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크 없이 문을 열고 예의 바르게 인사하라
유재화 지음 | 책이있는마을
유재화 지음
책이있는마을 / 2011년 9월 / 224쪽 / 12,000원
1장 한 걸음 더 가까이배려하고 이해하라
어느 목요일, 20대 직장여성 인경 씨는 퇴근 후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지하철에 올랐다. 자신의 승용차는 정비소에 들어갔기 때문에 당분간 지하철을 이용해야 했다. 그녀는 취미활동으로 시작한 밸리댄스를 배우기 위해 강남으로 향했다. 얼마쯤 갔을까,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인파를 헤치고 들어오더니 그녀 앞의 빈자리에 잽싸게 몸을 던졌다. 그리고는 승리감에 도취한 듯 팔짱을 끼고 다리를 쫙 벌린 채 그녀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사람들 사이를 거침없이 헤치고 들어온 것도 모자라 꼴사나운 자세로 만족스런 미소를 띠는 남자가 그녀로서는 참을 수 없이 혐오스러웠다.
'아, 재수없어. 키는 난쟁이 똥자루만 한 게 동작은 엄청 빠르네. 저런 인간 보기 싫어서라도 차를 몰고 다녀야지…….' 속으로 이렇게 곱씹으며 그녀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얼마 후, 무심히 시선을 흘리던 그녀는 그 '쩍벌남'의 옆에 앉은 승객들이 불편해하는 것을 알아차렸다. 안 그래도 심사가 뒤틀린 판에 그런 광경까지 지켜보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었다. 참다못한 그녀가 결국 입을 열었다. "저기요, 아저씨. 그 다리 좀 붙이고 앉으세요. 옆 사람들이 불편해하잖아요. 여기가 아저씨 안방이에요, 룸살롱이에요?" 젊은 아가씨로부터 느닷없는 설교를 들은 남자는 얼굴이 벌개지더니 거칠게 대꾸했다. "뭐야, 니가 뭔데 남의 다리를 붙여라 마라 참견이야? 그러는 넌 여기 전세 냈냐? 미친 X,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리고는 그녀의 발 앞에 침을 퉤 뱉었다.
그녀는 격앙된 목소리로 다시 쏘아붙였다. "뭐 이런 거지같은 경우가 다 있어? 지하철 이용할 때는 어떻게 하라고 저기 붙여놓은 것도 안 보이세요? 옆에 앉은 사람이 그 쩍 벌린 다리 때문에 불편해하니까 자세 좀 바꿔달라는데 누가 누구한테 지랄이래?" 그녀는 주위 사람들을 돌아보았으나 서로 눈치만 볼 뿐 그들의 말다툼에 끼어들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는 더욱 기고만장해져서 언성을 높였다. "넌 애비 에미도 없냐? 얌전히 있는 사람한테 어디서 설교야?"
"말 똑바로 하세요. 얌전히 있었다고요? 그렇게 자기 생각만 하고 다른 사람들 생각은 하지 않는 댁 같은 사람들 때문에 공공질서가 엉망이 되는 거라고요. 몰라서 그랬다면 실수를 인정하고 알려주는 사람한테 고마워해야지 어디서 적반하장이야, 무식하게!" 다음 순간, 남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그녀의 멱살을 잡고 흔들기 시작했다. "뭐야, 이런 후레자식 같으니라고! 정말 죽고 싶어?" 놀란 승객들이 비명을 지르자 열차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때마침 지하철의 출입문이 열리자 사내는 여자의 멱살을 그러쥔 채 밖으로 끌고 나가며 소리쳤다. "너 잘 걸렸다! 오늘 내 손에 한번 죽어봐!" 힘으로는 당할 수 없었던 그녀는 그의 우악스런 손에 끌려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날, 그녀는 과연 밸리댄스 학원에 갈 수 있었을까?
두 사람의 충돌은 '소통' 방법의 오류에서 비롯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긴 했으나 일방적일 뿐 진정한 의미의 소통에 이르지는 못한 것이다. 의사소통의 기본은 '내 말을 듣는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와 예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것이 없으면 한마디로, 소통은 불가능하다! 인경 씨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상대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감정만을 묵직하게 실어서 거침없는 말의 펀치를 날렸다. 아무리 잘못이 크더라도 그 펀치의 상대로 지목당한 입장에서는 모욕감을 느낄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한 상태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정적으로 대응하게 마련이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감정만이 중요하게 작용할 때, 말은 소통의 도구가 아닌 끔찍한 폭력의 도구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소통이란 이처럼 사소한 말 몇 마디를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그녀가 남자를 이해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예의만 갖추었더라면 상황이 그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실례지만, 옆에 앉으신 분들이 좀 불편하실 것 같은데 다리를 조금만 좁혀주시면 안 될까요?" 만약 이렇게 입을 열었더라면 상대방 역시 분명히 다른 태도를 보이지 않았을까. "아, 그래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자존심을 건드리지도 않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준 것도 아닐뿐더러 실례한다고까지 먼저 말하는데 거기다 대고 욕부터 쏟아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타인과의 소통을 원한다면 우선 그의 입장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라. 그런 다음 본론으로 들어간다면 상대방은 당신의 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가짐과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지 않은 말하기는 이미 진정한 소통과는 거리가 먼 것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2장 네 마음을 보여줘마음을 훔쳐라
한창 물오른 연애를 하고 있는 두 남녀가 있었다. 그들은 한시라도 떨어지기 아쉬운 마음을 안고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퇴근 후에 날마다 데이트를 하는 것은 물론 떨어져 있는 동안에도 수시로 전화를 하거나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다. 두 사람은 세상에 둘밖에 없는 것처럼 행복했고 그들의 사랑은 영원불변할 것만 같았다. 여자는 수시로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날렸다. 처음엔 남자도 여자의 궁금증에 성실하게 답변해 주었다. "응, 갈비탕 먹었어. 자기도 맛나게 먹었어?" "서류뭉치에 가득한 글씨 하나하나마다 자기 얼굴이 보일 정도로 생각하지."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남자는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날아오는 여자의 문자메시지가 늘 반갑지만은 않았다. '이따가 만날 텐데 왜 자꾸 문자질이야' 하는 생각도, 바쁠 때는 한 번씩 들기 시작했다. 어느덧 남자는 여자의 무수한 메시지에 무덤덤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자 여자 쪽에서는 서로의 애정에 문제가 생겼다고 여기기 시작한다. 몇 번인가 남자에게 문자메시지를 '씹히는' 충격을 견디다 못한 여자가 어느 날 따지고 들었다. "자기 왜 그래? 처음에는 내가 문자 보낼 때마다 열심히 답장하더니 요샌 왜 그래?" 남자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뭐 만날 똑같은 소리니까 그렇지. 밥 먹었냐 안 먹었냐, 내 생각하냐 안 하냐……. 그걸 꼭 물어봐야 알아? 꼭 대답을 해야 아냐고?"
"꼭 대답을 들으려고 하는 건 아니야. 그래도 몇 번에 한 번은 제대로 답을 해줘야지. 내가 자기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왜 몰라?" 별것도 아닌 일로 여자가 억지를 쓴다고 생각한 남자는 답답한 듯 말했다. "모르긴 뭘 몰라, 알지. 아는 걸 왜 자꾸 물어보냐 이거지. 정작 자기 때문에 중요한 메시지를 못받으면 어떡할거야? 넌 꼭 할 말이 있어서 하는 게 아니잖아?" "뭐라고? 내가 보내는 문자는 중요하지 않다 이거야? 기가 막혀! 어떻게 사람 마음을 그렇게 몰라 줄 수가 있어?" 화가 난 여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러나 남자는 자신이 뭘 그렇게 잘못했는지 알 수 없다.여자는 사소하고 반복적으로 보이는 메시지라도 날마다 자신의 마음을 담아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굳이 성실한 답변이 아니어도 그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표현을 바랐다. 그러나 남자는 반복되는 메시지에서 더 이상 특별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으므로 중요도를 낮게 두기 시작한 것뿐이다. 물론 남자와 여자가 일부러 의도적으로 각자 구분을 지어 인식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태생적으로 남자가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측면이 강한 반면 여자는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감정에 가치를 두는, 서로 다른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음에 기인하는 것뿐이다. 그런 차이로 인해 같은 메시지를 다르게 해석한다 해서 어느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차이를 넘어 남녀가 진정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각자 서로의 특성을 좀 더 이해하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노력이 필요하다.
서로 인식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적당히 서로의 관점에서 조율할 수 있고, 두 사람은 충분히 다시 소통하게 될 것이다. 단순히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요, 잠깐 마음이 통했다고 해서 완전한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도 없다. 당신도 자신과 다른 상대방의 특성까지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진정성이 전달될 때 비로소 그의 마음을 훔치는 궁극적인 소통에 이르게 될 것이다.
받은 것만 기억하라
장애인 봉사단체에서 만나 알게 된 금자 씨와 영미 씨는 3년째 가깝게 사귀는 친구다. 그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 근교의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였다. 하루 3~4시간의 봉사활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는 가끔 경치 좋은 카페나 음식점에서 휴식을 취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금자 씨는 승용차 트렁크에서 바리바리 싼 물건들을 영미 씨에게 나눠주는 것이다.
"이번에 우리 밭에서 고구마를 좀 캤잖아. 혼자 먹기는 너무 많으니까 당연히 나눠 먹어야지. 그리고 이건 산나물인데 시골 사시는 이모님이 동네 뒷산에서 봄에 캐서 말렸다가 보내주셨더라. 이것도 가져가, 한두 번씩은 해 먹을 만한 거야." 금자 씨가 꺼내온 보자기를 풀며 이렇게 설명하자 영미 씨는 고마워하며 말했다. "어머나, 세상에. 이걸 자기네 텃밭에서 캤다고? 완전 무공해잖아! 너무 고마워. 허구한 날 이렇게 얻어먹기만 해서 어떡하니?" 금자 씨는 제 집 텃밭에서 나는 채소는 물론 그냥 장을 보러 갔다가도 좋은 게 있으면 많이 사다가 여기저기 친구들에게 나눠주곤 했다. 그녀는 그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뭘 어떡해? 얻어먹기는 뭘 얼마나 얻어먹었게. 먹는 사람이 좋아하는 거 보면 더 주고 싶어. 오늘 커피값도 내가 낼게."
그 다음에도 만날 때마다 금자 씨는 건빵 한 봉지라도 나눠주곤 했으며 빈손으로 오는 날이 없었다. 그때마다 영미 씨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며 받아들곤 했다. "고마워. 난 줄 것도 없는데. 이 책 요새 읽는 중인데 참 좋더라. 너도 읽어봐, 선물이야." 금자씨가 열 번 정도 이것저것 나눠주는 데 비해 영미 씨가 가끔 읽던 책이 감동적이라며 주는 것은 한두 번에 불과했다. 그래서 영미 씨도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어느 날 금자 씨는 자신의 생일을 맞아 영미 씨와 점심식사를 같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실 때까지도 영미 씨는 선물은커녕 아무것도 건네지 않았다. 금자 씨는 어느 순간부턴가 조금씩 기분이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좀 서운하다. 친구 생일이라는데 아무것도 안 주나? 내가 그동안 자기한테 퍼준 것이 얼만데. 돌려받자고 준 건 아니지만 대단하다. 아냐, 내가 주고 싶어서 줘놓고 왜 이러지. 그래, 그냥 밥 한번 샀다고 생각하자!' 일부러 생일선물 받자고 점심을 산 건 아니지만 왠지 서운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금자 씨는 내색하지 않았다.
어느덧 점심 식사와 수다 시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밖으로 나오며 영미 씨가 말했다. "오늘 점심 정말 잘 먹었어. 생일 정말 축하해. 조심해서 잘 가." 그러면서 그냥 돌아가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금자 씨는 그렇게까지 무심하고 개념 없는 친구에 대해 온갖 생각을 다하게 되었다. '정말 아무것도 안 챙겨 온 거였어? 친구 생일인데. 이게 뭐야? 왜 자꾸 본전 생각이 나는 거지? 그러면 안 되는데. 사실 쟤가 뭘 달라고 한 적은 없잖아, 내가 좋아서 준 거지. 그래도 왠지 기분이 좀 그러네. 생일인데.' 금자 씨는 어떻게 왔는지 생각도 안 날 만큼 복잡한 심정으로 아파트에 도착했다. 그때 경비 아저씨가 소포가 왔다고 알려주었다. 그것은 귀한 상황버섯 두 세트였다. 바로, 영미 씨가 보낸 생일 선물이었다.
누군가에게 준 것을 일일이 기억하다 보면 나는 어느새 빚쟁이가 되고 만다. 그러니 내가 이만큼 주었으니 상대방도 기억해 주겠지,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돈을 빌려주고 이자놀이를 하는 게 아니라면, 내 마음이 움직여서 함께 나누고 싶어서 준 것을 하나하나 기억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준 것을 기억하고 몇 가지가 되돌아왔는지 따지기 시작하는 순간, 당신은 상대방과 진정한 교류, 즉 소통이 아닌 단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주어도 주어도 더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은 상대방과의 무한한 소통을 원하는 감정의 다른 표현이다. 인사를 주고받고, 나아가 대화를 주고받으며 교류하다 보면 내가 가진 것도 기꺼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그러한 자연스런 소통의 감정을 이기심으로 오염시키지 말라.
상대방이 받기만 하고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서운할 필요도 없다. 번번이 당신의 가진 것을 나누어 받는 상대 역시 당신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은 것으로 보답하지 않는다고 조바심내지 말라. 어쩌면 정말 중요한 순간에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되어 줄지 누가 알겠는가.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고 나눠주는 행복한 일에 있어 대가를 기대하거나, 준 것만 기억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말라. 무조건 상대에게서 받은 것만 기억하라. 그것이 참으로 마음을 나누는 행복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3장 세대를 뛰어넘어 소통하라말이 통하면 마음은 저절로 통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결혼이주 여성은 몇 명이나 될까. 2010년 3월에 집계된 결혼이주 여성의 통계를 보면 대략 12만 명에 이르며 베트남, 중국, 한국계 중국 여성이 그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결혼을 통해 우리나라로 이주해오는 여성들의 생활방식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대부분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만남에서 결혼까지 매우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짐으로써 남녀 모두 숙고 과정이 충분하지 않다. 사전 준비도 없이 치러진 절차에 의해 이주해온 여성들은 급격한 문화적 혼란은 물론 의사소통에도 매우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결혼중개업소를 통해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이주해온 D씨는 시부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 한국으로 와 첫날밤이 지난 다음날 아침, 남편이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는 동안 아내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었다. 남편은 그녀에게 뭐라고 묻는 듯하더니 이내 출근을 해버렸다. 남편이 나간 뒤, 시부모가 그녀를 불러 앉혀놓고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남편이 출근하는데 일찍 일어나서 아침밥을 챙겨줘야지. 멀뚱하니 앉아서 뭐하는 짓이냐?" 그 말뜻을 이해한 것도 한참 후의 일이지만 그녀에게 아침 일찍 일어나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알려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 문제다. 그녀가 살던 베트남에서는 대부분 집에서 밥을 먹지 않았다. 기후가 후텁지근하다 보니 아침부터 좁은 집 안에서 불을 켜고 조리하는 것이 쉽지 않아 아침은 밖에서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인 식생활 문화였기 때문이다. 더욱이 맞벌이라도 하는 경우라면 하루 세끼를 모두 외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우리말도 거의 못하는 그녀는 이런 베트남의 식문화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고 황당할 뿐이었다.
우리와 다른 생활환경과 문화, 언어를 사용하는 나라에서 왔음을 이해하고 그녀에게 어떻게 하면 우리의 생활방식과 언어 등을 이해시키고 원만하게 소통을 이룰까를 고민한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작은 오해와 갈등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아무도 미처 깨닫지 못했다.
반면, 그러한 기본적인 차이에도 불구하고 부단한 노력을 통해 안정적으로 잘 적응하여 사는 이주 여성들도 많다. 그들이 좀 더 특별해서가 아니다. 적어도 결혼 당사자들 간에 최소한의 이해와 배려를 바탕으로 서로를 알기 위해 매우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런 가정의 경우는, 남편이 아내에게 한국말을 배우도록 적극 지원하고 독려하며 그 역시 아내의 언어와 문화를 알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신뢰와 애정을 키워간다. 한 마디를 나누더라도 의미를 분명히 소통함으로써 이주해온 아내가 자신감을 갖고 생활하는 데 큰 힘이 되어준다. 이 모든 것이 소통의 힘이다. 상대방의 말을 알고 생각이 통하면 이해의 정도도 넓어지게 되어 도전하지 못할 영역이 없어진다. 이를테면, 몽골 출신의 한 결혼이주 여성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의원 비례대표로 당선되어 첫 번째 다문화 정치인이 됐을 뿐 아니라 경찰관으로 일하는 필리핀 출신 이주 여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