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대면
마리오 알론소 푸익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자기대면
마리오 알론소 푸익 지음
아름다운사람들 / 2012년 2월 / 232쪽 / 14,000원
답은 내 안에 있다: 살다 보면 헤어 나오기 어려운 난관에 부딪힐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우리는 자신감을 잃어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하거나 답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여기게 된다. 우리가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정신이 혼미해지고, 이성적으로 생각하지 못하며, 기운이 빠지고, 속이 불편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에게 던지는 도전에 맞서기 위해 가장 필요한 수단은 대부분 우리 자신의 내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개인이 변화하기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다. 바로 변화의 동기다. 진심으로 변하고 싶다는 강한 동기를 느낀 사람만이 치열한 노력을 통해 내면에 숨어 아직 발굴되지 않은 잠재력을 꽃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자아를 찾는 여행에 여러분을 초대한다.
'새로운 나'를 찾아서: 뇌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우리의 생존을 돕는 일이다. 생존하려면 문제 해결 능력과 의사 결정 능력,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수를 통해 학습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관찰력과 분석력은 지능, 기억력, 상상력, 창의력과 함께 삶의 난관들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기반이 된다. 그러나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가 걱정에 사로잡혀 초조해한다면, 그 모든 능력과 재주는 무용지물이 된다. 우리가 감정 앞에서 무너지면, 이성은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게 되기 때문이다.
즉 두려움이나 절박감과 같은 감정에 사로잡히면, 정신이 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똑똑한 사람일지라도 판단력이 흐려지게 마련이다. 이는 문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문제에 직면하는 순간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바로 부정적 감정이 뇌를 지배하여 우리가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해결 방법을 찾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인간의 뇌를 설명하기 위해 컴퓨터에 비유해 보겠다.
우리의 뇌는 계산을 해내고 창의적인 답을 생각해낼 수 있는 컴퓨터와 같다. 컴퓨터가 소프트웨어를 통해 작동하듯이, 인간의 뇌도 내부에 있는 일종의 소프트웨어와 함께 작동한다. 그런데 컴퓨터라도 소프트웨어에 문제가 생기면 산출물에 오류가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는 인간의 마음이 자신의 한계를 미리 설정한다면, 하드웨어인 두뇌가 비상할지라도 그 기능은 제한적이 된다.
마음이라는 소프트웨어는 경험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경험은 뇌가 앞으로의 활동 방식을 결정하는 기준점이 된다. 어떤 사람이 이성의 상사와 매우 불편한 일을 여러 차례 겪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한 경험을 한 후에는 다른 이성의 상사와 업무를 하게 될 때에도 답답하거나 짜증이 나거나, 심지어 화가 나는 등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집중력이 약해지고 실수를 저지르게 되어 결국 성과가 나빠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살면서 쌓아 온 경험의 일부는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로 남게 된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어떤 경험은 우리의 능력을 제한하고 계속 변화하는 상황에 적응할 수 없도록 방해한다. 우리가 정확히 알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경험이다. 우리는 사고방식을 바꿈으로써 신경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부정적인 생각의 틀 속에 갇힌 사람은 자신의 신경 세포를 죽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으며, 만약 그 사람이 생각을 바꿔 긍정적으로 산다면 뇌의 줄기세포로부터 새로운 신경 세포가 태어난다는 것 역시 알아야 한다.
숨겨진 내면 바라보기: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실재하지만 숨어 있어서 보이지 않는 곳을 탐험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도구가 필요하다. 그 도구란 다름 아닌 '자각', 바로 '자기의식'이다. 자기의식은 우리의 한정된 경험이나 타인의 견해에 의해 내려진 판단에만 의존해서는 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 준다. 그러나 한정된 틀을 넘어서기 위한 자기의식은 고도화된 집중력이 필요하다. 즉 자기의식이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눈과 같다면, 집중력은 눈이 사물을 볼 수 있도록 빛을 비춰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문제에 부닥쳤을 때뿐만 아니라, 항상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데 집중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일천한 경험에 의지하거나 타인의 시선을 읊어 대는 수준을 넘어서, 자기 내면 깊숙이 숨어 있던 새로운 세계의 비밀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불안을 다스리는 법: 노쇠한 왕이 있었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아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싶었다. 그 교훈은 과거 어려운 시기가 닥쳤을 때 왕이 시련을 이겨 내고 다시 평화를 찾을 수 있게 했던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젊은 왕자는 아버지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님께서는 평정심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시겠지만, 제 생각에는 술책과 권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왕은 왕자의 대답에 몹시 실망했다. 그리고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고 아들이 그 의미를 이해할 것 같지는 않으니, 직접 행동으로 보여 줘야겠다고 생각한 왕은 대신들에게 말했다.
"미술 대회를 열고자 한다. 미술 대회의 우승자에게 값진 포상이 있을 것이라고 방방곡곡에 알리도록 하라." "폐하, 그림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주제는 평정심, 즉 균형이다. 하지만 한 가지 꼭 지켜야 할 사항이 있다. 아무리 이상하거나 무시무시한 그림이더라도 모든 그림을 전시해야 한다." 대회 소식이 알려진 후, 각 지역에서 놀라운 그림들이 왕궁에 도착했다. 어떤 그림은 고요한 바다를, 어떤 그림은 새떼가 평온하고도 고요하게 날아가는 맑은 하늘을 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너무나도 기이한 그림이 도착했다. 어두운 배경에 약간의 빛을 담은 이 그림은 폭풍우가 치는 거친 바다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대신들은 그림이 아무리 이상해도 그 그림을 전시하라고 말씀한 폐하의 명령을 거역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 그림을 잘 보이지 않는 구석에 두었다. 이제 왕이 우승작을 선정하는 심사일이 되었다. 그림이 전시된 방에 들어선 왕은 처음에는 기분이 좋아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표정이 일그러졌다. 왕은 거의 모든 그림을 보았으나 만족스러운 그림을 찾지 못했다. 그러던 중 구석에 걸린 그림 하나가 왕의 눈에 들어왔다.
"왜 저 그림만 유독 저렇게 구석에 걸려 있느냐?" "폐하, 미친 사람이 그린 그림 같습니다. 저희는 저 그림을 걸고 싶지 않았지만, 폐하의 명을 받들어 다른 그림들의 아름다움을 해치지 않도록 구석에 걸기로 했습니다." 왕은 호기심을 보이며 그 특이한 그림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자세한 부분을 들여다보고는 갑자기 표정이 밝아지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고민할 것도 없다. 바로 이 그림이 우승작이다." 대신들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왕에게 물었다. "이 그림이 우승작이 된 이유를 알려 주십시오." "대신들은 이 그림을 제대로 보지 못했구나. 가까이 와 보게."
대신들이 그림 주변으로 모이자, 왕은 바위 사이에 있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바위 사이에는 새끼 새가 갓 태어난 둥지가 있었고, 어미 새는 거센 폭풍우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새끼 새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왕은 대신들에게 바로 이 그림이 그의 아들, 왕자에게 보여 주고 싶었던 평정심이라고 설명하였다. "다른 그림에서 그리고 있는 고요한 바다와 맑은 하늘과 같이 이상적인 세계에 산다면 평정심이 나오지 않는다. 평정심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이 이야기는 우리가 얼마나 집중하는가에 따라 삶이 조화를 이룰 수도 있고, 균형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 절망스러운 일, 불편한 일, 즉 '우리 인생의 폭풍우'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우리는 스트레스로 말미암아 평온함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면, 주변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맑고 고요한 마음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집중력을 유지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동시에 마치 블랙홀처럼 우리의 에너지, 효율성, 건강한 기운을 흡수해 버리는 사람들을 멀리해야 한다.
자화상 그리기: 우리는 주변 사람들에게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자화상을 그려 나간다. 그래서 자신이 상당히 신뢰하고 있던 누군가가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인데 왜 하려고 하나요?"라고 하면, 우리는 자화상을 왜곡하여 그리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자신의 모습을 그려 나가기 때문에 자신이 얼마나 자화상에 집착하고 있는지, 어떻게 스스로와 동일시하는지 전혀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일단 자화상을 그리게 되면, 삶의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그 자화상을 들여다보며 답을 구하려고 한다. 마치 그 자화상이 모든 것을 알려 주는 마법의 거울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만약 그 거울이 "너는 할 수 없어"라고 말하면, 우리는 절망에 빠지고 궁지에 몰린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우리가 스스로 생각하던 정체성이나 자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령 자신을 특정 이미지로 정의했는데, 갑자기 그 이미지가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해 보자. 마치 자신이 죽어 가거나,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다. 즉 우리는 변화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변화에 대해 미처 깨닫지 못한 거부감 때문에 기존의 자아를 유지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이것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진 능력을 발휘하면 할 수 있는 일이 무궁무진한데도, 우리는 현재의 자아를 생각했을 때 그것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다. 하지만 애벌레의 관점에서 당치 않다고 생각한 것(하늘을 나는 가능성)이 나비에게는 당연한 것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자아를 넘어설 준비를 하고, 삶에서 우리 역할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마음먹기에 따라 놀라운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두 개의 마음: 우리의 자아, 성격, 행동 패턴의 많은 부분을 왼쪽 뇌가 관장한다. 이는 언어를 통해 자아가 형성되며, 우리가 현실을 해석하는 관점이 결국 감정적 경험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에 대한 정신적 한계를 설정해서 현실을 바라볼 때, 그 관점에 따라 어떤 현상이 우리의 렌즈에 비치게 하는 것은 왼쪽 뇌의 역할이다. 반면 우리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기존의 습관을 바꾸어 실제 상황에서 다르게 대처하게끔 하는 데는 오른쪽 뇌가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오른쪽 뇌는 총체적인 경험을 이용할 뿐만 아니라, 시간 개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왼쪽 뇌와 오른쪽 뇌의 서로 다른 역할처럼, 우리 마음의 방도 두 개가 존재한다. 중요한 것은 이 두 개의 방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데이터화할 수 있는 눈에 보이는 정보에만 치중하면 왼쪽 뇌에만 치우친 삶이 되어, 우리는 편안한 환경에서 안전하게 살려고만 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미 배운 기술과 길들어진 습관에 쉽게 의존하는 것으로 더 나은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양쪽 뇌가 모두 필요하며,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지배해서는 안 된다. 둘은 서로 다른 관점과 시야로 주변을 살피고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
잠재력을 찾아내는 보물 지도: 우리의 마음은 읽기 힘든 커다란 지도와 같다. 그 지도 속에는 선명하고 밝은 부분도 있고, 몹시 어두운 그림자도 있다. 그래서 마음은 우리가 앞으로 나갈 수 있도록 밀어 주기도 하고, 소중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를 붙잡아 세우기도 한다. 다시 말하면 마음의 지도에는 우리가 보물을 발견하지 못하게 하는 '마음의 여과지'로 알려진 덫이 있다는 것이다.
마음의 여과지는 우리가 주변에서 받는 데이터를 의식으로 전달하는 (또는 전달하지 않는) 뛰어난 능력이 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상자를 예로 들어 보겠다. 빨간 상자의 각 면에는 여러 모양의 구멍이 나 있다. 어떤 구멍은 별 모양이며, 어떤 구멍은 달 모양, 물고기 모양 등 다양한 모양이 있다. 그리고 각 구멍에는 맞는 노란색 조각들이 있다. 운동 피질을 발달시키기 위해 고안된 이 장난감은 아이가 노란색 조각과 같은 모양의 구멍을 찾아서 빨간 상자 안으로 조각을 넣도록 유도하는데, 만약 아이가 손에 물고기 조각을 들고 달모양의 구멍으로 조각을 끼워 넣으려고 하면 아무리 힘을 써도 조각을 상자 안에 넣을 수 없을 것이다. 마음의 여과지도 같은 방식으로 작용한다.
즉 마음의 여과지는 주변에 대한 정보를 의식으로 전달할 수 있지만, 만약 여과지가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현실의 조각들을 통과시키지 못하면, 우리의 의식은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마음의 여과지에 빽빽이 들어차 있는 자신만의 동그랗고 세모나고 네모난 형태로 고정된 틀을 허무는 사람만이 자신의 내부에 숨겨진 가능성과 재능을 만날 수 있다. 우리가 무언가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기 내면의 한계들을 허물어야 한다는 이야기이다.
절벽에서 떨어지기: 우리는 종종 "여기까지야", "이제 끝이야", "더 이상 할 수 없어"라고 말할 정도로 버티기 힘든 순간을 맞이하는데, 바로 그때야말로 한 걸음 더 앞으로 발을 내디딜 기회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미 익숙한 영역에서 발을 떼고 미지의 세계로 걸어 나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때로는 발을 떼고 밑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아도, 무언가 또한 누군가가 나에게 준 영감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우리의 한계를 깨고 미지의 세계로 상징적인 걸음을 내디딜 수도 있다. 이때가 바로 세상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애벌레가 아름다운 나비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인식의 문: 감정과 마음 상태는 우리의 인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선 감정과 마음 상태가 무엇인지, 둘의 차이는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이 둘의 가장 기본적인 차이는 시간에 대한 인식이다. 감정은 호르몬, 근육, 내장에 영향을 주는 생리학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물리적 현상으로, 생리학적 변화는 순간에서부터 몇 분, 몇 시간까지 제한적으로 지속된다. 내부적인 요인(걱정) 또는 외부적인 요인(남에게 욕을 들음)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면, 감정 반응이 일어나고, 시간이 흐르면 걱정하거나 욕을 듣기 전의 신체 상태로 돌아가면서 반응이 점차 사라진다. 반면 마음 상태는 지속 기간이 훨씬 길어서 며칠, 몇 달, 몇 년 동안 같은 상태가 유지되기도 한다.
그래서 특정한 감정 상태가 얼어붙어서 그 감정이 우리와 동일시되면, 그 마음 상태가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의 일부가 된 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런데 어떤 마음 상태는 좋은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어떤 마음 상태는 힘을 빼앗고 괴로움을 주며 효율성을 앗아 간다. 심지어 다른 이들과 맺는 관계를 해치는 위력도 있다. 이 점은 아주 중요한데, 가령 건강과 활력을 증진할 수 있는 마음 상태에 있으면 지능과 창의성이 활성화된다. 그래서 긍정적인 마음 상태는 사람들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협업과 팀워크를 개선시킨다. 하지만 완전히 반대의 기능을 하는 마음 상태도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마음 상태를 직접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마음의 균형 상태에 따라 다른 현실을 경험하게 된다. 자동적인 반응을 의식적으로 선택한 반응으로 바꾸지 못한다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진정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이제 자유로 가는 길을 개척하고, 우리의 삶과 주변 사람들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동적인 반응을 극복할 수 있는 전략을 알아보자.
낫게 하는 질문, 아프게 하는 질문: 가짜 자아는 우리가 가짜 자아를 진짜로 착각하기를 바라면서 감정을 지배하고 인식을 제어하고자 한다. 즉 가짜 자아는 우리가 우울하다고 생각하면 삶에서 모든 아름답고 즐거운 일을 지워 버릴 인식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밝고 활기찬 생각의 자리에 무섭고 답답한 생각들이 자리 잡는다. 그런 이유로 우울한 사람은 주변을 검은색으로 인식하게 되고, 이내 아무런 희망도 보지 못한다. 이 이야기를 우리의 상황에 빗대어 생각해 보면, 자신에 대한 질문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할지 깨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