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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지배하는 스토리의 힘

짐 로허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세상을 지배하는 스토리의 힘

짐 로허 지음

스마트비즈니스 / 2012년 5월 / 296쪽 / 14,000원





성공 스토리로 삶의 기쁨을 만들다



당신에게는 스토리가 있는가?

나는 우리의 워크숍에 참여했던 고객들에게 궁극적인 사명을 새롭게 다듬어 정의하게 할 때에는 항상 엄격하게 대한다. 그들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도록 하는데 놀랍게도 자신의 궁극적인 사명을 한 번에 규명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다수의 고객이 심오하고 훌륭한 목적을 찾아냈다. 엄밀히 분석해보면 그것들은 논리가 빈약하거나 설익고, 근본적인 차원의 목적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했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나의 궁극적인 목적은 회사의 관리이사가 되어 가족의 재무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것을 보다 기본적인 목적으로 바꾸면 이렇게 될 것이다. 나의 궁극적인 사명은 뛰어난 아버지, 남편, 지역사회의 리더가 되어 다음 세대의 역할 모델이 되는 것이다."

궁극적인 사명이 우리에게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가능한 빨리 그것을 작성하고 죽을 때까지 꾸준히 수정하고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궁극적인 사명을 한 번도 작성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일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올랜도 본사에서 워크숍을 진행하며 우리는 고객들에게 낡은 인생 스토리와 새로운 인생 스토리, 훈련 사명과 의식(차후에 상술할 것임), 더불어 궁극적인 사명을 작성하게 한다. 궁극적인 사명을 작성하고 매년 수정하는 것은 우리가 지닌 가장 중요한 항해 도구를 항상 곁에 두는 것과 다름없다. 궁극적인 사명은 작은 목표가 아니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과 관련되므로, 그것을 작성할 때에는 대체로 원대하고 당당한 어휘를 사용한다. 사명을 작성하기 전에 다음과 같이 자문해보라.

-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길 원하는가?

- 다른 사람들에게 가장 남기고 싶은 유산은 무엇인가?

- 목숨과도 바꿀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인가?

- 당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 삶의 어떤 분야에서 탁월해야 당신의 운명을 완수할 수 있는가?



고객들이 궁극적인 사명을 규명하려 할 때, 그들이 그릇된 목적을 추구하며 인생을 낭비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 나의 책무다.

진실이 올바른 스토리를 만든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이고 어떤 스토리를 이야기하고 있는지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놀랍게도 그것이 사실과 다를 때가 많다. 이를 살펴보기 위해 두 가지 연습 문제를 살펴보자. 첫 번째는 실제 상황을 상상의 사건으로 바꾸어보는 버릇을 기르는 것인데, 이것은 명시적인 목적이 유효한지(예. 내 묘비에는 어떤 문구가 기록될까?)를 검증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는 목적(선의의 목적이기도 하고, 악의적이기도 함)이 교묘하게 은폐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마음속으로 스토리를 바꾸어보라. 그러면 감정적 반응이 즉각 바뀐다. 두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첫 번째 사례_ 당신 앞에서 노부인이 차를 몰고 있다. 그녀는 천천히 그리고 멈칫거리며 운전한다. 당신은 그녀의 멈칫거리는 행동에 점점 화가 난다. 이제 그 노부인이 자신의 어머니 혹은 할머니라고 상상해보라. 어떤 기분이 드는가? 당신의 감정이 크게 변할 것이다. 뇌의 화학작용이 바뀐다. 흥미롭게도 우리의 뇌는 실제 일어난 일과 상상한 일 사이의 차이를 알지 못한다.

두 번째 사례_ 평상시대로 담배에 불을 붙인다. 하지만 라이터를 켜면서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자신이 일찍 죽으면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 생각해본다. 담배에 불을 붙일 때마다 혹은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마다 이런 상상을 되풀이해보라. 이것은 약간의 정신적 트릭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것은 보다 큰 목적, 스토리를 올바르게 고치기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할 목적을 찾기 위해 아주 중요한 첫 단계다.

어떤 행동이나 사건을 공정하게 평가하려면 그 행동이나 사건의 목적을 파악하려 노력해야 한다. 다른 사람의 꾐에 속지 않으려면 사실(what) 뒤에 숨겨진 이유(why)를 간파할 필요가 있다.

2006년, 미국의 한 지방신문은 이라크에 관한 좋은 뉴스는 보도하지 않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 신문은 미군과 이라크인의 죽음, 그곳의 파벌싸움과 분노, 혼란, 막대한 전쟁비용 등에 대한 기사만 다뤘다. 학교건립이나 정세의 호전, 전반적인 개선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물론 이것은 터무니없는 가정이 아니다. 언론은 항상 특정한 보도방침을 정해놓고 세상사를 사실대로 보도한다고 믿는다. 당신이 매일 이 신문에서 이라크 관련 기사를 읽는다면 기본적으로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스토리에서 제시하는 구체적인 사건들이 사실인가?', '그 신문이 그러한 스토리를 전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 편집자들은 어떠한 목적의식에서 그러한 기사를 쓰는가?'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그 기사가 사실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듯하다. 사건들은 아주 정확하다. 두 번째 질문의 경우에는 어떨까? 전쟁의 한쪽 단면만 보도하는 그 신문의 목적은 무엇일까? 그들은 자기들의 보도가 객관적이고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대부분이 부정적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또한 자사의 보도방침이 공익에 기여한다고 믿을 것이다. 국민은 전쟁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알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 신문이 전체적인 상황을 전달하지 않는다고 반박하는 사람들은 포괄적인 보도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다양한 관점에서 포괄적으로 보도한다는 언론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보도하는 신문의 진정한 목적이 대중을 교육하고 보호하는 것이라면 그들의 스토리는 믿을 만하고 고귀하기까지 하다. 반면 부정적인 보도방침의 진정한 목적이 신문사의 정치적 과제를 진척시키거나 행정부 혹은 여당에 혼란과 의혹을 제기하려는 것이라면 그들의 스토리는 아주 비열하고 진정성이 없다.

나는 상기의 사례를 통해 그 신문의 옳고 그름을 논할 생각은 없다. 단지 외부의 견해가 우리 자신과 스토리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자신을 훈련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다. 훈련을 통해 냉철한 판단 능력을 갖추어야만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만든 스토리에 따라 살 수 있다. 그럴 경우에만 스토리의 추진동력, 즉 목적이 깊이 있고 지속 가능하고 고귀하고 진실하게 된다. 당신이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다음의 두 가지 질문만 던지더라도 의미 있고 긍정적인 인생 스토리를 어느 정도 자각하고 그것에 헌신하게 될 것이다.

스토리가 사실인가?

그러한 스토리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제 이 질문을 우리 자신과 자신의 동기 요인에 적용해보자. 당혹스럽고 고통스럽긴 하지만 당신이 아내에게 진실을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고 하자. 지난주에 아내와 함께 영화를 보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는데, 그것이 사실은 정신없이 바쁜 일과를 마친 다음 비서와 함께 저녁을 먹느라 그랬다고 자백한다. 그리고 비서에게 딴마음을 먹었던 것은 절대 아니고 그때 깜빡 잊고 그 사실을 말하지 못했을 뿐이라고 해명한다. 또는 지난 여섯 달 동안 자신의 퇴직계좌 운영 실적이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나빴다고 털어놓는다. 아내가 그런 얘기를 털어놓는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그녀가 알아야 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대답한다.

이 스토리는 사실인가? 그렇다.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이런 스토리를 얘기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글쎄, 지금까지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라서?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내에게 호되게 당하거나 보복받기 전에 미리 털어놓아 피해를 줄이려는 것이 주된 목적임을 깨닫는다. 당신의 진정한 목적을 까발려서 조사하면 아내에게 진실을 털어놓기로 한 선택은 다소 비열하다. 스토리의 진정한 목적을 밝히는 것이 당혹스럽거나 죄책감 또는 수치심을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진정한 목적을 밝히면 큰 대가를 얻을 것이다.



성공 스토리로 그릇된 습관을 이기다



잘못된 습관이 그릇된 스토리를 만든다

왜 당신은 집에서도 이메일을 체크하고, 담배를 피우고, 운동을 하지 않는가? 그것은 바로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구도 왜 담배를 즉각 끊어야 하는지 혹은 왜 아침 5시에 일어나 운동해야 하는지 아주 설득력 있는 주장을 내놓지 못한다.

'내가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증상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흡연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흡연은 내 선택이고 권리이며 누구도 그러한 권리를 빼앗지 못한다.' 저녁 늦게까지 일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생각하기도 한다. '모든 부서원이 늦게까지 일하고, 통상적으로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지 못하며, 일거리를 집에 가지고 간다. 직장을 잃지 않고 성공하길 바란다면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결론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사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사적인 생활방식에 책임지도록 강요하지 않는다(부모가 자식들을 훈계하는 경우는 예외다). 따라서 그릇된 스토리를 지지하는 온갖 종류의 허튼 가정이나 나쁜 습관을 가지기 쉽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워크숍에 참여했던 고객은 대부분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런 반응을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릇된 가정이나 나쁜 습관을 가졌더라면 스스로 알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업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이다. 그들은 진실을 탐구하고, 쉽게 속지 않고,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가차 없이 잘라내고, 문제를 발견하여 해결책을 강구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사적인 삶에서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스토리는 설명하지 못한다. 왜 그럴까? 누구도 그들의 그릇된 스토리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을 엄하게 단속하기보다는 눈을 감아 버린다. "이봐, 이것은 사적인 문제야. 나를 어린애 취급하면서 '출근하기 전에 아침을 든든하게 먹어라.'라는 따위의 당연한 말을 해대는 사람은 필요 없어. 그건 나를 모욕하는 행위야."

'내가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증후군에 얼마나 깊이 중독되었는지 알아보는 효과적인 방법은 행위를 기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당신은 '자신이 할 수 있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늦도록 일하는데 통상적으로 얼마나 늦게까지 사무실에 있는지 알고 있는가? 우리의 워크숍에 참여했던 어떤 고객은 전국 슈퍼마켓체인에서 상표관리를 주관했는데 우리의 제안에 따라 매일 퇴근시간을 기록하기 전에는 야근으로 인해 자신의 '자유'가 얼마나 남용되었는지 전혀 몰랐다. "그것은 아주 놀라웠습니다. 저는 3주간의 퇴근기록을 들여다보기 전에는 제가 얼마나 늦게까지 일하는지 몰랐습니다. 일주일에 네 번 이상을 8시 30분에서 9시 혹은 9시 30분까지 사무실에서 일했습니다. 그렇게 늦게까지 있어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었습니다."

어린아이가 잠든 다음에야 퇴근하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다. 그녀 자신도 지쳤고 남편도 화를 냈다. 하지만 그녀는 아침 일찍 아이와 놀아준다는 것으로 늦은 퇴근을 합리화했다. "제가 퇴근일지를 쓰지 않았더라면 일주일에 몇 번은 일찍 퇴근하여 아이가 잠들기 전에 같이 놀고, 일주일에 세 번 이상 남편과 넉넉한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여태껏 깨닫지 못했을 겁니다. 저는 여전히 늦게까지 일하고 있겠지요." 이제 그녀는 옆길로 새지 않도록 자신을 단속하기 위해 저녁마다 퇴근시간을 기록한다.

당신의 인생 스토리 가운데 일부는 몇 가지 불합리한 이유 때문에 계속 존재한다. 즉 결과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누구도 그것을 지적해주지 않기 때문에, 당신이 그것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존속한다. 당신이 스스로 그 문제를 직시하고 그것이 여전히 타당한지 살펴보라.

긍정으로 잘못된 옛 스토리를 타파하라

인간은 1마일을 4분 이내에 뛸 수 없다. 그것은 생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전문가들은 여러 해 동안 이렇게 주장했다. 1954년 6월 5일, 로저 바니스터는 3분 59초 4의 기록으로 마의 4분대를 깼다. 1957년 말까지 16명의 다른 육상선수가 4분의 장벽을 깼다. 긍정적 사고의 쾌거였다. 가짜 약(placebo)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 긍정적 사고의 힘을 지지한다.

스피드 스케이팅 세계선수권 우승자이고 올림픽 기대주였던 댄 젠슨은 1988년의 캘거리와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에서 굴욕적인 패배를 당했다. 그는 생애 마지막 올림픽 출전을 대비하면서 나를 찾아왔다. 우리는 그가 자신의 주 종목인 500m에 주력하고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 동계대회에서 출전했던 1,000m를 등한시하면, 단거리경주에 대한 부담감이 더욱 커진다는 사실에 동의했다. 이번 대회는 댄의 마지막 올림픽 무대이므로 경기에서 최대의 성과를 거두고 선수로서 최고의 유산을 남기는 것이 가장 큰 도전 과제였다. 그러나 댄은 1,000m 경주에서도 500m와 마찬가지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500m에서 36초 벽을 깬 유일한 선수이고 4번이나 그런 기록을 냈다. 하지만 1,000m에서는 댄보다 빠른 선수가 여럿 있었다. 하지만 그는 아주 재능이 있고 가능했으므로 그가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스토리를 바꾸고 적절한 훈련을 받으면 1,000m에서 우승하지 못할 이유도 없었다.

우리는 2년간 함께 일했다. 그는 500m와 1,000m 경기에 대비하여 강도 높게 훈련함과 동시에 1,000m 스토리에 대한 믿음을 갖도록 훈련받았다. 그의 마지막 올림픽이 개막되고 그는 자신의 주 종목인 500m에 출전했다. 당시에 그는 여전히 세계 기록 보유자였지만 기대와는 달리 8위로 골인했다. 그것은 생각지도 못한 성적이었다. 이제 댄은 마지막 한 경기를 남겨 놓았다. 올림픽 스토리를 다시 쓰게 한 1,000m 경기였다. 댄은 오랫동안 그것을 자신의 종목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그 종목을 중심으로 작성된 새로운 스토리를 줄곧 자신에게 이야기해왔다. 그리고 댄은 금메달을 땄다. 몇 년 동안 자신을 외면했던 금메달과 영광의 순간이 그의 것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생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그리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1,000m를 질주했다. 그는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당신도 자신의 경험이든 혹은 주변 사람들의 사례이든, 낙관적인 사고나 믿음을 바탕으로 탁월한 성과를 낸 사례를 십여 가지쯤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낙관주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정의가 널리 사용된다. 하나는 심리학자 마이클 샤이어와 찰스 카버가 파악한 '낙관주의 성향(dispositional optimism)' 개념으로 "미래에는 좋은 일이 많고 나쁜 일이 적어진다."는 글로벌 기대이다. 이 정의에서 낙관주의는 대체로 은혜롭고 관대한 세계에 대한 객관적이고 불가피한 반응이다. 두 번째 정의는 대체로 주관적인 개념인데 나쁜 일을 중화시키기 위한 건설적인 방안으로 파악된다. 이 책에서는 두 번째 정의에 관심을 둔다. 왜냐하면 낙관주의적인 성향이 현실과 괴리가 생기면 아주 파괴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네일 와인스타인은 1987년의 연구에서 사람들이 불량식품을 먹고, 운동을 하지 않고, 건강에 나쁜 습관을 따르면서 그것의 위험을 일관되게 과소평가한다고 밝혔다. 그들이 자신에게 이야기하는 스토리는 다른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하면 중대한 건강 문제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지만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담배 때문에 심장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이 많지만 내게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사고를 당하지 않을 것이므로 안전벨트를 맬 필요가 없다.'

그와 같은 세계관은 무엇이든 해도 괜찮고, 무엇을 전혀 하지 않더라도 문제없다는 허가증이 된다. 심신을 마비시키는 걱정이 미신에 뿌리를 내리면 중대한 문제에 부닥칠 염려가 없다고 믿으며 마음대로 행동하는 근거가 된다. 그와 같은 '이상과열'은 건강 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영역, 삶의 중요한 측면으로 확대되기도 한다. '내가 어떻게 행동하든 아내는 결코 나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아무리 늦게 퇴근하더라도 아이들과 소원해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지난 몇 년간 부채가 상당히 늘어나긴 했지만 현재의 생활방식을 바꿀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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