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내 인생을 바꾸는 5분 생각

권경자 지음 | 원앤원북스
내 인생을 바꾸는 5분 생각

권경자 지음

원앤원북스 / 2010년 9월 / 368쪽 / 14,000원






배움의 참뜻을 깨달아라_ 배운다는 것은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이다(불천노 불이과 不遷怒 不貳過)

매년 여름이 더워지고 있습니다. 날씨가 더워지면 그만큼 불쾌지수도 높아서 별것 아닌 일에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고 싸우거나, 심지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기도 하지요. 다 더위 때문인데, 덥다보니 하다못해 매미 소리에도 짜증을 낼 만큼 예민해집니다. 화를 잘 다스리는 방법은 없을까요?

여기 화를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는 안회顔回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날 노魯나라의 마지막 임금인 애공哀公이 공자에게 제자 중 누가 배우기를 좋아하는지 물었습니다. 공자는 애제자였던 안회를 떠올리며 "안회라는 자가 있었는데, 배우기를 좋아했습니다. 노여움을 남에게 옮기지 않았고,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았으나 불행히도 단명했습니다. 지금은 없으니 배우기 좋아하는 자를 듣지 못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배운다는 것은 지식의 습득을 말합니다. 영어나 수학, 철학이나 역사 등을 배워서 그에 걸맞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 그것을 배움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만약 우리에게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묻는다면 그런 기준에서 대답할 것입니다. 그런데 공자가 생각하는 배움은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배우기 좋아하는 사람을 물었는데 안회를 말했고, 그 이유가 불천노不遷怒 불이과不貳過였던 것이죠. '노여움을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 저지르지 않는다'라는 뜻인데, 아닐 불不, 옮길 천遷, 성낼 노努, 둘 이貳, 허물 과過로 이루어진 이 문장이 배움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공자에게 있어서 배움이란 지식의 축적이 아닌 인仁의 행함을 말합니다. 즉 철저한 자기수양을 통해 행동과 사람이 바뀌어 인자仁者가 되는 것이 공자가 말하는 배움으로 몸에 젖어 저절로 배어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배움은 익혀서 몸에 배고, 그것이 행동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화를 낼 수는 있어도 그와 관계없는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안회가 노여움을 옮기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 안에 노여움을 담아두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무조건 화를 내지 않고 참는 것이 아니라 화를 낼 상황이면 화를 내되, 그 찌꺼기가 몸에 남아 있지 않아 화에 지배당하지 않음을 뜻하지요. 마치 거울 같은 것입니다. 거울은 무엇이든 비추지만 물체가 사라지면 텅 빈 상태가 됩니다. 즉 마음이 텅 비어 있어 무엇이든 담지만 그에 휘둘리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자가 말하는 배운 사람의 모습입니다.

또 안회는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철저한 실천을 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나 잘못에 대해 이성적으로는 알아도 고치거나 바꾸기 힘들어 합니다. 습관으로 몸에 밴 것은 더욱 그러하죠. 그래서 작심삼일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그런데 안회는 한 번 마음먹으면,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철저한 자기반성과 수양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연약해 보이는 안회가 스승의 말씀에 따라 어긋남 없이 실천하고, 자신에게 얼마나 철저하고 무서운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공자에게 있어 배운다는 것은 바로 이같이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을 말합니다. 경전의 글귀나 외우고 말로만 떠든다면 아는 것은 많을지 몰라도 진정한 배움은 아닙니다. 배움을 실천하고 완성한 안회처럼 화를 옮기지 않고 두 번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삶을 오늘 하루 실천해보심은 어떨까요?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면, 우리도 안회처럼 호학자好學者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끊임없이 나를 성찰하라_ 매일 자신을 닦아 새롭게 거듭나다(일신 日新)



일신은 『대학』 전傳 2장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은殷나라를 창건한 탕湯임금은 자신의 대야에 구일신苟日新 일일신日日新 우일신又日新 아홉 글자를 새겨놓고 세수를 할 때마다 마주하면서 자신을 씻는 것처럼 정치 또한 깨끗하고 참되게 할 것을 다짐했습니다. 이는 '진실로 날로 새로워지려거든 나날이 새롭게 하며 또 날로 새롭게 하라'는 뜻입니다. 주자朱子는 '진실로 날로 새롭게 함'의 새롭게는 옛 오염된 것과 대립해서 말한 것이고, '나날이 새롭게 하며 또 날로 새롭게 함'은 항상 이와 같이 해서 끊임없는 것이라고 주를 달았습니다.

이는 탕임금이 자신을 닦는 것을 얼마나 중시했는지 알 수 있는 구절입니다. 자신을 새롭게 함이 백성을 새롭게 하는 근본이기 때문이지요. '날로 새롭게 하라'의 일신은 이 아홉 글자의 핵심어로 해 일日과 새 신新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탕임금은 하나라를 무너뜨리고 은나라를 일으켰는데, 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역성혁명易姓革命을 행한 자입니다. 탕이 무너뜨린 하나라의 마지막 임금은 걸桀이라는 자였지요. 그는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紂와 함께 주색酒色에 빠져 나라를 망친 임금을 상징합니다. 걸은 나라를 망친 악덕한 여인의 상징인 말희末喜에 빠져 나라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보석으로 치장한 요대瑤臺를 짓는 데 백성들을 동원했고, 재물을 탕진했으며, 후궁을 미인으로 채우고, 여광대와 배우, 난쟁이와 함께 기이한 것을 즐겼습니다. 게다가 술로 연못을 만들어 거기에 배를 띄우고 놀았는데, 한 번 북을 치면 소처럼 엎드려 술을 마시는 사람이 3천 명이나 되었고, 취해 죽는 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로 숲을 만들었다"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고사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말희가 비단 찢는 소리를 좋아하자 그녀를 위해 엄청난 양의 비단을 찢었다고 하니, 나라꼴이 어땠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걸왕이 자신을 태양에 비유하자 백성들은 "태양이 언제 없어지려나. 내 너와 함께 죽는다 해도 좋다"라며 해가 없어지기를 저주했지요.

이렇게 왕이 방탕하고 부도덕하며 혼란스러웠기에 하나라의 멸망은 백성의 신뢰를 잃었다는 점에서 스스로 무너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탕임금이 동쪽을 징벌하면 서쪽 변방인들이, 남쪽을 정벌하면 북쪽 오랑캐가 자신들을 뒤로 하는 것을 원망하고 가는 곳마다 백성들이 환영했다는 『서경西經』의 기록은 방탕한 걸임금의 자멸을 말해줍니다. 탕임금이 하나라를 치는 것을 천명天命이라고 한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즉 하나라에 죄가 있어 하늘이 처벌하도록 명령했고, 자신은 하늘이 두려워 바로잡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탕임금은 혁명을 일으킨 후 음악과 여색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자신을 위해 재화와 이익을 늘리지 않았습니다. 덕이 많은 자에게 관직을 내리고 공이 많은 자에게 상을 내리며 등용한 사람을 자신처럼 아끼는 덕의 정치를 했으며, 자신의 허물 고치는 것을 꺼리지 않았고, 너그럽고 인자한 통치로 백성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천자天子에 오른 후, 첫 역경으로 7년 한발旱魃(가뭄)을 만나게 되는데, 점을 치자 사람을 희생물로 바쳐야 한다는 점괘가 나왔습니다. 탕임금은 자신이 희생물이 되겠다며 허름한 옷을 입고 흰말이 끄는 흰 수레에 올라 상림桑林에 들어가 제단에 올랐습니다. 그는 "저에게 죄가 있다면 백성들을 괴롭히지 말아주시고, 그들에게 죄가 있다면 이 몸이 달게 받겠습니다"라며 하늘에 기도를 올린 후, 자신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잘라 신단 앞 불구덩이에 던졌습니다. 그러자 비가 쏟아져 백성의 근심이 덜어졌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사방을 빈틈없이 막고 새를 잡으려 하자 탕임금은 서쪽 그물을 걷어서 새가 날아가게끔 했습니다. 백성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새에게까지 은혜를 베푸는 탕임금의 덕은 매일 자신을 닦고 반성하며 새롭게 하는 것에서 나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탕임금을 성스러울 성聖을 붙여서 성탕聖湯이라고 부릅니다. 은나라 600년은 이렇게 매일 자신을 닦고 닦는, 그래서 매일 새롭게 거듭나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이기기 어려운 것이 자신입니다. 그런 자신을 이기는 방법, 그것이 바로 일신입니다. 매일 새롭게 된 자신의 덕을 밝히면 백성과 하나 되어 최고의 선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정치의 요체이며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자신뿐만 아니라 세상이 달라지는 기적을 체험할 것입니다.

사람의 근본을 세워라_ 선한 행동을 하면 미물도 감동한다(유어출청 流魚出聽)



"옛날에 호파瓠巴가 슬瑟을 타자 물속에 있던 물고기가 튀어나와 들었고, 백아伯牙가 금琴을 타자 수레 끄는 여섯 필의 말들이 먹이를 먹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 작은 소리라 해도 들리지 않는 것이 없고 행동은 아무리 숨겨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 옥이 산에 있으면 풀과 나무들이 윤택해지고 연못에 진주가 생기면 연못가의 언덕이 마르지 않는다. 선을 행하고 사악함을 쌓지 않는다면 어찌 명성이 드날리지 않겠는가?"

춘추시대 때 초楚나라 슬의 명인인 호파가 슬을 타면 새들이 춤을 추고 물고기들이 튀어 올랐고, 종자기鍾子期와의 우정으로 유명한 백아가 금을 타면 풀을 먹던 말들까지 고개를 돌려서 들었다고 하니 미물까지 감동시키는 그들의 연주 솜씨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좋은 음악은 사람뿐만 아니라 미물까지도 감동시킵니다. 녹차 밭에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거나 소와 닭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면 양질의 녹차와 우유와 계란을 얻을 수 있다고 하는데 음악이 식물이나 동물들의 스트레스를 제거하고 성장에 좋은 영향을 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음악이 동물까지 감동시키는 것처럼 사람들의 선행은 더 큰 영향을 끼칩니다. 사람의 마음은 다 같아서 선한 행동을 보면 좋아하고 악한 행동을 보면 속상해하지요. 나에게 잘해주면 좋아하고 나에게 피해를 주면 싫어합니다. 그런데 선행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전파력이 있어 작은 선행이라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됩니다.전국시대 말기 조趙나라 사람인 순자는 성이 순荀이고, 이름은 황況인데 순경荀卿 또는 손경자孫卿子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50세 무렵에 제濟나라에 유학遊學하고 진秦나라와 조나라에서 유세遊說 했는데 다시 제나라로 돌아가 직하稷下의 학사 중 최장로最長老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지요.

그는 자고 일어나면 치열하고 잔인하게 전쟁을 하는 혼란의 시대를 살면서, 세상이 혼란한 이유는 인간이 악하기 때문이라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도덕적 감화보다는 강제적인 처벌을 통해 예법을 익혀야 한다고 보았지요. 강력한 예를 행할 때 악한 인성을 변화시키고 개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안에 있는 악함이 튀어나오지 못하게 막아 후천적으로 교정해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선행을 해야 하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아무리 작은 선행일지라도 드러나 세상을 변화시키고 몰래 한 악행 역시 드러나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그러니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호파와 백아의 음악이 동물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산에 옥이 있으면 그 산 자체가 윤택해지며, 연못에 진주가 있으면 연못가가 아름다워지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이처럼 예禮를 익혀 선善을 행한다면 명성이 날리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 순자의 생각이었습니다. 순자의 사상은 이후 법가法家사상으로 발전해 강력한 법으로 사람들의 행위를 억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순자의 주장에 한 번쯤 귀를 기울여볼 만합니다. 과연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세상 자체가 스스로 어지러운 것은 아닙니다. 세상은 사람들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어지럽고 살기 힘든 곳이 되기도 하고, 양보와 배려와 사랑으로 아름답고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즉 사람들의 행위와 모습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 속에 내가 있습니다. 따라서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세상은 변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한 사람이 바꿀 수 있을 만큼 세상이 단순하지 않지만, 그 한 사람이 세상을 향해 따뜻하게 손을 내밀고 마음을 연다면, 주변을 변화시키고 변화된 그들이 각자의 자리를 변화시킵니다. 그들이 자신의 주변을 바꾼다면 물속의 고기가 뛰어오르고 풀을 먹던 말들이 고개를 돌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세상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름 없는 작은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순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작은 선행, 작은 미소뿐만 아니라 작은이에게 내미는 손, 이 모든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열쇠이고 자신이 변화하는 움직임입니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라_ 마음을 다하면 꿈은 이루어진다(심성구지 心誠求之)



『대학』전傳 9장에서는 심성구지心誠求之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마음이 진실로 구한다'는 뜻으로 마음 심心, 진실로 성誠, 구할 구求, 어조사 지之로 이루어진 문장입니다. 이 문장 앞에는 『서경書經』의 여보적자如保赤子란 문장이 있습니다. '마치 갓난아이를 돌보듯 한다'란 의미의 여보적자는 정성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을 이어보면 "마치 갓난아이를 돌보듯 하라. 마음이 진실로 그것을 구하면 비록 적중하지 않더라도 멀지는 않을 것이다"입니다.

어머니들이 갓난아이를 돌보는 모습을 보면 감동적이죠. 평소에 게으른 사람이라도 아기 앞에서는 부지런해지고, 아무리 잠이 많아도 아이의 부스럭거림에 깨며, 아이의 울음소리, 칭얼거림이 보내는 신호를 알아듣고 그것을 헤아려 돌보는 존재가 어머니입니다. 아이는 그 보살핌으로 자라 스스로 서며 세상을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아이를 낳기 전에 아이 기르는 법을 배우고 익힌 것일까요? 이 문장 뒤에는 "아이 기르는 것을 배운 후에 시집가는 자는 없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아이 기르는 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도 일단 몸속에 생명을 잉태하게 되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이와 하나 되어 아이의 신호를 알아듣고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아이를 키운 경험이 없어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습니다.

『대학』의 이 문장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문장은 정치인들이 나라 다스리기를 갓난아이 기르듯이 정성을 다하고 마음으로 진실로 구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정치를 함에 나라 다스리는 방법을 몰라서 서툴다 할지라도 어머니와 같은 정성과 사랑을 베푼다면 비록 성인으로 칭송받는 요순의 정치까지는 아니더라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그러한 정성, 즉 아이를 키우는 정성으로 일을 하고 마음으로 진실로 구한다면, 비록 바라는 이상과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그로부터 그리 멀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 바로 『대학』의 심성구지입니다.

『대학』은 격물치지格物致知로 시작해 수신제가修身齊家를 거쳐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에서 끝나는데, 천하를 평화롭게 하고 바로잡으려면 자신의 몸을 닦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마찬가지로 나라를 다스리거나 기업을 경영하려면 반드시 먼저 자신이 몸담은 조직을 가지런히 해야 합니다. 자신도 닦지 못하고 자기 주변도 가지런히 못하면서 더 큰 조직인 기업과 나라를 다스릴 수는 없지요. 그 조건이 수신과 함께 마음을 다하는 것입니다.

노력만한 지름길은 없다_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 도를 얻는다(포정해우  丁解牛)



몇 년 전 개봉한 지 한 달 만에 6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영화가 있었습니다. 〈타짜〉인데요, 명칭이 낯설어 사전을 찾아보니 '노름판 같은 곳에서 속임수를 잘 부리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흔히 사기 도박꾼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먼저 조직을 결성하고 사기칠 대상을 물색합니다. 대상이 포착되면 설계사가 그에 맞게 사기 방법을 구상하고, 바람잡이가 바람을 잡은 후 기술자가 나서서 사기를 친다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감쪽같이 속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을 진지하고 멋지게 그렸습니다. 그래서 자칫 그들을 선망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진정한 타짜는 사기 기술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고, 거의 도의 경지에 이르러야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타짜가 되기 위한 그들의 노력에 소름이 끼쳤습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간과 계절을 넘어 전력을 다하는 주인공을 보면서, 그처럼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한 적이 있었나 떠올려보니 한 번도 열심히 뭔가에 몰두한 적이 없었던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장자莊子』「양생주養生主」편에 포정해우 丁解牛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포정이 소를 해부하다'의 뜻을 가진 포정해우는 부엌 포 , 성할 정丁, 가를 해解, 소 우牛로 이루어진 문장입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