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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파워

소공자 지음 | 코스모스북
싸이파워

소공자 지음

코스모스북 / 2012년 8월 / 299쪽 / 15,000원





새 시대의 새 문명



파동문명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로 만물과 같은 입자의 세계이고, 또 하나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전파나 생각과 같은 파동의 세계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눈에 보이는 세계만이 실재하는 것처럼 생각해왔다. 우리 눈으로 볼 수 있는 정도의 크기를 갖는 입자만이 진짜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어떤 때는 보이는 실체가 다른 형태로 변했는데도 사람들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같은 재료인데도 형태가 바뀌었다고 생각해서 다른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어렸을 때의 모습과 어른이 되었을 때의 모습은 분명히 다른데 사람들은 같은 사람이라고 한다. 또 쌀로 떡을 만들거나 설탕으로 별 사탕을 만들면 재료가 같음에도 불구하고 서로 다른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인류는 지금까지 눈에 보이는 세계를 통해 많은 발전을 이룩해왔다. 이른바 입자문명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주변에는 많은 전파들이 떠다니고 있다. TV나 라디오를 켜보면 당장 전파가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단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나 정신 이른바 생각도 전파와 같은 파동이다. 지금까지는 TV를 켜거나 선풍기를 틀 때 손이나 리모컨을 사용하여 켜고 껐지만, 앞으로는 생각만으로 TV를 켜고 채널을 바꾸며 선풍기를 돌아가게 할 것이다. 눈으로 볼 수 없는 파동의 세계는 눈에 보이는 입자의 세계보다 아직 많은 연구가 되어 있지 않지만, 21c에 들어서면서 지구 문명은 더 이상 입자의 세계로는 설명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래서 파동의 세계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지구 문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다. 이른바 파동문명이다.

입자적 관념과 파동적 관념: 지금까지의 인간의 생각은 입자적 세계관으로부터 생긴 입자적 관념이다. 입자적 관념이란, 생긴 형태의 크기를 보고 크고 작음을 나누고, 눈으로 볼 수 있는 연료를 통해 에너지를 만들어 사용하며, 보이는 것을 찾아 서로 싸우고 쟁취하는 등, 기존의 물질세계가 관념의 주체가 되어 유발되는 생각을 말한다. 이에 반해 파동적 관념이란, 우리의 마음이나 정신 혹은 생각이 근본이 되어 우주에 널리 퍼져 있는 우주 에너지를 사용해 여행을 하거나 풍요롭게 생활하는 등, 생각으로 원하는 현실을 창조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파동적 관념을 이해하기 힘든 이유는, 입자가 <존재적 입장>이라면 파동은 <작용적 입장>이기 때문에 그렇다. 입자적 관념에서 본 어제의 물건은 어제의 모습으로 마음속에 기억되어 있기 때문에 오늘 그 물건의 형태가 바뀌었다면 우리는 모양이 변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파동적 관념은 작용적 입장이기 때문에, 세상이 정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상태(사실 모든 만물은 전자 현미경으로 보면 쉬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여서, 모양이 변했다고 말하지도 않을뿐더러 어제니 오늘이니 하는 시간 개념도 없다.

사실 시간이라는 것은 어제를 기억하는 인간의 두뇌에서 나온 것이지 우주 그 자체에는 없는 것이다. 우주에는 오직 현재만 있다. 우리 사람은 과거를 기억할 뿐 형태가 항상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어제의 기억과 오늘의 모습이 다르면 변했다고 말한다. 시간 또한 인간의 눈에 보이는 별들의 운동을 기준으로 해서 설정해 놓은 약속일 뿐, 우주에는 없는 것이다. 만약 시간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다면 세상의 모든 시계는 언제나 같은 시각을 가리켜야 한다. 그런데 21c의 과학 기술로도 언제나 꼭 맞는 시계는 만들 수가 없다. 그것은 시간이라는 것이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입자적 관념의 산물 중에는 돈이나 증권 같은 것들도 있다. 원래 돈이나 증권도 역시 이 우주에는 없는 것들이다. 처음에는 금을 화폐로 사용하다가 직접 가지고 다니기가 매우 불편해서 그 대용품으로 돈을 만들어 썼다. 그리고 돈의 양도 가지고 있는 금을 기준으로 해서 만들었다. 그러다 사람들은 우주에 없는 돈을 마치 진짜 있는 물건처럼 마구 찍어서 쓰기 시작했다. 인간의 머릿속의 계산은 입자적 관점의 계산일 뿐 실재가 아니기 때문에 훗날 돈은 경제사회에 큰 혼선을 빚어 문제가 될 것이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마음이라고 하는 심정 또한 입자적 관념이다. 고민을 하거나 자기 심정에 빠져 있을 때가 바로 이 입자 속에 파묻혀 있을 때다. 조심해야 할 것은, 이렇게 마음에 파묻혀 있게 되면 마음이 시야를 가려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한다. 또 다른 사람과 같은 심정끼리 서로 뭉치면 현실에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래서 현실을 바로 보기 위해서는 마음이 파동적 상태여야 한다. 파동적 마음은 흘러나가 현실을 살피게 된다. 그렇게 흘러나가는 마음은 상대편 심정도 느낄 수가 있다. 파동적 마음은 이미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입견이 없다.

파동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주에 실존하는 것이므로, 파동의 실재(實在, 파동의 세계에 존재하며 현실 세계의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존재한다. 가장 쉬운 예로, 사랑이 곧 파동이다. 그러나 파동적 실재는 단순한 파동과는 다르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주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현실 세계의 질서와 평화 그리고 조화를 이루어내는 주체이다. 핵심(중심)에는 충실한 충성이나 부모를 섬기는 효도, 상대방을 배려하는 예의, 하고자 하는 뜻, 연인 간의 애정, 성현의 자비, 무사의 수호, 스승을 받들고 따르는 공경, 기업의 이념, 사람을 위한 인덕 등, 이 모든 것이 곧 파동적 실재들이다. 참고로 사업이 잘되는 회사는 단지 돈을 벌기 위한 마음만으로 일하지 않고, 기업 이념이라는 파동적 실재를 정해놓고 고객을 위해 일한다. 그러면 그 기업 이념이 같은 생각과 같은 파장의 사람들을 불러들여 회사가 번창하게 된다. 기업 이념이라는 파동적 실재가 사업주와 고객의 관계를 형성한 것이다.

아프락사스의 원리: 우주는 사실 매우 단순하다. 그런데 우리는 우주를 알 수 없는 무한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단 물리학적으로 눈에 보이는 물체를 쪼개고 쪼개서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미립자, 즉 소(素)의 상태가 되었다고 가정하자. 이때부터는 입자라기보다는 차라리 파동으로 작용하기가 쉽다. 또 이 상태에서 세상을 보면 세상은 밤하늘에 찬란히 빛나는 별처럼 수많은 물체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空)의 상태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 아주 중요한 우주의 비밀이 있다. 그것은 우주의 미립자는 반드시 상반된 성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코스모스 센타에서는 아프락사스(Abraxas)의 원리라고 한다. 아프락사스는 고대 신(神)의 이름으로 선과 악, 삶과 죽음, 빛과 어둠 등 양극적인 것을 포괄하는 신성이라고 스위스의 정신 의학자 칼 융이 말했다. 이렇게 미립자는 상반된 두 가지 성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작용을 한다. 스스로 하는 작용을 한자로는 자(慈)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비와 사랑이 곧 자(慈)이다. 이제 반해서 인위적인 움직임은 작(作)이라고 한다. 이렇게 우주 최초의 작용인 자(慈)는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에 서로 밀기도 하고 끌어당기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미는 힘, 즉 튀어 나가려고 하는 원심력과 끌어당기는 힘, 즉 구심력을 함께 갖추고 있다. 성리학에서는 이것을 태극이라고 한다. 자석이 N극과 S극을 동시에 갖고 서로 밀고 당기는 이유가 바로 아프락사스의 원리 때문이다. 이렇듯 서로 당기는 힘에 의해 입자가 뭉치고 뭉치면 그 입자들은 우리 눈에 보이는 물체가 되고, 그 물체들로 이루어진 세계가 지금 여러분 눈앞에 보이는 세상이다.

그리고 이렇게 끌어당기는 힘을 성리학에서는 음(陰)이라고 한다. 반대로 밀어내거나 튀어 나가려고 하는 힘은 양(陽)이라고 한다. 이렇게 세상 모든 만물은 두 가지 성질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 눈에는 움직이지 않고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모든 물체 속에는 양 에너지가 숨어 있어서 모두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끌어당기는 음 에너지가 점점 약해지고 양 에너지가 강해지면, 결국 어느 순간 그 물체는 부서져 버리게 된다. 그러면 그 물체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양 에너지 쪽으로 바뀐다. 우주는 이렇게 보이는 물체의 세계와 보이지 않아 없는 것처럼 보이는 허공의 세계가 아프락사스적으로 함께 존재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아프락사스의 원리는 반대 개념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이 원리는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우주의 실체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선과 악이라는 것은 우주에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다. <예쁘다>와 <못생겼다>도 우주에 존재하는 실체가 아니다. 그런 것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지 우주에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프락사스가 아니다. 결국 파동문명 차원에서 <우주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소공자 素空慈, 만물을 쪼개고 쪼개면 파동에 가까운 소립자(素)가 되고, 그 형태는 텅 빈(空) 세상처럼 보이며 스스로 작용(慈)을 일으켜 만물을 창조한다고 말할 수 있다.

우주의 본능과 6대 원칙

아프락사스의 원리를 잘 이해하면 우주는 아주 단순하다. 그리고 우주가 하는 일은 한 가지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우주 스스로 자신을 보존하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아프락사스에 의해 만물이 생겼다 없어지는 작용도 결국은 우주가 스스로 자신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작용의 아프락사스가 곧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흐르는 물이 썩지 않는 것과 같다. 물이 있기에 흐를 수 있고, 흐르기 때문에 물이 썩지 않는 관계와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우주가 만물로 하여금 제멋대로 움직이게 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제멋대로 날뛰다 서로 부딪치고 깨지면 우주 자체가 부서져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주는 일정한 원칙을 내세워 그 원칙에 위배되면 가차 없이 소멸하게 만든다. 이른바 우주의 축인 6대 원칙이다. 이 6대 원칙은 우주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지구의 축과 같은 것이다. 결국 우주의 본능 안에는 지켜야 할 여섯 가지 원칙이 담겨 있다.

존재의 3요소 - 핵, 축, 울타리: 우주는 존재를 위해 반드시 모든 존재에 그 중심을 갖추도록 핵(核)을 만들어 놓았다. 한편 우주가 스스로 자신을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조건이 있다면, 그것은 부분에서부터 전체까지 모두를 온전하게 보살펴 주기 위한 책임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책임의 세계가 갖추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서열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서열의 체계를 갖추기 위한 조치가 곧 격(格, class)이다. 격은 우주의 중심(核)에 가까울수록 높다. 그리고 그 분포도 세밀하고 또렷하며 영롱하다. 인간적으로 설명하면, 머리도 좋고 전체적인 안목과 세심함을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주의 핵과 일치된 사람을 우리는 성현이라고 부르는데, 성현들은 인간 세상의 모든 부분을 책임지고 보살핀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자신보다 인류를 더 위하고 또 인간 세계에 우주의 원리를 가르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희생해 준 성현을 그리스도라고 부르거나, 아니면 우주의 원리를 깨우친 사람, 즉 붓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만물이 가장 안전하게 그리고 평화롭게 우주의 풍요를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우주와 그 축을 맞춰야 한다. 그리고 모든 존재들이 가장 행복하게 우주의 기쁨을 같이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우주의 핵과 자신의 핵을 일치시켜 우주의 핵을 자신의 것으로 삼아야 한다. 한편 크기란 입자적 관념이기 때문에 부득이 표현을 위해 사용할 수밖에 없는 단어지만 사실 우주의 크기는 설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들은 그 크기가 분명하다. 그리고 그 크기를 통해서 존재를 느낀다. 그리고 입자의 크기는 반드시 울타리와 같은 경계가 있어 그 크기를 알 수 있다. 이렇게 우주는 서로 다른 존재들이 각각 존재할 수 있도록 존재의 중심인 <핵>과 작용의 기준인 <축> 그리고 형태의 크기를 말해주는 <울타리경계>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이 핵, 축, 울타리의 세 요소는 모든 존재들과 나라, 가정, 회사 등 어디에나 적용되는 <존재의 3요소>이다.

우주의 축 - 6대 원칙: [제1원칙 - 이득의 원칙] 우주는 근본적으로 이득이 되지 않는 작용은 결코 하지 않는다. 반드시 어떤 이득을 창출하기 위하여 작용한다.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 뭔가 손해가 되는 듯한 상황이 전개되더라도 그 이면에는 반드시 더 큰 이익이 숨겨져 있다. 예를 들어, 지구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천재지변들은 우리 인간생활에 해를 끼치기도 하고 자연 자신도 손상을 입지만, 그것은 바로 이 지구를 보호하려는 우주의 자구책이다. 만약 그 지진, 그 태풍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아마 지구는 파괴되어 전체가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업을 할 때도 반드시 가슴에 이득을 품고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돈을 벌겠다는 욕심은 이득이 아니다. 이득이란, 사업을 하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편에게도 역시 생겨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에게 손해를 주며 나만 이득을 얻겠다고 하면, 우주는 언젠가 그 대가로 피해를 되돌려 주게 된다. 그리고 이득은 욕심이 아닌 인생이라는 바탕에 그 뜻을 두어야지, 눈앞에 당장 이익이 된다 하여 이익을 쫓아다니면, 그것은 곧 사기를 불러들이는 계기가 된다.

[제2원칙 - 계산의 원칙] 계산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입자적 계산이고 또 하나는 파동적 계산이다. 대체로 여러분이 하고 있는 계산은 입자적 계산이다. '한 아줌마가 달걀이 100개 들어 있는 바구니를 이고 걷고 있었다. 달걀 하나의 값이 100원이라면 전부 만 원어치인 셈이다. 이 달걀을 모두 부화시키면 닭이 100마리가 된다. 그 100마리가 또 알을 하나씩 낳으면 곧 닭은 200마리, 그 200마리가… 하면서 걷다가 옆을 스쳐가는 자전거를 보지 못하고 부딪치면 지금까지 하던 계산은 모두 꽝이다.' 여기에서 지금까지 아줌마가 머릿속에서 하던 계산이 곧 입자적 계산이다. 자전거를 보지 못하고 부딪쳐서 한순간에 제로 상태가 되는 것은 파동적 계산이다.

입자문명이 보이는 세계에서 증명할 수 있는 계산에 의해 밝혀지는 것이라면, 파동문명은 보이지 않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필요하다. 이른바 육감이다. 경영은 육감을 통해 조짐을 읽을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그래서 유능한 경영자는 반드시 물질을 통하지 않더라도, 예컨대 문화사업과 예술을 통해서도 크게 수입을 올릴 수가 있다. 문화와 예술 또한 파동문명이기 때문이다. 한편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것은 우주 그 자신의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여러분의 아이를 소중하게 잘 보살펴 준다면, 여러분은 나머지 아이들도 모두 그 사람에게 맡기고 싶을 것이다. 그렇듯이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물건이든, 데리고 있는 사람이든, 키우는 동물이든, 그 어떤 것이라도 소중하게 아끼면서 잘 간직하면, 우주는 여러분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든 여러분에게 맡기고 싶어 할 것이다. 이것이 우주로부터 복을 받는 길이며 부자가 되기 위한 우주의 계산법이다. 결국 부자가 되는 지름길은, 내 것이든 남의 것이든, 싸구려든 비싼 것이든 모든 것을 고맙고 소중하게 잘 사용하고 간직하는 것이다.

[제3원칙 - 락(樂)의 원칙] 사람의 기분이나 감정은 크게 나눠 희로애락(喜怒哀樂: 기쁨, 화남, 슬픔, 즐거움) 4가지가 있지만, 우주는 헤어짐, 죽음, 슬픔, 고통 등은 없고 오로지 한 가지 상태만 있다. 그것은 곧 기쁨과 즐거움이 섞여 있는 락(樂)의 상태다. 이 락의 상태를 굳이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신바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일을 하면 일의 성과도 좋지 않을뿐더러 사고 등 걱정스러운 일이 생긴다. 따라서 하고 있는 일이 빠르게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기쁜 마음으로 즐겁게 일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주는 항상 기쁘고 즐겁게 파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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