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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

후웨이홍 지음 | 라이온북스
왼손에는 명상록, 오른손에는 도덕경을 들어라

후웨이홍 지음

라이온북스 / 2010년 10월 / 462쪽 / 19,800원




상편 - 왼손에 『명상록』



막연한 아득함에서 벗어나는 법 - 원점으로 돌아오라



본성 속에서 답을 찾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스토아 철학의 신봉자이자 실천가이다. 스토아 철학에 따르면, 우주에는 보편적인 이성이 존재하고, 보편적인 자연법이 모든 것을 지배하여 사람의 의지로 움직일 수 없다. 여기서 '자연법'은 현대 철학의 '자연 규율'과 유사하며, 고대 중국 철학의 '도(道)'와도 일맥상통한다. 스토아 철학은 또한 사람을 자연에 속한 하나의 이성적 존재물로 보고 사람의 본성과 자연법이 서로 통한다고 인식하며, 이는 마치 강물을 이루는 물방울들이 도도히 흐르는 강물과 같은 성질을 보이며 한 곳을 향해 흐르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연에 순응하며 '본성에 따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역설했는데, 이러한 관점은 고대 중국 철학의 '천인합일(天人合一)'과 유사하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번뇌와 벗하여 행복을 가까이 두지 못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 이유를 알게 모르게 본성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자신을 돌아보고 원점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고 이미 일어난 일을 흔적도 없이 지울 수는 없지만, 자신의 마음을 원점으로 되돌리는 일은 가능하다. 사람의 본성은 자연의 본성처럼 비어 있기 때문이다. 비어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무궁무진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뜻한다. 그럼 원점으로 돌아오는 방법은 무엇일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다음과 같은 방법을 제시했다.

첫째, 비교하지 말라. 세상의 온갖 번뇌 중 절반은 비교에서 비롯된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길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리듬에 맞춰 길을 걸으면 그만이다. 예로 가난하거나 부유하거나 혹은 괴롭거나 즐겁거나 모두 저마다의 운이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운에 따라 삶을 꾸려나가면 된다. 자신의 길만 생각하면 번뇌는 자연히 절반으로 줄어든다.

둘째, 스스로 반성하라. 번뇌 가운데 일부분은 타인 때문에 생기는데, 이러한 번뇌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점으로 돌아가 자신의 본성에서 답을 찾는 것이다. 이에 대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어떤 사람을 만나든 혹은 어떤 일을 하든 우리는 자신에게 '이 사람은 무엇을 위해서 이런 일을 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데 익숙하다. 그러나 당신 자신으로부터 시작하라. 자신을 고찰하는 것이 먼저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이 누군가의 실수 때문에 화가 났다면 즉시 자기 자신을 돌아보라. 자신도 그와 비슷한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는지 생각해보라." 이처럼 대부분 사람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행위도 특정한 논리에 따라 고찰해보면, 합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결코 본성에서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

셋째, 진정한 수확이 무엇인지 똑바로 보라. 많은 대가를 치르고도 너무 적은 수확을 얻었다고 여기는 것 또한 번뇌를 만드는 큰 원인이다. 당신의 수확이 정말로 적은가? 운명은 당신에게 진정 불공평한가? 당신은 대가와 수확을 명확하게 계산해 보았는가? 20여 년이나 철물점을 운영해온 남자가 있었다. 그는 회계 업무에는 문외한이라 장부를 사용하는 일이 없었다. 어느 날 회계사인 막내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장부를 어떻게 관리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비용과 이윤을 계산하셔야죠. 제가 현대적인 관리 시스템으로 도와드리면 어떨까요?"

그가 말했다. "필요 없다! 아들아, 나는 내 나름의 방법이 있단다. 내 아버지는 가난한 농민이었다. 돌아가실 때 나에게 남겨주신 유산이라고는 바지 한 벌과 신발 한 켤레가 전부였다. 훗날 나는 그곳을 떠나 도시로 와서 열심히 일한 끝에 이 철물점을 갖게 되었다. 이제 나에겐 아내와 세 아이가 있다. 네 형은 변호사, 네 누나는 에디터, 그리고 너는 회계사가 되었다. 그리고 나와 네 엄마는 훌륭한 집에 살고 있고 차도 두 대나 있다. 게다가 나는 여전히 이 철물점의 주인이고, 빚도 한 푼 없다." 잠시 쉬었다가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내 회계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이 모든 것을 더한 것에서 그 바지와 신발만큼을 빼면 나머지가 모두 이윤이란다."넷째, 새로운 출발점으로 돌아가라. 인생은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아서 언제든지 미끄러질 수 있는데, 떨어진 바로 그곳은 종점이 될 수도,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당신의 선택에 달렸다.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나아갈 것인가? 한 젊은 여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강에 뛰어들었다. 지나던 사공이 여인을 구하고 물었다. "당신은 아직 젊디젊은데,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단 말이오?"

"저는 결혼한 지 2년 만에 남편에게 버림받고, 곧이어 아이마저 병으로 잃었습니다. 무슨 낙으로 목숨을 부지하겠습니까?" "2년 전에는 어찌 지냈고?" "그때는 자유롭고 아무 근심이 없었지요……." "그때 당신에게 남편과 아이가 있었소?" "물론 없었지요." "당신은 그저 운명에 의해 2년 전으로 돌아갔을 뿐이오. 이제 다시 자유롭고 아무 근심 없는 예전의 당신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라오." 과거는 반드시 지나간다. 단지 각자의 마음속에서 사라지는 형식만이 다를 뿐이다. 미래는 반드시 다가온다. 단지 미래를 맞이하는 각자의 태도만이 다를 뿐이다.

몽매함을 벗어나는 법 - 악에 빠지지 말라



스스로 악에 빠져들지 않을 능력을 가지다

사람의 마음은 본래 결백한데 탐욕에 물들어 혼탁해진다. 통계에 따르면 갓난아이는 하루 평균 300번 웃는 데 비해, 성인은 하루 한 번 웃기도 어렵다. 삶이 당신의 즐거움을 앗아가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날로 솟아오르는 악의 파도가 당신의 즐거움을 휩쓸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이란 무엇인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말했다. "이는 늘 보아 익숙한 것이다. 모든 사건이 일어날 때 우리는 이를 명심해야 한다." 이른바 '늘 보아 익숙함'이란 신문지상에서 자주 보거나 익히 들을 수 있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많은 경우 당신은 이를 행하는 순간 악행임을 의식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늘 해오던 습관 같은 것이라 잘못임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법이 용서할 수 없는 수준의 큰 악행은 뜬금없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는 갖가지 작은 악행이 쌓이고 쌓인 결과이다. 예컨대 도둑질은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욕심에서 비롯되며, 게으름과도 깊은 관련이 있는데, 법에 관해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도둑질이 범법행위임은 잘 알 것이다. 그러나 도둑은 처벌은 두려워할지언정 자신이 잘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늘 갖가지 구실을 끌어대며 변명에 급급하고 심지어 자신을 '부자들을 약탈해 가난한 이웃을 돕는' 영웅으로 미화하기도 한다. 잘못을 감추려는 악행이 개입되는 순간이다. 그러므로 작은 악행에 익숙해진 사람은 큰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큰 악에 빠지지 않으려면 작은 악을 범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어떤 악행을 범하든 항상 이유는 있다. 중요한 것은 처음부터 악행을 시작하지도 않는 것이다. 유가는 '군자신독(君子愼獨)'이라 했다. 도덕을 갖춘 사람은 홀로 있어 보는 이가 없을지라도 스스로를 엄격히 통제하며 방종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만일 '신독'을 실천할 수 있다면 악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어려운 일이지만 모든 것은 절대적으로 당신의 역량 범위 안에 있음을 기억하라.

평온한 행복을 누리는 법 - 자족하라



당신은 누구의 영혼을 가졌는가

"나는 지금 누구의 영혼을 가졌는가? 아이의 영혼인가? 젊은이, 연약한 여인, 폭군, 가축, 아니면 야수의 영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묻고 있다.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의 영혼은 자신의 것임과 동시에 또한 아니며, 수많은 영혼의 집합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머릿속에는 완전히 당신 자신에게 속한 생각이 얼마나 되는가? 일부는 타인에게서 직접 전해지므로 당신의 생각이 어떤 옛 사람, 선인이나 혹은 현실의 누군가와 완전히 같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생각은 타인에게서 취한 후 자신의 견해에 따라 일부 수정을 거치기도 한다.

한편 알렉산더, 카이사르, 소크라테스 등 옛 사람들은 위대하든 비천하든 모두 죽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죽었는가? 당신의 머릿속에는 소크라테스의 철학이, 알렉산더, 카이사르, 그리고 많은 선인들의 관념이 여전히 살아 있다. 당신이 나쁜 생각을 할 때에는 사악한 영혼이 당신의 몸에서 부활하며, 당신이 선한 생각을 할 때에는 아름다운 영혼이 당신의 몸에서 깨어난다. 그리하여 진정으로 죽는 사람은 없으며 다만 그들이 머물던 공간, 즉 육체를 떠나 생존방식을 바꿀 뿐이다. 마찬가지로 당신 역시 진정으로 죽지 않으며 세상에 생물이 존재하는 한 새로운 거처를 찾아 정착할 수 있다.

그런데 당신이 생명에 관한 폐쇄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람의 죽음을 불이 꺼짐과 같다"고 여긴다면 그 생명은 육체의 사망과 함께 영혼이 끝날 것이며, 당신의 영혼은 구할 수 없는 어둠 속에 가라앉을 수밖에 없고, 아무리 즐겁게 살고 생명의 남은 빛을 누려도 결국 무력하고 씁쓸한 느낌만 맛볼 것이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생명에 관한 개방적인 생각을 가지고 자신이 우주의 한 조각으로 돌아간다고 여기며 스스로를 우주의 한 역량, 한 알의 씨앗이라 여긴다면, 당신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렇게 물었다. "나는 지금 내 영혼을 어떤 일에 사용해야 하는가?" 이에 그는 스스로 답했다. "당신 삶 속에서 정의, 진리, 절제와 강인함보다 더 좋은 것을 발견한다면, 즉 마음의 자족보다 더 좋은 것을 찾는다면, 이 자족은 당신으로 하여금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어진 조건 하에서 정확한 이성에 따라 행하게 만들 것이다. 만일 당신이 이보다 더 좋은 것을 발견한다면 몸과 마음을 다해 그것을 향하고, 당신이 가장 좋다고 인식한 그 즐거움을 누려라." 당신의 영혼은 수많은 영혼의 복합체이지만, 그리고 당신은 그에 관해 사용권을 가질 뿐 점유할 권리는 없지만, 그러나 당신은 분명 현재 그 영혼의 주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 가치를 더 잘 발휘하도록 만들 수 있을까? 생명력이 가장 강력하고 세계에 더 큰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을 행하라.

영혼으로 돌아가 자신을 새롭게 하라

마음의 평온이 진정한 평온이다. 몸의 안일은 행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고, 말의 침묵은 말하지 않고 웃지 않는 것이지만 마음이 평안하지 않으니 진정한 평온이 아니다. 황제가 두 화가에게 '정(靜)'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리도록 주문했다. 첫 번째 화가는 호수를 그렸다. 수면은 잠잠하고 물결이 일지 않아 마치 맑은 거울 같고, 멀리 산맥과 호숫가의 화초가 물 위에 비쳤다. 두 번째 화가는 세차게 흐르는 폭포를 그렸고, 폭포 옆에는 작은 나무가 한 그루 있는데, 가지 위 새둥지 안에는 새끼 새가 고요하게 단잠을 자고 있었다. 모두들 두 번째 화가의 그림이 훌륭하다고 입을 모았다.

그가 진정한 '정'의 의미를 담아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조용한 곳에서 홀로 아무런 변화 없이 단조로운 삶을 사는 것이 반드시 진정한 평온은 아니다. 외부환경의 간섭을 받지 않고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평온이다. 그렇게 하면 설령 시끄러운 도시에서 업무에 쫓기며 살아도, 치열한 경쟁 속에 있더라도 당신은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 이것이 삶의 높은 경지다. 어떻게 해야 진정한 평온을 얻을 수 있을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올바른 원칙에 따라 의미 있는 일에 몰두하라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일을 할 때 반드시 올바른 이성에 따라야 하며 넘치는 정력과 깊은 평온을 유지해야 한다. 그리고 다른 일에 마음을 분산시키지 말고 순수함을 유지하며, 그것을 반드시 직접 돌려줄 것처럼 해야 한다. 만일 이처럼 아무런 욕망도 두려움도 갖지 않고 본성에 부합하는 활동에 만족하며 스스로의 진실에 만족한다면, 당신은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 이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둘째, 도덕적인 방식으로 단순한 삶을 누려라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치에 위배되는 어떠한 말도 하지 말고 정의에 어긋나는 일은 행하지 말라. 이 길을 따르는 사람은 순수와 평온에 도달하며, 아무런 강요 없이 그의 운명 안에서 완전히 안정될 것이다."

셋째, 평상심으로 단순한 기쁨을 경험하라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평온은 영혼의 질서정연함일 뿐이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자신을 물러서게 하고, 자신을 새롭게 하고, 단순하면서도 기본적인 원칙을 고수하라. 그리하면 당신이 호소할 때 이로써 영혼이 완전히 정리될 수 있고 당신은 모든 불만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다."

깨어있는 지혜를 지키는 법 - 의견을 버려라



무의미한 행위를 줄이라

세상의 일은 저마다 가치가 있으며, 어느 것이 무의미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당신은 평생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을까? 아마 선택 없이 무슨 일이든 한 번씩 도전해본다면, 틀림없이 하나도 이루지 못하고 당신의 삶은 엉망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능력과 삶의 필요에 따라 적은 양의 일만을 선택해야 한다. 당신에게 이는 가장 가치 있는 일이며, 그 나머지 일은 모두 무의미하다. 아무튼 당신이 인생에 아쉬움을 남기고 싶지 않다면 무의미한 일은 적을수록 좋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적당한 일을 합리적으로 선택할 수 있을까? 이에 관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철학가가 말하길, 당신이 평온하길 원하거든 행위를 줄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필요한 일, 공동체를 이루는 본성을 지닌 동물로서 이성이 요구하는 모든 일을 행하라. 이는 올바르게 행함으로 인한 평온을 가져올 뿐 아니라, 행위를 줄임으로 인해 생기는 평온을 가져다줄 것이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자기수양과 마음속 행복 추구의 관점에서 공평, 정의 등 우주의 이성에 부합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인식했다. 그러나 사실 수많은 직업이 저마다 우주의 이성을 벗어나지 않으며, 의식주, 여행 등 행복을 추구하고자 하는 행위도 공정함이나 정의로움과 어긋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당신은 그 중 극소수의 일부만을 해야 할 일로 선택해야 한다.

그럼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 현대 성공학 이론에 따르면, 당신은 먼저 명확한 인생목표를 확정해야 하는데, 목표를 따라 살면서 목표와 관련된 일을 하면 그 외의 일은 무의미하게 된다. 마치 글을 쓸 때 먼저 주제를 정하고 주제에 관한 내용, 즉 가치 있는 내용을 써내려가듯 말이다. 이리하면 그 외의 내용은 사족이 될 뿐이다. 아무튼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가늠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또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파악한 뒤 마음을 다해 추구하되, 남의 기준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말고 관계없는 일에 유혹을 받아 방향을 바꾸어서도 안 된다. 그리하면 당신은 자연의 이성에 비추어 살아간다 말하기에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하편 - 오른손에 『도덕경』



성공적인 인생을 가는 법 - 큰 도에 통달하라



진정한 도는 영원한 변화이다

노자는 말할 수 있는 도는 영원불변의 도가 아니며, 묘사할 수 있는 형태는 영원불변의 형태가 아니라 했다. 천지만물은 무형으로부터 와서 유형 속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사물은 늘 무형의 상태로 끊임없이 변화하며, 동시에 유형의 상태로 창조의 결과를 나타낸다. 유형과 무형은 이름만 다를 뿐 동일한 사물의 두 가지 모습이다. 이 둘의 관계는 매우 현묘하여 상호 간 전화(轉化)로 모든 사물의 변화 발전의 근원을 이룬다. 여기서 인용한 글은 『도덕경』 전체의 머리말이라 할 수 있으니, 이를 이해하면 각 편을 여는 열쇠를 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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