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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게 성공하기

김희정 지음 | 럭스미디어


느리게 성공하기

김희정 지음

럭스미디어 / 2011년 4월 / 256쪽 / 13,000원



part1 천천히




꿈을 향해 천천히 전진하다_ 핸드폰 판매원에서 스타로, 폴 포츠

2007년 2월, 한 남자가 인터넷 창을 열어두고 모니터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엔터(enter) 키를 누를 듯하다가 다시 깊은 한숨을 쉬기를 몇 시간째. 그가 보고 있는 화면은 평범한 사람들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쇼 프로그램 '브리튼즈 갓 탤런트'의 온라인 응모 원서 창이었다. 그는 자신의 노래 솜씨를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싶었다. 어릴 적부터 오페라 가수를 꿈꿔왔고, 20여 년 동안 한 번도 그 꿈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망설였다. 못생긴 얼굴, 어눌한 말투 때문에 자신감이 부족했던 그에게 TV 출연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게다가 심사위원은 독설가로 유명한 사이먼 코웰이 아닌가! 자신에게 어떤 비난과 야유가 쏟아질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의 외모 때문에 실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웃음거리가 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마음 한곁에서는 "이번이 마지막 기회야." "넌 할 수 있어."라는 의지가 솟구치고 있었다. 운명에 맡기자는 심정으로 그는 '동전 던지기'로 응모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다. 앞면이 나오면 도전을 하고, 뒷면이 나오면 포기한다는 것. 운명의 동전은 던져졌고, 결과는 앞면이 나왔다. 그도 내심 앞면이 나오길 바랐지만 누구보다 아내 줄리앤이 기뻐했다. "당신은 꼭 해낼 거예요. 당신이 가진 재능을 보여주기만 하면 되요. 당신의 노래는 세계 최고예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그는 마음을 다잡았고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를 향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의 이름은 폴 포츠. '브리튼즈 갓 탤런트'의 가슴 뭉클한 우승 장면은 무려 1350만의 영국 시청자들이 지켜봤으며 7천만 건이 넘는 유튜브 조회 수를 기록했다. 데뷔 앨범 〈원 찬스(One Chance)〉는 15개국 앨범 차트에서 정상을 차지하며 세계적으로 400만장이 넘게 팔렸고, 20억 원 이상의 수입을 올렸다. 덕분에 콤플렉스였던 삐뚤어진 치아도 교정했다. 이 모든 것이 불과 두 세 달 만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벼락스타가 되었다. 그가 쇼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못생기고 뚱뚱한 몸에 긴장감까지 역력한 얼굴로 과연 노래를 제대로 부를 수 있을까 우려했는데 말이다. 그가 어릴 적 받았던 따돌림, 교통사고, 종양과 가난 속에서 꿈을 잃지 않고 지금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결국 대회의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데뷔이자 로또보다 더 짜릿한 인생 역전의 스토리였다.

물론 그의 성공을 두고 많은 말들이 있었다. 혹자는 그의 노래가 썩 훌륭한 솜씨는 아니라며 폄하하기도 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폴 포츠 중 누가 더 노래를 잘 하냐는 질문이 올라오기도 했고, 폴 포츠가 유명해졌기는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비교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서 부른 푸치니의 오페라 '공주는 잠 못 이루고'는 파바로티 못지않은 깊은 감동을 줬다는 데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지 않을까? 그만큼 그의 노래엔 영혼이 담긴 깊은 울림이 있었다. 서른 여섯이라는 늦은 나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기회를 향해 온힘을 다해 노래 부르는 그의 진심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도전하지 않으면 꿈이 아니라 상상일 뿐이다: 어릴 적부터 성가대와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인정받은 터라 노래에는 웬만큼 자신이 있었고, 노래 부를 때 자신의 목소리는 썩 괜찮게 들리곤 했다. "나도 잘할 수 있는 게 있구나." 소심한 소년은 노래를 부를 때만은 자신감을 얻었고 가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 후 오페라 가수의 CD를 들으며 독학으로 오페라 공부를 해왔던 그가 처음 인정을 받은 것은 1999년 iTV의 코미디언 마이클 베리모어의 노래 경연 프로그램인 '마이 키워드 오브 뮤직'에 출연해 8,000파운드(한화 약 1,500만 원)의 상금을 받으면서부터였다.

용기를 얻은 그는 오페라 가수가 되기 위해 음반 회사들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 때마다 사람들은 그를 차갑게 무시했다. 상처받은 폴 포츠는 밤낮없이 일해 모은 돈과 상금을 가지고 이탈리아의 오페라 스쿨에 등록했고 거기서 자신의 우상인 파바로티로부터 재능을 인정받게 된다. 하지만 그에게 다시 불운이 겹쳤다. 2003년 충수염(맹장염)으로 입원했다가 양성 종양이 발견돼 오랜 시간 병원 신세를 져야했다. 게다가 같은 해 자전거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를 당해 쇄골뼈가 부러지는 증상을 입고 2년간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쇄골뼈 골절로 성대를 다쳐 '다시는 노래를 부를 수 없을지 모른다'라는 진단을 받기도 했다. 게다가 3만 파운드(한화 약 5,500만 원)의 빚까지 진 상태였다.

그러나 폴 포츠는 체념하지 않았다. 모든 불행은 잊고 새로 시작하기로 마음 먹은 것이다. 휴대전화 판매원으로 일하며 합창단원으로 활동하는 등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여러 번의 좌절을 겪으며 가수로의 길이 너무 멀게 느껴졌어요. 특히 사고로 쇄골뼈가 부러져 노래를 못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는 하루 하루가 고통이었죠. 하지만 '현실이고 꿈은 꿈이다'라는 생각으로 계속 꿈을 쫓았지요!" 그는 오랜 망설임 끝에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 원서를 넣었고 결국 수많은 시청자 앞에서 노래를 하기에 이른다. 30대 중반의 나이,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의 무대에 섰고 영혼을 담은 목소리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그래서 결국 성공을 거머쥐었다.

꿈은 현재 진행형이어야 한다: 명실상부 세계에서 가장 유명세를 치렀던 데뷔 이후 이제 몇 년이 지났다. 최근 2집 〈파시오네(Passione)〉를 발표했고 높은 완성도로 1집 못지 않은 인기와 판매고를 올렸다. 벼락스타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데뷔 후 꾸준한 연습과 노력으로 자신의 노래 실력을 업그레이드시켜 돌아왔다. 팬들을 위한 무료 공연, 수익금 기부 등 자신이 대중에게 받은 사랑을 돌려주는 데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음악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언제나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어떻게 기회를 얻었고 테너 가수가 됐는지도 잊어서는 안 되죠. 사람들은 기다리기보다 내가 찾아가서 노래를 선사하고 싶었어요. 노래가 내게 희망을 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고 희망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폴 포츠(1970년~): 2007년 영국 TV의 '브리튼즈 갓 탤런트'에 출연. 공주는 잠 못 이루고'와 '타임 투 세이 굿 바이를 불러 최종 우승을 거머쥐었다. 감동적인 성공 스토리와 영혼을 울리는 목소리로 그가 노래하는 모습은 유투브 사상 최대 조회수를 기록했다. 대회 두 달 뒤에는 1집 앨범 〈원 찬스(One Chance)〉를 발표하여 사랑을 받았고 2009년 2집 〈열정〉으로 세계를 투어하며 많은 이들에게 당신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최소한 12년은 참고 기다려야 하지만_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타샤 튜더

타샤 튜더는 100권이 넘는 동화책을 발표했고, 칼데콧 상을 두 차례나 수상했지만 동화작가보다 정원을 꾸미며 18세기풍으로 사는 독특한 라이프 스타일로 더 유명하다. 버몬트 주 산골에 옷이며 양초, 바구니, 인형, 비누 등 생활에 필요한 것은 뭐든지 자급자족을 했던 그녀의 삶은 청교도적으로 오해 받지만 그저 대책 없는 낙천주의자였다. 그 성격의 결정체가 바로 그녀가 손수 가꾼 정원이다.

"전부터 내가 살고 싶었던 곳은 사계절이 뚜렷한 버몬트 지방이었지요. 마음 먹은 일은 반드시 하는 고집 덕분에 꿈이 마침내 실현되었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요." 1971년 타샤는 평생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재산을 탈탈 털어 정원을 가꿀 땅을 구입한다. 무려 30만 평 한가운데 집을 짓고 집 주위에 정원을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대체 돈이 얼마나 많길래 정원을 30만 평이나 가꾼다는 거지?" 사람들은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원 가꾸기는 부유층의 고상한 취미 생활처럼 여겨졌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타샤는 달랐다. 그녀는 오래 전부터 1800년대의 삶을 동경하고 있었다.

그녀는 9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아버지의 친구 집에 맡겨졌다가 기숙학교, 보스턴, 뉴욕, 코네티컷, 버뮤다를 오가는 불안정한 생활을 했다. 그래서 그녀는 줄곧 가족들과 시골 마을에서 정원을 가꾸던 18세기 사람들처럼 아기자기하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과 이혼 후 네 명의 아이를 홀로 키우며 사느라 꿈은 잠시 유보되었지만 아이들도 장성해 독립했고 마침 그림책 『코기빌마을 축제』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그토록 염원하던 버몬트 주로 이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꽃과 동물, 아이들: 땅은 넓었지만 잡목이 무성해서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풀들과 잡목이 가득한 거친 초지를 일구고, 나무와 꽃을 심어 제대로 된 풍경이 나올 때까지는 적어도 십 수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미 그녀에겐 27년간 가꿔왔던 뉴햄프셔의 정원이 있었다. 뉴햄프셔 집은 그녀의 많은 추억이 서린 곳이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낡은 농가를 남편과 함께 개조했고 이곳에서 네 명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또 자신의 행복한 장면을 놓치지 않고 동화의 소재로 삼아 꾸준히 그림책을 펴냈고,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린 곳도 그곳이었다. 뉴햄프셔를 떠나 뭔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라며 다를 말렸지만 그녀는 굽히지 않았다. 그녀는 너무 버몬트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느 식물학 교수의 훌륭한 정원을 가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던 적이 있었어요. 만들어진 지 20년이 된 정원이라고 하더군요. 나 또한 식물이 풍성하게 자라나 아름다운 꽃을 즐길 수 있기까지는 몇 년이고 어려움을 참고 견뎌야 할 것이라고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죠. 그럼요. 정원은 하룻밤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최소한 12년은 참고 기다려야 하지만 정원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기 때문에 힘들다는 생각은 조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이미 그녀는 네 아이를 키우며 막내가 다섯 살 때까지 전기도 수도도 없는 집에서 생활한 경력이 있었다. 이혼 후 홀로 아이들을 돌보며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아이들이 잠든 밤이면 날을 새워 그림을 그리는 생활도 했다. 그것에 비하면 아이들이 장성한 지금은 얼마나 홀가분한 상태인가. 그녀는 예순을 앞둔 나이에도 광대한 대지가 두렵지 않았다. 힘닿는 대로 천천히 일구면 되는 일이었고, 힘들면 쉬다가 하면 되었다. 그녀의 고집과 대책 없는 낙천성에 가족은 그녀의 결정을 인정했고, 버몬트의 산골에서 타샤는 정원을 가꾸기 시작했다.

봄에 피는 물망초, 튤립, 돌능금을 필두로 작약, 장미, 붓꽃, 제비꽃, 라일락이 늦가을까지 눈이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게 펼쳐지는 풍경은 그녀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녀는 눈 녹는 4월부터 찬 서리 내리는 10월까지 꽃과 나무들을 가꿨고, 능금과 블루베리를 재배해 허브차와 함께 가족과 이웃에게 대접했다. 장작을 때어 빵과 쿠키를 굽고 틈틈이 손자들에게 선물로 줄 스웨터나 목도릴 짰다. 긴 겨울이 오면 옅은 햇살이 내리쬐는 부엌 창가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지난 70여 년 동안 그녀의 작품 주제는 한결같았다. 꽃과 동물, 아이들……. 그녀의 책은 그녀의 삶 자체였다. 오랜 시간 가꾸고 꾸며낸 정원 속에서 보고 느낀 그대로를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고, 많은 사랑을 받았다.

꿈은 나무와 같아서 시간이 필요하다: 나무가 작은 씨앗을 품고, 씨앗이 자라나 뿌리를 깊게 뻗고 마침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까지는 적어도 수년의 시간이 걸린다. 따뜻한 햇살과 솜털 같은 바람만 있는 것도 아니다. 천둥, 번개, 비바람이 치는 고통의 시간도 있기 마련이다. 56세, 무엇인가 시작하기에 결코 이른 나이라고 할 수 없는 때에 시작한 정원 가꾸기. 하지만 그녀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꿈은 나무와 같아서 이루는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과 때론 부드러운 햇살뿐만 아니라 비바람도 필요하다는 것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 있게 꿈을 향해 나아가고 상상해온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이라면 일상 속에서 예상치 못한 성공을 만날 것이다." 타샤 튜더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말을 신조로 여기며 꿈을 위한 쉼 없는 발걸음을 걸어왔다. 전기도 수도도 나오지 않는 산골에서 고풍스런 의상과 앞치마, 머릿수건을 걸친 42kg의 그녀가 맨발로 농가와 헛간을 드나들면서 정원을 꾸며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어느 해에는 다람쥐가 꽃의 구근을 다 갉아먹어 꽃 농사를 망친 적도 있고, 또 병충해가 나서 꽃들이 타들어 갔을 때도 있었다. 구근을 넉넉히 사고 농작물들을 돌보는 데는 돈이 필요했고 그것 때문에 그림 그리는 것을 즐기지 못하고 바쁘게 그려내야 한 적도 많았다.

"나는 정원을 어떻게 꾸밀지 확고한 계획을 가지고 있었어요.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확실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이기 때문이죠. 내가 바라지 않는 것을 확실하게 아는 사람도 바로 나고요." 시행착오를 거치며 어떤 꽃과 어떤 나무가 어울리는지, 어떻게 하면 꽃이 피는 시기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지 천천히 알아갔고 그녀는 어느덧 아흔이 넘은 노인이 되었다. 그녀는 그렇게 꽃과 나무들에게 사랑을 쏟았고 그 보답으로 아찔할 정도로 고운 풍경과 행복한 일상을 누리며 살다 94세를 일기로 자신이 가꾼 정원에 묻혔다.

타샤 튜터(1915~2008년): 그림책 작가이며, 삽화가, 뛰어난 원예가. 미국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그림에 재능을 보였다. 스물세 살에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뉴햄프셔의 한적한 시골에서 농장을 돌보고 그림을 그리며 자녀를 키웠다. 아이들이 독립한 후 1971년 버몬트로 이주하여 정원을 가꾸고 동화책의 삽화를 그리는 삶을 지내오다 2008년에 생을 마감했다.

멈추지 않고 계속된 꿈_ 사막에 숲을 이루다, 인위쩐

언제부턴가 마냥 사랑스러웠던 봄의 향연에 제동을 거는 불청객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하늘을 희뿌연 먼지로 덮고, 그것도 모자라 세찬 바람을 동반하여 온몸은 물론 입 안까지도 모래로 까끌거리게 만드는 봄의 불청객 황사. 솜사탕 같던 봄날을 즐기다가도 황사 경계 경보가 발령되면 사람들은 외출을 자제하고, 이 끔찍한 공습이 지나가기만 기다린다. 진원지인 중국에서 수만 킬로미터가 떨어진 우리나라가 이럴진데, 황사의 진원지라는 중국 네이멍구 자치주 마오우쑤 사막은 오죽할까? 봄뿐 아니라 365일 시커먼 모래 먼지가 시도 때도 없이 하늘을 뒤덮고 세상의 풍경을 바꿔놓는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자라지 않는 척박한 땅. 과연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의심스러운 마오우쑤 사막의 외딴 마을. 이곳에 어느 날 갑자기 내동댕이쳐진 여인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인위쩐. 그녀가 그곳에 가게 된 것은 자발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정해준 생면부지의 배필과 결혼하면서 그녀의 삶은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사막의 모래사장 한가운데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다. 그녀가 스물두 살이 되던 1985년의 일이었다. 그녀가 맞닥뜨린 현실은 비참했다. 언젠가 도시로 나가 공부하고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꿈이 있었던 그녀였다. 달아나고도 싶었다. 하지만 사방 어디를 봐도 모래사장뿐 바깥 세상으로 통하는 길은 없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이웃조차 없었다. 마을엔 오직 그녀와 남편이라는 낯선 남자뿐이었다.

결혼 후 일주일 내내 울기만 했던 그녀가 처음 남편에게 말을 건냈다. "이곳에 꽃을 심으면 안 될까요?" "꽃이요?" "그래요. 꽃과 나무가 자라면 여기도 사람 사는 곳 같지 않을까요?” 자신마저 떠나면 이 황량한 사막에 홀로 버려질 남편에 대한 연민을 느껴서 열심히 살아보기로 결심한 것이었다. "그래 달아날 수 없다면 차라리 이곳을 살 만한 곳으로 만들자. 모래를 파먹고 살 수는 없잖아!" 그녀에게 새로운 꿈과 희망이 생겼던 것이다. 인위쩐과 그의 남편 바이완샹은 묘목 서른 그루를 아무것도 없는 모래사막에 심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웅덩이를 판 후 그곳에 찔끔찔끔 고이는 빗물을 몇 번씩 실어 나르는 수고로움도 마다하지 않았다. 임업이나 원예학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지만 물을 주고 바람을 막아주고 정성을 들이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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