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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 한스미디어
공부의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한스미디어 / 2010년 8월 / 222쪽 / 11,000원




제1장 교양을 몸에 익히는 공부



‘항상심을 가지고 공부하고 있는가’가 분기점

해고니 파견근로니 하여 정말 일하는 환경이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각박한 세상에서 이는 반드시 좋은 시스템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비즈니스맨을 위시하여 사회인은 그런 힘든 사회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숙명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그럼, 일을 계속하면서 경력을 쌓아가는 사람과 ‘실업예비군’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디가 다른 것일까요?

분기점은 ‘향상심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지, 하지 않는지’에 있다고 봅니다. 이것만큼은 속임수가 통하지 않고 바로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 신입사원은 연수 후나 1년 후, 혹은 3년 후에 어떤 고비에 어떤 형태로든 테스트를 받습니다. 그때 일을 길게 계속 할 수 있는 사람은 역시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사람이죠. 공부를 하면 그만큼 일에 필요한 지식이 증가하고 능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임시직도 괜찮다”, “출세하지 않아도 좋다”, “조건이 나빠지면 그만 두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테스트 공부에 열중하지 않습니다. 테스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합니다. 풍부한 사람은 좋은 성적을 얻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좋은 점수를 딸 수 없습니다.

그런 점수 차이로부터 무엇을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요? 지식 레벨?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일에 대한 의욕을 측정할 수 있습니다. 점수가 낮은 사람에 대해 회사는 “하겠다는 생각이 없구나. 조금 실패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은 일이 있으면 바로 그만 둘 것 같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점수가 높은 사람에 대해서는 “장래성이 있다”고 판단합니다. 그 평가의 차이가 사원에 대한 기대치에 반영되어 장래성이 있는 사람에게는 계속해서 기회가 주어지게 됩니다. 역으로 일에 대한 자세가 의문시되는 사람에게는 “일을 계속할 의지가 없으면 언제든지 그만 두어도 좋습니다”라는 식으로 차갑게 대하고 ‘실업예비군’에 집어넣습니다.

테스트만이 아니라 일상의 근무태도도 상층에 있는 사람은 ‘향상심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는지’ 보고 있습니다. 맡은 바 업무를 착실하게 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에 뭔가를 더하여 자신 나름의 것을 궁리하여 기대 이상의 일을 하는지 보고 있습니다.

아마 비즈니스맨은 거의 전원이 “나는 착실하게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요컨대 비교의 문제입니다. 만약 3명 중 1명밖에 남을 수 없다면, 맡은 바 임무를 착실히 하는 것뿐만 아니라, 어떻게 하면 리퀘스트 이상의 일이 가능할까를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살아남지 않겠습니까?

회사는 공부력 있는 사람을 원한다

최근 기업연수가 왕성하게 행해지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꽤 돈이 많이 듭니다. 실천적인 트레이닝이라면 할 만한 가치가 있겠지만, 무언가에 대한 지식을 배우는 강연회나 세미나 등은 어떨까요? 삶에 임팩트를 주는 것은 가치가 있기 때문에 필요 없다고 확언할 수는 없지만 “책을 읽고 공부하세요”로 끝나는 것이 대부분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유명 강사라면 저작이 많이 나와 있을 것입니다. 만약 사원에게 스스로 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고, 얻은 지식을 사업장에서 재생할 수 있는 능력이 구비되어 있다면 일부러 회사가 돈을 들여서 연수를 시키지는 않을 것입니다. 스스로 공부력을 갖춘 사원만 있다면 회사는 업무개발 연구에 드는 돈을 대폭 절감할 수 있게 됩니다. 게다가 공부에 열심인 사람은 사비로 외부 세미나에 참석하기도 합니다. 믿음직한 사원은 회사가 굳이 공부의 장을 부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 관점에서도 공부를 하지 않는 사람은 실업예비군에 들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즉 회사는 자발적으로 공부하여 점점 성장하는 사람인지를 늘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바꿔 말해, 넓은 의미에서 ‘공부력’을 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자각하고 있는 비즈니스맨은 의외로 적은 게 아닐까요? 눈앞의 일 하나하나에 정신을 빼앗기지 말고 업무력과 공부력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공부’는 비즈니스에 직접 관계가 있는 것이라기보다 교양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중에 “교양과 일은 관계가 없지 않나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생각은 당치도 않은 착각입니다. 교양을 몸에 익히기 위한 공부야말로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자질을 갖추는 데에 필수불가결합니다. 본장에서는 그 사실을 명확히 하면서 ‘공부력’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제2장 업무의 폭을 넓혀주고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교양



살아 있는 공자가 말을 걸어준다?!

업무를 포함한 인생 전반에서 『논어』는 다양한 행동지침을 제시해주는 고전 중의 고전입니다. 대화 형식으로 씌어져 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머릿속에 쏙쏙 들어옵니다. 단, 살아있는 공자가 옆에서 나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는가 하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현대어가 아니고, 또한 말이 짧게 나누어져 나열되어 있기에 거리가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그 때문에 좀처럼 공자의 말을 자신의 문제로 파악하는 것이 어려워 이른바 ‘사례연구’가 쉽지 않다는 난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2000년도 전에 쓰인 『논어』의 장구를 현대에 생생하게 소생시켜주는 책이 있습니다.

하나는 시모무라 고진(1884~1955)의 『논어이야기』입니다. 『논어』에 씌어져 있는 것을 전부 씹어 먹어 자신의 피와 살로 만들어 완전히 소화한 상태에서 몇 개의 단편을 완성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너는 선을 긋는구나!”라는 말이 있습니다. 『논어』에서 너무나 유명한 말이기 때문에 그냥 지나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진은 이 말에 딱 들어맞는 이야기를 만들었습니다. 선생의 길이 대단하다는 것은 알지만, “저는 아무래도 불가능합니다”라고 겸손하게 엉거주춤한 태도를 취하는 제자에게 공자는 딱 잘라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겸손한 것처럼 가장하고 있으나, 그런 식으로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여 도망가고 있을 뿐이다.”

읽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이 마음을 정확히 찔린 것 같은 생각이 들 것입니다. 힘든 일을 앞에 두고서 먼저 변명을 준비하고 해보지도 않고 도망가려는 자신이 있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에게는 아직 그런 능력이 없기 때문에.” “나 이외에 적임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은 바빠서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에.” 등등 변명거리를 붙여 ‘겸허의 옷을 입은 (불가능하다는) 변명’을 생각해냅니다.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도망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은 누구나 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공자는 왜 힘든 것을 이야기할까”라고 생각하는 한편, 공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들킨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너무나 현장감이 넘칩니다!

결국 “지금 너는 선을 긋는구나”라는 핵심 어구가 이야기와 함께 머리에 어렴풋이 남게 됩니다. 앞으로 변명을 하고 싶은 상황에 처하게 되면 “안 돼, 안 돼. 여기서 도망치면 공자님에게 야단을 맞지”라고 자신을 규율하는 의식이 생길 것입니다. 이처럼 『논어이야기』를 읽으면 공자의 가르침이 살아 있는 말처럼 전해져서 인생에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논어』를 축으로 행동한 시부사와 에이치

소개하고픈 또 다른 책은 시부사와 에이치(1838~1912)의 『논어와 주판』입니다. 시부사와 에이치는 막부 말의 가신으로서 두각을 나타내고, 후에 대장성 관료를 거쳐 실업가로서 활약한 인물입니다. 제1국립은행, 일본우선, 오지제지, 도쿄증권취급소 등등 다양한 기업의 설립 및 경영에 관계하여 ‘일본자본주의의 아버지’라고도 불리는 거물입니다. 그는 회사 경영을 하는 데 있어서, 더 나아가 일본 경제를 움직이는 도끼를 휘두를 때도 항상 『논어』를 축으로 행동했다고 합니다. 『논어』는 경제지침서는 아니지만, ‘정치의 서’, ‘전략의 서’라고 해도 좋을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전략의 근간에 인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나 경영도 그렇습니다. 인격이 있어야 사리사욕에 의해 길을 벗어나는 일 없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 전력을 다할 수 있으며 주위의 신뢰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역으로 최근의 기업스캔들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기업경영자가 “나만 벌면 된다”, “내 회사만 벌면 된다”라는 식의 생각에서 부정을 행하거나 법망을 빠져나가 아슬아슬한 선에서 위험한 다리를 건너거나 하여 체포되는 예를 하나하나 셀 수도 없이 많이 봅니다.

분식 결산, 수뢰, 공금횡령, 탈세, 상품의 위장표시, 환경오염 등등 그런 식으로 길을 잘못 드는 것은 전적으로 인격이 미숙하기 때문입니다.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재기 넘치는 사람도 상당한 의를 중시하는 확고한 신념이 없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축이 흔들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논어』를 축으로 행동한 시부사와 에이치는 결코 길을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논어』가 시부사와 에이치의 일부가 되어 플러스 호르몬처럼 모든 장면에서 작용하고 있습니다. 『논어와 주판』을 읽으면 그걸 정말 잘 알 수 있습니다. 『논어』의 정신이 어떻게 비즈니스와 인생에 살아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는 의미에서도 『논어와 주판』은 비즈니스맨의 필독서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제3장 공부의 첫발을 어떻게 내딛을까



중요한 것은 ‘좋다, 재미있다’라는 기분으로

교양을 위한 공부,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 위한 공부를 하라고 말해도, 어떻게 손을 써야 하는지 실마리가 잡히지 않아서 망설이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취미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취미라고 하면 바로 “취미가 없는데, 곤란하지 않은가?”라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올 법도 합니다.

확실히 지금까지 업무 일변도로 생활해온 많은 사람들은 취미에 미쳐 있는 시간이 없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것 두세 개, 아니 대여섯 개는 분명히 있겠지요.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시간을 잊어버리거나 행복해지는 기분이 들면서 생활에 윤기를 더해주는 행위, 정말 사소할지라도 좋고 재미있어서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든 취미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공부를 계속 해가는 데에는 ‘좋다, 재미있다’라는 기분이 드는지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좋지도 않고 재미도 없으면 공부 의욕을 유지하고 향상시켜 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좋다, 재미있다’는 말하자면, 공부를 향한 동기 부여를 유지하고 호기심을 점점 늘려가기 위한 장치 같은 것입니다.

흥미를 주변 정보로 넓혀간다

다만 그저 좋고 재미있기 때문에 하는 것만으로는 교양을 위한 공부로 연결시킬 수 없습니다. 직소퍼즐이 좋아서 매일 거기에 몰두하고 있으면 마음의 치유는 될지 몰라도 공부라고 하기에는 어렵지요. 그렇지만 직소퍼즐에 도전하는 가운데 성이든 풍경이든 명화든 인물이든 그림 형태에 의미를 두고 그 배경에 있는 역사나 관계되는 사건 등의 주변 정보를 조사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요? 교양을 위한 공부와 연결되어 갑니다.

또 무언가가 좋아서 모으는 행위, 즉 컬렉션도 그저 모아서 기분이 좋은 것만으로는 취미 이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로부터 더 나아가 모은 것 하나하나에 대해, “언제 탄생하고, 어떤 식으로 퍼져갔지?”“어떤 소재, 기술이 사용되고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천해갔을까?” “이 디자인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역성이나 종교관은 반영되고 있는 걸까?” “명공(名工)이라 불리는 사람은 세계에 어느 정도 있는 것일까?” “이 물건과 관련된 이야기는 있는 것일까?” 등 다양한 의문을 가지고 책을 읽거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거나 하여 지식을 쌓아갑니다. 그러면 컬렉션이라는 취미가 공부와 연결되어, 깊고 넓게 교양을 몸에 익힐 수 있습니다.

실제 컬렉션의 세계에는 매우 협소한 핀포인트 영역에서 흥미를 가지고 자타 공히 “이것에 관해서는 가장 잘 안다”라고 일전할 정도의 지식을 갖춘 사람이 적잖게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귀이개 같은, 주위 사람 모두가 시시하고 재미없다고 생각하는 컬렉션이라도 공부의 재료가 될 가능성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나에게 좋고 재미있는 기분이 들어서 공부 의욕에 훌륭하게 이끌린다면 일류 연구자와 같은 수준의 결실을 맺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것은 일반 교양형이라기보다는 연구자 스타일의 공부법입니다. 컬렉션에 대한 마니아적인 몰두는 다양한 분야에 대한 공부를 촉진하고 폭넓은 교양을 몸에 배게 하는 쪽으로 연결되어 갑니다.

스토리를 즐기는 것만으로 왠지 부족하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매우 많습니다. 그 대부분은 대강의 줄거리, 즉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되어 가는가를, 개성 넘치는 등장인물들이 만들어가는 다양한 사건과 함께 즐기실 것입니다. 좋습니다. ‘오락을 위한 독서’라고 하더라도 배우는 것은 많으며, 충분히 지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교양을 몸에 익히기 위한 독서’라면 그걸로는 왠지 부족하다는 느낌입니다. 일독하고 “야, 정말 재미있었다”라고 단 한마디만 하고 끝내는 것은 아쉽습니다. 그 소설이 쓰인 이면에 있는 장치를 알거나,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다채로운 시점으로 해석하는 과정을 동반한다면 우리는 소설을 10배는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추천하고 싶은 방법은 평론을 곡괭이 삼아 소설을 깊게 파내려가 읽는 것입니다. 아직 평론이 적은 현대소설은 조금 무리가 있지만, 고전에 속하는 문학작품이라면 이 방법으로 상당히 지성이 업되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지금 붐인 도스토예프스키라면

가메야마 이쿠오의 신역으로 지금 붐이 된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젊은 시절에 읽은 사람이 많겠지만 다시 평론을 손에 넣어 읽어봅니다. 가메야마 이쿠오나 에가와 다쿠 등 러시아문학 연구자가 쓴 많은 평론이 나와 있기 때문에 구하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에가와 다쿠의 『수수께끼 풀기 ‘죄와 벌’』이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예, 로지온 로마노비치 라스콜리니코프라는 주인공의 이름은 러시아 철자로는 이니셜이 ‘ppp’입니다. 그럼 그 ‘ppp’를 반대로 읽으면 ‘666’이 되어 악마의 숫자가 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당시 생각하고 있던 이름을 초고 단계에서 일부러 바꾸었다고 하기 때문에 역시 악마의 숫자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 이름 또 고리대금업자 노파의 이마를 도끼로 완전히 두 동강 내는 그의 행위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식은 평론이나 해설 책을 읽지 않는 한,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단지 『죄와 벌』을 읽는 것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깊은 공부를 위해선 위와 같은 평론을 읽어 작가가 여기저기에 설치한 장치를 공부하고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스토리에만 갇혀 있으면 작가가 문학 작품에 집어넣은 흥미로운 세계를 탐방하는 지적인 재미와 깊은 감동을 얻을 수 없습니다.

평론은 작품의 텍스트성을 높혀 줍니다. 점점 풍요롭게 작품의 의미가 솟아오릅니다. 평론을, 문학 작품을 읽을 때 친구로 삼으면 스토리의 전개상 복선이 되는 장치가 어떤 식으로 넣어져 있는지 등 다양한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풍부한 소재를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평론에는 “예~, 그랬단 말인가? 알겠다, 알겠어”라고 솔직히 받아들일 수도 있고, “그것은 틀렸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렇게 해석한다”라고 반론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또 하나의 재미라 할 수 있습니다.

문학을 직물에 비유하면, 거기에 여러 가지 지닌 언어를 직조하는 것은 작가이지만, 그것을 끄집어내 어떻게 해석할지는 독자의 몫입니다. 쓴 작가 자신이 생각지도 않은 의미를 짐작하는 것은 독자에게만 허락된 자유이고 기쁨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시는 언어의 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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