전쟁 때 겪었던 일화를 살펴보건대 만일 그의 곁에 훌륭한 팔로워가 없었다면 오늘날 삼성그룹은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구에서 양조장 사업을 하던 이병철 회장은 자신이 신뢰하는 김재소와 이창업에게 양조장 경영을 맡기고 서울로 상경한다. 이병철 회장은 종로에 삼성물산공사를 설립하고 무역업을 시작했는데, 이후 무역업 분야에서 10위권 안에 들어갈 만큼 사업이 크게 확장되었다. 그러나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은 이병철 회장의 사업 기반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북한군이 삽시간에 서울을 함락했고 이병철 회장의 모든 재산은 압류당했다. 이후 서울에서 상황이 좋아지기만을 기다리던 이병철 회장은 결국 1·4후퇴 때 서울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알거지가 된 채 대구에 도착하자 양조장의 운영을 맡고 있던 김재소와 이창업이 이병철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이병철 회장에게 돈 3억 원을 건네며 말했다. "그동안 양조장을 운영하며 이익금을 차곡차곡 모아두었습니다. 부산에서 다시 사업을 시작하십시오."

그들은 전쟁 중에도 양조장을 폐쇄하지 않고 사업을 이어가며 이병철 회장을 기다렸다. 그리고 이병철 회장이 사업을 재기할 수 있도록 자금 3억 원을 건네며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때 건넨 3억 원은 1952년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물산을 설립하는 자본금이 되었고 현재의 삼성그룹 전체가 존재하게 된 귀중한 씨앗이 되었다. 오늘날 삼성이 인재 경영을 강조하는 이유도 알고 보면 그들의 역사와 경험으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만일 김재소와 이창업에게 팔로워십이 없었다면 그들은 전쟁 통에 양조장을 폐쇄하고 3억 원을 서로 나눠 가졌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거대한 기업을 일으키는 바탕에는 뛰어난 리더뿐만 아니라 그에 못지않은 훌륭한 팔로워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



3장. 자기주도성과 열정: 일의 노예가 아닌 일의 주인 되기



스스로 일하는 사람이 꿈을 완성한다: 전북 고창 하면 선운사와 동백꽃, 세월을 이겨낸 고인돌이 역사를 거슬러 돌아오는 장면이 연상된다. 기력을 북돋우는 복분자와 장어구이가 생각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고창 청보리밭 축제'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구릉을 넘어 아기자기하게 펼쳐진 이 보리밭을 보기 위해 해마다 30~40만 명의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보리농사로 먹고살기 빠듯했던 고창 공음면은 연간 200억 원 이상의 경제 효과를 거두는 지역축제의 대표마을이 됐다. 이 축제를 기획하고 추진한 사람은 7급 공무원이었던 김가성 씨이다. '고창 청보리밭 축제'는 온전히 그가 스스로 디자인하고 만들어낸 열정의 산물이다. 그는 우연히 전주 월드컵 구장의 푸른 잔디를 보면서 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한다. 그러나 주어진 일만 처리하는 수동적인 일터의 분위기와 연공서열을 중시하는 풍토 속에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는 설 곳이 없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여기까지라고 정해 놓은 수동적인 팔로워들의 입장에서 보면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능동적인 팔로워는 더 많은 일거리를 안겨주는 골칫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지역 경제에 이바지하고 고창을 전국에 널리 알리는 일을 상상하며 사람들의 험담과 비난을 참고 견뎌냈다. 그는 보리밭 주인을 열 번 가까이 찾아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협조를 간청했다. 주말이면 벤치마킹을 위해 사비를 들여가며 지역 축제를 찾아다녔다. 홍보를 위해 방송국을 찾아가 손수 담근 복분자주를 담당자들에게 선물했고, 축제가 시작되면 취재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고창 청보리밭 축제가 시작된 첫해인 2004년, 3천만 원이라는 예산으로 무려 180억 원의 경이적인 수익을 창출했다.

꿈은 스스로, 능동적으로 일하는 팔로워의 몫이다. 행동하지 않는 사람은 일보 전진할 수 없고, 전진하지 못하면 꿈에 다가설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조직에서 인정받고 과거보다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희망한다. 그렇다면 스스로 일하는 팔로워의 길로 들어서기 바란다. 혹자는 조직의 분위기, 일터의 관례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가는 오히려 큰 화를 입는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직의 분위기에 맞는 현명한 방법과 노하우를 지혜롭게 적용하며 능동적으로 일한다면 꿈은 실현될 수 있다.

순천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든 원동력: 2010년 여름, 다섯 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은 바로 전라남도 순천시청이었다. 팔로워십 교육을 위해 찾은 곳이었다. 일주일 동안 순천시내에 있는 숙소에 머물면서 하루에 7시간씩 총 500여 명의 직원들과 호흡해야 하는 만만치 않은 일정이었다. 필자의 이런 우려와는 다르게 교육생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첫날 강의가 끝날 무렵에는 순천 시장께서 직접 강의실까지 찾아와 강의 후 필자와 함께 조촐한 저녁식사를 했다. 격의 없이 편하게 대해주는 마음도 고마웠지만, 무엇보다 팔로워십에 대한 시장의 기대와 열의가 대단했다. 나는 팔로워십 강의를 강력하게 추진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시장 혼자 이래라저래라 하면서 시정을 하는 시대는 갔다고 봅니다. 투수가 제아무리 공을 잘 던지면 뭐하겠습니까? 받아줄 포수가 시원치 않으면 경기를 제대로 치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팔로워십이야말로 조직과 지역 발전을 위해 필요한 핵심 요소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 일터에서 수행되는 대다수의 업무들은 팔로워의 능력과 도움 없이는 완성될 수 없다. 하지만 리더십 교육은 넘쳐나고 있고 팔로워십 교육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나는 수년 전부터 팔로워십 교육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커리큘럼을 만들고, 동영상 강좌를 촬영하며 줄곧 열정을 쏟고 있던 터였다. 그러던 중 팔로워십의 중요성을 공감하는 이를 만난 것이다. 가뭄에 단비를 맞은 느낌이었다.

강의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좋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순천시가 유엔환경계획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2010 리브컴 어워즈'에서 은상을 수상한 것이다. 생태·환경 분야에서 월등한 경쟁력을 갖춘 세계 주요 도시에 주는 상으로 순천시는 미국 마이애미 비치가 금상을 수상한 데 이어 은상을 거머쥐며 도시 경쟁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남쪽의 조용한 도시 순천이, 역동하는 도시, 도약하는 도시로 거듭난 데에는 시청 공무원들의 팔로워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순천시청에는 주말이 없다. 칼퇴근이 공무원의 특권이라는 말을 꺼냈다가는 따가운 눈총을 감수해야만 한다. 시장은 주말이면 자전거를 타고 지역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작은 부분까지 몸소 챙긴다. 잘못 놓인 맨홀 뚜껑에서부터 도로가 파인 곳은 없는지, 신호등이 더 필요하지는 않은지 살핀다.



4장. 실력: 탄탄한 실력으로 더 높이 도약하기



의욕보다 실력이 더 많은 것을 완성한다: 2010년에 방송된 '제빵왕 김탁구'는 한때 시청률 50%를 기록한 드라마이다. 가진 것은 없지만 마음 착하고 겸손한 '김탁구'와 거의 모든 것을 가졌지만 비뚤어진 승부욕과 불만으로 가득 찬 '구마준'의 대비는 극에 흥미를 더해주었다. 드라마의 전반부를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이끈 것은 구마준이 김탁구를 실력으로 제압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들이었다. 특히 '봉빵'을 만드는 경합에 앞서 구마준은 승리를 위해 김탁구의 눈까지 멀게 할 만큼 악랄한 수법을 사용한다. 결국 최종 경연에서 패한 구마준은 가게에 불을 지르고 봉빵의 제법이 담긴 사부의 책을 들고 도주한다. 그는 지나친 승부 기질과 의욕으로 뭉쳐진 콤플렉스 덩어리다. 반면 김탁구는 자신의 타고난 재능과 실력을 잘 알지 못하는 낙천적인 천재이다. 김탁구는 실력을 갖춘 승리자였고, 구마준은 실력보다는 의욕이 앞선 패배자였다. 의욕의 뒷받침 없이 실력이 향상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욕의 크기로 실력을 가늠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는 의욕보다 실력이 더 많은 것을 완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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