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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미셸을 탐하라

김재희 지음 | 눈과마음
여자, 미셸을 탐하라

김재희 지음

눈과마음 / 2010년 6월 / 269쪽 / 12,000원



Chapter 1. 흑인 소녀 미셸의 담대한 꿈



왜 미셸 오바마인가?


"Yes, we can!" 2008년 11월 4일 밤, 미국 전역의 시민들은 이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쳤다. 최초의 흑인 미대통령 탄생의 순간 미국뿐 아니라 세계 전역이 버락 오바마 신드롬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리고 흑인 대통령 탄생을 'Yes, we can!'으로 실현시킨 미국의 첫 흑인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 열풍은 오바마 신드롬의 진원지이기도 했다." 나는 미셸 오바마에 대한 기사를 밤새워 작성하며 어렸을 적 미셸이 취업 대란을 겪고 있는 여대생들보다 "Never we can"이 절로 나오는 성장기를 거쳤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미셸은 언제나 담대한 꿈을 꾸며 "Never we can"을 외치는 사람들에게 "Yes, we can"의 꿈과 희망을 안겨준 롤모델이 되었다. 가난과 인종의 콤플렉스를 극복한 미셸은 수많은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아픔의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위축된 사람들에게 담대한 꿈을 주는 희망의 롤모델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나쁜 동네에서 좋은 이웃을 만나는 법

미셸이 유년기를 보낸 1960대 말 시카고 남부의 백인들은 흑인들과 가까이 사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흑인들의 이주 비율이 높아질수록 백인들이 급속도로 빠져나가며 시카고 남부는 '나쁜 동네'로 변질되고 있었다. 나쁜 동네에서도 미셸의 가정형편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미셸은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해나갔다. 미셸 특유의 '당찬 고집'과 '집요한 노력'은 나쁜 동네에서 태어난 흑인 소녀가 고귀한 퍼스트레이디 자리까지 오르는 데 원동력이 되었다. 미셸은 어느 상황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자신감을 키워갔다. 가족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도 고집만 부리는 고집불통 소녀에게 윽박지르는 일이 없었다. 오히려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고집을 밀고 나가라고 격려해줬다.

"무엇을 할 수 없다고 우리에게 말하지 말거라. 무엇이 잘못될지 모른다고 걱정하지도 말거라." 미셸은 한계에 부딪칠 때마다 걱정 말고 네 고집대로 밀고 나가라고 격려해준 어머니의 말을 되뇌며 마음속으로 'Yes, I can!'을 외쳤다. 결국 아홉 살 소녀의 당찬 고집은 오르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한계를 짓는 'No, I can't!'의 상황을 'Yes, I can!'으로 바꾼 자신감과 근성이 됐다.

미셸은 작은 차이가 사람의 인생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제가 아주 겸손해서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나처럼 될 수 있어요. 나는 아주 뛰어난 사람이 아니에요. 다만 열심히 노력했을 뿐이죠. 나는 나와 같이 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을 봐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자신이 가진 결점을 극복하지 못했어요. 성공과 실패는 아주 사소한 차이로 결정된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미셸의 말처럼 나쁜 동네에서 나쁜 이웃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같은 시카고 남부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더라도 한계를 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가에 따라 짐 크로치의 포크송에 등장하는 나쁜 이웃 리로이 브라운이 될 수 있고, 미국의 영부인도 될 수 있는 것이다.

흑인 여대생, 분노와 싸워 win-win하다

프린스턴대학은 설립 후 2백여 년이 지난 1947년에야 비로소 최초의 흑인 학생을 정식 입학시킬 정도로 흑인에 대한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학교였다. 미셸이 입학하던 1981년 당시 총 1,141명의 프린스턴 신입생 가운데 흑인 학생은 고작 94명인 10%가 채 못 되었다. 흑인이 대다수인 남부 시카고에서 자라고 생활한 미셸에게 프린스턴 재학 시절은 백인 주류 사회에서 흑인으로 사는 소외감을 인식하고 사회에 대한 분노를 느끼는 시기였다.

그녀의 논문 「프린스턴에서 교육받은 흑인과 흑인 사회」에는 그녀가 흑인으로서 겪은 소외감과 분노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흑인에게 닫혀 있는 캠퍼스 문화, 흑인들을 배려하지 못하는 교수 채용 시스템과 교과과정까지, 미셸은 4년간 캠퍼스에서 겪은 불편한 점을 논리적인 사례와 통계를 이용해 오목조목 지적했다. '개방적이라고 알려진 캠퍼스에서조차 나는 학생이 아니라 한 사람의 방문객에 불과했다. 편견이 없어야 할 캠퍼스에서 난 마치 손님과 같았다.' '익숙한 고향에서 지내다가 프린스턴의 환경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 흑인 학생을 위한 적절한 지원 체재가 없다.' 이처럼 미셸은 프린스턴대학 문화에 분노를 느끼며 배타적인 캠퍼스에서 생존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하기 시작한다. 미셸은 다음의 세 가지 전략을 세워 흑인 여대생의 열등감을 극복하고, 미국 최고의 대학인 프린스턴대학에서 손꼽히는 엘리트 여성으로 당당히 태어났다.

① 내 안의 분노를 생산적으로 표출하라. 그녀가 분노를 생산적으로 표출하기 위해 이용한 무기는 '논리'와 '조직'이었다. 탄탄한 논리로 이루어진 분노는 발전과 화합을 모색하지만 분노를 위한 분노는 소모적인 싸움과 분열을 낳는다. 생산적으로 분노 표출하기 전략의 첫 번째 단계가 논리력을 키우는 것이라면 두 번째 단계는 파급력을 높이는 것이었다. 미셸은 뜻이 잘 맞는 조직에 자신의 목소리를 실음으로써 차별에 대한 분노를 세상에 마음껏 표출했다.

② 차가운 머리와 뜨거운 가슴을 가져라.



③ 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승부하라. 미셸은 평소 앞에 나서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정면에 나타나 불편한 점을 오목조목 지적했다. 뒤에서 수군대는 작은 목소리만으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하지만 즐길 수 있다면 불평만 할 게 아니라 정면으로 덤빌 줄도 알아야 한다.

Chapter 2 여자, 미셸 이야기



여자, 미셸의 사랑


1988년 이슬비가 촉촉하게 내리던 6월, 버락 오바마는 허름한 점퍼와 꽉 끼는 구두를 신고 시들리 앤 오스틴을 향했다. 그 순간까지도 버락은 그의 불편한 발이 향하는 곳에 자신의 든든한 버팀목이 될 운명의 반려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지 못했다. 시들리 앤 오스틴의 하계 인턴으로 선발된 버락 오바마와 그의 교육 담당 책임자로 지정된 미셸 로빈슨. 두 사람의 특별한 인연은 멘토(mentor)와 멘티(mentee)로 처음 시작되었다. 버락은 수트와 블라우스 차림으로 그의 앞에 등장한 미셸의 첫인상을 잊지 못한다. 그녀는 키가 크고 훌륭한 외모를 가진 데다 프로다우면서도 상냥해 보였다.

'바로 저 여자야!' 그는 한눈에 그녀가 자신의 배우자임을 알리는 운명의 종소리를 들었다. 반면 미셸은 종소리를 듣기는커녕 후줄근한 점퍼를 입고 담배를 물고 있는 버락을 보자마자 그저 그런 사내라고 단정지었다. 운명의 여인을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린 버락과 네 차례에 걸쳐 운명의 남자를 만났지만 심드렁하기만 한 미셸의 사랑의 줄다리기는 그렇게 시작했다. 이후 버락이 애정 공세를 퍼부으며 열심히 사랑의 줄을 당겼지만 미셸은 연신 밀어내기에 바빴다. 이성을 대할 때 항상 장점보다는 단점부터 찾으려 드는 그녀였으니, 버락이 아닌 그 어떤 완벽남이 다가왔더라도 미셸은 거절부터 했을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일에 대한 강한 열정 때문이었다. 누구보다 자신의 커리어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미셸은 사적인 관계로 공과 사의 경계가 흐려지는 걸 원치 않았다. 마지막 이유는 두 사람이 다 흑인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버락은 끈질긴 공세 끝에 미셸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워킹 맘, 미셸의 분노

미셸이 세 살이 채 안 된 첫째 딸 말리아를 키우며 둘째 딸 샤샤의 출산을 얼마 남겨놓지 않았을 당시, 결혼생활에 대한 미셸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한편, 결혼 초기 버락은 미셸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했다. 정치에 대한 강한 야심이 만삭의 몸으로 힘겹게 직장에 다니던 아내의 분노를 알아차리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미셸의 분노의 원인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남편이 자신의 야망만큼 배우자의 야망을 존중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섭섭함이었다. 미셸은 버락이 정계에 진출하는 것을 썩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니 정치를 싫어했다. 하지만 결국 미셸은 버락의 야망을 지지해주었다. 미셸이 이런 어려운 결심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버락이 일리노이 주 상원의원 출마를 결심했을 때 그녀가 던진 한마디에 응축돼 있다. "당신이 하고 싶은 일이 정치라는 걸 아니까." 미셸은 많은 것을 감수하고 버락의 야망을 지지해주었지만 버락은 희생을 감수한 아내에게 자신의 야망을 양보하지 않았다. 그렇게 부부의 결혼생활에는 위기가 몰아닥치고 있었다.

미셸이 결혼 생활에 분노를 느낀 두 번째 원인은 스스로에 대한 무력감 때문이었다. 결혼 전 미셸은 야망이 큰 여자였다. 하지만 미셸은 남편이 정치 일에 바쁜 탓에 두 아이를 키우며 육아와 일, 둘 중 어느 것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감에 빠져 있었다.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완벽하게 해내며 유달리 승부욕이 강했던 미셸의 마음속에는 엄마로서 자녀들을 훌륭하게 키우고 싶다는 욕구와 커리어 우먼으로서 사회적인 성취를 이루고 싶다는 욕구가 상충하고 있었다. 하지만 만삭의 몸으로 직장 생활을 하며 세 살배기 말리아를 키우는 것은 슈퍼 워킹 맘으로 알려진 미셸에게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워킹 맘 미셸은 가정과 직장 사이에서 옴짝달싹 못한 채 갈등하고 있었다.

워킹 맘의 스트레스가 절정에 달하자 미셸은 급브레이크를 걸고, 자신의 잃어버렸던 야망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우선 자신이 동등한 대접을 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에 의무도 똑같이 분담해야 한다는 것을 남편에게 알렸다. 미셸은 남편으로서 당연한 의무를 버락에게 할당하기 위해 각자가 분담해야 할 집안일을 낱낱이 적어놓은 리스트를 당당히 들이밀었다. 집안 일 분담 리스트를 작성하는 과정부터 온갖 사소한 일들에 관해 오바마 부부는 끊임없는 협상을 벌여 서로 할 일을 나누었다. 미셸은 목록을 정리해 남편이 해야 할 일과 하지 않고 넘어간 일들을 오목조목 따졌다. 이러한 미셸의 노력은 결혼초기 일과 양육을 병행해야 했던 아내의 고통이 어떤 것인지조차 헤아리지 못한 무심한 남편을 백팔십도 바꾸어놓았다. 가사에 소홀했던 자신의 태도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일과 양육 사이에서 갈등을 겪어야 했던 미셸의 고충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버락은 다양한 여성 정책을 펼치며 여성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엄마, 미셸의 자녀 양육기

미셸은 '특별한 환경에서 평범한 아이 키우기' 전략을 아이러니하게도 '열악한 환경에서 특별한 아이를 키운' 부모님의 양육법에서 찾았다. 미셸의 부모님은 열악한 환경에서 특별하게 아이를 기르기 위해 엄격한 양육 방식을 고수했지만 미셸은 특별한 환경에서 자녀들이 일상적인 생활을 경험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엄격한 방침을 내세운다. 《피플》과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부부는 일곱 가지 훈육 방침을 공개했다. 우선 아이들이 지켜야 할 첫 번째 규칙은 '투정 부리지 않기', '다투지 않기', '성가시게 괴롭히지 않기'다. 또한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 자신의 일은 스스로 해야 한다. 침대 시트와 장난감을 스스로 정리해야 하고, 자명종을 맞추고 알아서 일어나 옷을 입어야 한다. 매일 밤 한 시간의 TV 시청만 허용됐던 자신의 유년기를 돌이켜보며 미셸은 교육적 내용이 풍부한 디스커버리 채널 이외에는 TV 시청을 제한한다. 형제는 '평생 친구'라며 우애를 돈독하게 해준 자신의 부모님처럼 미셸은 말리아와 샤샤에게 서로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려 한다.

미셸은 두 딸이 백악관에 적응하면서도 거만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대통령의 자녀라도 특별대우는 사절!'이라는 자녀 양육 방침을 세웠다. 하지만 두 딸의 백악관 생활을 보면 미셸의 이런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을까 한다. 백악관에는 다섯 명의 전속 요리사와 열 명의 고용인이 언제라도 대통령의 딸들을 위해 일할 준비가 되어 있지만, 말리아와 샤샤는 백악관에 들어온 후에도 과거 시카고에 살았던 규칙을 따르고 있다. 오후 여덟 시면 취침을 하고, 자명종 시계를 맞춰놓고 아침에 등교 시간에 맞춰 스스로 일어나고 있다. 침대 정리와 방 청소도 직접 한다. "백악관 직원들에게 맨 처음 당부한 것은 두 딸 말리아와 샤샤에게 특별대우를 해주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침대 정리도 대신 해주지 말라고 부탁했어요. 두 딸은 시카고에 살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 일은 스스로 하면서 지냅니다."

아이를 갖기 전까지 미셸은 커리어 우먼으로 사회적 능력을 개발하는 데 매진했다. 이후 1998년 첫딸 말리아를 낳았고, 2001년에는 둘째 딸 샤샤가 태어났다. 미셸의 커리어 우먼과 엄마로서의 역할이 상충하자 회사 업무를 시간제 근무로 전환하는 등 육아에 우선순위를 두었다. 오바마가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을 때 정치인의 아내라는 역할까지 맡아야 했지만 미셸은 남편과 함께 워싱턴으로 이사하지 않고 직장 생활을 계속하며 어린 딸들을 안정적으로 키울 수 있는 시카고에 남기로 결정했다. 당시 미셸은 엄마, 커리어 우먼, 정치인의 아내 순으로 우선순위를 정하고 여러 역할의 균형을 맞추려 했던 것이다. 물론 일과 가정생활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싶었던 미셸에게 두 영역에서의 역할은 가끔 혼선을 빗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미셸은 자신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하며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퍼스트레이디, 미셸의 백악관 입성기

어느 맞벌이 가정의 화장실 변기가 막혔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직장 일이 바빠 배관공을 불러놓고 변기가 뚫릴 때까지 지켜볼 여유가 없다. 이때 남자와 여자는 각각 어떻게 행동할까? 남자들은 대개 막힌 변기는 아랑곳 않고 출근을 한다. 반면 여자들은 마술사같이 일정을 조정하고 배관공을 불러 변기를 고쳐놓은 뒤 출근한다. 미셸은 일하는 여성들의 고충을 이야기할 때 '화장실의 진실'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준다. 그리고 이 화장실 에피소드는 청중들에게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화장실 에피소드는 힐러리 클린턴의 낙마로 버락에게 반감을 갖던 여성들의 표심을 미셸이 어떻게 돌릴 수 있었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미셸은 선거 참모들이 작성한 원고를 거부하고 자신이 직접 작성한 원고로 연설했다. 가공된 이야기가 아닌 자신이 직접 겪고 느낀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공감할 수 없는 워킹 맘의 고충이 담긴 이 화장실 에피소드는 그 어떤 공약보다 여성 유권자의 표심을 끄는 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선거 과정에서 미셸은 두 가지 전략을 구사했다. 첫 번째 전략은 힐러리가 구사한 '하나 사면 하나는 덤(buy one, get one free)'에 대응하는 리마케팅(remarketing) 전략이다. 클린턴 진영에서 이용한 전략이 배우자를 패키지로 끼워 파는 '덤'의 개념에 가깝다면, 오바마 진영에서 이용한 '리마케팅 전략'은 버락이라는 상품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미셸이라는 존재를 덤이 아닌 메인 제품과 믹스시켜 구매 욕구를 점화하는 기능을 했다. 선거 초반 많은 흑인들은 버락의 정체성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혼혈 가정에서 태어나 백인 부모 밑에서 자란 엘리트가 과연 흑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느냐는 의문이 버락의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카고 전통 흑인 지구에서 자란 미셸은 흑인 사회에 뿌리가 없던 버락에게 흑인 사회의 연결 고리를 제공했다. 버락에게 투표 욕구가 없던 흑인들에게 흑인 뿌리를 가진 미셸이라는 존재는 제품에 대한 구매 욕구를 되살리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녀는 버락을 사면 따라오는 덤이 아니라, 미셸 오바마라는 독자적인 인간으로서 흑인들의 표심을 모은 것이다. 두 번째 전략은 '틈새 공략하기'였다. 미셸은 공화당에 우호적인 군인들의 표심을 돌리기 위해 군인 가정의 아내들을 틈새 전략의 타깃으로 공략했다.

미셸의 특별함은 바로 평범함 속에서도 자기다움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비롯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변화를 이끌어나가는 미셸의 자기다움은 결국 그녀 내면의 아름다운 빛깔을 자연스레 드러나게 했다. 평범한 워킹 맘처럼 보였던 미셸의 자기다움은 버락이 정치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만인에게 광채를 드러내게 된다. 버락이 대중의 주목을 받는 정치 활동을 시작했지만 미셸은 이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꿋꿋하게 해나가며 동등한 파트너로서의 길을 걸었다. 버락이 대통령 후보에 출마했을 때에도 남편의 유세를 돕기보다는 양육과 사회 활동에 전념했다. 하지만 버락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그녀는 직장을 그만두고 적극적으로 유세 활동을 펼치기 시작했다. 선거 기간 중 미셸은 대선 후보의 아내를 넘어 미셸이라는 한 명의 주체적 인간으로서의 매력과 지향점을 뚜렷하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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