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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에서 마크 저커버그까지

김욱 지음 | 더숲


탈무드에서 마크 저커버그까지

김욱 지음

더숲 / 2011년 6월 / 320쪽 / 14,900원



1장 유태인은 돈을 어떻게 벌었는가?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

성경에 기록된 역사를 더듬어보면 유태인이 처음부터 비즈니스맨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아라비아 반도를 떠도는 소수 유목민에 불과했다. 그 후 가나안 지역(오늘날 팔레스타인)에 정착하여 농경사회를 일구었다. 당시 유태인보다 앞서 가나안에 정착한 민족들은 대부분 사막을 가로지르는 대상(隊商)이었다. 즉 가나안에 정착할 때까지만 해도 유태인은 아직 비즈니스 세계에 뛰어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역사의 우연은 유태인을 이스라엘에서 추방하기로 결정했고, 유태인은 토지를 잃은 채 세계 각지에 흩어지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토지를 소유할 수 없는 상황에서 살 길은 오직 장사밖에 없었다. 말하자면 역사가 유태인에게 비즈니스를 강요한 셈이다.

다행히 유태인은 비즈니스에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이 같은 능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전통적인 교양과 지식을 발판 삼아 길러진 후천적인 것이었다. 유태인은 방랑생활 중에도 유태교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수준이 높고, 읽기와 쓰기 및 계산에 능했다. 게다가 사물을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뛰어나 남들이 놓치는 부분까지 정확하게 파악했다. 이러한 기초 지식은 비즈니스 분야에서도 절실하게 필요한 능력이다. 이러한 재능 외에도 유태인은 세계 각지에 흩어진 동족과의 강한 연대의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국경을 초월하여 서로 결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와 독일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에도 유태인들은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긴밀한 교역을 유지했다. 이 같은 국제적인 네트워크는 유태인이 살아남고 발전하기 위한 경제적 기반으로서 매우 유용했다.

중세 유럽에서 유태인이 일할 수 있는 곳은 오직 게토(유태인 거주지역)뿐이었다. 몇 백 년 동안 살아온 땅에서도 유태인은 언제나 ‘외국인’으로 취급받았다. 중세의 경제는 ‘길드(동업자조합)’에 지배되고 있었고, 유태인의 참여를 법적으로 금하고 있었다. 유태인에 대한 각국의 규제가 엄격하여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중세 전기, 경제활동이 아직 발달하지 못한 지역의 봉건영주들은 자신들에게 부족한 교양과 비즈니스 안목을 갖춘 유태인을 중요한 경제수단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십자군이 등장하기 전까지 유럽은 유태인을 중심으로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같은 타민족에 의해 통상교역이 이루어졌다. 특히 중부 유럽의 봉건영주들은 경리와 무역에 관계된 모든 업무를 유태인에게 의존했다. 중부 유럽의 왕후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역은 유태인과 유태인의 교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유럽의 경제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번창했으며, 지중해에서 멀리 떨어진 독일이나 폴란드 같은 나라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외국 상인들에게 자국 경제를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유태인의 활약은 이 지역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유태인을 제외한 거의 모든 외국 상인들은 이들 유럽 국가에 동화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태인은 자신들의 신앙과 사회를 버리지 않았고, 그 결과 상당한 공적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이방인’으로 낙인찍혔다. 이 같은 사회적 불평등에서 벗어나기 위해 유태인은 자금을 축적하여 마침내 경제적 독립을 쟁취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이것이 봉건영주와 토착민들의 반발을 사는 원인이 되었다. 그들은 재능이 뛰어난 유태인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을 우려했으며, 유태인은 특정 분야에서만 상업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법률을 제정하기도 했다.

18세기 영국에서 시작되어 19세기 중반에 전 유럽으로 확산된 산업혁명의 회오리는 유태인에게 사회적 해방과 상업적 활동을 제공하는 기회로 작용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자 산업 활동이 비약적으로 증대되면서 금융과 은행업도 급속하게 신장했다. 중부 유럽의 대표적 금융기관인 도이치 뱅크, 드레스덴 은행 등은 모두 유태인 소유였다. 산업혁명을 기회로 유태계 은행이 이토록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유럽의 전통적인 은행들이 투기에 뛰어들었다가 쇠퇴한 것도 한 원인이었다. 유태인은 산업혁명의 미래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내다보고 있었다. 지금껏 생존의 기회로부터 철저하게 격리되어왔던 유태인에게 산업혁명은 민족과 개인의 명운이 걸린 마지막 기회로 여겨졌던 것이다.

유태인은 산업혁명 후 금융뿐 아니라 전기, 기계, 화학 분야에도 뛰어들었다. 특히 독일산업의 근대화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산업혁명을 계기로 유태인이 그동안 참여할 수 없었던 여러 분야에 진출하면서 유럽 각지에서 반유태주의가 서서히 심화된 것도 이 무렵이다. 1930년대를 지나면서 유태계 자본에 경제를 잠식당한 독일은 가장 격심한 반유태주의 국가가 되었다. 독일뿐 아니라 19세기 말부터 유태인들이 산업계에서 가장 큰 세력으로 대두하자 유럽인들은 유태인이 지난날의 박해를 잊고 너무 교만해졌다는 불만을 품기에 이른다. 지금까지 억압의 대상이었던 유태인이 오히려 유럽인의 경제적 숨통을 움켜쥔 억압자가 되는 상황이 연출되자 유럽인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오랫동안 적그리스도의 후예로 천대받아온 유태인들이 자신들보다 더 높은 사회적 위치를 선점한 데 대한 불만이었다. 이것이 결국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대학살이라는 참혹한 결과로 이어졌다. 많은 사람들이 대학살을 히틀러라는 한 미치광이의 범죄로 취급하지만, 이는 엄밀히 말해 유럽 전체의 범죄였다.

모든 상황에 적응하는 유연성을 길러라

중세 유럽에서 유태인은 계속되는 추방에 갈 곳을 잃고 떠돌았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유태인은 유럽인과 비교했을 때 학자, 기술자 등 많은 인재들을 배출하고 있었다. 유태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후진국들은 자국의 경제 활성화를 위해 방랑하는 유태인들을 불러들이곤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국의 경제가 목표치에 도달하면 유태인을 배척하고 몰아냈다. 그런 식의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유태인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가 싶으면 곧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를 강요당했다. 그들은 한마디로 영원한 이방인이었던 것이다. 변덕이 심한 유럽의 날씨처럼 중세 기독교 국가들은 수시로 유태인에 대한 정책을 달리했다. 어떤 곳에서는 환영받았고, 어떤 곳에서는 살해당했다.

그 같은 역사가 유태인의 상업적 기회를 포착하는 후각을 예민하게 만들어주었다. 계속되는 변화는 인간을 다양하게 만드는 힘을 제공한다. 유태인은 격변하는 세월 속에서 이 같은 진리를 몸소 터득한 것이다. 게다가 이방인이라는 위치는 기존의 정착민들과 달리 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터전을 일궈야만 살아갈 수 있는 극단의 환경이었다. 삶을 대하는 태도가 더욱 치열해진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유태인들은 어떤 기회든 작은 틈새라도 보이면 모기처럼 달려들어 침을 꽂고 영양분을 빨아들여야 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먹잇감이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전력을 다했다. 이처럼 유태인은 생존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모든 상황에 맞춰 적응력을 키워 나갔다. 그리고 어느 곳에 무엇이 부족한가를 파악하고 재빨리 공급하는 것을 최고의 상술로 확신하게 되었다. 오늘날 유태인이 보여주는 유연한 적응력과 만능에 가까운 문제해결 능력은 바로 이런 전통 덕분으로 빛을 발하게 된 것이다. 유태인은 불과 100년 전만 하더라도 실체가 아닌 공기로서의 삶 즉, 인간 이하의 삶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유태인은 오히려 공기처럼 어느 곳이든 뚫고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을 발휘했고, 공기처럼 모든 사람이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었다. 유태인의 성공은 바로 이 같은 유연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정보는 힘이다 - 로스차일드 왕국의 비밀

유태인들은 각 지역의 상황에 대해 서로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는 데도 일가견이 있었다. 우선 각국의 정치적 변화에 맞춰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유태 사회 간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했다. 그리고 동시에 어느 지역에 어떤 상품이 부족하고, 어떤 상품이 남아도는지를 알려주는 역할까지 수행했다. 그 때문에 유태인들은 타민족에 비해 경제 동향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유태인은 중세시대에 오늘날과 같은 정보 네트워크를 공유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 같은 네트워크를 활용해 최고의 이익을 끌어낸 주역들이 바로 로스차일드였다. 로스차일드는 유럽 각국에 일족을 파견하고, 서로 긴밀하게 정보를 교환함으로써 독자적인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주고받는 정보는 신속하고 정확했다. 특히 이들의 정보망이 빛을 발한 때는 워털루 전투였다. 영국-프로이센 연합군과 프랑스군 사이에 벌어진 이 전투는 영토 문제뿐 아니라 영국 공채의 명운도 걸려 있었다. 연합국이 승리하면 당연히 공채는 급등하고, 공채매입 가격보다 몇 배에 해당하는 가치를 지니게 된다. 그러나 만일 패한다면 일순간에 휴지조각이 되고 만다.

영국 공채 소유자들은 런던의 주식거래소에 모여 정부의 승패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 가운데는 런던 로스차일드를 맡고 있는 네이선 로스차일드도 있었다. 주식거래소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그런데 갑자기 로스차일드가 영국 공채를 팔기 시작했다. 로스차일드의 정보망은 정확하기로 소문이 난 터라 연합군이 졌다고 판단한 사람들은 너도 나도 공채를 팔기 시작했다. 값이 폭락해 휴지조각이 되기 전에 한시라도 빨리 공채를 팔아치우려고 아우성이었다. 당연히 공채가격은 폭락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누군가 공채를 사들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이 엉뚱한 발상의 주인공이 누군지 궁금해 한참을 떠들어댔다. 그리고 잠시 후 연합군의 승전소식이 들려 왔다.

깜짝 놀란 사람들이 헐값에 팔아치운 공채를 다시 사들이려고 했고 그때 공채를 구입한 주인공이 알 네이선 로스차일드임을 알아차렸다. 사람들은 그제야 한방 먹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연합군이 승리했다는 정보를 영국 정부보다 몇 시간 먼저 입수한 로스차일드는 마치 영국이 패배한 것처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공채를 모조리 팔아치우고 가격이 폭락하자 헐값에 공채를 매입했던 것이다. 로스차일드 가문은 오늘날에도 막강한 정보수집 능력으로 전 세계 금융시장을 좌우하고 있다. 이미 200~300년 전에 로스차일드를 비롯한 유태인은 정보의 힘을 인식하고 활용했던 것이다.

2장 유태인은 돈을 어떻게 관리하는가



부자가 되는 9가지 지혜

1. 돈에 대한 왜곡된 철학을 버린다: 유태인은 자녀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돈은 악도, 저주도 아니다. 돈은 인간을 축복해주는 고마운 친구다. 그러니 돈을 빌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돈을 빌려주는 것도 자랑하지 마라.”2.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믿는다: 오늘날 유태인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민족이 되기까지 그들은 수백 년 동안 게토에 갇혀 남들이 천하다고 비웃는 직업에 종사해야 했다.3.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부자가 되는 유일한 길은 내일 해야 할 일을 오늘 하고, 오늘 먹을 음식을 내일 먹는 것이다.” 『탈무드』의 가르침이다.4. 일확천금을 꿈꾸지 않는다: 규모 있게 사는 사람들이 풍요롭게 생활한다. 부자일수록 큰돈뿐 아니라 단돈 1원까지 계산하고 염두에 둔다. 1억원도 1원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5. 늘 저축한다: 장사를 시작하고 싶어도, 좋은 투자처가 나타나도 자본이 없으면 그림의 떡이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현금을 쥐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쓰지 않고 버는 것, 곧 저축하는 것만이 길이다.6. 빚을 지지 않는다: 빚을 지는 것도 습관이다. 빚이 많은 사람들 중에는 가난해서 빚을 졌다기보다는 빚 때문에 가난해진 경우가 더 많다.7. 보증을 서지 않는다: 성경 「잠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너는 사람으로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마라.”8. 거짓말을 일삼지 않는다: 거짓말은 처음엔 이득인 것처럼 보여도 나중에 가서는 반드시 탄로 나고 실패한다. 거짓말로 인한 실패는 신뢰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재기할 방도가 없다9. 남에게 인색하게 굴지 않는다: 『탈무드』는 “남을 구제하는 자가 윤택해지고 베푸는 자가 부유해진다”고 말한다.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특히 타인의 도움 없이는 이 세상에 부자가 될 사람은 아무도 없다.

333 법칙으로 리스크를 최소화한다

유태인은 자산을 어떤 식으로 관리할까. 유태인의 재산관리는 고대 알렉산드리아 시대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수중에 1천만 원이 있다고 가정하자. 여러분이라면 과연 이 1천만 원을 어떻게 관리하겠는가? 증권에 투자하겠는가, 아니면 손해를 보더라도 안전성을 중시해 은행에 예금해 두겠는가. 돈을 버는 것보다 관리가 더 힘들 수 있다. 힘들게 번 돈을 단 한 번의 관리소홀로 어이없이 잃고 싶지 않다면 지난 3천년 동안 유태인이 사용해온 ‘333의 법칙’을 활용해 보기 바란다.

예를 들어 수중에 1천만 원이 있다면 300만원은 현찰로, 나머지 700만원 중 300만원은 토지나 주택, 아파트 같은 부동산으로 관리하고, 또 300만원은 금이나 다이아몬드 같은 현물로 관리한다. 그리고 100만원은 투자자금으로 남겨둔다. 이때 현찰 300만원도 100만원은 달러, 100만원은 엔화, 100만원은 만 원짜리 지폐로 분산해서 보관한다. 이 역시 ‘333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다. 유태인은 긴 세월동안 수많은 박해와 위협 속에서 생명과 재산을 지켜왔고 빼앗기더라도 전부 빼앗기는 것만은 피할 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우선 현찰로 관리하는 30%의 경우 나라에 정변이라도 일어나면 일순간에 화폐는 휴지조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일정 부분 타국의 화폐로 보관하는 것이 상식이다. 또 만에 하나 재산의 30%인 토지와 집을 몰수당하고 타국으로 추방되더라도 30%의 현물이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다른 나라에서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

이 같은 발상에서 나온 것이 ‘333의 법칙’이다. 전체 자산을 3등분해서 안전 자산인 확정 금리형 상품에 33%, 운용 실적에 따라 수익이 돌아오는 실적배당 상품에 33%, 그리고 부동산에 33%를 투자한다. 이중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고정자산에 해당하는 부동산과 확정 금리를 제외한 실적배당 상품을 다시 ‘333의 법칙’으로 나눈다. 33%는 주식, 33%는 금, 다이아몬드, 석유 같은 실물, 나머지 33%는 채권에 투자한다. 유태인이 이처럼 분산투자에 적극적인 까닭은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서다. 투자에서 리스크는 필요악이다. 유태인 금융가들은 “리스크는 제거대상이 아닌 관리대상”이라고 말한다. 예기치 않은 결과가 나올 가능성도 결과적으로는 투자의 일면이라는 뜻이다.

3장 유태인은 자녀를 어떻게 교육시키는가



용으로 키우기 전에 먼저 바다를 보여줘라

유태인 남자들의 첫 번째 소망은 자신보다 좀 더 나은 아들을 키워내는 것이다. 부모로서의 단순한 소망이 아니다. 하느님과의 계약에서 파생된 엄연한 의무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은 구두 수선공인데 내 아들은 판사나 검사로 키우겠다는 식의 허황된 바람은 아니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속담이 있다.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큰 인물이 나왔을 때 주변에서 흔히들 하는 말이다. 만약 이 속담을 유태인 부모에게 들려준다면 그들은 과연 뭐라고 말할까. 어쩔 수 없는 형편으로 개천에서 자녀를 키워야 할 입장에 놓인 유태인 아버지라면 개천에서 힘들게 용을 키우려고 하기보다는 우선 아이를 데리고 개천에서 빠져나갈 궁리부터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실제로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선택이기도 하다. 지금은 환경과 여건이 개천에 불과하지만, 우선 급한 대로 어느 산자락의 시냇가에라도 터를 잡는다. 이곳에서 아이가 용으로 큰다는 보장은 없지만 좀 더 넓은 세계인 개울가로 내보내줄 수는 있다. 언젠가 그 아이는 자식을 낳아 하천으로 보내줄 것이고, 하천에서 태어난 아이는 넓은 강을 헤엄쳐 바다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바다에서 태어난 아이는 비로소 용이 될 환경을 손에 쥐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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