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꼼수와 지혜

돤쥔화, 류옌민 지음 | 교육과학사
꼼수와 지혜

돤쥔화, 류옌민 지음

교육과학사 / 2012년 5월 / 318쪽 / 12,000원



“자기야, 마누라 왔어, 문 열어!” - 약한 모습으로 자기를 방어하라

마거릿 대처가 영국 수상에 취임하던 날이었다. 대처는 수상 취임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처의 남편은 주방에서 아내를 위한 축하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문밖에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짤막하게 초인종 소리가 났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 남편이 달려나갔다. “누구세요?” 대처는 유쾌하게 말했다. “문 열어요. 영국 수상이오.” 그런데 한참이 지나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대처는 순간 까닭을 알아챘다. 대처는 애교스런 말투로 다시 소리쳤다. “자기야, 마누라 왔어, 문 열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열리더니 남편은 그녀를 뜨겁게 포옹했다.

사람은 약자를 동정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 완벽한 사람이나 강경한 사람은 남에게 경계심과 위압감을 준다. 그러므로 적당히 자신의 자세를 낮춘다면, 친화력을 높일 수 있고, 경계심이나 위압감을 주지 않을 수 있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감각적인 깨달음이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타협이 아니라 이지적인 인내이자 양보이다.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쓰러지는 것이 아니라 더 편하고 튼튼한 자리에 앉는 것이다. 인생살이는 고달픈 항해와도 같아서 아무런 풍파도 없이 잔잔할 수만은 없다. 그러므로 견딜 줄 알고 내려놓을 줄 알아야 더 멀리까지 나아갈 수 있다. 동정을 바라는 것은 사람의 천성이다. 당신이 자신보다 강한 상대를 설득하려고 할 때, 동정을 얻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강한 상대를 극복하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약한 모습을 보임으로써 상대의 불만을 줄이거나 질투를 없앨 수 있다. 성공한 사람이나 행운아가 시샘을 받는 현상은 분명 존재한다. 그런 부정적 심리를 단번에 없애지 못하는 경우에는 알맞게 약한 모습을 내보이면 부정적 반응을 최소화할 수 있다.

젊은 기자가 한 사업가의 뒤를 캤다. 기자는 사업가의 자택으로 찾아갔다. 인터뷰를 한다는 구실로 뭔가 꼬투리를 잡아 볼 생각이었다. 사업가는 기자를 집 안으로 맞았다. 기자가 말문을 열기도 전에 사업가가 말했다. “바쁘지 않으니 인터뷰는 천천히 합시다.” 사업가의 덤덤한 태도는 의외였다. 얼마 후, 가정부가 뜨거운 커피를 가져왔다. 그런데 사업가는 커피를 마시다가 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가정부가 얼른 달려와 쏟은 커피를 닦고 잔을 치웠다. 또 담배를 피우려다 거꾸로 물고 필터에 불을 붙였다. “사장님, 담배를 거꾸로 무셨어요.” 기자의 지적에 사업가는 멋쩍게 담배를 끄려다 탁자에 있던 재떨이를 떨어뜨렸다. 기자는 늘 당당하던 사람이 자꾸 실수를 저지르자 그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들보다 더 강한 동정심을 불러일으켰다. 기자는 사업가에 대해 무언가를 캐내려던 생각을 접고 빈손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사업가의 실수는 자기 뒤를 캐는 기자를 떨쳐버리려는 계획된 행동이었다.

권위적인 사람에게도 이런저런 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그들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것이 사라진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동정심이 생기고 나아가 상대에 대해 친근감을 느끼게 된다. 상대가 당신에 대해 경계심을 늦추고 친근감을 느끼게 만들려면, 당신은 상대에게 사소한 결점을 슬그머니 드러내고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내보여서 당신이 고고하고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면 된다. 그러면 상대는 당신에 대한 긴장을 풀고 당신을 적대시하지 않게 된다. 물론 약한 모습을 내보이는 것이 반드시 낮은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것은 자존심을 버리거나 자신감을 잃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약한 모습을 내보이는 것에는 정도가 있어야 하고, 원칙이 있어야 한다. 약한 모습을 내보이는 것은 자기 포기나 자기 비하가 아니라 인생에 대한 달관의 태도다. 아무 원칙도 없이 약한 모습을 내보이는 것은 당신에게 상처를 주고 당신에 대한 타인의 존중도 잃게 만든다.

레이건의 자조 - 자조의 법칙을 운용하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캐나다를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레이건은 한 도시에서 대중 연설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연설은 반미 시위를 벌이는 사람들 때문에 갑자기 중단되었다. 시위대는 레이건에게 노골적으로 반미 감정을 드러냈다. 캐나다 총리 피에르 트뤼도는 시위대의 무리한 행동 때문에 아주 난처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레이건은 미소를 지으며 트뤼도에게 말했다. “이런 일은 미국에서는 걸핏하면 벌어집니다. 저 사람들은 미국에서 일부러 온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저들은 내게 백악관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군요.” 난처한 표정을 짓던 트뤼도 총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당신의 실수로 감정적 대립을 초래했을 때, 적절한 시기에 자조(自嘲)한다면, 상대의 양해를 얻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마치 두 사람이 서로 다투다 어느 한 사람이 갑자기 바닥에 엎드리며 항복하는 것과 같기 때문에 상대가 무뢰배가 아닌 이상 대개 적의를 가라앉힌다. 살아가다 보면 남을 난감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그런 경우에 자조함으로써 자신을 낮춰 대응할 수 있다면, 수동적 상황을 능동적으로 전환하고, 심리적 균형을 지켜낼 수 있다. 자조는 심리적 균형을 조절하는 양약이다. 난처한 지경에 빠졌을 때, 유머러스하게 자조하면 마음을 달랠 수 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나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사람을 사귈 때에 상대에게 부담감을 주게 된다. 그런 경우에 자신을 낮춰 농담거리로 만든다면, 상대에게 주는 부담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인간미가 있게 비춰져서 상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 스스로 자신의 생김새를 비웃거나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을 떠벌리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활달하게 만들고, 상대에게는 정겨움을 느끼게 만들어서 인간미를 더하게 한다. 인간관계에 있어, 자조는 귀한 묘약과도 같다. 다른 것들이 별반 효과가 없을 때, 자신을 한번 비웃는 것, 적어도 자신이 자신을 꾸짖는 것은 매우 안전한 것이다. 웃음의 금과옥조는 당신이 남을 비웃고 싶더라도, 먼저 당신 자신을 비웃으라는 것이다.

인도의 작가 타고르는 편지를 한 통 받았다.

「선생님은 제가 존경하는 작가입니다. 선생님에 대한 존경을 보여드리기 위해, 저는 선생님의 성함으로 제가 애지중지하는 발바리의 이름을 지을 생각입니다.」이에 타고르가 보낸 답장은 이렇다.

「당신의 생각에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름을 짓기에 앞서 당신은 발바리와 의논하는 것이 좋겠군요. 그가 좋아할지.」

당신이 우스갯소리나 농담을 하고 싶다면, 가장 안전한 대상은 당신 자신이다. 당신이 당신을 비웃는데, 누가 불쾌해하겠는가? 가장 높은 수준의 언어 예술인 유머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은 지혜가 넘치는 사람이다. 가장 높은 경지의 유머인 ‘자조’를 무기로 삼는 사람이 될 수 있기에, 감정을 다스림에 있어 ‘무관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경건한 마음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미국 대통령 클린턴이 기자들에게 에워싸여 질문을 받았다. “언론에서 르윈스키 양과의 스캔들을 폭로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클린턴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세상 사람들은 이미 나를 놀리는 숱한 이야기를 만들어냈어요. 뭐라고 말해도 이제 신선한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그의 대답은 아주 적절했다. 자신을 비웃는 동시에 반격을 잊지 않은 것이다. 순식간에 질문은 기자들에게로 되돌아갔다. 클린턴이 한 말의 의미는 이런 것이다. ‘당신들 가운데 누구든 새로운 사실을 말해봐라! 나도 듣겠다.’ 기자들은 결국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다른 사람과 대화하다가 그만 상대의 감춰둔 상처를 끄집어내 자존심을 건드렸다면, 그것은 아주 위험한 일이다. 상대가 수양이 잘 된 사람이라면 함구하고 그 자리를 떠날 것이고, 수양이 덜 된 사람이라면 그 자리에서 당신을 공격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당신은 자조의 방법으로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조는 자기 모욕이 아니며, 체면을 구기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계가 있어야 한다. 자기의 개성화와 형상성을 열심히 추구하고 아울러 적절함을 갖춘 자조는 자신의 말을 흥미롭게 바꿔놓는다. 유머의 힘은 유머러스한 사물과도 같다. 그러므로 진정 위대한 인물은 자신을 비웃고, 또한 다른 사람이 자신을 비웃게 격려한다.

점원의 차분한 설득 - 차근차근 목표를 향해 나아가라

버스를 기다리던 미스 장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뒤쪽에 있는 옷가게를 발견하고, 무료함을 달랠 겸 잠시 들어갔다. 점원은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게 미스 장을 맞았다. “아가씨, 모두 가을 신상품이에요. 안내해 드릴게요.” 미스 장은 옷을 훑어보며 건성으로 대꾸했다. “아녜요. 그냥 혼자 둘러볼게요.” 점원은 여전히 미소를 지었다. “이건 어떠세요? 손님께 잘 어울리겠어요. 한번 입어보세요.” 미스 장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점원은 여전히 친절했다. “옷은 직접 입어봐야 알죠. 한번 입어보세요. 사지 않아도 괜찮아요. 새 스타일로 한번 걸쳐보는 거죠.” 점원은 옷을 내려 미스 장에게 건네고 탈의실로 안내했다. 옷을 갈아입고 거울에 비춰보니 정말 근사했다. 점원은 웃으며 말했다. “보세요. 손님께 잘 어울리죠? 맞춤 같아요.” 옷을 살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던 미스 장은 결국 그 옷을 사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의 사소한 요구를 일단 받아들이게 되면, 인지상의 부조화를 피하거나 남에게 일관된 인상을 주기 위해, 더 큰 요구도 받아들이게 된다. 이런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문간에 발 들여놓기 효과(Foot in the door Effect)’라고 한다. 사소한 부탁을 받게 되는 경우에는, 거절할 명분이 마땅치 않으면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일단 부탁을 들어주게 되면, 나중에 더 큰 부탁을 받더라도 거절하기 어려워진다. 그래서 균형을 찾으려는 내면적 압박을 받으면서도, 계속 들어주거나 더 많이 양보하게 된다.

비바람이 치고 천둥 번개가 몰아치는 석양 무렵, 남루한 차림을 한 걸인이 거리 모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며칠째 아무것도 먹지 못한 걸인은 몸을 와들와들 떨며 비틀비틀 걸어 부잣집을 찾아가 대문을 두드렸다. 집사는 걸인을 흘겨보더니 사납게 소리쳤다. “꺼져!” 걸인은 애걸했다. “제발 내쫓진 마세요. 밥을 빌어먹으려는 게 아니랍니다. 보다시피 쏟아지는 비에 옷이 몽땅 젖었답니다. 들어가서 옷을 좀 말려도 되겠는지요. 부탁합니다!” 집사는 마지못해 문을 열어주었다. 걸인은 화로 옆에 쭈그리고 앉았다. 온몸을 와들와들 떨며 추위에 굳은 손으로 옷을 들어 말렸다. 걸인은 주방에서 일하는 여자에게 말했다. “솥 하나 빌려줄 수 있겠소? 돌탕을 끓여 먹어야겠소.” 여자는 호기심이 생겼다. ‘돌탕? 처음 들어보는 걸. 어디 한번 볼까?’ 여자는 솥을 건네주었다. 걸인은 주운 돌 몇 개를 깨끗이 씻어 솥에 담았다. “소금을 좀 써도 되겠소?” 여자는 소금을 걸인에게 건넸다. 그리고 이어서 대추, 콩, 시든 채소 따위를 걸인에게 건넸고, 나중에는 저녁거리로 쓰고 남은 잘게 다진 고기도 조금 건넸다. 걸인은 돌은 건져내고, 맛있는 고깃국을 배불리 먹었다.

만약 걸인이 처음부터 고깃국을 달라고 했다면, 아마도 어려웠을 것이다. 걸인은 우선 작은 요구를 내놓았고,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었다. ‘문간에 발 들여놓기 효과’는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교육문제에서도 ‘문간에 발 들여놓기 효과’를 활용할 수 있다. 성적이 나쁜 학생에게 작은 목표를 이루고 나서 더 큰 목표를 제시한다면, 학생도 차근차근 목표를 이룩할 수 있다. 하지만 갑자기 높은 요구를 한다면, 그들은 자신이 감당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세 번 ‘Yes’를 이끌어낸 에릭 - 상대가 ‘Yes’라고 말하게 만들라

전기기기회사 영업사원인 에릭은 한 공장의 공장장을 설득해 전기모터 두 대를 납품했다. 에릭은 그 공장에는 전기모터 수백 대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모터를 대량 납품할 방법을 찾았다. 며칠 후, 에릭이 다시 공장장을 찾아가자 공장장의 반응은 의외였다. “모터가 형편없네요. 수백 대가 필요하지만 이건 구입하고 싶지 않아요.”

“어째서죠?”

“모터가 과열돼 손을 댈 수가 없어요.”

에릭은 따질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에 방법을 달리했다. “공장장님, 규정 온도 이내라면 문제는 없는 것 아닌가요?”“그렇지요.”

에릭은 공장장에게서 일단 ‘Yes!’라는 대답을 이끌어냈다.

“전기기기조합에서 정한 모터의 온도는 실내온도보다 최고 50도까지 높게 허용되어 있죠?”

“맞습니다.”

에릭은 다시 ‘Yes!’라는 대답을 이끌어냈다.

“작업장 온도는 몇 도나 됩니까?”

“33도 정도입니다.”

“그렇다면 허용한계는 83도네요. 물이 83도라면 손을 데겠죠?”

“그럼요.”

에릭은 세 번째로 ‘Yes!’라는 대답을 이끌어냈다.

“그러니 모터에는 절대 손을 대지 않아야겠군요?”

“당연하죠.”

결국 공장장은 삼만 오천 달러 규모의 구매계약을 맺었다.



협상에서 ‘No!’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것은 최악의 출발이다. 상대가 ‘No!’라는 말을 먼저 한다는 것은 당신의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의미다. 상대가 잇달아 ‘No!’라고 말하면, 하던 말을 중지하는 것이 최선이다. 당신이 하는 말을 상대는 전혀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럴 때 상황을 전환하려면 즉시 화제를 바꿔야 한다. 상대가 ‘Yes!’라고 말할 수 있는 화제를 찾아내는 것이다. 일단 당신이 상대와 공감하는 관점을 강조하고, 나아가 당신과 상대가 이견을 보이는 부분에서 서로가 양해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내고, 마지막으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화제를 주고받으면 사소한 이견은 해결된다.

상대가 ‘Yes!’라는 말을 먼저 하게 만든다면 협상이 성사될 가능성은 한층 높아진다. 처음부터 상대가 ‘Yes!’라고 말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절반은 성사되었다는 의미다. 상대가 잇달아 ‘Yes!’라고 말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성사될 가능성이 99.9퍼센트라는 의미다. 따라서 상대방이 ‘Yes!’라고 반응하게 만드는 것은 협상에서 성공열쇠다.

한 뼘 땅도 양보하지 않은 장쭤린 - 잘못인 줄 알아도 밀고 나가라

군벌 장쭤린이 연회에 참석했는데, 일본 사무라이들이 붓글씨를 써달라고 요구했다. 자신을 귀찮게 하려는 속셈임이 뻔했지만 대놓고 거절할 수는 없었다. 장쭤린은 ‘허(虛)’라고 크게 쓰고, ‘장쭤린 수흑(手黑)’이라고 서명을 했다. 사무라이들은 고개를 갸웃댔다. 장쭤린의 비서가 보니 ‘수묵(水墨)’이라고 써야 할 것을 ‘수흑(手黑)’이라고 잘못 썼다. 비서는 장쭤린에게 귀엣말로 그 사실을 말했다. 장쭤린이 보니 ‘흑(黑)’ 자 아래에 ‘토(土)’ 자가 빠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고치지 않고, 비서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이건 일본사람이 요구한 거야. ‘한 치 땅(土)’도 줄 수 없어.” 사람들은 환호성을 올리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망신을 당한 사무라이들은 얼른 꽁무니를 빼고 사라졌다.

말실수를 했거나 일 처리를 잘못했다면 사실대로 인정하고 고쳐야 한다. 그런데 잘못을 인정하면 오히려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입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에는 잘못인 줄 알았더라도 그대로 밀고 나가 곤경에서 벗어나고 목적을 이루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말을 하다 보면 사소한 말실수는 하게 마련이지만 그냥 넘긴다면 이미지를 해칠 수 있다. 그런데 임기응변에 뛰어난 사람은 진부한 것도 산뜻하게 바꿔놓을 줄 알아서, 실수 속에서 뜻밖의 결과를 얻어내기도 한다. 그런 사례는 적지 않은데, ‘잘못을 교묘하게 감추는’ 것이 ‘악덕하다’고 여겨지지 않고 오히려 상황판단에 뛰어나다고 여겨지는 것은 자못 흥미롭다.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잘못인 줄 알면서 그대로 밀고 나가는 방법은 상황을 만회하고 손실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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