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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쾌한 소통의 법칙 67

김창옥 지음 | 나무생각
유쾌한 소통의 법칙 67

김창옥 지음

나무생각 / 2010년 8월 / 221쪽 / 12,000원




1분만 기다려라

소통에 있어 1분의 힘은 크다. 참을 인이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옛말처럼 단 1분이면 날 서고 뾰족했던 마음도 서서히 내려앉는다. 미국의 중심가, 뉴욕의 기차는 항상 예정 시간보다 1분 늦게 출발한다. 단 1분이 늦어 30분을 기다려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바쁜 일이 있나 보다. / 힘든 일이 있나 보다. / 속상한 일이 있나 보다.



30분도 아니고 10분도 아니고 딱 1분만 기다려주면 된다. 그렇게 1분이 지나고 나면 숨이 내려앉고 화가 가라앉는다. 그러고 나서 소통해도 절대 늦지 않다.



소유하지 말고 함께 어울려라

가진 것이라곤 허리춤에 두른 가리개 하나가 전부인 다섯 남자가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처럼.”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문명을 한 번도 접해 보지 않은 원주민의 영국 홈스테이를 방송한 적이 있다. 남태평양 섬나라 원주민 다섯 명이 영국의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그들의 생활을 체험해 보는 방송이었다. 멋진 문명의 옷으로 갈아입은 다섯 남자는 생전 처음으로 영국 맥주도 마셔 보고 나이트클럽도 가본다. 그리고 상류층의 호화로운 생활도 체험해 본다.



하지만 하루하루 지날수록 그들은 고개를 갸웃한다. 문명을 누리는 사람들은 더 많은 돼지를 얻기 위해 돼지를 인공적으로 교미하고, 값비싼 접시를 닦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그들이 농장 주인에게 묻는다. “그러면 도대체 돼지들은 어디서 즐거움을 얻죠?” “우리는 그런 것 모릅니다.” 넓은 농장, 많은 소와 돼지를 가지고도 오로지 숫자 늘리기에 급급한 농장 주인을 보며 그들은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며 돌아선다. 그리고 다시 접시를 닦느라 분주한 부인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접시를 닦나요?” “고급 접시라서요.” “그렇게 접시를 닦느라 시간을 허비하면 가족들과 대화는 언제 나누죠?” “비싼 접시는 설거지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려요.” 대화를 마치고 돌아서며 다섯 남자는 말한다. “저 영국 여자는 접시가 너무 많은 것 같다.” 바나나 잎에 음식을 싸서 먹고, 먹고 나면 그 잎을 휙 던져 버리고는 얼른 나무 그늘 아래로 가 가족, 이웃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그들로서는 도저히 이해 못할 일이었다.



그들은 문명을 떠나 다시 자신의 섬으로 돌아가던 날, 영국인들에게 마지막 인사의 말을 전한다. “우리는 행복을 전하러 영국에 왔습니다. 여러분 행복하십시오. 여러분이 돼지를 어떻게 키우든, 접시가 많든 적든, 당신들이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들처럼.” 순간, 원주민 다섯 남자의 얼굴에 흐르는 환한 미소가 화면을 가득 채운다. 어쩌면 그들이 소원하기 이전에 우리는 이미 행복한지도 모른다. 바나나 잎 한두 장이면 끝나는 그들에 비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 그러나 그것을 관리하느라 행복을 느낄 시간이 없는 것은 아닌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환한 미소를 가질 수 없다.



마음의 운동을 하라

나는 해병대에 지원해서 갔지만, 군 생활은 정말 힘들었다. 상황에 상관없이 욕설을 들어야 했고, 구타와 체벌도 있었다. 무엇보다 억압된 생활이 제일 힘들었다. 그래도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일요일마다 해병대 안에 있는 교회에 가는 것이었다. 교회에서는 가끔씩 소책자를 나누어주었는데, 그 책 속에서 여러 가지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그런 위안과 평화의 시간이 없었다면 힘든 군 생활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그 후 나는 마음이 억압된 사람들이나 제한된 공간에서 자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얼마 전 서울 근교에 있는 교도소에서 강의 의뢰가 들어왔다. 연락을 준 여성 교도관은 직원들의 교육과 재소자들의 재활에 관심이 많은 열정적인 분이었는데, 방송을 통해 나를 알게 되어 강의 요청을 해온 것이다. 드디어 원하던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설렘과 재소자들을 만나야 한다는 두려움을 갖고 교도소에 도착한 나는 자리에 앉아 있는 재소자들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의 예상과는 달리 그들은 대부분 잘생기고, 몸도 좋았다. 여름이라 반팔을 입고 있었는데, 떡 벌어진 어깨가 단단해 보였다. 몸 좋고, 잘생긴 건 이해하겠는데 놀라운 건 인상이 좋은 사람들도 많다는 것이다.



십 년 동안 강의를 해오면서 60만 명 정도의 사람들을 만나왔고, 그래서 인상을 보면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고 자부했는데 이번에는 감을 잡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란 것은 강의장에 함께 들어온 교도관들이었다. 일단 그들은 몸이 안 좋았다. 제복 아래로 드러난 어깨는 빈약했고 몸도 호리호리했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모두 피곤하고 지쳐 보였다. 강의를 의뢰한 여자 교도관과 한 남자 교도관만 빼놓고는, 오고 가면서 본 교도관들의 모습은 대동소이했다.



두 시간의 강의를 마치고 나가려는데, 한 재소자가 다가오더니 “강의 잘 들었습니다” 하며 인사를 했다. 얼굴을 보니 그의 표정이나 인상은 거의 성직자 수준이었다. 나는 교도소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인상도 험상궂고, 몸에는 용이나 호랑이 한두 마리쯤은 그려져 있을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강의를 의뢰한 여자 교도관에게 나의 느낌을 말했다. “요즘은 교정시설이 참 좋아졌습니다. 하루 세 끼 1식 4찬이 나오고, 규칙적인 운동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면 원어민 강사에게 영어를 배울 수 있고, 통신대학교에서 학점도 딸 수도 있습니다. 또 교도소 내에 있는 운동시설은 바깥의 웬만한 곳보다 더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특히 마약 사범의 경우에는 많은 시간을 헬스장에서 보내니 자연히 몸이 좋아지겠지요. 그리고 오늘 강의는 강제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강의장을 찾은 재소자들은 특히 갱생의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기적인 식사, 규칙적인 운동, 갱생의 의지가 그들을 몸짱, 얼짱, 인상짱으로 만든 것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본 대부분의 교도관들은 왜 활기가 없어 보였을까? 3교대를 하는 불규칙한 생활과 소명감 없는 직업의식이 원인이라고 했다. 마침 그곳에 군대 동기가 교도관으로 있어 점심식사를 하자고 청해보았지만, 근무시간에는 교도소 밖으로 나갈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여자 교도관과 대화를 나누던 중 사식으로 들어온 인스턴트 커피를 나누어 마시며 즐거워하는 재소자들을 보았다. 순간 누가 재소자이고, 누가 교도관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감옥에 갇혀 있는 것일까? 그리고 어디가 교도인가. 정기적으로 마음의 양식을 먹지 않고 마음의 운동도 하지 않는 사람, 그리고 소명감 없는 직장과 목적 없는 바쁜 생활을 하고 있는 이가 감옥에 있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전국을 다니면서 강의를 하다 보면 밤늦게 귀가해 새벽에 나가는 강행군이 적지 않다. 그런 중에 규칙적으로 마음의 양식을 먹지 않고, 정기적으로 운동도 하지 않고, 소명감마저 시들한 때는 마치 감옥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많은 사람들이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고 넓은 곳을 바삐 다니지만, 바로 그곳이 감옥일지도 모르겠다.



메시아콤플렉스에서 벗어나라

“이게 다 부장님 덕분이에요!” “부장님 없으면 우리 회사는 당장 문 닫아야 할 걸요!” 그저 인정받는 것이 좋았을 뿐이다. 그래서 청춘을, 열정을, 오로지 한곳에만 쏟아부었다. 대가를 원한 적도 없다. 그저 회사가 성장하고,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그 모든 것이 ‘당신’ 덕분이라 인정해 주는 한마디면 그걸로 족하다. 어느 날 갑자기 그는 과로로 쓰러지게 된다. 그리고 몇 달간 휴양하며 건강을 돌봐야 한다는 안타까운 말을 듣게 된다. 병원 침대에 누워서도 회사 걱정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김대리, 요즘 회사 어때?” “아! 회사요? 잘 돌아가죠. 지난달보다 매출이 두 배로 올랐어요!” “어… 잘됐네. 그나저나 내가 어서 회사로 복귀해야 하는데….” “그런 말씀 마세요. 부장님 안 계셔도 우리 회사 끄떡없으니 마음 편히 몸조리 잘하세요.”



병실에 누워서도 회사 걱정인 그와 달리, 회사는 너무나 잘 돌아가고 있다. 전화를 끊는 혀끝에서 씁쓸함이 감돌고 마음은 소란스럽기 그지없다. 내면이 소란스러운 원인은 ‘나는 알고 있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아는 것을 알려야 하고 주장해야 하고 관철시켜야 하고, 그럼으로써 인정받아야 한다는 욕구가 우리를 소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언젠가 사회복지사들의 조찬 모임에 간 적이 있다. 그중 한 사람이 “내가 30년 가까이 대한민국에서 사회복지를 이야기했는데, 이 사회는 달라지지를 않는다”며 울분을 토했다. 화를 참지 못한 그는 얼마 후, 연세 지긋한 한 신부님을 찾아가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당신이 뭔데 이 세상을 바꾸려 하는가? 나는 60년을 이야기했는데도 세상은 변한 게 없다. 예수님은 2000년을 이야기했다. 그래도 사회는 이 모양이다. 당신이 뭔데 당신 이야기에 세상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신부님은 그에게 삶의 덧없음이나 허무함을 말한 것이 아니다. 그냥 조금 내려놓으라는 것이다. 세상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의 느린 속도로 천천히 변하고 있고, 그 속도가 성에 차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구원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메시아 콤플렉스는 나를 힘들게 하고 나와 관계를 맺는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한다. “내 말대로 하면 자다가도 떡이 생길 텐데, 왜 당신들은 내 말을 따르지 않는 거야!”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들이 옳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천천히, 그리고 조금은 내려놓고 보자. 내가 평화로워야 세상도 평화롭다. 아이도, 남편도, 사회도 내가 다 조종하고 바꾸어놓아야 한다며 오늘도 에너지를 모조리 불태웠을지 모른다. 그런데 에너지를 다 태운 그 끝에서 재가 된 나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 세상을 보며 과연 어떤 생각을 할까. 씁쓸하고 또 씁쓸하지 않겠는가. 내가 세상을 다 짊어지지 않아도 세상은 충분히 잘 돌아간다. 세상은 우리가 있기 이전부터 돌아가고 있었고, 우리가 떠난 이후에도 돌아갈 것이다.



마음의 쿠션이 필요하다

편안한 승차감을 위해, 포근한 포옹을 위해 충격을 완화해 줄 쿠션이 필요하듯,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도 우리의 마음에 쿠션이 필요하다.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강연할 때면 나는 종종 “직장생활 중 뭐가 가장 힘든가?”를 묻는다. 그러면 그들은 단연 ‘인간관계’를 제일로 꼽는다. “일이 힘든 것은 참겠는데, 사사건건 내 속을 박박 긁는 그 인간을 견디는 것은 정말 힘들어.”



그게 직장이든 집이든, 나와 맞지 않고 나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은 여간 불쾌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도 나를 불편하고 가까이 하기 싫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차를 타다 보면 움푹 파인 도로나 돌멩이의 충격을 그대로 몸에 전해주는 차가 있는가 하면 충격완화 작용이 잘 되어 있어 그 충격이 최소로 전달되는 차도 있다. 누군가가 나에게 들어와 냄새 나는 짓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환기가 되는 것처럼 마음에도 충격을 흡수하는 쿠션이 필요하다.



어느 날 모델 하우스에 구경을 갔는데 그곳에 복층하우스가 있었다. 높은 천장과 쾌적한 공간도 놀라웠지만, 게스트용 화장실이 따로 있는 것이 부러웠다. 손님이 급한 볼일을 볼 때 주인도 손님도 편할 만큼 공간이 넉넉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은 복층아파트에서 살기 어렵다. 그러나 마음의 게스트 하우스는 얼마든지 가질 수 있다. 마음의 게스트 하우스를 하나 갖고 있으면 넉넉하게 타인을 받아줄 수 있다.



문제 속에서 나와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나라 교회에서 많은 존경을 받으며 활발한 활동을 하는 한 목사님이 한때 자신의 아들 때문에 곤욕을 겪은 일이 있다고 한다. 그 목사님의 아들이 신학교에 다닐 때, 교내에서 귀고리를 하고 있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게 된 것이다. 보수적 성향이 짙은 기독교 사회에서 그 일은 이슈가 되기에 충분했다. 당연히 목사님도 아들이 귀를 뚫은 것에 큰 충격을 받는다. 당장 아들을 찾아가서 “사내자식이 귀고리는 무슨 귀고리! 그것도 목사 아들이!”라며 귀고리를 떼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목사님은 아들에게 달려가는 대신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목사지 내 아들이 목사인가.’ ‘내 아들이 목사의 아들로서, 아무 고민 없이 귀고리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아들은 참고 참다가, 미루고 미루다가,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어 귀고리를 했을 것이다.’ 생각이 글로 형상화되는 동안 복잡한 문제들이 하나둘 정리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마침내 명쾌한 해답이 나왔다. “그래! 아들이 고민하고 망설였던 시간만큼 나도 아들을 기다려주자.” 목사님은 그렇게 몇 달을 기다렸고, 그 기다림의 시간만큼이나 아들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복잡한 문제들과 맞닥뜨린다. 내 마음과 내 마음이 충돌하고, 나와 타인이 충돌하며 다툼과 미움이 생기기도 한다. 무엇이 옳은가 그른가를 떠나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이럴 때, 심리학자들은 그러한 사실을 종이에 적어보길 권한다. 나의 문제, 가족의 문제, 회사의 문제 등 그것을 종이에 옮겨 적다 보면 문제는 나를 떠나 점점 객관화되고, 마침내 깨끗하게 정제된 ‘문제’ 그 자체만 남는다.



“모로 보니 재인 듯 옆으로 보니 봉인 듯

곳곳마다 보는 산 서로서로 다르구나

여산의 참모습 알 수 없기는

내가 이 산중에 있음이로세.”





송나라 시인 소동파의 〈여산진면목〉이라는 시다. 내 속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결코 문제의 참모습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는 멀찍이 자신을 세워두고 객관화시켜 문제를 바라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글을 쓰든, 대화를 하든 문제 속에서 벗어나 바라보아야 한다.



리액션하라

주부들이 즐겨보는 아침 토크쇼 방송에서는 강사료보다도 더 비싼 돈을 주고 방청객 아주머니들을 고용한다. “아하!” “어~” “하하!”와 같은 리액션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리액션은 강사들의 기운을 돋우고, 시청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리액션 담당 방청객 아주머니들 중에는 실장님이라 불리는 그들의 캡틴이 있다. 이들은 20년 가까이 그 일을 해온 프로 중 프로다. 어쨌건 이 캡틴의 지시에 따라 방청객은 리액션을 한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리액션은 어쩐지 어색하다. 가끔은 반 박자 느리기도 하고, 조금 빠르기도 하다. 자신의 마음을 따르는 자연스러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에는 이런 어색한 리액션조차도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여보, 나 요즘 너무 힘들어.” 어깨가 축 처져 들어온 남편이 긴 한숨을 내쉬며 내뱉은 이 한마디에, 아내는 눈초리를 올리며 쌀쌀맞게 대꾸한다. “당신만 힘든 거 아니거든! 요즘 경기가 나빠서 다들 그렇게 힘들어.” 경기가 나쁘든 좋든, 남들이 힘들든 말든, 남편은 그저 위로가 필요했을 뿐이다. “많이 힘들지? 난 당신 보면 늘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 당신이니까 그거 해내는 거야. 다른 집 남자들은 어림도 없어. 포기해도 벌써 포기했지. 안 그래?” 그 한마디면 다시 힘이 날 것 같은데, 야속한 아내는 세상에 힘들지 않은 사람 없다며 두 주먹 더욱 불끈 쥐라는 말만 읊어댄다. ‘스위트홈’은 온데간데없고, ‘집구석’만 남은 것이다. 리액션은 마음을 함께하는 힘에서 나온다. “우리 딸 힘들지? 엄마도 학교 다닐 때 힘들었는데. 오늘 하루 학원 쉬고 엄마랑 꽃구경 갈까?”라고 해주어야 한다. “너만 힘든 것 아니야. 요즘 수험생들 다 그렇게 힘들어”라는 말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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