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심리학
가토 다이조 지음 | 나무생각
인생의 무게를 가볍게 하는 심리학
가토 다이조 지음
나무생각 / 2010년 11월 / 232쪽 / 12,000원제1장 인생의 짐은 우리를 행복으로 이끈다
인생의 짐을 짊어져야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브라우닝의 시가 있다.
힘차게 일어서라, 그리고 부담을 우습게 여겨라.
끝없이 배워라, 번민을 두려워 마라.
당당히 맞서라, 고민을 피하지 마라!
인생의 짐을 짊어지지 않고 도망치면 당장은 홀가분할지라도 점점 불안해진다. 존재의 의미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사람은 인생의 다양한 짐을 짊어져야 비로소 자기 존재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흔히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를 알아차려라"라는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대충대충 안이한 일상을 보내면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라는 자신감을 얻긴 어렵다. 인생의 짐을 짊어져야 비로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혹독한 현실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며 힘을 키워 자신감을 얻었기에 하루하루의 삶에 안심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의 짐을 짊어짐으로써 비로소 자기가 살아 있는 증거를 얻는다.
죽는 순간에 '이 세상에 태어나길 잘했다, 그동안 나는 잘 살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인생의 짐 덕분이다. 인생의 짐에서 도망친 사람은 마지막 순간, '나는 잘 살았다, 잘 해냈다'라고 느낄 수는 없을 것이다. 자기 인생을 돌아볼 때 '아, 그 시절에는 잘 견뎌냈어'라고 뿌듯해 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마당히 짊어져야 할 짐으로부터 도망친 사람은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 텅 비어 있지 않을까. 나이가 들수록 삶이 고뇌로 가득 찬다. 사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외로움이나 공허함, 무료함을 갖게 하고 사람들에 대한 불만과 원망 등의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인생의 짐에서 도망치는 것은 끊임없이 빚을 내는 일과 같다. 대충대충 살아가는 안이한 삶의 방식은 나이가 들수록 빚이 늘어나는 것이다. 당장 편하게 살고자 한다면 이자가 아무리 높아도 빚을 내면 된다. 그러나 장기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 순간을 즐기는 빚은 고통을 키워가는 일일 뿐이다. 자기 존재가 불확실한 사람은 그러한 마음의 빚을 계속 쌓아온 사람이다. 빚을 갚기 위해 또다시 빚을 내고, 결국은 상환 능력을 넘겨버린 상태가 바로 이런 고뇌의 상태인 셈이다.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나태함에 젖어 마음의 빚 지독에 빠진 채 "이제 더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고 말하며 후회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남에게 미루고 도망쳤다. 연로한 부모 공양을 형제자매에게 떠맡기고 도망쳐 버렸다. 아이를 키우는 일도 부모에게 미루고 자기는 편하게 삶을 즐겼다. 가정에서 담당해야 할 교육을 학교나 사회에 떠넘겼다. 자식 교육의 실패를 학교 교육 책임으로 돌리고 학교 선생님을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잘 안 풀리는 일은 모두 사회 탓으로 돌리고, "이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부르짖었다. 그리고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며 손을 놓아버린다.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만 친구로 삼는다.
그런 뻔뻔하고 무책임한 태도에 대한 청구서를 나이가 들어 받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이 바로 '이제 더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다'는 상태를 초래한다. 회사나 친척 모임에서는 '몸이 안 좋다'는 핑계로 자기가 할 일을 남에게 떠넘기고 도망치고 또 도망치고 오로지 도망만 치며 살아간다. 어쨌거나 싫은 일은 모두 피하며 살아간다.
자기가 내야 할 돈도 "지금은 사정이 어려워서"라느니 적당한 핑계를 대고 남이 대신 내게 만든다. 자기가 직접 해야 하는 꺼내기 어려운 말을 남이 대신하게 만들어놓고 도망친다.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다행이다,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득을 봤다'며 혼자 싱글벙글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때마다 마음의 빚을 쌓아온 셈이다. '득을 봤다, 잘 했다'고 생각하지만, 나중에 돌이켜보면 더 큰 손해를 본 것이다.
성실한 사람은 남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결코 돌려받기를 바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저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며 가망 없다고 판단될 때 단념해 버리기도 한다. 할 만큼 했을 때는 확실하게 마음을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약삭빠른 사람은 자기에게 묵묵히 최선을 다해 주는 사람을 보며 '잘 풀리는군, 이득을 봤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은 바로 그 순간에 성실한 친구는 약삭빠른 사람을 단념한다.
어떤 이는 상대방의 문제를 해결해 줄 마음도 없으면서 마치 해결해 줄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성실하고 좋은 사람'을 연기하며 살아간다. 대단한 일을 하지도 않으면서 자기가 한 일은 굉장한 것인 양 남에게 떠들어댄다. 그런 식으로 어릴 때부터 줄곧 인생의 짐에서 도망만 친 사람들은 결국 어른이 되어 빚 지옥에 빠진다. 빚은 이자에 이자를 더해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그런 생활 태도가 나이를 먹은 후에는 고뇌로 돌아온다. 불행은 어느 날 난데없이 찾아오지 않는다. 하루하루 일상생활에서 불행의 씨앗을 심어온 사람은 결국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감을 가질 수 없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이제 와서 자신감을 원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 바로 내가 태어난 거야
어느 날 인생의 짐 때문에 괴로워하며 숲속을 거닐다가 불현 듯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바로 내가 태어난 거야.'
'바로 내가 태어난 거야'라는 말은 어떤 의미일까. 다시 말하면 나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일한 인간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감정적으로 이해했다는 뜻이다. 흔히 '넘버 원이 아니라 온리 원'이라곤 한다. 그러나 온리 원이라는 느낌은 인생의 짐을 정당하게 짊어졌을 때 생겨나는 느낌으로 짐에서 도망치고 그렇게 말해본들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유일한 존재로서의 자긍심을 생겨나지 않는다.
자기 확실성은 인생의 짐을 짊어지기 때문에 생겨난다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실감했다. 그리고 그때 짐으로부터 도망쳤다면, 언뜻 보기에는 편안한 삼을 사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자기 확실성은 얻지 못했을 것임을 분명히 깨달았다. 다시 말해 인생의 짐은 불필요하거나 나쁜 것이 아니고 그것을 좋게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삶의 확실성을 부여해주는 것이다. 각오하고 받아들이면 모든 일은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인생의 짐에 대한 태도를 바꾸고, 인생의 짐에 대한 해석을 바꾸면 인생이 달라진다.
자기라는 존재가 불확실하게 느껴지는 사람은 대부분 인생의 짐으로부터 도망친 사람이다. 혹은 늘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이다. 마땅히 짊어져야 할 짐을 남에게 떠넘겼기 때문에 자기라는 존재가 불확실하다.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 짐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했기 때문에 삶이 불확실하고 태도가 부자연스러워진다. 자신감이 없고 매사에 태도가 부자연스러운 사람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대부분은 적당한 말로 자기 책임에서 도망친 사람들이다.
짊어져야 할 인생의 짐이나 반드시 부딪쳐야 할 곤란한 상황을 나쁘게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인생의 짐이나 곤란한 상황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의미가 생겨난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해결해 나가는 것이 살아가는 기쁨이 되는 셈이다. 인생의 짐이나 곤란에 정정당당하게 맞서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 확실성을 얻는다. 성취감이란 바로 그런 어려움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수용하고 해결했을 때 돌아오는 선물이다. 숲을 거닐면서 느꼈던 '바로 내가 태어난 거야'라는 감정은 남과는 다른 나,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나'라는 존재를 알아차렸다는 뜻이다.
머리로 이해한 게 아니라 감정이 그렇게 이해한 것이다. 그것은 신기한 체험이었다. 그 전까지는 나에게 부족하거나 모자란 부분들이 늘 신경 쓰였다. 세월이 지나면서 약점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열등감은 점차 사라졌지만, 남들이 나의 부족하거나 모자란 부분을 지적하면 여전히 기분이 나빴다. 나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내가 자란 환경' 탓으로 돌렸다. 최소한의 애정과 관심을 받고 컸더라면 이런 신경증 경향은 없었을 거라며 '내가 자란 환경'을 원망했다.
나의 유아적 소망이 채워지지 않은 탓에 내가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었는지 알았을 때, '내가 자란 환경'을 책망했다. 나의 비뚤어진 마음에서 비롯되는 고통을 맛볼 때마다 '내가 자란 환경'을 한탄했다. 그러나 '그래, 바로 내가 태어난 거야'라고 느꼈을 때 그 모든 것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런 환경 속에서 태어난 사람이 다름 아닌 바로 나였던 것이다. 그제야 나의 감정이 나의 숙명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바로 이런 내가 태어났는데도 내가 아니고자' 했을 때 나는 괴로웠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내 고통의 원인으로 '내가 자라난 환경'을 탓했던 마음이 깨끗이 사라졌다. '내가 자라난 환경'을 나의 운명으로 나의 감정이 받아들이고 이해한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부모에게는 사랑받지 못했지만, 신에게는 사랑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을 탓하는 게 아니다. 부모님이 자라난 환경을 생각하면, 나의 부모가 자식에게 성숙한 사랑을 주기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 그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제2장 인생의 짐 당당하게 받아들인다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고민도 해결할 수 없다
중년의 위기는 잘못 보낸 젊은 시절의 청구서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찬성하지만, 그것은 꼭 중년에 한정되는 말은 아니다. 젊은 시절에 결혼상대를 잘못 선택한다. 젊은 시절에 직업을 잘못 선택한다. 그것이 중년이 되면 감당하기 버거운 짐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사치스런 여자와 결혼한 남자도 있을 것이다.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와 결혼한 여자도 있을 것이다. 생활비도 안 주고 놀기만 하는 남자와 결혼한 여자도 있을 것이다. 사치스런 여자와 결혼한 탓에 자식도 엇나가 고민하는 아버지도 있을 것이다.
그 짐을 감당하기 버거워 노이로제에 걸리는 남자도 있다. 노이로제에 걸린 중년 남성은 자기 인생을 원망하고, 아내를 원망하고, 자식을 원망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젊은 시절에 그 무거운 짐의 씨앗을 뿌린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이제 와서 다른 사람의 행복만 시기한다면, 그 사람은 평생 행복해질 수 없다. 현재 자신을 짓누르는 고민이 사실은 이미 젊은 시절부터 자기가 선택한 것이라는 반성이 없다면 앞으로도 절대 행복해질 수 없다. 젊은 시절에 뿌린 고민의 씨앗이 지금에야 열매를 맺은 것이다. 그 열매를 수확해야 할 시기이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각오를 다니고 그것을 수확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안이한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행복해질 수 없다. 고민이란 삶의 방식에 따른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 고민을 해결하려 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고민을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자기가 짊어져야 할 짐에서 더 이상 도망치지 말자.' 또는 '이제 더 이상 남이 져야 할 지을 대신 떠맡지 말자.' 이렇게 삶의 방식을 바꿔야만 행복이 찾아온다. 현재 닥친 괴로움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자.
행복한 사람은 ‘당장 편한 쪽’을 선택하지 않는다
자신감 있는 사람은 "보증을 설 수 없다고? 의리 없는 녀석 같으니!"라는 상대의 감정적 공갈이 두렵지 않다. "자네가 이렇게 의리 없는 놈인 줄 몰랐다"는 감정적 공갈에 꺾이지도 않는다.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 하는 나약함이 그 후의 인생을 비극으로 몰고 간다.
현재의 고민은 이미 과거 어느 시기에 뿌려놓은 씨앗에서 시작되었다. 씨앗을 뿌린 후 그것을 하루하루 큰 고통으로 키워온 셈이다. 그것을 반성하지 않는 한, 고통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은 고통뿐이었다고 남을 원망하며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이 지금 좋아 보이는 이유는 지금 현재 좋을 수 있도록 몇 십 년 전부터 뭔가를 해왔기 때문이다. 몇 십 년간 그렇게 노력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지금 마음이 편한 사람은 과거에 허세를 부리며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는 행동 따위는 하지 않았다.
불행한 인생과 행복한 인생을 나누는 기준은 의외로 간단하다. 팔방미인처럼 누구에게나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하는 사람은 거의 대부분 비참한 인생을 초래한다. 그에 반해 무리하면서까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려 애쓰지 않는 사람은 비교적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다. 불행한 사람은 생활의 규모를 축소하지 않고 빚에 손을 대는 생활을 해온 것이다. 당장은 편하지만, 점점 고통스러워진다.
사람들과의 교제도 마찬가지다. 당장 편한 사람만 사귄다. 듣기 좋은 겉치레 말만 하는 사람은 길게 보면 해가 된다. 그리고 어느새 자신의 주위에 진심을 가진 사람은 사라지고 없다. 고민에 빠진 사람은 대체로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
모든 걸 그때그때 당장 편한 쪽만 선택해 버리기 때문에 쏜살같이 지옥으로 향하는 길로 돌진해 버리는 셈이다. 행복해지는 사람은 당장 편한 쪽을 선택하지 않는다. '좋은 얼굴'만 보이려 노력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도망치지 않는다. 어떻게든 해결하려 든다. 그런 삶의 방식이 차츰 쌓여서 행복해지는 것이다. 불행한 사람은 당장 편한 쪽을 선택한다. '좋은 얼굴'만 보이려고 애쓴다. 문제가 생기면 도망친다.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그런 삶의 방식이 쌓여서 불행해지는 것이다.
제3장 인생의 짐에 눌리지 않는 지혜와 용기
마음가짐에 따라 인생의 짐은 가벼워질 수 있다
성가신 일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면 누구라도 그 짐을 내던져버리고 싶다. 이제 그만 각박한 그 현실에서 증발해 버리고 싶어진다. 업무 부담, 무모 공양, 생활의 무게, 가족의 굴레, 육아 부담 등 세어보자면 끝이 없을 지경이다. "인생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먼 길을 가는 것가 같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말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짐이 너무 많아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그리고 세상에는 실제로 도망치는 사람이 많다. 그런 짐들 때문에 병에 걸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그 짐들을 기꺼이 다 짊어지는 사람도 많다는 것이다. 마음가짐에 따라 병이 나느냐 건강해지느냐가 결정된다고 하면 조금 지나친 표현이겠지만, 마음가짐이 건강이나 병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다. 인생의 짐에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그 짐 자체와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하다.
스탠포드대학 의학부의 케네스 펠레셔 박사는 논문을 통해 "기분, 성격 특성, 대처 방식, 억압된 분노, 절망감, 심리적 약점, 자기 방어적 태도 등 여러 심리적 요인이 모두 스트레스 대처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심리적 요인이 스트레스가 면역계에 미치는 충격을 완화시키는 일도 가능할지 모른다"고 서술하고 있다. 다시 말해 마음가짐에 따라 인생의 짐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완화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사랑받고 큰 사람은 상대의 행동을 본다
가족의 유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사람이 있다. 가족의 유대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훌륭한 덕목이다. 그러나 한번 찬찬히 생각해 보기 바란다. 가족의 희생양이 되는 사람이 새삼스레 가족의 유대를 부르짖겠는가. 가족에게서 단물을 빨아먹고 있기 때문에 가족의 유대가 중요하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다.
가족에게서 단물을 빨아먹고 있기 때문에 가족의 유대가 중요하다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다. 나약한 사람은 가족에게 '좋은 사람'으로 인정받고 싶어서 가족의 유대가 중요하다는 말을 들으면 가족의 희생양이 되어버린다. 약삭빠른 사람은 입으로만 가족의 유대가 소중하니 어쩌니 떠들어댈 뿐, 사실은 자신의 욕망만 채워가는 것이다. 그러나 희생양이 된 사람은 그런 약삭빠른 사람에게 "넌 이기주의자야"라는 말을 듣는 게 두려워서 결국 진짜 이기주의자의 먹이가 되어버린다.
어느 가족의 이야기다. 장남은 어릴 대부터 다른 가족들이 다 놀 때 혼자서만 일했다. 어른이 된 후에도 가족들은 장남의 근면함에 기대어 살았다. 가족들에게 돈이 떨어지면 장남이 돈을 마련해 주었다. 그러나 정작 장남이 병에 걸렸을 때는 아무도 보살펴주지 않았다. 어머니는 여러 가족과 합세해 장남의 아내를 비난했다. 그러면서도 가족들은 장남에게 돈을 뜯어낼 때마다 가족의 유대니 사랑이니 부르짖으며 당연하다는 듯 가져갔다. 그들은 가족이 유대가 견고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방식이라고 부르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