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명연설
에드워드 험프리 지음 | 베이직북스
에드워드 험프리 지음
베이직북스 / 2011년 2월 / 448쪽 / 15,800원
엘리자베스 1세 Elizabeth I 생애: 엘리자베스 1세(1533~1603)는 튜더 왕조의 마지막 군주였다. 헨리 8세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 앤 불린이 처형당한 뒤 왕국 안에서 사생아로 취급되었다. 이후 배다른 형제인 에드워드 6세에게 왕위 계승권을 빼앗기지만 1558년에 배다른 자매 메리 1세가 죽은 뒤 왕권을 물려받게 된다. 그녀가 통치하던 44년의 기간은 영국 르네상스의 전성기를 장식하였고 영국의 해상장악력도 극도로 확대되었으며,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한 때도 엘리자베스 1세가 집권하던 시절이었다.
연설의 배경 및 의의: 사후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에서 웅변술이 가장 뛰어난 군주로 기억된다. 그렇기에 여왕의 좌우명이 "진실을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라는 사실은 사뭇 의아하게 다가온다. '68세가 된 여왕이 의원 141명 앞에서 생애 마지막으로 행한 이 연설은 ‘황금의 연설’로 불린다.
황금의 연설_ 런던, 국왕 알현실. 1601년 11월 30일
의장, 그대의 선언을 잘 들었고 우리의 재산을 아끼는 그대의 지극한 마음도 잘 알았습니다. 내 단언컨대 나만큼 국민을 사랑하는 군주는 없을 것이요, 국민을 향한 나의 사랑에 필적할 만한 군주도 없을 것입니다. 또 지금 내 앞에 있는 보석보다 값진 보석은 없을 것입니다. 나의 보석은 바로 그대들의 사랑입니다. 나는 그대들의 사랑을 그 어떤 보물이나 재물보다 귀하게 생각합니다. 보물이나 재물은 값을 따질 수 있으나 사랑과 감사는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없는 까닭입니다.
또한 신께서 나를 군주의 자리에 오르게 하신 것에 감사하는 바이나 군주로서 내가 누린 가장 큰 영광은 그대들의 사랑을 받으며 통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께서 나를 여왕으로 이끄셨다는 사실보다는 이렇게 애정을 보내준 국민들의 여왕이 되었다는 사실이 나는 더 기쁩니다. 그리하여 나는 마땅히 국민의 평화와 안전만을 바랄 뿐이며, 또 그것이 나의 의무입니다. 나는 그대들이 번영하는 모습을 내 눈으로 보게 될 때까지만 살고 싶습니다. 그것이 내 유일한 바람입니다.
나는 아직 신의 가호 아래에서 이렇게 그대들에게 연설을 하고 있으니 전지전능한 신께서 나를 도구로 삼아 그대들을 그 어떤 고난이나 불명예에서, 수치와 압제, 탄압에서도 보호하리라 믿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군주를 향한 무한한 사랑과 충성이 그대로 드러난 그대들의 도움도 어느 정도 받게 되리라 믿습니다.
본인으로 말하자면 나는 탐욕스런 폭군도 아니요, 잔혹한 압제자도 아니며 낭비벽이 심한 군주도 아닙니다. 나는 그 어떤 세속적인 재물욕에도 빠져본 적이 없습니다. 그대들의 선물도 내가 비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그대들에게 베풀기 위해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의장이여, 내 그대에게 간청하니 내가 차마 말로 하지 못하고 마음에 품은 이 고마운 마음을 그대가 대신 전해주시오.
나는 여왕이 된 이래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좋은 일이 아니면 그 어떤 구실이나 핑계에도 불구하고 결코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내 신하 중에는 개인적인 이익을 취한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마땅히 그럴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경험으로 미루어보건대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들과 똑같이 행동했을 것이니 나는 그들에게 상당한 빚을 진 셈입니다.
내가 단순히 추측하는 것이 아니라 하원에는 이러한 탐욕에 단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은 의원들이 일부 있습니다. 그들은 당원들이 한탄하는 바와 같이 울분이나 악의적인 애정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조국에 대한 열정을 보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따라서 내가 허락한 일로 말미암아 국민들이 비통에 잠기고, 내가 부여한 권력에 따라 탄압이 기승을 부리는 일은 국왕의 위엄으로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자들, 그대들을 탄압하고, 의무를 게을리 하며, 자신의 명예를 저버린 자들이 처벌도 받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의장, 내 단언컨대 그 어떤 영광도, 차오르는 사랑도, 무엇보다 양심의 가책도 없이 이러한 실수와 문제를 일으키고, 성가신 일과 탄압을 벌인 악한이나 음란한 자들은 신하라는 이름을 받들 가치도 없으며, 마땅한 처벌을 받기 전에는 결코 빠져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나는 지금껏 최후의 심판의 날을 눈앞에 그리면서, 나 자신이 고등 판사 앞에서 질문에 답하며 재판을 받듯이 이 나라를 통치해 왔습니다. 따라서 지금 국왕으로서 내가 내리는 하사금이 오용되고, 내가 내리는 허락이 내 의지나 뜻과는 달리 국민들에게 상처를 준다면, 그리고 내 권력 안에서 내가 국민들에게 취한 그 어떤 행동이 도외시되거나 왜곡된다면, 신께서 그 죄인들과 그들의 죄를 나의 책임으로 묻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국왕이라는 칭호가 영광스럽기는 하나, 왕권의 빛나는 영광은 우리의 이해라는 눈을 멀게 할 만큼 위대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나는 국왕 역시 재판관 앞에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또 기억하고 있습니다. 왕이 되고 왕관을 쓴다는 것은 그 모습을 볼 때 더 영광스러운 법이며, 직접 써보는 사람은 그리 즐겁지 않습니다. 신께서 내게 군주라는 영광스러운 칭호와 여왕이라는 고귀한 권위를 내려주셨으나, 그보다 나는 신께서 나를 진리와 영광을 드높이는 도구로, 이 왕국을 위험과 불명예로부터, 전제와 압제로부터 지키기 위한 도구로 삼으셨다는 사실이 더 기쁩니다.
앞으로 이 자리에 앉게 될 여왕 중에 나만큼 이 나라에 열의를 품고 나만큼 국민들을 아끼며, 나 자신보다 국민들의 선과 안위를 위해 언제라도 기꺼이 목숨을 무릅쓸 사람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나의 바람은 내가 그대들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날까지만 살아서 그때까지만 통치하는 것입니다. 그대들은 나보다 강력하고 현명한 군주를 과거에도 만났으며 앞으로도 만날 테지만 나만큼 그대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군주는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오 신이시여, 관습과 위험도 비껴가는 제가 무엇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감사관과 비서관, 그리고 여러 의원들에게 기원하오니, 그대들의 지역으로 돌아가서 국민들을 모두 데려와 내 손에 입 맞추게 하십시오.
에이브러햄 링컨 Abraham Lincoln 생애: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은 미국의 16대 대통령이다. 링컨은 1832년에 일리노이 주 의회 의원으로 출마하였지만 실패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에 의원직에 올랐으며 1846년에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한 임기를 지낸 뒤 공직을 떠나 일리노이 주에서 변호사 생활로 돌아갔다. 1854년에 다시 정계로 진출한 링컨은 1860년에 공화당 대표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의 임기는 남북전쟁으로 점철되었다. 1864년에 재선되었으나 남북전쟁이 끝난 후 한 주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암살당하였다.
연설의 배경 및 의의: 역대 미국 연설 중에 인용문으로 가장 자주 등장한 이 연설을 펼칠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은 분단 국가의 대통령이었다. 미국 남북전쟁은 2년 반 동안 타오르면서 25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가장 치열한 전투는 링컨의 연설이 있기 약 네 달 전 펜실베이니아 주에서 일어난 게티즈버그 전투였다. 이곳에서 사흘간의 전투로 8천 명이 사망하였다. 전장에 묻힌 시신들을 재 안치할 필요에 따라 이곳에 공동묘지가 세워졌다. 링컨은 묘지 준공식에 맞춰 만 오천 명의 군중 앞에서 이 유명한 연설을 펼쳤다.
게티즈버그 연설_ 펜실베이니아 주, 게티즈버그 군인공동묘지. 1863년 11월 19일
지금으로부터 87년 전, 우리 조상들은 이 대륙 위에 자유 속에 잉태된 나라, 인간은 모두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신념을 받드는 새로운 나라를 탄생시켰습니다.
지금 우리는 거대한 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 나라가, 아니 그렇게 잉태되고 그러한 신념을 받들어 탄생한 그 어떤 나라도 과연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시험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전투의 한 격전지에 모였습니다. 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이들에게 그 싸움터의 일부를 마지막 안식처로서 헌납하고자 모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모두 당연하며 마땅한 일입니다. 하지만 더 큰 의미에서 보면 우리는 이 땅을 헌납할 수도, 거룩하게 할 수도, 신성하게 만들 수도 없습니다. 이곳에서 싸운 용감한 전사자들과 생존자들이 이미 이곳을 신성한 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의 힘으로는 여기에 더 보태거나 뺄 수가 없습니다.
세계는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신경을 쓰지도, 오래 기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용사들이 이곳에서 한 일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싸워서 그토록 고결하게 이루고자 했던 미완의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헌신해야 할 이는 바로 우리 살아 있는 자들입니다. 우리에게 남겨진 그 위대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는 그들의 명예로운 죽음으로부터 더 큰 힘을 얻어, 그들이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바쳐 지키려 한 대의에 더욱 헌신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겠다고 이 자리에서 엄숙히 다짐해야 합니다.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에 자유가 새로이 탄생하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 지상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윈스턴 처칠 Sir Winston Leonard Spencer-Churchill (1)생애: 윈스턴 처칠, 또는 윈스턴 스펜서 처칠(1874~1965)은 옥스퍼드셔의 블렌하임 궁전에서 유복한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해로우 스쿨과 샌드허스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인도와 수단,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군에 복무하였다. 1900년에 하원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후 20년 간 여러 요직을 거치며 내무장관과 전시 중 첫 번째 해군 장관으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해군 장관으로 임명되었고 1940년에는 연립정부의 총리직에 오른다. 1951년에 총리로 재당선되어 1955년까지 재임하면서 그 사이에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하였다.
연설의 배경 및 의의: 네빌 체임벌린이 총리직에서 물러나고 사흘 뒤, 윈스턴 처칠이 총리로서 처음으로 의사당에 발을 들였다. 이로써 처칠의 고무적이고도 도전적인 첫 번째 전시 연설이 시작되었다.
피와 땀, 눈물과 노력_ 웨스트민스터, 하원의사당. 1940년 5월 13일
저는 우리 의회가 이번 정부 개각을 환영하기를 바랍니다. 이번 개각은 독일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겠다는 이 나라의 통합적이고 강경한 의지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지난 금요일 저녁, 저는 국왕폐하로부터 새로운 내각을 조직하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새 정부는 최대한 광범위한 기반 위에 세워져야 하며, 따라서 지난 정부를 지지하던 정당이나 반대하던 정당이 모두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 의회와 국민의 명백한 희망이고 의지였습니다. 저는 이 임무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완수하였습니다. 새로운 전시내각은 다섯 명으로 구성되었으며, 야당인 자유당이 참여함으로써 조국이 단결하게 되었습니다. 3대 정당의 지도자들은 전시 내각이나 행정부 고위직에서 소임을 다할 것에 동의했습니다. 육해공 삼군의 병력도 모두 동원되었습니다.
의원 여러분, 저는 공익을 위해 의회가 오늘 소집되어야 한다고 건의하였습니다. 의장님이 이에 동의한 바, 의회의 결의로 수여된 권한에 따라 필요한 절차를 밟게 되었습니다. 저는 의회가 결의안을 통해 지금까지의 조치들을 승인하고, 그로써 새 정부에 대한 신임을 천명해주기를 바랍니다.
이 정부에 참여하게 된 분들에게 이미 말했지만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말씀 드립니다. 제가 드릴 것은 피와 땀, 눈물과 노력밖에 없습니다. 우리 앞에는 비통하고 극심한 시련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 앞에는 길고 긴 투쟁과 고통의 나날이 놓여 있습니다. 여러분은 묻습니다. 당신의 정책은 무엇인가? 나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하늘에서, 땅에서, 바다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신께서 내려주신 그 모든 힘과 능력을 총동원하여 저 극악무도한 독재자에 대항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음험하고 개탄스러운 범죄도 능가하는 포악한 전제에 맞서 싸우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
여러분은 묻습니다.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저는 한 마디로 답할 수 있습니다. 바로 승리입니다. 그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그 어떤 공포를 맞닥뜨리더라도, 가야할 길이 제아무리 멀고 험하더라도, 우리에겐 승리뿐입니다. 승리가 없으면 생존도 없습니다. 이것을 명심합시다. 승리가 없으면 대영제국은 없습니다. 대영제국을 지탱해온 그 모든 대의명분도, 온 인류의 전진을 이끌어온 이 시대의 욕구와 의지도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희망과 낙관을 견지하며 소임을 다할 것입니다. 우리의 대의는 결코 패배하지 않으리라 저는 확신합니다. 이에 모든 의원 여러분께 마땅히 도움을 요청하는 바입니다."이제 모두 모여 힘을 합해 앞으로 나아갑시다."
존 F. 케네디 John Fitzgerald Kennedy (2) 생애: 존 피츠제럴드 케네디(1917~1963)는 메사추세츠 브루클린의 유복한 정치 가문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에서 국제학을 전공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해군으로 복무한 뒤 하원의원으로, 이후 상원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60년 대선에서 리처드 닉슨을 제치고 제35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케네디는 1961년 1월 20일부터 댈러스에서 암살당한 1963년 11월 22일까지 대통령직을 지켰다.
연설의 배경 및 의의: 베를린이 악명 높은 베를린 장벽으로 나뉘어 있을 때 케네디가 미국 대통령으로서 이곳을 방문했다. 서베를린은 서독에 속해 있었지만 지리상으로는 공산주의 동독의 영토 내에 있었다. 냉전에 강력히 대항하는 내용을 담은 이 연설은 서독 국민은 물론 동독 국민의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냉전 시대 동서대립의 상징도시인 서베를린을 방문하여 공산주의와 외롭게 싸우고 있는 서베를린 시민들에게 격려와 존경을 표하며 자신도 베를린 시민이라고 응원을 보낸다.
저 또한 베를린 시민입니다_ 서독 서베를린, 라트하우스 쇤베르크. 1963년 6월 26일
저는 서베를린의 투지를 전 세계에 알린 훌륭한 시장의 초청으로 이 도시를 방문하게 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또한 저는 지난 수년 동안 독일의 민주주의와 자유와 진보를 위해 헌신한 훌륭한 총리가 있는 이 연방공화국을 방문하게 된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제 동지, 클레이 장군과도 이 자리에 함께하게 되어 자랑스럽습니다.
2천 년 전, 세계 시민에게 가장 큰 자랑거리는 '나는 로마 시민이다' 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유의 세계에서 가장 큰 자랑거리는 'Ich bin ein Berliner(나는 베를린 시민이다)'가 되었습니다.
제 서툰 독일어를 옮겨주신 통역가님 감사합니다. 세상에는 자유진영과 공산진영 사이의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많고, 모르는 체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도 베를린에 와보라고 합시다. 공산주의가 미래의 물결이라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도 베를린에 와보라고 합시다. 유럽 등지에서는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일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도 베를린에 와보라고 합시다. 심지어 공산주의가 유해한 제도이긴 하지만 경제 성장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도 베를린에 와보라고 합시다.
자유는 얻기 어렵고 민주주의도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우리는 높은 담을 쌓아 사람들을 그 안에 가둔 채 담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도록 막은 적은 없습니다. 저는 미국인들을 대신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비록 미국인은 대서양 반대편에 멀리 떨어져 있지만, 여러분과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지만, 그 먼 곳에서나마 지난 18년간의 역사를 여러분과 공유해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18년간 포위되어 있었음에도 여전히 활력과 힘이 넘치는 곳, 희망과 의지가 넘실대는 곳은 서베를린뿐, 그에 필적하는 마을이나 도시를 저는 알지 못합니다. 베를린 장벽이 공산주의의 실패를 전 세계 앞에 가장 뚜렷하고 생생히 보여주고 있지만 우리는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시장님이 말했듯이 가족을 떨어뜨려 놓고 남편과 아내를, 형제자매를 떼어 놓으며,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을 갈라놓는 것은 역사에 반할뿐더러 인륜에 반하는 범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