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만 버텨라
허병민 지음 | 위즈덤하우스
허병민 지음
위즈덤하우스 / 2011년 2월 / 300쪽 / 12,000원
회사는 능력을 보지 않는다두 명의 회사원이 있다. A는 소위 직장인이 갖춰야 할 업무적 능력을 다 갖춘, 그야말로 퍼펙트한 직장인의 롤 모델이다. 실무에 있어서 완벽한 일 처리를 자랑하기에 존경도 많이 받고 도움을 청하는 주변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동시에 그만큼 욕도 많이 얻어먹는다. 스스로 잘났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사람들을 무시하기 일쑤고, 자신의 입맛과 취향에 맞는 일에만 주로 집중하는 탓이다.
반면, B는 그저 고만고만한, 남들이 하는 만큼만 하는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으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다. 눈에 띄는 능력이 별로 없기 때문에 주변에서 도움을 청해 오는 일은 드물지만, 스스로 뭔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모르는 것이 있을 때면 스스럼없이 동료나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또 잘나지 않은 사람이란 걸 잘 알기에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도 말을 아낀다. 한마디로 그럭저럭 지내는 무색무취형 직장인의 표본이다. A와 B, 이 두 사람 중 1년도 못 버티고 쫓겨나는 사람은 누구일까? 자기 발로 나가는 것까지 포함한다면, 다들 별 고민 없이 A라고 답할 것이다. 왜일까?
나는 직장생활을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에서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사회에 이제 막 첫발을 내딛은 시기다 보니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그러니 마음속으로 '일류든 최고든 그 어디든 간에 내 마음에 안 들기만 해봐.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간다'는 식의 거만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런 지나칠 정도의 자만심과 오만함을 고스란히 반영해주듯, 나는 정확히 8개월 만에 제일기획을 떠났다. 당시 조직이라는 곳, 그 안에 짜인 보수적이고 고루한 의사결정 시스템이라든가 위계질서 중심의 문화가 나에게는 숨 막힐 듯 답답하기만 했고, 그렇게 염증을 느낄수록 입사할 때의 마음이 다시금 고개를 내밀었다. '나 정도 되는 인물이 여기에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사표를 제출하고 퇴사를 준비하던 어느 날이었다. 새벽에 팀장님으로부터 느닷없는 전화가 걸려왔다. "병민아, 다른 말은 안 하겠다. 더도 덜도 말고 딱 1년만 채우고 나가라. 그 이상은 바라지 않는다. 알겠지? 꼭이다." 나는 팀장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 '1년? 1년이라는 기간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거야? 내 귀한 시간과 재능을 낭비하기엔 8개월도 충분히 아까웠거든?' 이것이 바로 당시 내 심정이었다. 팀장님은 왜 내게 1년이라는 기간을 강조한 걸까? 1년이라는 기간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경력 관리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보다는 그것이 개인이 직장생활 자체를 계속 해나갈 수 있는지 여부를 판가름하는 잣대가 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회사에서 1년을 버티지 못한다면, 회사 아닌 그 어디를 가더라도 얼마 버티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말이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1년 안에 퇴사하는 사람은 바로 A다. 이유는 간단하다. A에게는 조직에 적합한가를 판가름하는 성실성과 인내심, 인간성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자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는 더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하는 오만방자함, 동료들과 함께 무언가를 해내고 성취하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없는 독불장군ㆍ유아독존식 행동 양식, 배려나 양보, 나아가서 다른 사람과의 조화 혹은 윈-윈과 상생을 위한 고민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는 철저한 자기중심적 사고방식까지, 그야말로 직장인이 갖추지 말아야 할 조건들을 종합선물세트로 다 갖추고 있는 A.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직한다 해도 살아남을 수 없다. 반면 B는 어떤가? 비록 능력은 평균 혹은 그 이하지만, 그는 A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 자신이 잘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데다 그것을 겸허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때문에 소위 무난하게 묻어가는 길을 택한다. 고백하자면, 1년만 채우고 떠나라던 팀장님의 당부에 담긴 진짜 의미를 알게 된 건 5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2006년 초, 나는 한 외국계 기업에 입사를 앞두고 오랜만에 팀장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내 소식을 전하고, 팀장님의 안부를 묻기 위해 편안한 마음으로 썼던 메일인데, 팀장님이 보내온 답 메일은 기대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병민아. 어느 조직이건 참을성 없는 사람은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내가 형으로서 하는 이야기인데 나도 사람을 뽑을 때 실력을 보지 않는다. 인간성이나 성실함을 먼저 보고 나서 실력을 본단다. 다재다능하면 뭐하니? 뭐 하나 제대로 붙어 있지도 못하는데. 병민아. 너의 만족 못 하는 성격을 이제는 좀 고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새로운 회사도 좋은 회사 같은데 넌 거기서도 결코 만족을 못하고 뛰쳐나올 게 눈에 선하다. 어떻게 보면 너는 큰 병에 걸린 것 같구나. 자신이 너무 잘났다는 사실에 고무되어서 어느 회사에도 만족을 못하니 말이다. 조직적으로 일하는 법을 배우길 바란다. 팀이라는 건 정말 좋은 거거든. 어느 회사든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 자신을 강하게 단련시켰으면 하는 바람이다. 진심으로 너에게 조언을 해주는 거니까 절대로 기분 나쁘게 듣지 않길 바란다.
팀장님으로부터 메일을 받은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결국 팀장님의 예상대로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여태까지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나니 팀장님이 건네준 조언들이 나름대로 조합되어 다음과 같이 하나의 의미로 수렴되는 듯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천재라 해도 사람을 움직이는 건 능력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러한 기본이 뒷받침되어 있지 않은 섣부른 응용은 언제든 스스로를 허물어뜨릴 수 있다.'
참고로 직장인들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인물인 안철수 카이스트(KAIST) 석좌교수, 대한민국 대표 모범생답게 그가 갖고 있는 삶의 가치 판단기준은 철저하게 기본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것을 직장생활이라는 테마와 엮어서 풀어보면, 그 구체적인 맥락이 인간성, 성실성, 인내심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개인의 내부가치를 중시하는 안철수 교수는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 비교하는 것을 금기시하기도 하지만, 자기 스스로를 남과 비교하는 것 또한 경계한다. 그는 누구나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오로지 자기 자신을 스스로의 적이자 롤 모델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인내심이나 성실성, 인간성이라는 기본은 남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해봐야 할 것은 '나는 기본을 갖추고 있는가', '갖추고 있지 않다면 그것을 갖추기 위해 노력할 열정과 의지 있는가', '결론적으로 남들과 발을 잘 맞춰나갈 수 있는가' 등이다.
정답이 아니라 해답을 찾아라회사에서 일이 진행되는 프로세스를 살펴보면 두 가지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톱다운(top-down)전달 체계고, 두 번째는 제안이 아닌 공유 중심의 업무 진행 방식인데, 이러한 구조에서 자연스럽게 몸집을 키우는 것이 바로 복지부동이라는 게으른 괴물이다. 다들 하나같이 몸을 사리면서 맡겨진 일 외에는 어느 것 하나 손대려 하지 않고, 심지어는 작은 위험조차 무릅쓰려 하지 않는 다. 안타깝지만 현실적으로 우리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판을 엎을 수는 없다. 대신 그 판 안에서 '노는 방법'을 조금 달리해볼 수는 있다. 지금껏 위에서 하달한 업무의 내용과 틀, 방향성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실행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춰왔다면, 앞으로는 업무 실행의 전 단계에서 긍정적인 '딴지'를 걸어보는 것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가정법 'If(만약)'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를테면 아래와 같다.
첫째, 내가 팀장(임원 혹은 CEO)이라면 지금의 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방향으로 처리할까? 그의 해결방식은 나와 어떤 면에서 다를까? 나는 그의 방식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둘째, 이 일을 여태 해왔던 방식과는 좀 다르게 접근해보면 어떨까? 어떤 방식이 현재의 상황에 가장 적합하고 시의적절할까? 이런 시도를 통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어떤 방식이 최적의 결과를 가져올까? 셋째, 내가 아니라면 이 문제는 어떤 식으로 처리되고 진행될까?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이유가 있을까? 오로지 나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일까? 주변의 도움은 필요할까 필요하지 않을까? 필요하다면 어느 부분에 어느 정도로 필요할까? 넷째, 이 일을 반드시 해야 한다면 왜 해야 하는 걸까? 하지 않을 수 없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을까? 반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면 왜 하지 말아야 할까? 다른 대안은 없을까?
상황을 색다르게 비틀어보는 질문을 던질 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상대방이 처한 입장에 대한 고려다. 우리는 선배나 상사의 시각을 가정해보면서 그들의 노련함과 선견지명을, 후배와 부하직원의 입장을 떠올리면서 그들의 신선함과 도전, 혁신 마인드를 배울 수 있다. 또 이러한 질문 과정을 통해 다른 구성원과 다른 팀, 외부 고객의 상황과 입장까지도 배려할 수 있는 태도를 기를 수 있다.
잘나가고 싶다면 쫓겨나는 시나리오를 써라직장에서 잘나가는 데 도움이 될 시나리오를 써도 모자랄 판에 쫓겨나는 시나리오를 작성하라니? 뭔가 잘못된 것 아니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잘나가는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정답이고, 쫓겨나는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오답이라고 생각해온 우리의 생각이 잘못되었던 것이다. 참고로 시중에 나와 있는 많은 자기계발서들이 직장에서 성공하는 법, 실패하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공식, 회사에서 인정받는 기술, 회사가 알려주지 않는 법칙, 회사가 붙잡는 사람들의 공통점 등을 다루고 있다. 이 분야의 책을 적지 않게 독파한 경험에서 말하자면, 성공하는 법을 나열해놓은 책들은 내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내가 처한 환경이나 상황과 맞지 않는 조언들을 무리하게 적용하려다가 좌절도 겪었고, 현실의 벽에 매달린 채 부딪칠 때마다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도 느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자기계발서를 찾아 읽을 만큼 절실한 변화의 욕구, 즉 처절한 문제의식이라든가 비장함이 나에게 배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절실함이 없는 곳에 성공의 공식을 숱하게 뿌려놓은들 결국 남는 것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고 싶은 절실함뿐이다. 그와 반대로 실패 사례들을 풀어놓은 책은 내가 겪고 있던 상황들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었기 때문에 공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정말로 잘나가고 싶다면 자신을 보다 절실하게 만드는 실패공식들을 만들어봐야 한다.
쫓겨나는 시나리오를 작성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즉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를 좀 더 절실한 마음으로 정확하게 진단하고, 그에 대한 해답을 신중하고 냉정하게 찾아내기 위해서다. 물론 이것을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깨달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만 그 기회비용이 상대적으로 만만치 않다. 따라서 그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써, 유비무환의 마음으로 실패 리스트를 구체적이고 철저하게 작성해볼 것을 권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회사에서 쫓겨나는 방법'들을 머릿속에서 전부 끄집어낸 다음, 그에 대한 대안을 구성하면서 위험 요소를 하나씩 줄여나가 보는 것이다.
인정(認定) 없이 인정(人情) 없다어린 시절 미국에 살면서 그곳 친구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표현은 "Thank you"와 "I am sorry"였다. 이 두 가지는 미국에서 "Please"와 더불어 가장 많이 들을 수 있고, 또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가장 많이 훈련시키는 말이다. 미국이라는 나라가 얼핏 개인주의자들과 이기주의자들로 넘쳐나는 사회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제로 타인과의 관계에서는 이처럼 고마움과 미안함 등의 배려가 담긴 마음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회다. 그것의 위력을 전혀 실감하지 못했던 나는 20년이 지난 요즘에서야 그 말들이 갖는 위력과 더불어 본질을 절감하고 있다. 그 본질이야말로 우리가 관계를 채워나가는 데 있어 심도 있게 되새겨보고 고민해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정(認定)'이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지탱시켜주는 건 배려심이나 동정심 등의 마음만이 아니다. 그것을 실질적으로 지탱시켜주고 또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은 나 자신을 인정하듯, 다른 사람을 솔직하고 깔끔하게 인정하고 받아들이겠다는 마음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겸허한 자세와 태도다. 인지상정이라고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을 남도 똑같이, 아니 어쩌면 더 예민하고 민감하게 느끼고 받아들일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남도 나와 다르지 않는 인격과 성향, 자존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솔직담백하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하는 것만큼, 사람을 가장 빨리, 또 가장 쉽게 무장해제시키고, 돈이 전혀 안 들면서도 누구에게나 확실히 통하는 방법이 또 있을까?
제일기획에 다닐 때의 일이다. 하루는 아이디어 회의를 하고 있었는데, 내 바로 위의 선배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트집 잡았다. 내가 낸 아이디어가 영 아니어서 물고 늘어지는 거라면 그나마 참고 넘어가겠는데, 아이디어에 대한 딴지를 넘어 회의 내용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내 인격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우회적으로 교묘하게 곁들였다. 일은 전광석화처럼 터졌다. 주변 사람들이 말릴 새도 없이 나는 어느 순간 선배의 멱살을 꽉 잡고 있었다. "선배면 다야? 나한테 불만 있으면 내 눈 똑바로 쳐다보고 정정당당히 말하라고. 치사하게 딴소리 해대지 말고, 우리 계급장 떼고 맞장 한번 뜰까? 오래 다니면 다 선배야? 실력으로 당당하게 나보다 선배라고 할 수 있어?"
말 그대로 하극상이 벌어졌던 것이다.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 나는 주변의 화젯거리 겸 동네북 신세가 되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얘기하든 말든 자존심이 강한 나는 끝까지 버티면서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팀장님의 개입으로,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과를 하는 것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 뒤로 선배와 나는 약 한 달 정도는 잘 지냈던 것 같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다시 원래의 으르렁대는 관계로 돌아왔다. 사과? 결국 다 헛수고였던 것이다.
사과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선배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등 떠밀린 채 마지못해 한 사과였으니, 나 자신과 상대방 그리고 둘 사이를 '이간질' 해놓은 내 말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 거기에 어떤 진심이 담겨 있었겠는가? 진심이 없었으니 인정도 물론 있을 수 없었다. 우선 나는 나 자신부터 인정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내가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는 사실을 애당초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나는 상대방도 인정하지 않았다. 선배가 나와 다르지 않은 사람이고, 나와 비슷한 생각과 감정을 갖고 있을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당장 편하게 써먹을 수 있는 '사과 전용' 수법들은 세상에 널려 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눈 가리고 아웅 하듯 사과를 하는 한, 우리가 관계를 통해 기대하는 결과는 절대로 얻을 수 없다. 모든 건 자세와 태도 그리고 무엇보다도 마음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1인자가 되려면 2인자가 되어봐야 한다당신은 회사 안에서 누구를 '1인자'라고 부르는가? 대부분 CEO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CEO만이 1인자라고 생각하는 한,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1인자가 될 수 없다. 목표와 목적은 분명 다르기 때문이다. CEO는 목표이지 목적이 아니다. 우리의 목적은 1인자다. 1인자가 되면 CEO가 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오히려 CEO가 되려고 처음부터 기를 쓰는 게 진짜 어려운 일이다.
우선 진짜 1인자는 당신의 눈앞에 지금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사람이다. 사수든 팀장이든 1년 위의 선배든 그들 모두 1인자들이다. 그리고 자기보다 더 잘나가는 입사 동기도 1인자다. 또 자기보다 더 인정받고 있는 후배도 1인자다. 아울러 반드시 업무와 관련된 사람들만이 1인자가 아니다. 업무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청소하시는 분들, 혹은 이 층 저 층 돌아다니면서 구두 닦는 분들도 1인자들이다. 즉 일을 하는 스타일이나 방식에서 우리가 뭔가 느끼고 배울 수 있다면, 누가 됐든 그는 나에게 있어 1인자라는 것이다. 요컨대 적어도 회사 안에서 우리는 2등이고 2인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