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이준영 지음 | 좋은날들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이준영 지음
좋은날들 / 2011년 12월 / 288쪽 / 12,800원
part 1 회사 생활을 잘한다는 것에 관하여 조직은 감당할 수 있는 '똑똑한 직원'을 원한다
똑똑한 직원들의 비극적 아이러니: 몇 년 전 새로운 웹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 직원을 충원해야 했다. 이력서를 스크리닝한 후 1차 합격자를 대표이사에게 보고하며 나는 이렇게 질문했다. "똑똑하고 재수 없는 직원과 멍청하고 성실한 직원 중 누가 좋으신가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던 대표이사는 잠깐 고민을 하더니 똑똑하면서 성실한 직원은 없냐고 반문했다. 나는 다시 질문을 수정했다. "만약 똑똑하지만 개념 없는 직원과 능력은 부족하지만 성실한 직원이 있다면 그중 누굴 해고하시겠어요?" 대표이사는 단호하게 후자를 해고하겠다고 했다. 그래서 난 똑똑하지만 조직에 대한 적응력은 조금 떨어질 것 같은 직원을 뽑았다. 그로부터 2개월 후 그 직원이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통보해왔다. 여러 번 만나 설득을 했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대표이사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자 그는 불같이 화를 내며 "똑똑한 놈들은 늘 뒤통수를 친다!"며 혀를 찼다.
거의 모든 회사는 멍청한 직원보다는 똑똑한 직원을 뽑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 '똑똑한 직원'이 상대적으로 다른 직원들에 비해 보다 높은 성취욕과 이상을 갖고 있다는 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는 그릇에 바닷물을 다 담을 수는 없는 것처럼 바다 같은 인재를 원한다면 회사가 바다보다 더 큰 그릇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경영진이 간과한 것이다. 대개의 경영진들은 자신은 그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똑똑한 자를 뽑았더니 조직을 망쳤다고 비난한다. 결코 그렇지 않다. 조직이 똑똑한 자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고 오히려 똑똑한 자의 재능과 인생을 낭비했을 뿐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 '똑똑한 직원'이 멍청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도 있다. 자신의 재능을 펼쳐 보일 수 없는 조직을 선택한 것은 그것이 어떠한 이유였던 간에 잘못된 선택이다.
혹시라도 '난 그래도 좀 똑똑하지'라고 가끔 생각이 든다면 '똑똑한 자의 딜레마'에 빠져 있는 셈이다. 그런데 똑똑한 자들은 아무런 실천적인 활동을 하지 않는다. 다만 친구에게 회사의 거지같은 상황을 토로하거나, 블로그나 트위터에 애매한 비난의 글을 남기거나, 야근을 하며 업무와 관계없는 투잡을 하거나, 여기저기 불만을 남기는 데 시간을 허비한다. 그리고 회사를 떠난다. 그들은 스스로 똑똑하지만 결코 남과 함께 일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똑똑하지만 함께 일하기 힘든 사람을 위한 조언의 핵심은 '지혜로운 자가 되라'는 것이다. 똑똑하기는 어렵지 않지만 지혜롭기는 어렵다. 왜냐면 지혜로운 것은 자신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제대로 살고 있는 건가?' 지혜로움은 수많은 질문에 대해 빠르게 답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의 본질적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다. 물론 똑똑한 건 죄가 아니다. 다만 그 똑똑함이 제대로 된 그릇(조직 혹은 회사)에 담기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비극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다. 스스로 똑똑하다고 생각해 조직이나 회사에서 충돌을 발생시키며 일하는 사람이라면, 지식과 지혜의 차이점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똑똑하지도 못하면서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들이 말을 잘한다거나 두뇌회전이 빠른 것을 똑똑한 것으로 오해한다. 그렇지 않다. 그건 그냥 '남들보다 좀 낫다'는 것일 뿐이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똑똑함은 조금 나은(better than)이 아니라 굉장히 훌륭한(excellent) 것을 말한다. 단 한 명의 똑똑한 직원이 회사를 살릴 수도 있다. 회사에겐 이런 인재, 굴러온 복덩이를 만날 기회가 간혹 생긴다. 어쩌면 이미 우리 회사에 그 복덩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복덩이를 제거해야 할 암적 요소로 바라보는 우둔함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를 나누는 기준
좋은 회사에 대한 정의는 비교적 쉬운 편이다. 자신이 회사에 다니는 목적을 충족시킬 수 있는 회사가 좋은 회사다. 대다수 사람들은 돈과 사회적 지위라는 두 가지 목적을 충족시키는 경우 좋은 회사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회사를 다니는 다양한 목적 중 회사를 통해 가장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것을 돈과 사회적 지위로 보는 게 타당하다. 좋은 회사에 비해 나쁜 회사에 대한 정의는 다소 어렵다. '나쁘다'는 바뀌어야 하는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늘 변화할 수밖에 없어서 정의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회사를 통해 개개인이 추구하는 주요 목적을 돈과 사회적 지위로 정의하면 나쁜 회사에 대한 이해가 쉬워진다. 내가 원하는 만큼 돈을 받지 못하거나 내가 만족할 만한 수준의 사회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는 회사가 나쁜 회사다. 그럼 둘 중 하나만 만족하는 회사는 좋은 회사일까, 나쁜 회사일까? 이것을 결정하는 것은 자신의 세계관이다.
이 회사는 좋은 회사일까, 나쁜 회사일까?: 세계적인 투자자문 회사에서 근무하는 한 컨설턴트는 또래의 평균 연봉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급여를 받고 회사에서 지급한 자동차와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는 투자자들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이유로 제3세계 시장에의 투기성 투자나 기업 인수합병 과정에서 대량의 실업 사태를 발생시키는 일을 자주 했다. 그는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더 많은 투자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회사의 이런 정책을 더욱 충실히 이행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모럴 해저드 상태에 빠져 있다는 것이고 그는 이 과정에서 심각한 심리적 공황을 경험하게 된다. 이유가 어찌되었든 그의 마음은 자신의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하였고 결국 정신과 상담을 받은 후 회사를 떠나 몇 년간 요양 생활을 했다. 이후 다시 사회에 복귀한 그는 투기성 자금의 유입을 감시하는 사회단체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가 받는 급여는 형편없는 수준이지만 누구를 만나더라도 자신이 하는 일을 자신 있게 설명하며 심리적으로 매우 안정되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소설과 같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사실 불법적인 일을 하는 회사도 아니고 합법적으로, 다만 도덕적인 문제가 다소 있는 투자자문 회사에서 충분히 만족할 만한 급여와 복지 혜택을 받는 것에 대해 나쁘게 생각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오히려 그런 일에 크나큰 도덕적 자괴감을 느낀 사람이 문제일지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직장 혹은 좋은 회사라고 여기는 곳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이 흔한 것은 아니다. 앞서 이야기한 컨설턴트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2천 5백 명의 임직원 중 몇 명이나 될까? 그래서 좋은 회사를 정의하는 것보다 나쁜 회사를 정의하는 게 더 힘들다고 한 것이다. 2,499명에게 좋은 회사가 오직 내게만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경험이 적거나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는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에 대해 쉽게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여러 회사를 경험하고, 다양한 상황과 만나고, 또한 그런 것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면서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를 구분하는 게 만만치 않은 일임을 깨닫게 된다. 한때 좋았던 것이 나빠지고 나빴던 것은 좋아진다. 15년째 한 공기업에 근무하는 친구가 있다. 15년 전 우리는 "너처럼 똑똑한 녀석이 왜 공기업에 들어가 능력을 썩히려고 하느냐?"고 탓했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놀 수는 없잖아. 다니면서 다른 곳을 알아보려고." 그랬던 그가 최근에는 가장 어린 나이에 부장으로 진급했고 느리지만 꾸준히 오르는 연봉과 회사의 각종 복지 혜택을 누리며 아직 충분히 여유 있는 정년에 만족해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직접 한 이야기다. 15년 전에 공기업에 입사하는 것은 그에게 무덤을 향한 다이빙이었지만 지금은 그 무덤이 행복의 동산으로 변한 셈이다.
좋은 회사보다는 좋아하는 회사를 찾아라: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에 대한 구분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지만 질문 자체가 변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몇 년 동안 고민을 한 후 나는 질문을 이렇게 변경시키는 게 나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좋아하는 회사와 좋은 회사' 나쁜 회사에 대한 개념은 아예 빼버렸다. 특히 요즘 같은 장기적 불황기에는 나쁜 회사라도 좋으니 급여를 받으며 회사에 다니는 것 자체가 중요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열악한 노동 환경을 제공하는 회사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해야 한다는 뜻이다.
'좋은 회사'는 말 그대로 좋은 회사를 말한다. 앞서 언급한 돈과 사회적 지위를 만족시켜주는 회사가 이에 해당한다. 반면 좋아하는 회사란 이 둘을 만족시킬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회사다. 좋아하는 회사란 내 가치관과 세계관에서 만족하는 회사를 의미한다. 회사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느냐고 질문하는 사람에게 좋은 회사가 있을지 모르지만 좋아하는 회사는 없다. 좋아하는 회사가 있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그 회사에 자신의 가치관을 투영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공기업에 근무하는 친구는 심지어 "회사를 사랑한다."고까지 말했다. 나는 이 친구가 말하는 '회사 사랑의 이유'를 듣고 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20대에 그가 원했던 것은 좋은 회사였다고 했다. 실제로 그가 들어가지 못한 좋은 회사에 들어간 사람들을 볼 때마다 자괴감에 빠지곤 했는데, 그래서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더욱 싫어졌다. 회사가 싫고 사람들도 싫으니 당연히 자기가 해야 할 일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어영부영 10년이 지났을 때, 그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회사의 미래 사업과 관련한 프로젝트에 투입되었다. 그런데 그가 해야 하는 미래 산업 발굴은 빈 공간에 그림 그리기처럼 초기 기획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첫날부터 해야 할 일을 토론으로 정하고 직접 외부 인사들을 만나고 사업 기획을 해야 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막힌 폐에 공기가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10년 만에 처음으로 신바람 나게 일을 했다고 한다. 고개를 들어 회사를 다시 바라보니 자신이 할 일이,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일들이 계속 보이더라는 말도 덧붙였다.
어떤 사람들은 서로 첫눈에 반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오랜 만남 끝에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회사도 그렇다. 첫눈에 마음에 드는 회사가 있는 반면 오랜 시간이 지나서 비로소 사랑에 눈 뜨기도 한다. 회사를 사랑하는 데도 객관적 비교 수치보다 자신의 결정과 태도가 더욱 중요하다. 분명하게 나쁜 회사가 아닌 이상 대부분의 회사는 좋은 회사거나 좋아지려는 회사다. 문제는 내가 얼마나 회사를 좋아하느냐다. 회사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회사는 정말 좋은 회사가 될 수 있다. 스스로 사랑한다고 외치는 순간 정말 사랑이 생기는 것이다.
회사가 나를 평가하는 3가지 기준
내가 이 회사를 몇 년 더 다닐 수 있을까? 누구나 자신을 돌이켜볼 시기가 되면 회사에서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심지어 남들이 부러워하는 회사에 다니는 사람도 '내일이면 서른인데 나는 어디까지 승진할 수 있을까?'라든가 '이런 연봉으로 미래를 계획할 수 있나?'라든가 '인맥이라도 열심히 쌓아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누구나 이런 고민을 한다.
사실 대부분의 회사에서 연봉은 그 사람의 능력과 크게 관계가 없다. 5천만 원의 연봉을 받는다고 5천만 원의 가치가 있다는 게 아니다. 그저 현재의 회사가 생계유지를 위해 지불할 수 있는 최대 금액이 5천만 원이라는 의미다. 회사는 그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면 여러분의 능력과 시간과 인생을 살 수 있다고 제안했고 여러분은 그것을 받아들였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회사가 여러분에게 지불하는 연봉은 여러분이 그보다 나은 능력이 있다는 걸 반증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받는 연봉과 자신의 능력을 동일시한다. 나는 그런 생각이 '틀렸다'고 감히 말한다. 하지만 나의 단언과 달리 회사는 전혀 다르게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기도 한다.
얼마나 오래 이 회사를 다닐 수 있을까?: 따라서 연봉 수준으로 내 가치를 임의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회사가 원하는 것을 먼저 생각해야 했다. 만약 여러분이 회사와 나의 관계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면 아래의 3가지 질문을 해볼 필요가 있다. 이 질문에 냉정하게 대답해보라. 지금은 힘들겠지만 분명히 직장생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회사의 매출에 내가 기여한 바는 얼마인가? 1점부터 10점까지 매겨보자. 회사 직원이 10명에 매출이 10억 원이고 내가 기여한 바를 수치로 표시할 때 1억 원이라면 여러분의 기여도는 10이다. 만약 기여도가 1천만 원이라면 1이 될 것이다. 기여도가 없다면 0이다.
2) 내가 퇴사한다면 회사의 매출이 감소하는가? 1점부터 10점까지 매겨보자. 연봉과 비교하여 매출 감소를 생각해보자. 5천만 원의 연봉을 받고 있고 내가 퇴사할 경우 5억의 매출이 감소하거나 그만한 손해를 회사가 입는다면 10점이다. 5천만 원이 감소할 때마다 1점씩 감소한다. 4억 원이 감소하면 8점이다. 5천만 원이 감소한다면 0이다. 감소하는 게 없다면 -5점이다.
3) 내가 회사를 망칠 확률은 얼마인가? 회사 사장의 비리를 알고 있거나 상사의 불륜을 알고 있거나 회사의 탈세 사실을 알고 있는가? 0점이다. 회사의 기밀 서류를 모두 갖고 있거나 앞으로 진행할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는가? 0점이다. 자신이 퇴사하면 회사의 핵심 인물들이 함께 퇴사하는가? 10점이다. 아무도 퇴사하지 않는가? 0점이다. 내가 퇴사하게 되면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중단되거나 팀의 운영이 어려워지는가? 5점이다.
이렇게 점수를 계산해서 20점 이상이라면 퇴사를 하고 스스로 회사를 만드는 게 낫다. 점수가 10점 이하라면 회사에 돈을 벌어주는 존재가 아니라 급여 받으며 조용히 인생을 영위하는 게 나은 상황이다. 0점이라면, 자신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거나 자괴감이 심한 상태거나 어쩌면 우울증을 의심해보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물론, 이 3가지 질문으로 내가 회사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 판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질문들을 통해 회사가 여러분을 평가하는 냉정한 기준을 알 수 있다. 회사는 우리들 개개인을 판단한다. 동료들이나 상사나 경영진은 우리의 능력뿐만 아니라 성격이나 대화 방식,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평가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이 3가지 질문을 통해 여러분을 평가한다. 첫 번째는 회사에 실질적으로 어떻게 기여하는 사람인가를, 두 번째는 여러분을 어떻게 성장시킬 것이며 어떤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를 판단한다. 세 번째 기준으로는 여러분을 대체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판단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일하는가?: 회사가 늘 연봉 이상의 뛰어난 성과를 올릴 사람만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사람을 필요로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그 조건을 만족시키지는 못한다. 어떤 사람은 주어진 일만 하고 어떤 사람은 그 이상의 일을 한다. 큰 회사든 작은 회사든 회사의 매출에 별 관계없이 존재해야만 하는 인력이 있다. 그러나 만약 회사의 매출과 직접 관련된 부서에서 일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진다. 상품을 생산하거나 판매하는 부서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다. 그런 직책 혹은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면 구체적인 수치로 자신을 평가해야 한다. 회사에 기여하고 있는가? 아니면 연봉이 의미하는 수준에서 일하고 있는가? 우리의 회사 생존율은 바로 그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이익창출을 최우선 과제로 여기는 회사 입장에서 급여와 성과는 그 사람과 회사가 얼마나 오랜 시간 같이 일할 수 있는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