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플레이어
매슈 사이드 지음 | 행성B웨이브
베스트 플레이어
매슈 사이드 지음
행성B웨이브 / 2010년 11월 / 363쪽 / 15,000원
성장형 사고방식과 고정형 사고방식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성장형 사고방식
재능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에서 보면, 탁월함을 결정짓는 요소는 훈련이 아니라 선천적인 능력이다. 이런 발상은 사람들의 생각에 서서히 해를 끼쳐서 노력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의욕을 빼앗아버린다. 뛰어난 유전자를 지닌 사람들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데, 무엇 때문에 시간과 힘을 허비하겠는가? 스탠퍼드 대학교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캐럴 드웩은 1978년에 이러한 고정관념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했다.
· 탁월함을 결정짓는 요소가 재능이라는 발상은 얼마나 해를 끼칠까?
· 재능이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은 모든 행동에 영향을 미칠까?
· 재능이 가장 중요하다는 믿음에도 불구하고 성장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도록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해결하기 위한 드웩의 실험은 간단했다. 그녀는 동료 교수 한 명과 함께 초등학교 5학년생과 6학년생 330명을 선정해 질문지를 배포했다. 재능, 특히 지능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학생들은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졌다. 한 그룹은 지능이 유전으로 결정된다고 믿는 아이들, 즉 재능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에 동의하는 '고정형 사고방식'을 지닌 학생들이며, 다른 한 그룹은 노력을 통해서 지능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성장형 사고방식'을 지닌 학생들이었다. 드웩은 모든 학생에게 열 두 문제가 실린 질문지를 나눠줬다. 앞의 여덟 문제는 상당히 쉬웠지만 그 다음에 나오는 네 문제는 엄청나게 어려웠다. 모든 학생이 문제를 푸느라 애를 썼지만 두 그룹 사이에는 상당히 다른 두 개의 패턴이 나타났다.
고정형 사고방식을 지닌 그룹의 아이들은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아주 빠르게 자신의 능력을 폄하하며 실패한 이유를 지능 탓으로 돌렸다. 그 학생들은 "난 별로 영리하지 못한가 봐요"라거나 "항상 기억력이 안 좋았어요"라거나 "이런 거 잘 못해요"라는 식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 학생들은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기 전까지만 해도 계속해서 정답을 맞혔다. 이들의 지능과 기억력은 아주 양호했다. 게다가 테스트를 하는 동안 이 학생들은 어느 모로 보나 '성장형 사고방식' 그룹의 학생들과 실력이 대등했다. 그런데도 어려운 문제가 시작되자마자 자신의 지능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린 것이다. 이 학생들 중 70퍼센트는 문제를 푸는 전략이 현저히 떨어졌으며 절반 이상은 완전히 비효율적인 전략에 빠졌다. 한 마디로 이 그룹에 속한 대부분의 학생은 효율적인 전략을 포기해버리거나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면 성장형 사고방식을 지닌 학생들은 어땠을까? 다음은 드웩의 설명이다.
"고정형 사고방식 그룹의 학생들은 자신의 실패를 지능 탓으로 돌렸다. 그렇다면 성장형 사고방식 그룹의 학생들은 무엇을 탓했을까? 놀랍게도 이들은 아무것도 탓하지 않았다. 이들은 실패한 이유에 집중하지 않았다. 사실 이들은 자신들이 실패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 듯했다. 이 그룹의 학생들이 문제를 푸는 과정은 고정형 사고방식 그룹의 학생들과 달랐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동안에도 80퍼센트 이상이 긍정적인 생각을 했으며 문제를 푸는 전략의 질도 그대로 유지되거나 향상됐다. 실제로 이 그룹의 25퍼센트가 어려운 문제들을 푸는 과정에서 새롭고 정교한 전략을 스스로 깨우쳤다. 일부 학생은 자신의 수준보다 훨씬 어려운 문제까지도 풀었다. 이 학생들은 앞에 나온 쉬운 문제를 풀 때는 고정형 사고방식 그룹의 학생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지만 마지막에는 훨씬 높은 성취도를 보였다."
이는 대단히 놀라운 결과다. 두 그룹의 활동에서 드러난 확연한 차이는 동기나 재능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실제로 드웩은 각자가 원하는 선물을 주겠다는 약속을 함으로써 모든 학생들의 동기를 동일하게 유발시켰다. 결과의 차이는 동기나 재능이 아닌 전혀 다른 이유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것은 바로 학생들 각자의 신념, 즉 사고방식이었다. 노력을 통해서 능력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은 학생들은 어려운 문제에 부딪쳐서도 끈질기게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전략을 향상시켰다. 반면 재능에 대한 통념으로 생각이 고정된 학생들은 마음이 약해지는 상태로 퇴보했다.
이토록 두드러진 차이점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두 그룹의 머릿속에서 오가는 생각을 한번 살펴보자. 두 그룹 모두 지능을 측정하는 테스트라는 사실을 이해했다. 그러나 고정형 사고방식을 지닌 학생들에게는 또 다른 고정관념이 있었다. 그 테스트가 미래의 지능까지도 측정한다는 생각이다. 이 학생들은 지능이 선천적인 재능이라고 믿었다. 이들에게 테스트 결과는 발달하는 능력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기본 지능을 보여주는 척도였다. 그러니 이 그룹의 학생들이 실패를 절망적으로 받아들인 건 당연하다. 이런 사고방식은 창조성을 고갈시키고 미래의 성과를 저해한다. 이들은 심지어 도전이 유용한 상황에서조차 도전을 피하려고 할 것이 분명하다.
"성장형 사고방식을 지니면 주어진 패가 안 좋다고 걱정하거나 그것이 최고의 패라고 자신이나 남에게 설득시킬 필요를 못 느낀다. 손에 쥔 패가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타고난 재능, 태도, 관심, 기질에 따라 방법은 다르겠지만 누구나 노력과 경험을 통해 변하고 성장할 수 있다."
이 말은 성장형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실패를 성장의 도구이자 증거로 인식한다는 뜻이다. 이상하게 여겨질지는 모르지만, 이는 베스트 플레이어들의 신념체계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사고방식이다. 마이클 조던의 나이키 광고를 기억하는가?
"나는 9,000개 이상의 슛을 실패했다.
거의 300개의 게임에서 패배했다.
승리에 쐐기를 박을 26개의 슛을 놓쳤다.
나는 아주 많은 실패를 거듭한 삶을 살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광고를 보고 놀라워했다. 그러나 성장형 사고방식의 산 증인인 조던에게 이 말은 심오하며 절실한 진리, 즉 역대 최고의 농구선수가 되려면 실패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대변해준 표현이다. 마이클 조던은 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정신력과 심장이 내가 지난 어떤 신체적 강점보다도 강하다는 말을 늘 해왔고 이를 끝까지 믿었다."
베스트 플레이어로 가는 길이 실패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다. 성장형 사고방식은 베스트 플레이어가 지니기에 적합한 태도이며, 고정형 사고방식은 평범하게 살기에나 제격이다. 그러므로 당신이 선택한 목표가 뛰어난 경지를 이루어 베스트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라면 성장형 사고방식을 지니는 게 좋다. 고정형 사고방식에서 발화된 불꽃은 실패할 기색이 보이면 바로 꺼져버린다. 자, 이제 당신 자신이나 자녀 또는 제자의 사고방식을 통제할 수 있을까? 한때 당신을 사로잡았던 재능에 대한 통념을 버릴 수 있을까?
성공 뒤에 숨겨진 논리성공의 원인에 대한 탐색
나는 1995년 1월에 영국 최고의 탁구 선수라는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겨우 스물셋이라는 나이에 갑자기 각종 학교에 정기적으로 초청을 받는 인기 강사가 되었다. 나는 강연회에서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했으며 종종 금메달을 들고 가 어린 학생들을 감탄시켰다. 탁구는 영국에서 상당히 인기 있는 스포츠다. 탁구를 즐기는 인구가 240만 명에 달하고 탁구 연맹의 유료 회원 또한 3만 명인데다 수천 개나 되는 팀이 있으며 실력이 뛰어난 인재도 아주 많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최고의 선수로 부각됐던 원인은 무엇일까? 나는 고심 끝에 몇 가지 특성을 찾아냈다. 그것은 내가 지닌 속도, 술책, 배짱, 정신력, 적응력, 민첩성, 반사신경 덕분이었다.
나는 이런 기술이 풍부한 덕에 정상의 자리에 오르려고 열망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제치고 성공했다. 때로는 별 볼 일 없는 내가 그런 일을 해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다. 게다가 내가 영국 남동부에 있는 평범한 소도시의 교외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모든 성과가 한층 놀라울 뿐이다.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었다. 특별히 유리한 점도 없었다. 연줄도 없었다. 나의 승리는 나만의 개인적인 특성이 얻어낸 승리였다. 말하자면 성공을 향한 긴 여정, 역경을 딛고 일어선 승리였다. 정상에 오른 많은 사람이 과거의 경험을 이런 식으로 말한다. 우리는 이런 종류의 원대한 개인주의를 권장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게다가 이런 이야기는 영감을 주고 고무적인데다 흥미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과연 진실일까? 내가 탁구를 하게 된 사연을 소개해보겠다.
1. 탁구대: 1978년 부모님은 탁구대를 사서 널따란 차고에 들여놓기로 하셨다. 탁구를 치지 않은 부모님이 당시에 탁구대를 구입했던 이유는 알 수가 없지만 당시 내 고향에서 내 또래 중에 경기용 대형 탁구대가 있는 집은 드물었다. 더구나 그런 탁구대를 보관할 정도의 큰 차고가 있는 집도 거의 없었다. 그러니 집에 탁구대가 있었다는 점은 내게 첫 번째 행운이었다.
2. 우리 형: 두 번째 행운은 나 못지않게 탁구에 푹 빠진 앤드류라는 형이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방과 후면 차고에 틀어박혀 몇 시간씩 탁구를 쳤다. 결투를 벌였고 서로의 반사신경을 시험했으며 새로운 스핀을 구사했다. 친구들을 불러 함께 치기도 했다. 친구들은 우리 형제의 실력이 향상 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형과 나는 미처 깨닫지 못한 사이에 수천 시간에 달하는 연습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것도 아주 즐겁게 말이다.
3. 피터 차터스: 피터 차터스는 우리 동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차터스 선생님은 광적일 정도로 스포츠에 열광했다. 선생님은 방과 후 운동클럽의 코치를 맡았고 학교 축구팀의 감독이었으며 학교 운동회의 주관자였다. 그러나 차터스 선생님이 무엇보다 좋아했던 종목은 탁구였다. 선생님은 전국 최고의 탁구 코치였고 영국탁구연합의 고위 인사였다. 차터스 선생님은 탁구에 재능 있는 인재를 발굴해서 탁구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올드링턴 초등학교 전교생이 선생님에게 테스트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발굴한 잠재성이 있는 학생들에게 지역 탁구클럽인 오메가에서 기술을 갈고닦으라고 권유했다. 1980년 차터스 선생님은 나와 앤드류 형에게 오메가에 가입하라고 권유했다. 마침 우리 실력이 창고 탁구의 수준을 뛰어넘기 시작하던 참이었다.
4. 오메가: 오메가는 사치스러운 클럽이 아니었다. 우리가 살던 레딩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으며 돌담으로 둘러싸인 오두막 안에 탁구대가 하나 있을 뿐이었다. 겨울에는 추웠고 여름에는 지독하게 더웠다. 그러나 그곳은 영국의 어느 클럽에서도 볼 수 없는 특유의 이점이 있었다. 몇 명 안 되는 회원이지만 24시간 내내 개방이 됐던 것이다. 회원은 각자 오두막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다.
형과 나는 등교 전과 방과 후, 주말과 방학 동안 오두막에서 훈련을 하며 그곳을 최대한 활용했다. 우리 형제의 뒤를 이어 다른 학생들도 클럽에 가입했다. 차터스 선생님이 발굴해서 영입해온 학생들이었다. 1981년에 오메가는 대대적인 선풍을 일으켰다. 올드링턴 초등학교가 자리 잡은 실버데일 로드에서 영국 최고의 선수들이 놀랍도록 많이 배출되는 이변이 일어났던 것이다. 우리 집은 실버데일 로드 119번지였다. 앤드루 형은 영국 역사상 가장 성공한 주니어 선수로 성장했으며, 1986년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그만두기 전까지 전국대회에서 세 번이나 우승했다. 나 역시 영연방 경기대회에서 세 번 우승을 차지했으며 올림픽에서 두 번이나 금메달을 땄다.
올드링턴 초등학교의 바로 맞은편인 실버데일 로드 274번지에는 캐런 위트가 살았다. 캐런은 당대에 가장 뛰어난 여자 선수 중 한 명으로 20여 개가 넘는 각종 대회에서 우승했다. 길모퉁이에는 영국 주니어 챔피언인 지미 스토크스가 살았다. 이외에도 이름을 대자면 끝이 없다. 1980년대의 한 시기에 실버데일 로드라는 하나의 거리에서 배출된 탁구 선수가 전국에서 배출된 선수들보다 많았다. 믿기 어렵겠지만 당시 실버데일 로드는 영국탁구의 원천이자 탁구의 메카였다.
이따금 지구상의 자그마한 지역에서 전 세계 스포츠계를 지배하는 선수가 순간적으로 많이 나오는데, 모스크바의 테니스클럽 스파르타크도 그런 경우다. 이 클럽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2005년과 2007년 사이에 최우수 여자 테니스 선수 20명을 배출했으며 이는 미국 전역에서 배출한 테니스 선수보다 많은 숫자다. 실버데일 로드의 성공 또한 이와 비슷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일어났다. 다시 말해 운동의 모든 재능을 탁구에만 집중시키고, 야심에 찬 선수들을 뛰어난 코치 밑에서 육성시킨 결과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차고에 탁구대가 있었고 나 못지않게 탁구에 열성이었던 형을 둔 터라 올드링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남보다 한 발짝 앞선 행운도 따랐다.
천부적인 재능의 함정
신동은 내적동기를 가진 훈련의 결과로 만들어진다
1997년, 타이거 우즈가 US 마스터스 대회에서 골프 역사상 가장어린 나이로 챔피언을 차지했을 때 많은 전문가가 그를 일컬어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골프 선수'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그의 과거를 자세히 살펴보면 완전히 다른 설명이 나온다. 대단히 의욕이 넘치는 어느 아버지로부터 모든 이야기가 시작된다.
얼 우즈는 전직 야구 선수이자 특전사 출신이었으며, 훈련을 통해서만 뛰어난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믿는 인물이었다. 그는 스스로가 '상상도 할 수 없이 어린 나이'라고 인정한 시기, 즉 아들이 걷거나 말을 하기도 전에 훈련을 시작했다. 동작이 몸에 깊이 배어서 무의식적으로 나올 수 있도록 어린 나이에 연습을 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얼은 타이거가 갓난아기였을 때, 그가 네트에 공을 맞추는 모습을 타이거가 볼 수 있도록 높은 의자에 앉혀 놓고 직접 시범을 보였다. 또한 첫 돌 5일 전인 크리스마스에 골프채를 선물로 줬다. 타이거 우즈는 18개월 때 골프장에 견학을 갔으며, 아직 숫자 5까지 세지도 못하던 어린 시절에 이미 파5와 파4를 알았다.
타이거는 생후 2년 8개월에 벙커 플레이에 익숙해졌고 세 살 때 프리샷 루틴을 개발했다. 곧이어 차를 타고 가야 하는 퍼팅 연습장에서 수업을 받았으며 한 번 가면 몇 시간씩 기술을 갈고 닦았다. 비록 짧은 코스이긴 했지만, 타이거 우즈는 두 살 때 캘리포니아 사이프레스 해군 골프장에서 열린 골프 경기에 처음으로 출전했다. 이때 타이거는 2.5우드로 73미터까지 공을 칠 수 있었으며 36미터에서 정확하게 피치샷을 할 수 있었다. 얼은 타이거가 네 살이 되자 전문 강사를 고용했다. 전문 강사는 대체로 경쟁심을 유발하는 훈련을 했는데, 홀에서 0.9미터 떨어진 지점에 공을 놓고 연속으로 퍼핑을 몇 개나 할 수 있는지 테스트하는 방식이었다. 얼은 타이거가 연속으로 70개를 친 다음에도 만족하지 않았다. 타이거는 열세 살 때 국내 주요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했다.
이른 나이에 성공한 운동선수들의 삶을 살펴보면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된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이스트 런던에 살았던 데이비드 베컴은 근처 공원에 가서 늘 똑같은 자리에서 몇 시간씩 축구공을 찼다. 베컴의 아버지는 아들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말했다. "그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축구에 몰입했습니다. 때로는 내 아들이 운동장에서 산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베컴도 이에 동의했다. "내 성장의 비결은 연습입니다. 인생에서 특별한 목표를 달성하려면 노력하고 노력하고 또 조금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게 내 신조죠."
베컴의 노력은 열네 살 때 결실을 맺었다. 그는 주목을 받았고 세계 최고의 축구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세필드 대학교 스포츠 공학그룹의 책임자 매트 카레이는 베컴의 트레이드 마크인 스핀킥에 대해 연구를 한 적이 있다. 그는 베컴의 스핀킥을 일컬어 언뜻 보면 아주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히 정교한 기술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