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형 인간 VS 렉서스형 인간
정혁준 지음 | 한스미디어
아이폰형 인간 VS 렉서스형 인간
정혁준 지음
한스미디어 / 2011년 1월 / 280쪽 / 13,000원
Part 1 스티브 잡스가 알려주는 창의력의 법칙
창의와 혁신, 아이폰의 기원잡스는 워즈니악과 함께 차고에서 손으로 두드려 PC를 만들어냈다. 그 뒤 애플은 폭발적으로 성장하지만 잡스는 행복하지 않았다. 사실 애플Ⅰ과 애플Ⅱ는 워즈니악이 만든 것이었다. 잡스는 자신이 개발한 컴퓨터를 만들고 싶었다. 그것은 바로 리사였다. 딸 리사가 태어난 1978년 가을, 개발이 시작된 리사는 2000달러짜리 컴퓨터로 기획됐고, 타깃은 비즈니스 사장이었다. 그러나 2000달러로 기획된 리사는 개발이 지연되면서 가격이 9995달러로 껑충 뛰어올랐고, 높은 가격에 고객들은 등을 돌렸다. 그리고 결국 1985년 4월 애플은 리사 판매를 중단했다.
리사의 실패 이유는 무엇일까? 두 가지다. 하나는 잡스처럼 창의적인 사람은 분석적인 면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기업은 제품을 만드는 데만 그쳐서는 안 된다. 제품을 팔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소비자의 욕망부터 적정한 가격까지 체계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하지만 잡스는 자신만의 직관을 믿고 그런 분석을 소홀히 했다. 또 다른 문제는 기술에만 집착해 고객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리사와 놀아줄 충분한 소프트웨어도 없었고, 다른 기계들과 호환도 되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기술력만을 과신한 채,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았고, 경쟁사의 전략을 간과해 세상에서 버림을 받았던 것이다. 그 결과 그는 그가 세운 애플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잡스는 우여곡절 끝에 1997년 다시 애플로 돌아오는데, 애플로 돌아온 잡스는 과거의 잡스가 아니었다. 과거와 다른 그를 볼 수 있게 만든 것이 아이팟이다. 사실 처음에는 아이팟의 판매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런데 이듬해 여름 윈도와도 호환되는 아이팟 제품을 내놓자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개방 정책으로 판매만 증가된 것이 아니었다. 윈도 사용자에게 애플의 기술을 맛보게 해줌으로써 애플 고객으로 끌어올 수 있게 된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 뒤 잡스는 더욱 개방적이 됐다.
과거 잡스는 자신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높아 대화와 협상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온 잡스는 한때 경쟁자였던 기업들과도 협력에 나섰다. 애플의 성공요인은 공급자 중심의 사고에서 소비자 니즈를 중시하는 생각에 기반을 둔 기술혁신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창의성까지 버린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창의성은 개방성의 다른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슘페터는 평생을 "자본주의를 자본주의이게 하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푸는 데 머리를 쥐어짰고, 그가 제시한 해답은 바로 '창조적 파괴'였다. 그는 창조적 파괴라는 혁신적 활동으로 기업이 성장하고 사회가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슘페터 이전 경제학자들은 부의 원천이 희소하거나 가치 있는 자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슘페터의 생각은 달랐다. 불확실한 환경에서 위험 부담을 안고 창조적 파괴활동을 하는 것이 부를 만들어내는 원천이라고 여겼다. 바로 기업가 정신이다. 그 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슘페터는 재조명 받는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처럼 처음에는 아무런 자원도 없었지만, 독특한 아이디어 하나로 엄청난 부를 모은 기업들이 속속 나오면서부터다. 그럼 슘페터가 말하는 혁신이란 무엇일까? 슘페터는 1934년에 쓴 『경제발전의 이론』이란 책에서 '혁신은 새로운 결합'이라고 설명했다. 즉 혁신은 세상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게 아니라, 단지 자원의 결합 방식을 바꾸거나 새롭게 결합해 가치를 높여주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혁신적인 기업으로 애플과 구글을 손꼽는다. 그런데 두 회사 모두, 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이나 새로운 서비스를 선보이진 않았다. 다만 이미 나와 있는 기술과 디자인, 서비스를 재결합하는 데 강점을 갖고 있을 뿐이다. 창조적 파괴는 기업이 갖고 있는 핵심역량이 환경변화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경우, 가차 없이 버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버려야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직관과 열정, 아이폰의 DNA직관은 판단과 추론 같은 과정을 거치지 않고 대상을 직접적으로 인식하는 것인데, 치열한 무한경쟁 시대에 승리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고 약점을 강점으로 바꿔 불리한 상황을 역전시키는 직관의 힘이 필요하다. 잡스는 직관의 달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직접 신기술을 사용해보고 자신의 생각을 엔지니어에게 피드백으로 전달한다. 이 과정에서 엔지니어들이 기술적으로 힘들다고 하면 불같이 화를 내고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도록 강요한다. 또한 잡스는 신제품을 준비할 때 심층포커스그룹인터뷰(FGI)를 안 하기로 유명하다.
FGI는 기업이 타깃고객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아 기탄없이 의견을 말하게 하는 시장조사의 한 형태인데, 이를 통해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원하는지를 확인한 뒤 제품에 반영하게 된다. 소비자의 마음을 뒤흔들 만한 새로운 제품을 만들려면 사람들이 그때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제품을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FGI를 통해서는 새로운 제품을 내놓기 힘들다고 잡스는 생각한다. 기존에 나와 있는 제품보다 성능이 개선된 제품이야 내놓을 수 있겠지만, 소비자가 '와' 하며 놀랄 만한 제품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잡스의 직관력이 위력을 발휘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엔지니어가 아니란 점이다. 만약 그가 엔지니어였다면 창의적인 제품을 떠올리더라도 설계의 어려움을 들어 스스로 포기했을 것이다. 비즈니스계를 흔든 창의적인 제품은 이 같은 직관에서 나왔다.
경험과 감동, 아이폰의 경영 전략애플에는 패키지부터 타 제품과 비교할 수 없는 멋이 있다. 잡스는 이처럼 제품 그 자체만큼이나 포장상자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상자에서 자신이 구입한 제품을 꺼내면서 처음의 떨림과 흥분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다. 다른 말로 풀면, 바로 '고객 감동'이다. 아이폰 상자에는 검은색 바탕에 실물 크기의 아이폰 사진이 인쇄돼 있다. 상단엔 아이폰 모양을 볼륨으로 넣었고, 옆면으로 빙 둘러서 애플의 사과 로고가 찍혀 있다. 상자 뚜껑을 열면 군더더기 없이 박스가 꽉 차게 아이폰이 보인다. 박스 자체가 아이폰 같다는 느낌을 준다. 잡스가 예술가처럼 탐미 그 자체로 만족한 것은 아니다. 그가 아름다움을 추구한 건, 바로 고객 감동을 위해서였다.
잡스는 애플의 최대 고객인 젊은이들의 욕구를 직접 발견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모이는 클럽에 MP3 플레이어의 이어폰을 귀에 꽂고 나타나 그들과 몸을 부비며 춤을 추기도 한다. 고객의 욕구를 직접 읽어내고 고객에게 감동을 선사할 혁신 제품을 구상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애플이 고객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CEO인 잡스의 인생도 한몫한다. 성공과 실패 뒤 다시 재기하는 인생은 감동스토리를 만들어낸다. 그의 인생을 아는 사람은 쉽게 감정이 이입된다. 그리고 그의 성공을 바라는 팬이 된다. 잡스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애플로 전이되는 셈이다. 아이폰은 미국 최대 통신회사인 AT&T와 독점 계약을 맺으면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하지만 AT&T의 1위 이미지는 그다지 높지 않았다. 새 기술이나 서비스로 업계를 이끌어온 회사는 버라이존이었다. 그래서 AT&T는 아이폰으로 혁신이라는 이미지를 높여 젊은이들에게 다가서고 싶었다. 또 그래서 AT&T는 애플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주는 굴욕에 가까운 협상을 벌인 끝에 아이폰 서비스를 할 수 있었다. 애플은 업계 1위보다 2~3위와 주로 손을 잡았다. 우리나라에서 손잡은 KT도 SK텔레콤에 이은 2위 이동 통신회사였다. 일본의 소프트뱅크(3위), 영국의 O2(2위), 중국의 차이나유니콤(2위)이 그랬다. 1위 통신회사들이 아이폰을 외면한 것은 아이폰이 갑과 을의 '권력관계'에 도전하는 제품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아이폰이 나오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휴대폰 시장은 기기를 사들이는 통신회사가 '갑', 이를 파는 제조회사가 '을'의 관계였다. 통신회사-대형 딜러-판매점으로 이어지는 공급체인 속에서 통신회사가 어느 기기를 얼마만큼 사들일 것인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동안 휴대폰 제조회사는 통신회사의 눈치를 보기에 바빴다. 그런데 아이폰이 혜성처럼 나타나 이 같은 권력구조를 깨버렸다. 게임의 룰을 바꿔 버린 셈이다. 붕괴 그 자체로 끝나지 않았다. 고객 편익으로 이어졌다. 첫 번째 카드는 공짜 인터넷이었다. 아이폰으로 무선인터넷에 접속해 이메일을 쓰거나 인터넷 검색을 하더라도 일정한도 내에서 돈을 낼 필요가 없게 되었다. 물론 아이폰 이전 휴대폰으로도 이메일과 인터넷 검색을 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요금폭탄을 각오해야 쓸 수 있었다. 애플의 정액제 서비스는 고객들이 마음껏 인터넷을 즐기도록 해주었지만 통신회사에겐 큰 타격이었다.
두 번째 카드는 애플이 만든 앱스토어였는데, 아이폰은 콘텐츠 수익도 통신회사에서 빼앗아버렸다. 애플은 앱스토어 수익구조를 개발자와 애플이 7:3으로 나누어 갖는 정책을 만들었다. 통신회사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철저하게 '왕따'를 당한 셈이 됐다. 그런데 아이폰이 게임의 룰을 파괴할 수 있었던 건, 고객 지향 마인드 덕분이었다. 물론 제조 회사도 고객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통신회사와의 관계 때문에 스스로 규제를 했다. 그런데 이제 통신회사들도 아이폰의 후광효과를 누리고 있다. 2010년 7월 시장 조사업체 양키그룹에 따르면, AT&T 가입자의 만족도가 68%에 그쳤지만, 아이폰 이용자의 73%가 AT&T의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론과 이용자 등이 아이폰의 기술적인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왔던 것을 고려하면 놀라운 조사결과라는 평가다.
Part 2 렉서스에 숨어 있는 분석력의 법칙
분석, 렉서스의 DNA도요타는 렉서스를 만들기에 앞서 치밀한 분석을 통해 타깃 고객을 설정했는데, 1차 타깃은 바로 보보스였다. 보보스란 도시에 사는 2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의 부유층으로, 부자란 뜻의 부르주아와 어떤 보수적 가치에도 얽매이지 않는다는 의미의 보헤미안이 합쳐진 말이다. 1985년 5월 도요타 본사의 제품기획실, 상품기획실, 디자인실 등의 부서에 뽑힌 20여 명의 외인구단이 한 팀으로 꾸려졌다. 렉서스 기획팀이었다. 이들은 미국 뉴욕, 마이애미, 덴버, 휴스턴,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등 미국 동서를 횡단하며 고객 의견을 들었다.
먼저 이들은 고급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심층 포커스그룹 인터뷰를 벌였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은 세 가지 부류로 확연히 갈라졌다. 첫째 부류는 나이가 많고 고등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로 주로 캐딜락과 링컨 같은 미국차를 선호했다. 두 번째 부류는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로 BMW를 타고 다니며, 고급차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과시했다. 이른바 여피족이었다. 마지막 부류는 주로 벤츠를 타고 있었지만,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것보다 차의 신뢰성과 유지문제에 더 관심을 보였고, 고급차라면 고장이 적고 보수가 쉬우며 훌륭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들이 바로 보보스였다. 팀원들을 도요타가 준비하는 고급차를 구입하게 될 사람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까를 면밀하게 조사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인류학자와 심리학자에게도 찾아가 미국 고객이 고급차를 살 때 판단하는 근거가 무엇인지를 묻기까지 했다. 이런 치밀한 분석 덕분에 처음에는 막연하기만 했던 고급차 이미지의 틀이 잡혀나갔다. 세련된 취향과 절제된 고급스러움이었다.
도요타의 렉서스 개발 전략에는 이 같은 고객 분석이 녹아져 있다. 렉서스팀은 기존 고급차의 단점으로 지적된 소리와 진동을 최대한 줄여나가기로 했다. 또 딜러와 서비스 센터에서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로 한 것은 물론이다. 여기에 전통에 얽매이지 않고 물질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차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기로 했다. 가격 정책에서도 성능은 6만 달러의 벤츠 이상으로 높지만 가격은 3만 3천 달러로, 캐딜락이나 링컨보다 1만 달러 정도 비싼 고급차를 만들기로 했다.
렉서스 개발팀은 디테일에 승부를 걸어 손잡이 하나에도 신경을 썼다. 흔히 자동차 뒷자석에 앉은 사람은 차가 흔들거릴 때 창문 위의 손잡이를 잡곤 하는데, 스프링 힘으로 달라붙어 있는 손잡이는 보통 손으로 잡으면 내려오고, 놓으면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간다. 렉서스팀은 손잡이에 진동에너지를 흡수해주는 댐퍼를 장착해 손잡이가 '탁' 하며 바로 올라가지 않고 천천히 제 위치로 돌아가게 만들었다. 컵 받침대에도 손길을 미쳤다. 손가락을 살짝 갖다 대기만 해도 우아하게 미끄러져 나오도록 디자인했다. 오디오, 에어컨 스위치도 부드러운 느낌으로 작동하게 만들었다. 렉서스팀은 미국 사람들이 부드러운 승차감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선, 렉서스의 전략렉서스의 정숙함과 친절한 서비스가 맞물려 판매는 순풍에 돛을 단 듯 순조로웠다. 그런데 렉서스가 미국에서 판매된 지 겨우 두 달 만에 큰 사건이 터진다. 샌디에이고의 한 딜러가 미국 렉서스 법인에 현장 보고서를 보냈다. "렉서스 LS400의 크루즈 컨트롤 스위치가 오작동을 일으켜 오버브라이브가 작동합니다. 그래서 시승한 고객이 브레이크를 꽉 밟았으나 앞으로 계속 돌진한 사례가 접수됐습니다." 보고서를 접수한 렉서스 미국 법인은 패닉 상태가 됐다. 브랜드 가치가 추락하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일단 렉서스 미국 법인은 발 빠르게 대응했다.
즉시 일본 나고야 본사에 문제가 일어난 크루즈 컨트롤 스위치를 보내 분석을 요청했다. 도요타 본사는 직원들에게 크루즈 스위치가 일부러 오작동 하도록 만들어보라고 지시했다. 직원들은 쉽게 오작동을 일으키게 만들 수 있었고, 브레이크를 밟아도 계속 나아간다는 실험결과가 나왔다. 결과적으로 크루즈 컨트롤 시스템의 작동 스위치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결함이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쉬쉬' 하며 그냥 넘길 수도 있었다. 나오자마자 리콜에 들어간다면, 그동안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도요타는 달랐다. 도요타 본사는 그동안 판매한 모든 차를 리콜해주기로 결정하고, 렉서스 리콜을 전격 발표했다. 미국 정부에도 리콜을 통보했다. 그리고 도요타는 크리스마스 시즌 때 사람들이 차를 많이 이용한다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렉서스는 모두 일본에서 만들었는데, 도요타는 리콜 부품을 크리스마스 이전까지 모두 교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20여 일 만에 리콜을 모두 마쳐야 했기 때문에 일본에서 생산된 제품이 매일 미국으로 공수됐다. 리콜에 따른 고객의 불편함도 보상해주었다. 고객들이 요구하면 렉서스 직원들은 렌터카를 무료로 대여해주었다. 또 직원이 직접 고객의 집을 찾아 렉서스를 갖고 온 뒤 부품을 교체해 다시 고객에게 배달해 주기도 했다. 리콜을 받는 모든 차는 세차는 물론 왁스칠 서비스도 받았다. 이렇게 하여 기한 안에 95%의 렉서스가 새로운 부품으로 리콜받았는데, 렉서스 리콜 사태는 렉서스를 '레몬에서 레모네이드로' 만들었다. 미국에선 레몬은 형편없는 것, 고물차, 결함이 있는 차를 가리키는데, 도요타는 레몬으로 떨어질 수 있었던 렉서스를 고객에게 신호보내기 형태인 리콜을 통해 신뢰추락을 막을 수 있었다. 아니 리콜을 통해 오히려 브랜드 평판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20년 뒤 도요타는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갈림길, 렉서스의 신화2009년 8월 28일. 응급신고전화 911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공포에 질린 남자의 목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흘렀다. "우리는 렉서스에 타고 있어요……. 125번 도로에서 북쪽으로 가고 있는데 액셀이 말을 안 들어요. 브레이크가 안 먹어요……. 교차로에 들어서고 있어요……. 멈춰, 멈춰. 제발, 제발……." 갑자기 비명이 난 뒤, '꽝' 하는 충돌 소리와 함께 전화는 끊어졌다.
캘리포니아 주 고속도로 순찰대원인 마크 세일러는 비번을 맞아 가족들과 함께 2009년 형 렉서스 'ES350'을 타고 샌디에이고 인근 125번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차 안에는 그의 부인과 딸, 처남이 타고 있었다. 시속 50마일(80Km)로 주행하다 가속페달 결함으로 속도가 시속 120마일(약 190km)까지 치솟으면서, 가속페달을 밟지 않았는데도 시속 193km로 돌진했고 브레이크도 듣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남자의 목소리는 세일러의 처남이었다. 차에 탑승했던 4명은 모두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