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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짓것! 한번 해보는 거야

대니얼 세디키 지음 | 글담출판사
까짓것! 한번 해보는 거야

대니얼 세디키 지음

글담출판사 / 2012년 5월 / 336쪽 / 13,800원



CHAPTER 01 냉정한 현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지



첫 번째 도전, 유타: 구호 센터 자원봉사자_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돌아가지 않아

아버지는 나에게 250달러짜리 수표를 건네주면서, 과연 내가 여행을 제대로 끝마칠 수 있을지 미심쩍다는 마음을 숨기려 하지 않으셨다. “3주 정도 후면 집으로 돌아오겠구나.” 어머니는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내 차 유리를 깨끗하게 닦아주셨다. 형은 그 옆에 서서 캠코더로 나의 출발 장면을 촬영하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가 건네주신 물 두 통을 차 안 선반에 올려두었다. 진짜로 여행을 떠날 시간이 다가오니 불안한 마음에 온몸이 떨렸다. 하지만 이런 불안감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얼른 차에 올라탄 후 도로로 나갔다. 이제 돌이킬 수 없었다. 성공하지 못할 수도 있기에 겁이 났다. 심장이 한없이 두근거렸지만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가능성의 힘을 믿어 보기로 했다. 앞으로 펼쳐질 50주의 여정에서 어떤 장애물을 만나더라도 실패는 없어야 한다.

고속도로의 진입로를 향해 가는 동안 내 마음은 한없이 요동치고 있었다. 과연 오늘 밤은 어디서 보내게 될까? 어디서 뭘 먹어야 하지? 기름값 대기도 벅찬 상황인데 만약 차가 고장이라도 난다면 수리비는 어떻게 감당하지? 그치지 않는 소음처럼 이런저런 고민들이 머릿속을 쉴 새 없이 두드렸다. 부정적인 생각들이 나를 완전히 잡아먹기 전에 미리 깨끗이 털어 버리는 편이 나았다.

그래서 캘리포니아의 가파른 산맥을 오르기 전에 우선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스트레칭을 하며 몸부터 풀기로 했다. 주차장에서는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 도로에 있는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인생을 사는구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지금은 나도 내 인생을 살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나는 이제 막 여행을 시작했고,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있었다.

마음을 새롭게 먹고 달리자, 한결 여유 있게 주변 경치를 둘러보며 감상할 수 있었다. 그날 밤은 네바다의 리노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대학교 건물 근처에 차를 세워 두고 뒷좌석에 펼쳐 둔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침낭 속에 누워, 앞으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들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기를 간절히 소망했다. 고지대 사막의 차가운 밤바람 속에서 걱정으로 뒤척이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 오고 있었다. 나는 잠을 포기하고 해가 뜨는 것을 보며 다시 힘을 내서 여행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유타 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드디어 방문객을 환영한다는 문구가 적힌 표지판이 보였다. 직업 체험 프로젝트의 첫 번째 도시에 도착한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할 일은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모르몬교의 정식 명칭)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모르몬교의 영향 때문인지 말일 성도 예수 그리스도 교회에서 일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돈이 되는 일자리를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곳에서는 구호 센터의 자원봉사자로 일하게 되었다. 자원봉사 활동으로는 여행 경비를 감당해 낼 수 없기에, 나는 다음에 체험할 일자리들을 열심히 알아보았다. 우선 유타에서는 마이크 삼촌과 린다 숙모 댁에서 지내기로 했다. 두 분은 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셨다. 어차피 앞으로 수많은 날을 지프차 안에서 잠을 청해야 할 것이고, 그나마 운이 좋아야 낯선 사람의 집에 머물 수 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친척과 함께 머무를 기회를 얻은 것은 여행의 첫 단추를 잘 끼운 셈이었다.

구호 센터에 도착하니 여성 조합원 한 명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귀한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녀는 나를 반갑게 맞으며 식권을 건네주었다. ‘와우, 원하는 것은 뭐든지 먹어도 되는 점심 뷔페 이용권이네!’ 일단 일주일 동안 뭘 할지는 결정이 되었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았다. 직업 체험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이나 이번 여행에 임하는 자세 등에 대해 확실히 결정해야 했다. 우선 이 프로젝트를 가치 있게 만들려면 이번에 맡은 일은 물론 앞으로 해야 할 모든 일을 빠른 시간 내에 습득해야만 했다. 나는 가능한 한 단순한 방문자가 아닌 정식 직원으로 대우받고 싶었다.

내가 일주일 동안 해야 할 일은 허리케인 구스타브 때문에 피해를 입은 루이지애나 주민들에게 보낼 위생용품을 포장하는 작업이었다. 교회에서는 이재민들에게 세트 50만 개를 보낼 예정이었다. 세트 안에는 빗, 칫솔, 치약, 수건, 비누 등이 담긴다. 구호 단체원들은 팀별로 세트 포장 업무를 나누어 맡았다. 나는 집중해서 빨리 일을 끝내려고 했지만,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계속 시계를 힐끔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다 문득 다른 사람들은 이곳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무척 즐거워 보인다는 것을 느꼈다.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남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서 온 피난민들이었다. 그들은 교회에서 운영하는 ‘자신감 회복’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이곳에 온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영어도 배우고, 직업 훈련도 받고, 2년 뒤에는 확실한 일자리도 소개받을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모르게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고 마음이 차분해졌다. 50개 주에서 50개의 직업에 도전해보겠다는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실 나는 혼자 여행하는 것에 대한 걱정,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는 외로움, 일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압박감,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불안감 등 나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내 눈 앞에는 전쟁으로 갈기갈기 찢겨진 조국에서 피난 온 사람들, 내가 상상도 못했던 비극을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무일푼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건너와 자수성가한 내 아버지도 비슷한 경험을 했으리라.

그들은 부패한 정부의 핍박을 겪었고, 사회에서 도태되었으며, 원치 않는 이민을 강요받았다. 또한 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했고 새로운 삶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들 앞에서 나약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그동안 내가 겪은 마음고생은 이곳의 동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곳에서 만난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매일 신의 축복을 느끼면서 산답니다. 신께서 우리를 위해 어떤 길을 예비하셨든지 그 길을 기쁘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비록 각자가 걸어온 길은 다르지만, 서로의 공통점에 공감하며 나도 속으로 이렇게 다짐했다. ‘신이 내 앞에 어떤 험난한 길을 펼친대도 결코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CHAPTER 02 자신감이 바닥을 치고 좌절 모드



열 번째 도전, 아이다호: 부동산 중개인_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도로는 구불구불 굽이쳐 있었다. 돌풍과 큰 트럭들 때문에 정신없이 1,000킬로미터가량을 달린 끝에 겨우 보이시에 도착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대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냈던 얼과 케일라의 집에 도착해야만 했다. 내가 도착하자마자 얼과 케일라는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식탁에는 감자 요리가 등장했다. 아이다호는 감자 농사로 유명한 고장이다. 우연히 보이시가 부동산 중개업이 가장 활발히 이뤄지는 도시이며 등록된 중개업자만도 3,000명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나는, 중개업 쪽에서 내게 맞는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여곡절 끝에 리/맥스라는 업체에서 중개인으로 일하고 있는 메간을 만났다. 메간이 허락해 준 덕분에 나는 일주일 동안 실제 중개 업무에 참여할 수 있었다.

메간은 이제 겨우 열아홉 살에 불과했다. 그녀는 10대 때 결혼하여 일찍부터 자신의 가정을 꾸려 왔다고 한다. 나는 메간과의 대화를 통해 아이다호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메간과 비슷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나는 메간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중개업을 부업으로 생각한다는 그동안의 편견을 깰 수 있었다. 그녀는 부동산 중개업에 자신의 전부를 걸고 있었다. 메간은 완벽한 프로의 능력을 보여주었고, 전국의 고객들에게 자신을 어필하고 신뢰감을 주기 위해 웹사이트도 운영하고 있었다. 메간과 내가 최근에 나온 매물들을 확인하기 위해 이동하는 도중에도 알래스카, 몬태나, 애리조나,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문의 전화가 계속 걸려 왔다.

메간은 내게 부동산 중개 업무를 처리하려면 유연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고 충고했다. 우선 정해진 근무시간에 대한 개념부터 버려야 했다.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느냐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비단 부동산 중개 업무뿐만 아니라 무슨 일을 하든 유연한 태도는 필요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번 기회에 유연성을 키워 봐야지!

함께했던 일주일 동안 메간은 내게 직접 토지를 측량할 기회, 주변 사진을 찍을 기회, 판매가에 대한 견적을 낼 기회를 주었다. 작업이 끝나고 우리는 몇 시간 동안 다른 지역에서 온 고객들에게 집을 보여 주었다. 메간은 고객 한 명을 위해 하루에 마흔일곱 채의 집을 소개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그 고객은 자신이 본 집들 중 어느 것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어떤 고객은 집 한 채를 보자마자 바로 계약하기도 했다. 이처럼 부동산 중개업은 고객의 성향에 따라 업무의 내용이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는 것 같았다.

메간과 함께 부동산 중개 업무를 하면서 나는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성취감을 맛보았고, 그 점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 주에 실적을 올리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덕분인지 메간과 나는 몇 건의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나도 실적을 올리는 데 한몫한 것 같아서 뿌듯했다. 메간이 고객에게 나를 동업자라고 소개하는 순간 나의 성취감은 더욱 확고해졌다.

CHAPTER 03 그래도 목표를 위해 한 걸음씩!



열여덟 번째 도전, 아칸소: 고고학자_ 살아 있는 역사를 경험하다

다음 목적지인 아칸소에서는 일주일간 엘드리지 씨 댁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엘드리지 씨는 우리 가족과 오랜 친구였다. 다행히 엘드리지 씨 댁은 내 새로운 직장이 될 아칸소 고고학 연구소에서 그다지 멀지 않았다. 연구소는 이 지역에서는 최초로 설립된 고고학 관련 기관이라고 한다. 나는 이 연구소와 자매결연한 아칸소대학을 통해 연구소에서 일할 수 있었다.

미국의 다른 도시도 그렇겠지만, 아칸소는 4만 3천 개의 유적지가 있을 정도로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나를 고용한 그린 교수는 아칸소 고고학 연구소를 이끌어 가는 인물이었다. 그는 자신의 수업을 들으면 연구소가 하는 일을 더욱 잘 이해하고, 고고학이라는 학문을 통해 과거의 역사를 복원하는 과정에 친숙함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며칠 후 함께 일하는 고고학자 동료들과 유적지 여섯 군데를 견학했다. 금속 탐지기와 삽, 레이저 포인터 시스템까지 갖추고서 우리는 우선 남북전쟁이 일어난 곳으로 향했다. 현장을 둘러보다 보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유적에 무관심했는지 반성하게 되었다. 몇 시간 동안 남북전쟁 발생지를 돌아다녀 보니 현재의 나와 연결된 살아 있는 역사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진짜로 남북전쟁에 사용되었던 총알을 찾아냈을 때는, 현재 우리가 발굴 작업을 수행하는 바로 이 장소에서 5천 명의 군인들이 두려움에 떨고 식은땀을 흘리는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틀림없이 행색은 꾀죄죄한 데다 계속되는 전쟁 때문에 몹시 허기지고 피곤한 상태였으리라.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어린 병사는 총알을 잃어버렸겠지. 아니, 어쩌면 그 어린 병사를 겨냥한 총알이 이곳에 떨어졌을 수도 있다.

남북전쟁 발생지를 둘러본 후에는 오래된 상형문자가 새겨진 동굴을 찾아가 사료를 발굴하기도 했다. 몇 군데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동안 어느덧 이곳에서의 일주일도 끝나가고 있었다. 다음 지역에서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 나는 여행을 하면서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다양한 장소를 개척했고, 새로운 지역과 새로운 사람들 속에서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모든 여행지에서 할 수 있는 한 풍부한 경험을 쌓는 것이 내 목표였고, 그 목표를 차근차근 이뤄 가고 있었다.

CHAPTER 04 어떻게 사는 게 가치 있는 걸까?



스무 번째 도전, 텍사스: 석유 공업 엔지니어_ 희망을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텍사스에서는 휴스턴에 위치한 셰브런이라는 정유 회사에서 석유 공업 엔지니어 체험을 할 예정이었다. 텍사스는 미국 최대 규모의 에너지 공급지였다. 사실 텍사스에서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에도, 정유 회사들의 냉정한 거절은 계속되었다. 어떻게든 엔지니어로서 일자리를 구하려는 내게 때마침 셰브런이 구원의 손길을 뻗었다. 해양탐사팀에서 일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텍사스에서의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더 투데이 쇼>의 생방송에 출연해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폭스 채널에서도 출연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왔다. 물론 두말할 것 없이 승낙했다. 전국에 방송될 인터뷰 준비를 하며, 나는 어떻게든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두 번의 인터뷰를 통해 내 여행의 목적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계속해서 내 여행 계획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덧 새로 시작할 일에 대해서도 자신감이 생겼다.

현장에 도착해서 처음 만난 사람은 일주일간 나의 상사가 될 수 팍이었다. 수는 셰브런에서 일하는 동안 내가 맡을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나를 자신이 사용하는 컴퓨터 앞으로 데리고 갔다. 해양 굴착, 지하 작업에 관한 시뮬레이션, 앞으로 이용 가능한 원유와 자연 자원에 대한 예측치를 드러낸 몇 개의 차트와 그래프 등을 보았다. 기나긴 그녀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나는 사무실보다는 역시 현장에서 발로 뛰며 일하는 게 더 적성에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20주 동안이나 직업 체험을 하면서 사무실에서 일하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도 새로운 경험은 늘 소중하니까 지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해야겠지?

셰브런의 사무실에는 넓은 카페테리아와 최신식 설비들이 갖춰져 있었다. 그래도 일주일 내내 회의에 참석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그래프를 작성하고 시뮬레이션 모델을 출력하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갑갑하다는 생각이 다시 밀려왔다. 그런 나와는 달리, 셰브런에서 함께 일하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일에 충실했고 자리를 비우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동안 직업 체험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갖고 성실한 모습을 보였다. 그것을 보면서 나도 느끼는 바가 컸다. 우선은 이 직업 체험 프로그램을 성공시키는 것이 목표지만 앞으로 직업을 결정할 때, 나도 그들처럼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분야를 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HAPTER 05 자신감을 되찾고 당당하게 일어서다



서른 번째 도전, 테네시: 음향 엔지니어_ 내 인생은 나의 것

부푼 마음으로 테네시의 내슈빌에 도착했다. 내슈빌은 미국에서 손꼽히는 음악의 도시다. 여러모로 풍부한 문화적 체험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컸다. 그래도 내가 과연 미국 남동부 지역에서 제일 큰 음악 스튜디오에서 음향 엔지니어로서 제 역할을 다 할 수 있을까?

‘더 사운드 키친’의 대표이자 일주일 동안 나의 보스가 될 이라 블론더를 만났다. 그는 5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예술인 특유의 적극적인 태도와 활기를 지니고 있었다. “아마 지금까지의 어떤 여행보다도 훨씬 더 멋진 일주일을 보내게 될 걸세.” 이라가 나에게 앞으로의 일들을 열심히 설명해주었다. “이번 주에는 다양한 이벤트들이 엄청나게 많이 열릴 거야. 그리고 내가 자네를 특별히 스폰서 몇 명에게 소개시켜 줄 테니까 기대해도 좋아. 음, 그리고 숙소는 호텔에 방을 예약해 놓았으니 걱정할 것 없고 일주일 동안 원하는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기프트 카드도 제공할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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