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로 인생을 바꿔라
남호현 지음 | 박영북스
아이디어로 인생을 바꿔라
남호현 지음
박영북스 / 2010년 2월 / 302쪽 / 14,000원
마음의 병이 터뜨린 대박 - 생수 자판기와 종이컵시골이 고향인 이석태는 공동 우물이 무서웠다. 곳곳에 널려 있는 공동 우물과 마주칠 때마다 예외 없이 전신의 맥이 쭉 빠나가는 걸 느꼈다. 몇 년 전 공동 우물 때문에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그 해 여름날, 체구가 당당하고 건강했던 아버지는 농기구를 장만하기 위해 읍내로 향했다. 아버지는 읍내 장터 초입에 들어서다가 공동 우물을 발견하고 갈증을 달래기 위해 시원한 물을 실컷 마실 참이었다.
도로변의 처마 낮은 초가집들처럼 그 공동 우물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아버지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논물과 개울물을 마시며 자랐어도 아무 탈이 없다고 큰소리치던 당신이 아닌가. 아버지는 평소와 다름없이 우물물을 길어 올렸고 여러 사람들이 입을 대고 마시는 그 두레박을 기울여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아버지는 며칠 뒤부터 갑자기 병석에 눕더니 한 달 뒤 돌아가셨다. 처음엔 발병 원인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 그 공동 우물을 이용하는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와 비슷하게 목숨을 잃었음이 드러났다. 그 때부터 보건 당국이 우물물에 관심을 가졌다. 역학 조사 결과 공동 우물의 두레박을 통해 마을 사람들이 세균에 감염되었고 급성 간염에 걸렸음이 밝혀졌다. 우물 안과 두레박을 소독하거나 정갈하게 관리하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졸지에 아버지를 잃은 이석태는 그 때부터 공동 우물 근처엔 가지 않았고, 여러 명이 함께 사용하는 두레박과 바가지 등을 철저히 기피했다. 오염된 물을 마신 사람들이 콜레라와 이질 등의 전염병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 그의 결벽증은 점점 심해졌다. 하지만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이석태의 콤플렉스와 고민은 창조적인 발상으로 이어졌다. "공공장소에서 언제나 시원하고 위생적인 물을 마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비위생적인 물을 같은 그릇에 담아 여럿이 돌아가며 마시는 풍경을 목격하던 순간, 고교생 이석태가 형 앞에서 내뱉은 혼잣말이었다. "옳거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그 순간 형 이석만이 무릎을 쳤다. "오염되지 않은 생수를 돈 받고 파는 거야." "형, 그 흔한 물을 돈 받고 팔다니? 대동강 물을 팔아먹은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라도 되는 모양이지?" 이석태는 형의 그 말에 비웃음을 달았다. "바보야. 이젠 물을 사먹어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어." 놀랍게도 형은 예언자처럼 말했다. "형, 물도 깨끗해야 하지만 바가지나 컵도 위생적이어야 해." "물론이지. 한 번 사용한 컵은 반드시 소독하면 돼."
공대 재학생 이석만은 망설이지 않고 동생의 반짝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공동 우물을 마시고 돌아가신 아버지와 공동 우물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동생의 한을 풀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형, 물 한 컵을 팔겠다고 하루 종일 땡볕을 지킨단 말야?" 그 당시 길거리에는 얼음에 재운 설탕물을 팔러 다니는 냉차 장수들이 많았는데 그를 두고 한 말대꾸였다. "두고 봐라. 내 사업은 냉차 장사와 다르다." 동생이 비웃어도 이석만은 괘념치 않았다. "이 사람아, 동전을 넣을 때마다 자동으로 맑은 물이 나오는 기계를 발명하면 돼." 형은 장담으로 그치지 않았다. 연구실에 틀어박혀 창조적인 실험에 몰두하는 발명가처럼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계를 설계했고 몇 개월 뒤 시제품을 내놓았다. "두고 봐라. 대폭발을 일으킬 것이다."
형의 호언장담을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100원짜리 동전을 자동판매기에 넣은 뒤 컵을 대고 누르면 시원한 생수가 흘러나오는 방법으로 시작한 사업이었다. 수십 차례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생수 판매기와 위생컵을 개발했고, 그 자판기 옆에 소독한 컵을 쌓아 놓았다가 한 번 사용한 컵은 반드시 빈 통에 넣도록 했다. 수익성보다는 판매 촉진에만 열을 올린 덕분인지 생수 자판기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대리점을 맡겠다는 사람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아서 두 형제는 즐거운 비명을 질러야 했다. 사업 내용이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인기가 입증되었으니 수익성을 추구하는 것만이 성공의 지름길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 가지 고민에 휩싸였다.
"컵이 문제야, 컵이!" 자판기에 사용되는 컵이 도자기나 유리로 만든 것이어서 너무 쉽게 깨지는 게 아닌가. 깨지지 않는 컵을 사용하면 될 터이지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종이로 만든 컵이면 깨지는 일은 없을 거야." 이석태는 그 말을 던지고도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물에 젖으면 쉽게 찢어지는 종이의 단점을 모르는 바 아니었지만 뾰족한 대책이 나오지 않았다. 이석태는 종이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해 여러 전문 서적을 탐독하며 연구를 거듭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진퇴양난은 형의 생수 자판기 판매 사업 부진으로 이어졌다. 사업 초기에 인기를 모으던 자판기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의 애물단지 신세가 되었다. 하루가 다르게 의욕을 잃어 가는 형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이석태는 일회용 종이컵으로 대체하면 충분히 재기가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형, 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위생적이고 간편한 일회용 종이컵을 만들 테니…." 정말이지 너무도 간단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아이디어의 줄기만 간단할 뿐 실용화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연구는 쉽지 않았다. 이석태는 거의 하루도 쉬지 않고 머리를 쥐어짜면서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했다.
마침내 이석태는 물에 쉽게 젖지 않는 종이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태플릿 종이였다. 일단 일반적인 종이의 단점을 수정 보완할 재질이 발견된 이상 그 뒤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저 태블릿 종이를 구하여 컵 모양으로 변형시키면 그만이었다. 물에 젖지 않는 일회용 종이컵을 발명하여 특허를 취득한 이석태는 그 뒤 대학을 그만두었다. 형이 발명한 생수 자동판매기를 다시 전국 곳곳에 설치하고, 그 자판기에 도자기 컵 대신 자신이 발명한 일회용 종이컵을 보급했다. 생수뿐만 아니라 각종 음료와 커피도 판매하기 시작하자 매출이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술술 풀린 건 아니었다. 자판기와 일회용 종이컵 보급만으로는 경영 상태가 크게 호전되지 않았고 나중에는 수익성 악화와 자금난으로 도산 위기에 직면했다. 청운의 꿈을 키우기 위해 대학까지 중퇴했던 이석태는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헤매야 했다. "당신의 특허권을 제대로 활용해야 합니다. 자판기에만 일회용 종이컵이 필요할까요? 부디 발상을 전환해 보세요." 그 무렵 한 젊은 자본가가 나타나 뜻밖의 제안을 해 왔다. 초기 자본금 회수가 어렵고 자금 회전이 느린 자판기 보급에 진절머리를 내던 이석태의 두 눈이 크게 떠진 것도 그 순간이었다. "자판기 사업보다는 종이컵 생산에 주력한다면 자금을 지원할 용의가 있습니다."
그 자본가가 이석태를 쳐다보고 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발상의 전환이 성공의 지름길이란 소리는 들었으나 너무도 놀라운 아이디어였다. 행운의 여신이 바짝 다가온 것만 같아서 이석태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그게 무슨 뜻이지요?" 이석태는 가슴이 뛰었지만 짐짓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 자본가가 무슨 목적으로 접근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으나 어쨌든 돈 많은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것은 싫지 않았다. "이 사업은 돈만 앞세워서 되는 게 아닙니다." 잠시 머뭇거리던 이석태가 당돌하게 대꾸했다. "그 말을 부인할 생각은 없어요. 하지만 머잖아 일회용 종이컵 시대가 올 거라는 확신이 들기 때문에 찾아온 겁니다. 종이컵만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회사를 설립하는 게 어떻겠소?"
영리한 이석태는 그의 말을 알아듣고 금세 얼굴이 붉어졌다. "특허권과 자본이 잘 결합하면 대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저는 소위 '엔젤클럽'을 구성하여 사업화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특허를 찾아 헤맸습니다. 우리 투자자 모임의 결단을 이끌어 내기 위해 제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십니까?" 그 자본가는 상체를 기울이며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좋습니다. 얼마를 대시겠습니까?" 좌절의 위기에 빠져 있던 이석태는 그 자본가의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초기 자본으로 우선 50억 원을 출자하죠. 회사 주식의 절반 이상을 이석태 사장님께 배정하는 조건입니다." "지원해 주신다면 당장 회사를 설립하겠습니다."
초기 자본으로 50억 원을 내놓겠다니 마치 꿈속을 헤매는 것 같았다. 이석태와 그 자본가는 투자 약정서에 서명 날인한 뒤 법인 설립과 시설 투자를 서둘렀다. "인류의 건강을 생각하는 기업을 탄생시키는 겁니다." 본격적인 종이컵 시판을 앞두고 두 사람은 더욱 더 의기투합했다. 회사 이름은 '주식회사 클린컵'이었고 슬로건은 간단명료했다. "인류의 건강을 생각하는 기업이 탄생시킨 '클린컵'은 간편하고 위생적입니다." '건강 컵'이라는 이미지로 일회용 종이컵이 일반 대중 속에 인식되자, 처음에는 호기심 많은 소수의 소비자층에게만 팔렸지만 점차 소비 범위도 확대되었다. "인류의 건강을 생각하는 기업 '주식회사 클린컵'은 한 번 사용한 컵을 회수하여 재활용하고 있습니다."
환경 보호 운동에도 적극 동참한다는 기업 이미지를 앞세웠더니 사회적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다고 했던가. 일회용 종이컵 발명가 이석태에게 엄청난 행운까지 겹쳤다. 민간보건연구소에서 연구에만 전념하던 정경균 박사가 난데없이 일회용 종이컵을 위대한 발명으로 인정하는 칼럼을 발표했던 것이다. "인간을 바이러스로부터 구하는 길은 오직 일회용 컵을 사용하는 것뿐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정경균 박사의 주장이 그랬으니 치솟는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었다. 시중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으며 종이컵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은 물론이었고 별다른 광고 없이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갔다. 종이컵 한 가지만으로 큰돈을 모으게 된 이석태는 다시 몇 년 뒤 아이스크림을 담을 수 있는 일회용 조이 그릇을 발명했다. 그리하여 주식회사 클린컵 이석태 사장은 종이 그릇 발명 분야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인정받기에 이르렀고, 그의 발명품인 종이컵은 지구촌의 음료 자판기 시대를 열었다.
* 실제로 일회용 종이컵을 발명한 사람은 미국의 '휴 무어'였다.
꼴지가 세상을 바꾼다 - 벨크로 원단김철호는 시골 부잣집 외아들이지만 무척이나 겸손하고 선량한 학생이었다. 가난한 친구에게 자기 도시락을 아무 거리낌 없이 건네고 점심을 굶을 정도로 인간미도 따스했다. 하지만 학교 성적은 늘 꼴찌 주변을 맴돌아서 공부 못 하는 아이로 알려진 데다 장래 희망이라고 해 봐야 평범한 농부가 되는 게 고작이었다. "별 볼일 없는 녀석!" 오죽하면 그의 아버지마저 안쓰럽다는 듯 그렇게 혀를 찼을까. 학교 성적도 늘 하위권인 데다가 특출한 재주가 없고 이렇다 할 개성도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존재에다가 도무지 자기 목소리를 높일 줄 모르는 녀석 같아 아버지로선 답답하기만 했다.
그 날도 김철호는 자전거를 끌고 해질녘 시골 풍경을 감상하면서 들꽃과 들풀을 관찰하는 재미에 빠져 있었다. 그 짓마저 시시해지면 채취한 야색 식물의 잎이나 꽃들을 집에 가져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고향 마을 앞에 세계 최대 규모의 야색 식물원을 조성하겠다는 자기만의 꿈을 키워 나갔다. 김철호는 농부가 되어 죽을 때까지 고향 마을에 살면서 새벽을 비롯해 아침 오전 오후 저녁 밤 한밤의 순간순간이 그려 내는 갖가지 풍경화를 즐기는 게 소원이었다. 그 거짓 없는 자연의 품안에 안겨 정겹게 땀 흘리며 땅을 일구는 행복한 농사꾼이 되고 싶었다.
그 날 누렁이와 함께 산에서 신나가 놀고 돌아오던 김철호는 바지와 누렁이의 털에 달라붙은 어떤 열매들을 떼어내느라고 고생을 했다. 옷가지나 동물의 털에 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그 열매들의 대단한 끈기와 집착에 놀라서 그는 중얼거렸다. "이 녀석들을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매우 흥미로울 거야." 김철호는 옷에 달라붙은 그 열매들을 떼어 내다 말고 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진드기처럼 달라붙는 녀석들의 이름은 무엇일까? 마을 어른들에게 물었더니 '쇠무릎지기'의 열매라는 게 아닌가. 몹시 궁금했던 그는 집에 가자마자 국어사전을 펼쳤다.
쇠무릎지기: 비름과에 딸린 여러해살이풀. 줄기는 메모지고, 쇠무릎처럼 통통한 마디가 있으며, 8~10월에 녹색 다섯잎꽃이 줄기 끝이나 꽃줄기에서 벼이삭처럼 핀다. 열매에는 가시가 있어 사람의 옷에 잘 붙는다. 뿌리는 이뇨 강장 해열제로 쓰고, 줄기와 잎은 해독제로 쓴다. 줄여서 쇠무릎이라고 부르거나 동양의학에서는 우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토록 끈끈하게 매달리던 쇠무릎지기의 열매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았다. 열매의 표면에 작은 갈고리들이 질서정연하게 돋아나 있는 게 선명히 보였다. 들판에 널려 있는 식물성 열매가 지퍼처럼 만들어져 동물의 털과 모직 의류에 달라붙는 게 놀랍기만 했다. 그 열매의 모양과 특성을 잘 살린다면 지퍼와 단추, 벨트, 뚜껑 등에 못지않은 기발한 잠금 장치를 만들 수 있겠다는 엉뚱한 상상을 한 것도 그 순간이었다. 구멍에 고리를 걸어 채우거나 끈으로 불편하게 동여매야 하는 허리띠를 대신하여 서로 접촉하는 순간 붙어 버리게 한다든지, 일일이 구멍에 단추를 끼우는 절차를 생략하고 모직 의류가 접촉하는 즉시 단추나 지퍼처럼 채워진다든지, 가방을 닫고 채우기 위해 힘들게 고리를 연결하는 대신 뚜껑을 닫는 순간 모직이 서로 붙어 버리는 잠금 장치를 개발하면 무척이나 유용할 것만 같았다.
"선생님, 제 아이디어를 소개할 테니 도와주십시오." 그 이튿날 김철호는 과학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 머릿속에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맴돌던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쇠무릎지기의 빨판 같은 흡착 시스템을 그대로 살릴 수 있다면 멋진 발명품이 탄생될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선생님, 지도를 부탁드립니다." 별 볼일 없는 녀석으로서 공부도 못하는 꼴지 제자의 엉뚱한 발상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선생님은 정신 나간 사람처럼 벌떡 일어서더니 김철호의 등을 거칠게 두드렸다. "시작이 반이다.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선생님, 정말 가능할까요?" 김철호가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그 찍찍이 원단의 개발에 성공하면 그 용도는 무궁무진할 거다." 마치 개발에 성공한 것처럼 선생님은 김철호 이상으로 흥분했고 '찍찍이 원단'이라는 이름까지 작명해 주었다.
"하지만 그걸 완성시키리면 많은 연구 개발비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선생님께서 우리 부모님을 설득시켜 주세요.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알았다. 네 부모님을 만나러 가자." 하루 종일 곁을 떠나지 않고 사정하는 제자의 끈기에 선생님은 두 손을 들고 말았다. 신이 난 김철호는 자전거에 선생님을 태우고 집으로 달렸다. "제가 보기에 김철호는 결코 열등생이 아닙니다. 제가 판단하건대 놀라운 아이디어를 가진 훌륭한 학생으로 장래가 촉망됩니다. 따라서 특유의 창의력을 발전시킬 수 있는 토양이 필요합니다. 반드시 부모님의 지원이 있어야 이 녀석의 성공이 가능합니다. 관심을 기울여 주시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자금 지원이 필요합니다."
제자의 손에 이끌려온 선생님은 부모님을 설득했고, 선생님의 격려와 협조에 힘입어 김철호는 부모님의 자금 지원까지 받을 수 있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이 문제지와 정답을 달달 외우며 입시와 취업 준비에 몰두하는 동안, 공부 못 하는 김철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관련 서적을 독파하며 연구에 매달리기 시작했다. 합성섬유 나일론에서 찍찍이 원단을 뽑아내는 기계를 만들면 만사가 술술 풀릴 것만 같았으나 해결책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더 좋은 방법이 없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일이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선생님의 결론이 그랬다. 그 때부터 김철호는 선생님의 소개로 어떤 교수를 찾아가고 원단 제조 회사를 방문하여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곤 했다. 비협조적인 기술자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어른들을 만나면 며칠이고 찾아가 사정하며 선물 공세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