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협상, 찰나의 설득
케빈 더튼 지음 | 미래의창
극한의 협상, 찰나의 설득
케빈 더튼 지음
미래의창 / 2010년 8월 / 376쪽 / 15,000원
설득본능(The Persuasion Instinct)언어나 의식, 인류가 등장하기 이전에 등장한 설득의 가장 초기 형태를 찾아보면, 설득은 인류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생명과 자연 질서의 엄연한 일부라는 놀라운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2005년 케임브리지 의학연구센터(MRC)의 인지 및 뇌과학부는 가미가제 비둘기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었다. 새로 증축한 건물의 안마당이 새들의 단골 자살 장소가 되어, 많게는 하루에 열 마리까지 최신식 강의 건물 유리벽으로 돌진해 죽어갔기 때문이다. 얼마 안 가 그 이유가 밝혀졌다. 주변의 나무와 숲이 유리에 반사되어 새들이 착각했던 것이다. 이제 어찌 해야 할까? 원인 규명은 간단했지만 해결은 쉽지가 않았다. 커튼도 쳐보고, 그림이나 허수아비도 걸어 봤지만 다 소용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번디 매킨토시가 한 가지 안을 내놓았다. 새들의 언어를 사용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두꺼운 종이로 독수리의 옆모습을 만들어 창에 붙였다. 그러자 마치 새의 뇌 깊은 곳에 자기들을 잡아먹는 새들의 모습을 한 경고등이 설치되어 있는 듯했다. 독수리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면 곧바로 빨강 불이 켜지며 위험지역임을 알려 새들이 거기서 벗어나도록 했다. 문제는 바로 해결됐다.
번디 매킨토시가 비둘기와 통하기 위해 생각해낸 전략을 동물행동학에서는 관건자극(Key Stimulus)이라고 한다. 관건자극은 가장 순수한 형태의 영향력으로, 어떤 언어나 의식적 사고가 섞여 들어가지 않은, 총알처럼 곧장 뚫고 들어가는 마인드컨트롤 수단이다. 물론 관건자극의 공식적 정의는 약간 다르다. 어떤 정해진 행동양식을 유발하는 환경적 자극을 의미하며, 일단 유발된 본능적 행동은 중단되는 법이 없이 끝까지 나아가게 된다. 하지만 이것도 결국은 같은 이야기이다. 자연세계에는 관건자극의 예들이 무수히 많이 있는데, 그중 중요한 것이 짝짓기 경우이다. 어떤 것은 시각적이고(번디 매킨토시의 독수리 윤곽처럼) 어떤 것은 청각적이며(고양이의 애원조 그르렁거림) 운동성인 것도 있다(꿀벌들은 먹이 위치를 알리기 위해 춤을 춘다). 또 그 세 가지를 다 결합한 것도 있다.
개구리를 살펴보자. 거의 모든 개구리들에게 짝 찾기 요령은 뻔히 정해져 있다. 기껏 할 수 있는 게 개골대는 것뿐이라면 별달리 부릴 재주가 없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니 수놈들은 그냥 주저앉아 하염없이 개골대는 수밖에 없고, 그러다가 운이 좋으면 어디선가 암놈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개구리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일종의 속임수를 도입한다. 그래서 저음의 크고 깊은 목소리를 가진 개구리는 본인은 전혀 모르는 가운데 소리 없는 개구리 떼에게 미행당하는 경우가 흔히 있다. 밤새 힘들게 개골대다가 에너지를 다 소진해갈 때쯤이면, 두 가지 중 하나의 결론에 다다른다. 하나는 밤새 개골거렸는데도 허탕을 쳐 지친 몸을 이끌고 가버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운이 좋아 결국은 암개구리와 함께 저수지로 뛰어드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열심히 일한 개구리의 저녁이 어떻게 마무리되느냐가 아니다. 열심히 일한 개구리가 사라진 다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예로 어느 쪽으로든 결론이 나면, 목청 좋은 개구리가 있던 자리가 시장에 나오게 되는데, 이 자리는 바로 여태껏 입 다물고 기다리던 신분도용범들이 재빨리 들어앉을 금싸라기 땅이 된다. 목이 터져라 울던 개구리가 떠난 다음, 찾아온 영문 모르는 암놈 앞에 능청맞게 앉아 있는 것은 입도 벙긋하지 않았던 사기꾼 개구리이다. 하지만 암놈이 그걸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이처럼 자연계의 위장도 효과적인 설득 수단이다. 관건자극이 당장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라면, 위장은 당장 공감을 얻어내는 것이다.
앞에서 우리는 언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존재했던 설득법을 살펴봤다. 또 요즘도 동물왕국에서는 그 방식이 아직 통용되고 있다는 것도 보았다. 이제 결론은 분명하다. 언어의 등장과 대뇌 신피질의 상승세로 설득기술이 더 효과적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실제로 더 악화됐다는 점이다. 즉 동물들의 설득기술이 인간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것이다. 동물들에게는 한 방 쏘면 본능적이고 오차 없이 미리 정해진 반응을 불러내는 특효약이 있는데, 생물행동학자들은 이 근본적 설득무기를 '관건자극'이라고 불렀다. 이 본질적이고 결정적인 특효약은 사태를 즉각적으로 신속하게 해결한다.
하지만 인간은 다르다. 인간과 편리한 본능 사이에는 의식이라는 오존층이 끼어 있어 우리의 설득도구인 언어가 파고들기 힘들 때가 자주 있다. 정말 특별한 말들만 그 층을 뚫고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럼, 이제 문제는 어떻게 그렇게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을 개발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그 설득의 과녁을 명중시킬 능력이 있을까? 아니면 이는 일부 능력 있는 엘리트들만의 전유물일까? 의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모두 설득 재능을 타고 난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빛이 서서히 바래가는 것이 문제이다.
아기의 힘(Foetal Attraction)신생아들은 자신의 안전과 양육이라는 두 가지 단순한 목표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목표를 성취해야 할 강력한 동기를 지니고 태어난다. 하지만 아기들은 빈손으로 온다. 노련한 의사소통 기술이 없으니 앞에 놓여 있는 도전에 응할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동물과 마찬가지로 관건자극에 그 답이 있다.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울음소리,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선천적 성향, 힘 하나 안 들이고 귀엽게 보일 수 있는 능력들이 모여 레이저 광선 같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의사전달에 있어 아기보다 나은 경쟁상대는 역사상에 없다. 즉 우리의 설득능력은 이 세상에 온 첫날보다 절대 나아질 수가 없다는 것이다. 설득력에 있어서 동물과 아기들은 우리에 비해 두 가지 뚜렷한 이점을 갖고 있다. 첫째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고, 둘째는 말을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과 언어도 이에 못지않게 신속히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마음 훔치기 기계(Mind Theft Auto)닳고 닳은 사이코패스 사기꾼이 남들보다 뛰어난 것은 자신감이나 매력, 잘생긴 용모만이 아니다.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키스 배릿을 소개해 주고 싶다. 80년대 대부분과 90년대 초반 배릿은 연쇄 사기범으로 살았다. 그 솜씨가 정말 대단했는데, '대형 사기'의 도사로서 주로 기업을 상대로 거액을 노리는 교묘하고 복잡한 사기행각을 벌였다. 그러다 어느 날 잡혀 '강제 휴업'을 당하게 됐다. 그리고 감옥에서 담당 심리학자와 연애도 좀 하면서 5년을 보내고 출소할 때가 되었을 때쯤의 그는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출소한 배릿은 근처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실크 넥타이와 구찌 구두, 아르마니 셔츠, 2천 달러짜리 고급 맞춤양복 등 과거 전성기 때의 의상을 모두 팽개쳐 버리고, 대신 청바지와 운동화, 스포츠 셔츠 등으로 옷차림을 간소화했다. 그 중 셔츠는 늘 핑크색을 입었는데, 그것이 바로 배릿의 남다른 세심함을 보여주는 것이며, 동시에 설득의 최고 대가다운 솜씨를 돋보이게 하는 점이다. 핑크 중에서도 특별히 베이커-밀러 핑크라고 취객을 가두는 경찰서 유치장 색으로 더 유명한 심홍색이 폭력범들의 기분을 안정시키는 데 효과적이라는 사실이 여러 과학 연구조사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적절한 복장으로 정비한 배릿은 바로 일에 착수했는데, 그의 말에 의하면 사교력을 발휘하는 3As, 즉 주의집중(Attention), 접근법(Approach), 관계설정(Affiliation) 기술을 활용했다고 한다. 배릿에 따르면 이 세 가지 요소를 혼합하면 뇌의 혈류에 엄청난 심리적 효과를 끼쳐 당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저항력을 잃게 만든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부유한 동네에서 미리 뽑은 사람들을 약 6주 이상 조직적으로 연구한 결과, 배릿은 그 사람들의 차문을 따고 들어갈 수가 있었다. 그 다음에는 그 차의 전조등을 켜놓고 친절한 이웃인 척 연극을 시작했다. 즉 그 집 문을 두드리고 자동차 라이트를 안 껐다고 '실수'를 알려주는 것이다. 이렇게 먹잇감들을 일단 대화로 끌어들이고 나면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가 '왜 우연히 그곳을 지나가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기회를 만들어내고 기부금을 조금 낼 수 있는지 물었다. 열 중 아홉은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그 주민들은 광고를 보게 된다. 배릿이 사람을 낚는 낚시꾼 노릇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목사를 설득해 그 지역 신문에 교회 광고를 낸 것이다. 나머지는 심리학 법칙이 알아서 처리했다. 이전에 기부금을 냈기 때문에 주민들은 교회에 대해 뭔가 책임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일부는 정말 직접 가 보기로 했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 일부는 그렇게 했다. 그게 다였다. 아기에게서 사탕 뺏는 것처럼 간단했다. 교회는 꽉 찼고 배릿은 자기 몫을 챙겼다.
나는 지난 15년 이상 사회적 영향 원리를 연구해왔다. 그중에는 꽤 괜찮은 것들도 있었다. 그런데 주의집중, 접근법, 관계설정을 의미하는 배릿의 3As가 그중 가장 혁신적인 것으로, 앞으로 우리가 좀 더 논하게 될 영향모델의 경험적 배경이 됐다. 참고로 3As에 조금 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주의력 : 어느 순간이든 외부로부터 수천 가지의 자극들이 우리의 뇌로 밀려들어 온다. 하지만 우리가 의식하고 관심을 갖는 것은 그중 몇 가지에 지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뇌에는 정보의 우선순위를 담당하는 정보처리국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 중 중요한 것만이 눈에 띄고 의식되며 나머지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두뇌의 정보처리국에 들어가 원하는 정보를 끄집어낼 수 있는 길이 있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최면술을 예로 들자면 의식의 손잡이를 주물러 어떤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최면상태로 유도할 수 있다. 마술도 우리의 주의력을 쉽게 다른 곳으로 돌릴 수 있다. 그 인식 전환 작업은 설득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접근법 : 사람들의 지각에는 약간의 개인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세상을 보는 눈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공통점이 더 많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1,2,3,4,5,6이 들어간 복권을 갖고 있다고 치자. 다음 두 가지 시나리오 중 어떤 경우에 더 재미있을까? 당첨복권 번호가 4, 14, 22, 33, 40, 45일 때? 아니면 7, 8, 9, 10, 11, 12일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두 번째 것을 들었다. 하지만 왜 그럴까? 실제로 어느 쪽이든 그 사람 복권이 당첨이 아닌 것은 똑같은데 말이다. 이 예는 두뇌에 대한 흥미로운 점을 보여준다. 두뇌는 상당히 게으른 녀석이다. 결정을 내릴 때 신선한 제철 재료를 사용해 처음부터 하나씩 준비해 요리하기보다는, 그냥 냉동건조포장된 것을 사서 쓰는 편이다. 참고로 스포츠에서는 상대방의 강점이 무엇이고 어떤 식으로 경기에 임할 것인지 등 경쟁 상대를 읽는 것이 모든 이들의 목표인데, 설득도 그와 똑같다.
관계설정 : 왕이 어느 날 감옥을 방문했다. 그리고 돌아가며 죄수들의 말을 들어주다 보니 한결같이 자기들은 무죄이니 풀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다 왕은 구석에 혼자 움츠리고 기운 없이 앉아 있는 죄수를 보게 됐다. 왕은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그렇게 괴로운 모습으로 있는가?" "저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사실인가?" "네, 그게 사실입니다." 왕은 그 남자의 정직함에 감명을 받아 풀어줄 것을 명령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다른 결백한 죄수들과 이 죄인이 함께 있도록 두고 볼 수 없다. 결백한 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우리 행동은 주위사람들의 행동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타인들이다.
의식은 편리한 반면 느리다. 때로는 허송세월할 정도로 너무 느리다. 그래서 그 벌어진 틈을 메우기 위해 우리 두뇌는 과거 경험을 바탕으로 한 육감적 지식과 우리가 익힌 자극들 사이의 연관관계에 의지한다. 이제 지금까지는 음지의 영향력 기술에 집중했지만, 다음에는 양지로 눈을 돌려 우리에게 해를 끼치기보다는 우리를 위해 일하는 변호사나 광고전문가, 세일즈맨, 종교지도자들이 우리의 신경 암호를 해독하는 방식을 살펴보자.
설득의 대가(Persuasion Grandmasters)마이클 맨스필드는 가장 훌륭한 변호사 중 한 사람인데, 그에게 위대한 변호사를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다음과 같이 답했다. "소송의 승패는 단지 사실에만 근거하는 게 아니라, 인상에 따라 결정됩니다. 암시를 통해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지요. 예로 노련한 변호사는 법정에서 이야기를 풀어냄으로써 배심원들을 그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배심원들이 법정에서 처음으로 느끼게 되는 게 육감입니다. 심정적으로 마음을 정하게 되지요. 그러면 그 처음 받은 직감을 확인시켜 주는 식으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비결이에요. 일상생활에서와 똑같지요. 어떤 사람에게 본인의 생각이 처음부터 계속 맞았다고 믿게 하는 것이 계속 다 틀렸다고 믿게 하는 것보다 훨씬 쉽지요. 좋은 변호사는 좋은 심리학자이기도 해요. 그냥 증거를 제시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제시하느냐가 중요해요."
법정뿐 아니라 이사회, 선거 유세 또는 일상생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프랭크 런츠는 미국 작가이자 여론조사 전문가로 그중에서도 정치 설득이 전문이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 런츠는 무소속 대통령 후보, 로스 페로의 첫 번째 유세를 돕게 됐다. 한번은 디트로이트에서 페로의 TV 광고의 효력을 측정하기 위해 포커스 그룹을 조직한 적이 있었다. 광고는 세 가지가 있었는데, 패로의 일생, 연설, 그에 대한 남들의 증언이었다. 런츠가 포커스 그룹에게 광고를 그의 일생, 연설, 증언 순서로 보여주자 페로의 지지도가 올라갔고, 일반인을 상대로 한 외부 여론조사와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어쩌다 실수로 증언, 연설, 일생 순서로 보여주자 이상한 현상이 벌어졌다. 포커스 그룹 사람들이 갑자기 페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인생사를 모르고 그냥 그의 연설을 듣게 되자 절제감이 없어 보였던 것이 이유였다. 즉 정보를 제시하는 순서가 사람들의 생각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법정에서 보는 심리적 속임수는 사회적 영향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는 잘 알려져 있다. 심지어 그에 대해 틀 짜기(Framing)라는 용어까지 있으며, 그 효과가 결코 법정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맨스필드 류의 사람들은 사업에서도 최고가 될 수 있다.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해 보라. "점보제트기 탱크를 다 채우려면 디젤유 몇 리터가 들어갈까? 500리터 이상일까, 아니면 미만일까?" 그 다음에는 똑같은 질문을 숫자만 약간 바꿔 다른 친구에게 던져보라. "점보제트기 탱크를 다 채우려면 디젤유 몇 리터가 들어갈까? 50만 리터 이상일까, 아니면 미만일까?" (실제 답은 약 22만 리터이다) 아마 두 친구의 대답에서 재미있는 패턴을 보게 될 것이다. 두 번째로 물어본 친구가 추측하는 수치는 아마 처음 물어본 친구보다 훨씬 클 것이다. 그 이유는 들은 숫자를 마음속에 각인하는 정박효과(Anchoring Effect) 때문이다. 즉 두 친구는 이쪽에서 처음에 머리에 심어준 숫자(500대 50만)를 정박점, 즉 판단 기준으로 삼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틀 짜기와 정박효과는 설득력을 높이는 수많은 기술 중의 두 가지일 뿐인데, 물건을 팔기 위해 무작위로 전화를 거는 일을 하는 팻 레이놀즈가 그 전문가이다. 팻이 일하는 회사는 집도 짓고 수리도 하는 건축회사이다. 그의 영업 비결은? 첫째는 사람들을 웃기는 기술이고, 둘째는 거절당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뚝심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사람들은 콜드콜(무작위 판매 권유 전화)이라고 하지요. 하지만 일을 제대로만 하면 실제 콜드콜은 열 번 중 한 번 정도밖에 안 됩니다. 저는 일단 사람들을 웃게 만듭니다. 예로 묻는 말 중 한 가지는 '혹시 미신 믿으세요?'입니다. 엉뚱한 사람이 전화를 걸어 그렇게 물으면 궁금해지지 않겠어요? 적어도 '저는 모모 회사의 누구라고 하는데요'라고 하는 것보다는 전화를 그 자리에서 끊고 싶은 마음이 덜 하겠지요. 그게 최우선입니다. 일단 전화를 끊지 않게 붙들어 둬야 해요. 대부분 사람들은 미신 믿느냐고 물으면 아니라고 해요. 그러면 이러는 거지요. '그럼 저한테 13.13파운드 주실 수 있어요?' 열 명 중 아홉은 반응을 보이지요. 대부분 웃으면서 '누구세요?' 하고 물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