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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업무의 기술 45

구와바라 데루야 지음 | 시그마북스


스티브 잡스 업무의 기술 45

구와바라 데루야 지음

시그마북스 / 2011년 12월 / 255쪽 / 13,000원



1장 '한 단계 위'를 지향하며 일하고 싶다




열심히 노력은 하는데 왠지 결과를 내지 못한다

성과가 오르지 않는 원인은 대부분 기술이나 운의 문제가 아니라 집념의 차이다. 1976년에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이 애플을 창업했다. 이 애플의 출발을 견인한 것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컴퓨터 가게를 경영하던 폴 테렐의 대량 주문이었다. 테렐은 '홈컴퓨터', '마이크로컴퓨터'가 갓 나오기 시작한 시대에 컴퓨터의 개인 수요를 꿰뚫어보고 점포 세 곳을 경영했다. 문제는 팔 제품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직접 부품을 사고 다른 사람에게 납땜을 맡기는 식으로 만들어서 팔았기 때문에 판매할 수 있는 대수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테렐은 '마법사 워즈'라고 찬사를 받는 천재 기술자 워즈니악이 만든 개인용 컴퓨터를 보았다. 바로 '애플Ⅰ'이었다. 그 순간 테렐은 '바로 이거야!' 하고 무릎을 쳤다. 하지만 그는 잡스를 '빈틈이 없고 상대방을 골탕 먹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경계했기 때문에 "다음에 또 보세"라는 형식적인 말만 하고 헤어졌다.



한편 잡스는 그가 자신을 경계하는지 아닌지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이튿날, 잡스가 테렐의 가게를 찾아와 말했다. "안녕하십니까? 어제 '다음에 또 보자'라고 하셔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잡스는 테렐에게 애플Ⅰ을 홍보해 50대를 주문받았다. 금액은 약 3만 달러였고, 대금은 제품을 인도할 때 현금으로 받기로 했다. 잡스는 그때 아직 휴렛팩커드에 다니던 워즈니악에게 바로 전화를 걸어 계약 결과를 알렸고 워즈니악은 놀라움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 주문은 사실 애플로서는 상당히 벅찬 규모였다. 애플을 창업할 때 이들이 마련한 자금은 고작 1천 달러였는데 이 돈으로는 부품을 사기에도 모자랐다. 잡스는 부품업자에게 대금을 후불로 지급하고, 제품을 납품할 때 받는 돈으로 그때그때 부품 대금을 결제하면서 제품을 조립해 나간다는 아이디어로 문제를 해결했다. 결국 테렐은 애플Ⅰ을 총 150대 납품받아 10만 달러에 가까운 매출을 올렸다.



당시 두 사람 모두 큰돈을 벌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만든 개인용 컴퓨터를 마니아에게 수십 대 정도 팔면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대량 주문은 다분히 '우연'의 산물이었다. 테렐이 처음 잡스에게 경계심을 품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행운을 놓칠 가능성도 있었다. 하지만 잡스는 우연을 놓치지 않았다. 기회를 직감한 그는 그때까지 계속 다니던 게임 회사 아타리를 그만두고 애플에 전념했다. 더불어 미래의 비전도 명확히 그리게 되었다. '컴퓨터를 자신의 손으로 조립하고 싶어 하는 마니아가 한 명 있으면, 조립까지는 못해도 컴퓨터를 사용해볼 생각이 있는 사람은 1천 명이 있다'라고 생각했다.



이듬해에 내놓은 '애플Ⅱ'는 상자에서 꺼내자마자 소비자가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완성품 컴퓨터로 만들었다. 이 결단이 전기가 되어 애플Ⅱ는 폭발적으로 팔려나갔고 이로써 회사는 크게 도약할 수 있었다. 애플Ⅰ의 수주라는 행운을 얻은 가운데 확실히 소비자의 니즈를 파악하고 그것을 애플Ⅱ라는 형태로 구체화한 것이다. '운'이 '실력'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기회는 모두에게 찾아온다. 노력은 누구나 하고 있다. 그리고 과학 기술의 세계에는 천재도 많다. 결국, 성공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루어낸다'라는 집념이다. 단순한 의욕이나 열정이 아니다. 집념은 이후에도 잡스의 커다란 성공 요인이 된다.



잡스의 한마디_ 집념은 성공의 최우선 요인이다.





남들과 다르고 싶다면 어디에 차별점을 둬야 할까?

"이건 전례가 없어. 그러니까 포기하자"라고 말하는 사람은 그저 특색 없는 일반적인 사람이다. 그런 부류에서 빠져나오려면 "이건 전례가 없어, 그러니까 하자"라고 말하면 된다. 그 뒤에 가시밭길이 기다리고 있음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잡스는 항상 이 길을 선택했다. 1985년 잡스는 자신이 창업한 애플에서 추방당했다. 그 후 1996년에 애플에 복귀하기까지 그는 1985년에 창업한 '넥스트'와 〈스타워즈〉 시리즈로 유명한 영화감독 조지 루커스에게 사들인 픽사를 경영하는 데 전념했다. 두 회사 모두 오랫동안 이익이 나지 않아 잡스는 개인 재산을 축내야만 했다. 하지만 결국 넥스트사는 잡스의 애플 복귀를 이끌어냈고, 픽사는 세계적인 히트작을 연달아 탄생시켜 잡스가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픽사는 그때까지 없었던 컴퓨터 그래픽CG을 사용한 장편 애니메이션이라는 분야를 정착시키는 등 영상 세계에 커다란 공적을 남겼다.



또 픽사는 1995년의 〈토이 스토리〉와 1998년의 〈벅스 라이프〉, 1999년의 〈토이 스토리2〉 등 만드는 작품마다 대히트를 기록해 기적 또는 신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리콘 밸리에서 자라 영화와는 인연이 없는 잡스가 그런 기적을 실현할 수 있었던 것은 픽사의 공동 창업자인 에드윈 캣멀과 알비 레이 스미스, 그리고 그들이 발굴한 존 래스터라는 3인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에드윈 캣멀은 CG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컴퓨터 과학자이고, 알비 레이 스미스는 수학과 컴퓨터 이론에 정통한 예술가로 'CG의 마술사'로 불렸다. 또 존 래스터는 디즈니를 거쳐 픽사에 입사한 천재 애니메이션 감독이다. 잡스는 이 3명과 손을 잡음으로써 영화계에서 성공을 거머쥐었다. 그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놀라운 제안을 했다. 기적을 일으킨 원동력인 존 래스터를 대신해 CG 애니메이션에는 초보자였던 브래드 버드를 차기작의 감독으로 기용한다는 것이었다.



디즈니 출신인 브래드 버드는 CG 애니메이션을 제작한 경험이 없었다. 그런 인물을 기용한 것이니, 잡스가 얼마나 업무 진행 방식의 고착화를 싫어하고 전례의 답습을 피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 브래드 버드가 만든 작품이 2004년에 발표한 〈인크레더블〉이다. 당시 히어로의 이야기를 CG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캣멀과 래스터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브래드의 제안을 채용했다. 이유는 이랬다. "우리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와 똑같은 말만 하는 사람은 필요 없습니다." 불가능하기에 도전하고, 전례를 뒤엎는 제안이니까 받아들인다는 말이다. 당연히 실현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랐다. 버드의 주문은 픽사의 전례를 깨고 상식을 뒤엎는 것들뿐이었다. 기술자들은 괴로웠다. 게다가 상영 시간은 2시간에 가까웠다. 무엇보다도 이 영화를 아이들이 좋아할지 누구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미국 국내에서 2억 6천만 달러, 전 세계에서 6억 3천만 달러라는 흥행 수입을 올렸다. 이는 〈니모를 찾아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초기의 세 작품을 크게 웃도는 기록이었다. 훗날 브래드는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이 스튜디오(픽사)가 성공을 거둬온 까닭은 성공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매번 한계까지 노력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히트작을 연달아 내놓으며 기적을 일으킨 회사가 초보자를 기용한다.' 그런 있을 수 없는 도전을 한 데는 물론 잡스의 존재가 크다. 잡스는 정기적으로 제작 진척 상황을 살피고는 문제점을 지적하며 스태프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게 정말 자네들이 하고 싶은 건가?" 타협하지 말고 정말로 만족하는 수준이 될 때까지 철저하게 만들라고 강하게 채찍질한 것이다. 전례를 따르며 무난하게 일하는 것도 역시 인생의 한 가지 길이다. 그러나 언제 "자네를 대신할 사람이 왔으니 이제 자네는 필요없네"라는 말을 들을지 모른다. 그러기 전에 '이건 전례가 없어. 그러니까 하자'라는 발상이 필요하지 않을까?



잡스의 한마디_ 아무도 걸은 적이 없는 길을 가라.





2장 '부족한' 가운데서 최고의 성과를 내고 싶다




발주처의 무리한 요구에 충실히 응해야 할까?

선택과 집중은 비즈니스의 성공 원칙 중 하나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자기중심적인 요구를 하는 오만한 발주처에는 "노"라고 거절해도 된다. 잡스의 "노"는 강렬하고 비타협적이다. 1996년, 길 아멜리오가 애플의 CEO로 취임했다. 아멜리오는 위기에 빠졌던 반도체 제조회사 내셔널 세미컨덕터를 재건한 '업계의 재건왕'으로, 애플을 재건하려면 잡스가 필요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애플이 잡스의 회사인 넥스트의 매수를 정식 결정하고 세부 조건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아멜리오는 잡스와 경영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잡스는 갑자기 이렇게 말했다. "'뉴턴'을 없애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뉴턴은 세계 최초의 개인용 휴대 정보 단말기PDA다. 아멜리오는 뉴턴이 적자 사업이기는 하지만 언젠가 이익이 날 것으로 생각해 계속 유지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사업부를 폐쇄하는 데 얼마나 들 거라고 생각하시오?"라고 잡스에게 되물었다. 그러자 잡스는 이렇게 단언했다. "얼마가 들어가든 상관없습니다. 뉴턴을 버리면 세상은 애플에 박수를 보낼 겁니다." 결국 잡스는 애플로 본격 복귀하자마자 뉴턴을 포기했다. 뉴턴에는 열광적인 팬도 많았기 때문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컸다. 잡스 본인도 "PDA 사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은 엄청났다"라고 술회했을 정도다.



PDA뿐만이 아니다. 잡스는 버린 프로젝트가 완성한 프로젝트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버린 것이 많기에 결실이 풍요롭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집중해야 할 것에 '예스'라고 말하는 것이 집중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정반대다. 집중이란 다른 수많은 훌륭한 아이디어에 '노'라고 말하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독하게 "노"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나 잡스는 무엇에 "예스"라고 말할지 결정하기 전에 "노"라고 말해야 할 것을 차례차례 정한다. 그런 후 더 이상은 "노"라고 말할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만큼 황량해진 장소에 남은 광맥만을 판다. 추리고 또 추린 끝에 남은 극소수에 집중하며, 하지 않은 것을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우선순위를 정하고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실행해 나간다'라는 것은 상식이며 올바른 방법이다. 하지만 상식 밖의 성과를 올리려면, 끊임없이 "노"라고 말한 끝에 남은 한두 개만을 한다가 되어야 한다. 후자는 종종 결렬이나 증오를 부른다. 그렇지만 후자야말로 잡스가 선택한 길이다.



잡스의 한마디_ "노"라고 말함으로써 최선의 "예스"를 발견한다.





3장 능력과 성격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면?




뒤늦은 깨달음이 아닌 선견지명의 힘을 키우고 싶다

선견지명의 힘은 누구에게나 있다. 자신의 선견지명을 믿는 사람이 적을 뿐이다. 잡스가 자신의 선견지명에 자신감에 품기 시작한 때는 애플Ⅱ가 대히트를 기록한 무렵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일이 어떻게 전개될 것이냐는 향기나 냄새를 맡고 여러 가지 결정을 내리는 것이다." 잡스는 시장조사를 하지 않는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그의 시장조사"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이다. 자신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을 만든다. 그러면 그것이 바로 사용자가 원하는 것이라는 사고방식이다.



그의 선견지명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팔로알토 연구소를 견학했을 때였다. 그곳에 있는 놀라운 컴퓨터 기술을 본 순간, 잡스는 '언젠가 모든 컴퓨터가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직감했다. 기술을 개발한 팔로알토 연구소의 천재들에게는 막연하게 보였던 미래의 문을 잡스가 먼저 본 것이다. 스티브 워즈니악 역시 선진적인 기술을 눈앞에 본 순간 미래를 향해 열린 일방통행의 문을 통과한 기분이었다고 한다. 일단 지나가면 낡고 불편한 과거로는 두 번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문이다. 팔로알토 연구소의 기술은 그만큼 컴퓨터의 사용법 자체를 바꿔놓는 것이었다. 애플은 그것을 실현하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잡스가 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실현하지 못했다.



미래의 문이 보이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자신의 직감을 믿지 않는다. 미래의 문을 열 수 있느냐 없느냐는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노"라고 말해도 '내가 옳고 다른 생각은 전부 틀렸다'라고 믿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 다른 사람은 잊어버리고 혼자서 걸음을 내딛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최고다. 잡스는 워즈니악과 함께 다음의 다음, 또 그다음 등 영속적으로 혁명을 일으킬 수가 있었던 것이다.



선견지명이라고는 해도 세부적인 기술까지는 물론 알지 못한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알아맞힐 수도 없다. 그럼에도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느낄 수는 있다. 그 느낌은 상당히 정확하다. 다음에는 한발 물러서서 쓸데없는 짓을 하지 않으면 일은 알아서 진행된다." 잡스의 선견지명은 종종 비상식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그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상식적인 견해라면 반대 의견은 나오지 않지만, 그래서는 혁명을 일으킬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고 반대하는 견해이기 때문에 한계를 뛰어넘어 비약할 수 있는 것이다. 선견지명의 힘을 키우고 싶다면 자신의 내부에 있는 작은 예감, 바보 같은 의견, 사소한 영감을 소중히 여기자, 그런 것들을 상식이라는 대패로 깎아버리면 선견지명의 힘은 평생이 가도 발전하지 않는다.



잡스의 한마디_ 자신을 부정하지 마라.





예전 같은 의욕이 나지 않고 기력이 부족하다

성장기의 과제가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다면, 성숙기의 과제는 '꿈'을 발견하는 것이다. 꿈이 없는 인생은 허무하지만 꿈은 의외로 쉽게 식어버리기 때문이다. 잡스가 애플 재건의 히든카드로 내놓은 아이맥은 1년 사이에 200만 대나 팔렸다. 그러나 잡스는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가지고 다닐 수 있는 아이맥'으로 불린 '아이북'을 발표하는 등 연달아 신제품을 내놓았다. 이러한 도전 끝에 탄생한 것이 2000년에 발매된 아이팟이다.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라는 잡스의 예상대로 아이팟은 2003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79만 대가 팔렸고, 이듬해 1~3월기에는 80만 대, 이어서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450만 대가 판매되었다. 수익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고, 주가가 상승해 주주들도 만족했다. 이만큼 성공을 거두었으면 누구나 안도하기 마련이지만 잡스는 이렇게 일갈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미 최고의 성공을 거두지 않았는가? 여기에서 실패라도 한다면 잃는 것도 많으니 이제는 안전 운행을 하자'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함정이다. 우리는 더 대담하게 도전을 계속해야 한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세계 규모의 기업들이므로 현재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런 후 가장 성공한 제품인 아이팟 미니를 단종시키고 더 뛰어난 제품을 만든다는 경악할 만한 구상을 발표했다. 현재 잘 팔리는 제품을 단종시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자신을 몰아넣기 위해서였다. 잘 팔리는 제품을 단종시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더 우수한 제품을 개발해야 한다. 성공이 계속되면서 마음이 느슨해지기 시작한 애플에 커다란 꿈을 주는 잡스만의 방식이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후계 기종인 아이팟 나노의 설계도를 본 사람들은 모두 "이건 도저히 무리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잡스는 그 벽을 뛰어넘게 했다. 생산 계획도 제시된 숫자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을 선택했다. 과거의 사분기 최고 판매 대수는 450만 대였는데, 잡스는 그 3배가 넘는 1천500만 대를 발주했다. 실제로 2005년 10월 사분기에 애플은 아이팟을 1천500만 대를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과거의 꿈은 잊어버리고 더 놀라운 성과를 거둔 것이다. 잡스는 월트 디즈니의 "우리의 진가는 다음 작품에서 결정된다"라는 말을 좋아했다.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다음 모퉁이를 돌면 그곳에는 놀라운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며 계속 걸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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