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러스 워틀스의 가르침
월러스 워틀스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월러스 워틀스의 가르침
월러스 워틀스 지음
스마트비즈니스 / 2012년 1월 / 240쪽 / 12,000원
1권 성공의 과학
인력의 법칙
우주는 '법칙'이 다스린다. 그것도 하나의 위대한 법칙이 다스린다. 이 법칙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궁극적인 관점에서 보면 오로지 하나의 '법칙'만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 '법칙'이 드러낸 모습의 일부에만 익숙할 뿐, 다른 모습은 거의 모르는 상태이다. 우리는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들을 모두 한자리로 끌어당기고 우리의 주변 세계를 붙잡는 법칙의 힘은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잘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거나 두려워하는 사물을 우리에게 끌어와서 우리의 삶을 만들거나 혹은 망치는 강력한 법칙은 과학이 아니라는 이유로 애써 보지 않으려 한다.
'생각의 힘', 곧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에너지를 바르게 인식할 때, 우리는 지금껏 우리에게 어둡게 보였던 많은 사물의 존재 이유와 원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생각'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이 강력한 법칙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것 이상으로 알차면서도 고통스러운 학습은 없다. 그 강력한 법칙은 바로 '인력의 법칙'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생각할 때, 미세한 에테르체 (빛을 파동으로 생각할 때 이 파동을 전달하는 매질로 추정되는 가상 물질)의 진동을 발산한다. 이 진동은 빛이나 열, 전기, 자력을 만드는 진동만큼이나 실제적이다. 우리가 오감으로 이런 진동을 감지할 수 없다고 해서 실재하지 않는다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 강력한 자석은 진동을 내보내서 수십 킬로그램이나 나가는 쇠붙이를 끌어당긴다. 그런데 이때 그 힘이 보이는가? 그렇게 강력하지만 그 힘은 볼 수 없고, 맛을 보거나, 냄새를 맡거나, 소리로 듣거나 감촉을 느낄 수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생각의 파동(염파)'도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눈으로 볼 수 없고, 코로 맡을 수 없고, 혀로 맛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다.
그렇지만 기록상 강한 염파를 인식하고 심령 현상에 특별히 민감한 사람들의 사례가 적지 않다. 생각의 파동은 우리 자신과 타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끌어당기는' 독특한 힘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발산하는 생각의 파동은 우리 마음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생각의 특성과 일치하는 타인의 생각과 사물, 조건, 사람들, '행운' 등을 우리 쪽으로 잡아당긴다. 예컨대 '사랑'을 생각하면 타인의 '사랑'을 불러온다. 특정한 생각과 일치하는 조건과 환경도 마찬가지이다. 결과적으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게 되는, 이른바 '유유상종類類相從' 현상도 이것 때문이다.
분노와 증오, 시기, 악의, 질투를 생각하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서 발산되는 이런 좋지 못한 생각도 우리 쪽으로 끌어당기게 된다. 우리가 이처럼 사악한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고 또 그 대가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똑같이 사악한 생각을 받게 만드는 조건도 그러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과의 만남도 그러하다. 간절한 바람이나 오랫동안 지속된 생각은 그에 상응하는 생각의 파동을 가진 타인들에게 인력의 중심부로 작용하게 된다. 말하자면 뿌린 대로 거두고, 끼리끼리 모이는 형국이 된다. 결국 생각의 세계에서는 '유유상종'과 '누워서 침 뱉기'가 중요한 작용원리가 된다.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은 모든 곳에서 사랑을 목격하고, 다른 사람들의 사랑을 끌어당긴다. 반대로 가슴에 미움을 담은 사람은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온갖 '미움'과 만나게 된다. '싸움'을 생각하는 사람은 무슨 일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마음속에 생각하던 '싸움'과 맞닥뜨리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 '마음'에 요구하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생각의 만유인력' 문제는 실로 중요하다. 잠시 깊이 있게 이 문제를 생각해보라. 주변 환경을 만드는 것이 바로 자신인데도 정작 자신의 주변 환경을 남들이 만든다고 남들 탓만 한다. 나는 이러한 법칙을 이해해 긍정적이고 고요한 생각을 굳게 지켜서 자신을 둘러싼 불협화음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들을 알고 있다.
'법칙'의 복잡한 작용을 이해하고 나면, 변덕스러운 '생각'의 폭풍이 몰아쳐도 끄떡없다. 이제 우리는 물리적인 힘의 시대를 지나 지적인 힘의 시대에 이르렀으며,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지, 곧 영적인 힘의 시대에 들어서고 있다. 이 영역에는 나름대로 수립된 법칙들이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이들 제반 법칙을 잘 알고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이 기울이는 노력의 다양한 모습이 수많은 벽에 가로막히게 된다. 마치 우리가 증기와 전기 및 온갖 유형의 에너지를 사용하고 있듯이, 나는 이 위대한 힘을 활용하여, 합법적이고 가치 있는 목적에 여러분이 사용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
모두가 풍요로운 성공
신의 '마음'은 인간의 발달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자연을 풍요롭게 창조했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발달이란 '일부 사람들'의 발달이 아니라 '모든 인류'의 발달이다. 자연의 목표는 생명의 지속적인 진보이다. 자연은 어느 누구로부터 그 어떤 것도 빼앗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연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아무도 희생하지 않고 모두의 진보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나 자신을 위해 원하는 것을 모두를 위해 원하는 상태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우리의 정신세계에서 경쟁적인 사고방식을 완전히 들어내어 바깥으로 던져 버린다. 경쟁 제도를 겨냥한 독립선언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원하는 것을 만인을 위해 원한다." 이 선언은 자연의 '마음'과 조화를 이룬다. 그러므로 이렇게 선언하고 기도하는 사람은 살아 있는 모든 것, 즉 자연과 인간, 그 외의 생물과 정신적으로 하나가 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합일'이다.
모든 사물의 '마음'과 정신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욕망과 생각을 그 마음에 등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원할 때 우리의 '마음'과 물건의 '마음'은 하나이다. 우리가 물건을 원하는 것처럼 그 물건 역시 우리를 원해서 우리 쪽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이 돈을 원한다고 하자. 여러분의 마음이 돈과 그 밖의 것에 스며들어 있는 '마음'과 하나가 된다면 여러분 쪽으로 오려는 욕구로 가득 차게 되고 실제로 다가오게 된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사물들의 '마음'과 하나가 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원하는 물건들이 여러분 쪽으로 이끌려 올 것이다.
사물들의 '마음'이 가진 원초적인 목표는 더 풍요로운 생명을 지향하는 모두의 지속적인 진보이다. 어떤 사람에게 주기 위해 다른 누구에게서 무언가를 빼앗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자연은 한 사람이 지향하는 생명력의 진보 기회를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이 지향하는 생명력의 진보 기회를 줄이지는 않는다. 기회는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
'합일'을 이루려면 자신과 관련된 모든 사람에게서 자신이 가져가는 값어치만큼의 생명력을 자신도 역시 모든 사람에게 돌려준다는 사실을 바르게 보아야 한다. 이는 생명력의 정확한 주고받음이다. 물론 이 생명력의 가치가 반드시 화폐가치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이 흔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즉, 어느 한 사람에게는 미미한 가치를 지닌 물건이라도 그것을 생명의 진보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사람에게는 어마어마한 가치를 가질 수도 있다. 어떤 사람에게 사물의 가치는 그 사람이 딛고 선 생명의 수준에 따라 결정된다. 어떤 수준이나 생명력의 발달 단계에서 무가치한 것이 다른 수준이나 발달 단계에서는 꼭 필요한 중요한 가치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글이 주는 생명력은 화폐가치로 볼 때 엄청난 불균형을 보인다. 예컨대 이 책은 종이와 잉크 값으로만 치면 10달러도 채 안 되지만 특정한 독자에게는 그 안에 들어 있는 어떤 문장 하나가 수천 달러의 값어치를 가질 수도 있다. 또한 책을 산 사람은 책 속의 글을 활용해서 자신이 산 값보다 수백 배가 넘는 이득을 볼 수도 있다. 그럴 때 그 사람의 행위를 절도라고 부를 사람은 없다. 여러분의 일도 이와 같은 근본적인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 이것이 첫 걸음이다.
이와 같은 행동을 했을 때 모두의 생명력을 위해 움직이는 자연의 '지능'과 하나가 된다. 이제 일하는 목표는 모두가 생명력을 갖고 그 생명력을 더욱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 자기 자신을 위해 추구하는 것은 만인을 위해 추구하고 있는 것이고, 여러분에게 필요한 천지만물에 존재하는 정신적인 원리는 여러분 쪽으로 작용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돈이 필요하면 돈에 존재하는 사물의 '마음'이 여러분의 '필요'를 의식하게 된다. 그러면 '돈이 나를 원한다'는 진리를 확신하게 된다. 이제 돈이 여러분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할 것이다. 이때 돈은 여러분이 돈 대신 제공할 수 있는 것을 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여러분 쪽으로 흘러들어온다. 자연의 마음은 생명력의 진보를 위해 모종의 실체가 그것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다른 곳으로 옮아가는 전이 현상을 지켜보고 있다.
따라서 경쟁이 없는 성공의 조건은 매우 단순하다. 첫째, 나 자신을 위해 원하던 것을 모두를 위해 원하라. 그리고 그에 합당한 생명력을 보상해주지 않는 한 누구에게서 아무것도 빼앗지 말라. 남에게 많이 주면 줄수록 내 상황은 더욱 좋아진다. 그런 다음 충만한 생명력을 위해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나에게 온다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움직여라. 필요한 것이 모두 나에게 온다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정말로 나에게 온 데 대해서 가슴속 깊이 감사하라. 나에게 온 모든 것은 내가 다른 어느 누군가에게 더욱 충만한 생명력을 주었다는 의미이다. 내가 필요한 것을 얻을 때마다 다른 누군가의 재물도 늘어난다. 내가 나를 위해 얻는 생명력은 결국 모두를 위해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성공은 모두의 생명력과 건강, 재물, 행복을 증진시켜 준다.
그렇다면 이것이 경쟁과 다른 점은 무엇인가? 이러한 원리에 의해 여러분이 획득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손에 넣으려고 투쟁하고 있는 '유한 공급'에서 온 것이 아니라 '전체'에서 온 것이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보통 한 국가의 돈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즉, 모두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이 유한 공급이 아닌 전체를 위한 생활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돈은 그들 쪽으로 옮아가기 시작한다.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사물의 마음에 각인되면 이 생각은 다시 사람들의 마음에 반응을 일으킨다. 그리하여 새로운 통화 법안이 통과되고 금덩이가 조폐공사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돈이 생명력의 진보에 필요하다면 조폐공사의 윤전기가 은행권 화폐를 찍어낸다. 말하자면 사물의 '마음'이 단순히 주조된 화폐를 넘어서 광산의 심장부에 숨어 있던 금덩이와 은덩이에까지 전달된 것이다. 믿음의 기도가 간절히 부를 때 금과 은도 기도에 응답하여 움직이기 시작한다.
다른 모든 것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조폐공사도 그렇지만 공장도 충분한 수효의 사람들이 '진보하는 생활' 방식을 채택할 때마다 움직이기 시작한다. 만일 어떤 공장의 임금 체계가 그곳 근로자들의 충만한 생명력을 가로막고 있다면 해답은 임금 체계를 수정하는 것뿐이다. 즉, 근로자들이 충만한 생활을 영위하기 시작할 때마다 임금 체계가 방해된다면 임금 체계는 바뀌기 시작한다.
생명체는 제도의 변화로 진보할 수 없다. 하지만 제도는 생명체의 진보로 변화할 수 있다. 유용하고 아름다운 사물을 우리 곁에 두려면 많은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만인에게 더 충만한 생명력을 주는 것을 유일한 목표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열망뿐이다. 그런 사람들의 수효가 늘어나면서 모두가 누리는 번영의 폭과 깊이도 함께 늘어난다. 그리하여 모든 계층에서 '진리'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수효가 끊임없이 늘어나면 경쟁과 '유한 공급'이라는 고정관념도 무너지고 마침내 천국에서나 볼 수 있는 세상이 우리 눈앞에 펼쳐질 것이다.
2권 부의 과학
부자학은 과학
대수학이나 기하학처럼 '부자학'도 과학이다. 돈을 버는 과정을 지배하는 확실한 법칙은 분명히 존재한다. 누구든지 이 법칙을 배우고 따르기만 한다면, 더하거나 빼기의 계산 결과처럼 틀림없이 부자가 될 수 있다. 돈과 재산을 가지려면 어떤 행동을 확실한 방식으로 실천해야 한다. 이 확실한 방식으로 꼭 필요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부자가 된다. 하지만 이 방식을 활용하지 않는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능력이 뛰어나도 절대 부자가 될 수 없다.
부자가 되는 것은 환경의 문제가 아니다. 만일 환경의 문제라면 같은 지역에 사는 모든 사람이 부자이거나 가난해야 한다. 두 사람이 같은 지역에서 같은 일을 하면서 사는데, 한 명은 부자가 되고 다른 한 명은 가난뱅이라면 부자가 되는 것은 환경의 문제일 수 없다. 이렇듯 똑같은 지역에서 서로 이웃한 두 사람이 다르게 사는 것을 보면 부자가 되는 것은 '확실한 방식'으로 행동한 결과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이처럼 '확실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능력은 타고난 재능에만 기인하는 것은 아니다. 부자가 된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네들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대단히 평균적이라는 사실, 곧 재능이나 능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별로 나을 바 없다는 점이 드러난다. 부자가 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갖지 못한 능력과 재능으로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확실한 방식'으로 행동했기 때문에 부자가 된 것이다.
부자가 되는 것은 절약이나 저축의 결과도 아니다. 또한 같은 직업에 종사하는 두 사람이 거의 똑같은 행동을 하는데도 한 사람은 부자가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찢어지게 가난하거나 심지어 망하기도 한다. 부자가 되는 것은 결코 환경의 문제도 아니고 어떤 특정한 직업이나 사업 아이템을 선택하는 문제도 아니다. 결국 부자가 되는 것은 '확실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방법을 배웠느냐, 못 배웠느냐에 달려 있다. 여러분은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거나 또는 심각한 빚 문제로 시름에 빠져 있거나, 친구도 지식도 재주도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여기서 말하는 '방식'대로 행동하기 시작한다면, 금세 부자가 되는 문턱을 넘어설 것이다. 비슷한 원인은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 자본이 없으면 만들면 되고, 사업의 전망이 안 좋다면 사업을 바꾸면 되고, 지역이 안 좋으면 지역을 바꾸면 된다. 지금 하는 사업과 지금 몸담은 자리에서 '확실한 방식'으로 행동한다면 누구든 성공할 수 있다.
부의 참뜻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자기 생명의 확장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생명이란 살아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스스로를 증대시키기 때문이다. 땅에 떨어진 한 알의 씨앗은 싹으로 돋아나 활동을 시작해서 살아가는 동안 수백 알의 씨앗을 낳는다. 결국 생명은 살아가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증식시키는 것이다. 생명은 영원히 더 많아진다. 우리는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행동하고, 더 많이 늘어나려 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생명의 충동을 거부할 수 없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행동하고, 더 많이 늘어나기 위해서는 사용할 재화가 많아야 한다. 재화를 사용해야만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유해지려는 욕망은 더 큰 생명을 바라는 능력일 따름이다. 더 많은 돈을 바라게 하는 동력은 식물을 자라게 하는 동력과 똑같다. 그것은 바로 보다 충만하게 드러나기를 바라는 생명이다.
하나의 '살아있는 실체'는 모든 생명에 잠재된 이 내재적 법칙을 따르고 있다. 하나의 '살아있는 실체'는 더 많이 더 크게 살려는 욕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항상 무언가를 창조하려고 한다. 하나의 '살아있는 실체'는 우리의 내면에서 더 많이 더 크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창조주는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소유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여러분이 부자가 되는 것이야말로 창조주의 욕망이다. 자연은 여러분의 계획에 호의적이다. 삼라만상은 당연히 여러분의 것이다. 이 말이 진리임을 믿어라. 단, 여러분의 목적이 창조주의 목적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