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아침을 깨우는 책
김정빈 지음 | 더숲
청년의 아침을 깨우는 책
김정빈 지음
더숲 / 2010년 5월 / 237쪽 / 12,500원
목표 - 강력하게 꿈을 상상하라누구나 멋진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꿈을 성취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것은 그가 꿈을 꿈으로만 두고 목표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표는 그것이 성취되기까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무엇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이 성취되지 않는 한 나는 죽은 사람과 마찬가지라고 여겨질 때, 그것이 곧 목표다. 그런 절실한 지향점이 아닌 한 목표는 단지 희망사항, 즉 꿈일 뿐이다.
처음 알렉산더에게 동방 원정은 꿈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강력하게 염원했다. 철통같은 염원! 그의 그 염원은 솥을 깨뜨리고 배를 부수는 결단으로 나타났다. 상륙을 완료한 장군이 솥을 깨뜨린다는 것은 다음 번 밥은 승리를 거둔 다음 적의 솥으로 지어먹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이다. 배를 부수는 것 또한 패배하여 다시 배를 타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강력한 염원의 표시다. 알렉산더의 그 같은 강력한 염원은 막강한 카리스마로 나타났다. 확신에 가득 찬 그의 카리스마 앞에 장군들은 모두 굴복했다. 아니, 그것은 굴복이라기보다 전염이었다. 알렉산더의 확신은 결코 그 자신에게만 적용되는 작은 것, 즉 1인분이 아니었다. 그의 확신은 수백 명의 장군들을 능히 품어 안을 만큼 대단했다. 마침내 장군들 또한 동방 원정의 승리를 확신하기에 이르렀고, 다음 단계에서 그 확신은 모든 병사에게로 퍼져나갔던 것이다. 말하자면 알렉산더의 꿈은 꿈이 아니라 목표였다. 진정한 목표는 곧 철통같은 염원인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의문이 생긴다. 우리는 어떻게 꿈을 목표로 바꿀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마음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마음이다. 그리고 모든 것의 마지막 또한 마음이다. 마음은 대상을 받아들이는 기능을 하기도 하지만, 받아들인 대상을 뒤섞어 여러 가지 형상을 그려내기도 한다. 이중 가장 강력한 것은 역시 시각으로서의 형상화 능력이다. 이것은 시각이 인간의 감각 중에 가장 강력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오관 가운데 눈을 잃은 사람이 가장 불행하다. 눈이 안 보이는 사람은 눈이 보이는 사람에 비해 세상을 절반밖에 경험할 수 없다고까지 말해도 좋다. 이 점에서 우리는 마음의 시각적 영상화(映像化) 능력에 주목해야 한다. 알렉산더가 그러했듯이 모든 뛰어난 성취자들은 이 능력을 꿈에 적용하여 꿈을 목표로 전환했다.
조조曹操가 원소袁紹와 대적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진군하고 있었다. 하루 온종일 물을 만나지 못한 군대. 병사들이 목마름을 호소하자 조조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어렸을 때 집 앞에 살구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말이야…."그때 병사들의 마음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조조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속에 살구나무 숲을 그리기 시작했다. 마음이 가진 독특한 능력, 즉 형상화 또는 영상화의 능력이 작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음 단계에서 조조는 살구 열매를 입에 넣었을 때의 감각을 이야기한다. 그에 따라 병사들 또한 상상의 세계 속에서 살구 열매를 맛본다. 그 열매는 얼마나 시던지! 조조의 말이 유도하는 대로 병사들의 입에 침이 고인다.
이 이야기에서 보듯이 몸은 마음과, 마음은 몸과 연결되어 있다. 결코 몸 따로, 마음 따로가 아니다. 몸이 반응하면 마음이 반응하고, 마음이 반응하면 몸도 반응하는 것이다. 이로부터 마음을 움직여 몸이 따라오도록 할 수도 있지만, 몸을 자극하여 마음이 움직이도록 할 수도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여기에서 우리는 꿈을 목표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몸의 감각 능력을 자극할 필요가 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뇌는 참으로 이상한 물건이다. 뇌는 상상한 것과 경험한 것을 구별하지 못한다. 이것은 뇌의 치명적인 약점인 동시에 잘 이용할 수 있는 놀라운 장점이기도 하다. 뇌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실제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간절하게 임신을 원하기 때문에 내가 임신했다고 믿는다. 그러자 몸이 그에 따라 반응한다. 배가 불러오고, 심지어는 뱃속에서 태아가 내 배를 차기도 한다. 그렇지만 의사는 뱃속에 아기가 없다고 선언한다. 내가 간절하게 원하다보니 상상력이 극대화되었고, 그 극대화된 상상력 속에서 내 몸이 반응한 것뿐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마음이 몸을 변화시키는 것을 증명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뇌가 원하는 것과 실제를 착각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다.
원하는 것과 실제를 착각하는 뇌의 기능을 보여주는 사례는 이밖에도 많다. 꿈이 바로 그것이다. 꿈은 상상이 변화된 형태의 하나다. 잠을 자면서 우리의 뇌는 기억해두었던 것들을 뒤섞어 꿈을 만든다. 그리고 그 꿈속에서 우리는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는 그것을 마치 실제 삶의 경험처럼 체험한다. 이 같은 뇌의 특이한 기능을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 먼저, 원하는 목표를 강력하게 상상해야 한다. 얼마나 강력하게 상상해야 할까? 마치 지금 당장 내가 그 목표에 도달한 것처럼 상상해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을 눈앞에 떠올리는 모든 상념이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안목 - 높이 올라 멀리 바라보라삼성그룹은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거대한 경제 집단이다. 삼성은 지금 세계 시장에서 일류로 대접을 받으며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으며, 아마도 미래의 한국 경제 또한 견인해나갈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삼성이 지금의 삼성이 되기까지는 두 단계의 성장이 있었다. 첫 번째가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의 성장이고, 두 번째는 현재의 오너인 이건희 회장의 성장이다. 이건희. 그가 삼성을 물려받던 당시 그는 눈에 띄는 대단한 경영자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훗날 세계인이 주목하는 탁월한 기업가가 된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를 남과 다른 뛰어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을까?
1974년, 막 30대에 접어든 이건희는 파산 직전에 놓인 한국반도체라는 회사를 인수하기로 결심하고, 이 안을 아버지 이병철 회장에게 제안했다. 곧 회의가 열렸는데 임원들 중 이건희의 제안에 동의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지만 이건희의 생각은 달랐다. 아니, 그의 생각이 달랐던 것이 아니라 그의 의지가 달랐다. 그리고 마침내 이 의지가 있는 생각, 의지로부터 나온 생각이 생각만의 생각, 의지가 결여된 생각을 이겼다. 이건희는 결국 한국반도체를 인수했고, 앞으로 놀라운 성공을 이어갈 삼성의 반도체 신화는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렇다면 이건희는 단지 의지만으로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을까? 그럴 리는 없다. CEO에게 강한 도전의지는 꼭 필요한 것이지만 의지만으로 사업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지피지기(知彼知己) 백전불태(百戰不殆).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의지에 더하여 적과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냉철한 눈을 갖고 있어야 한다. 이 말은 나중에 큰 승리를 거둔 이건희의 반도체 사업 진출이 요점을 정확하게 파악한 다음 급소를 공격한 면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리고 그것은 거시적인 안목이었다. 『갈매기의 꿈』에서 주인공인 갈매기 조나단 시갈은 말한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 그렇다면 이건희는 어떻게 무엇을 보았는가. 먼저, 그는 높은 데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그는 어디까지 올라갔는가. 그는 백두산(한국)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그는 히말라야에 올라 세계를 굽어보았다. 이건희는 이렇게 생각했다. '지금 삼성은 한국 안에서는 일류기업이다. 그러나 세계 시장에서는?' 이 질문을 제기하는 순간 그는 가슴이 탁 막혔다. 삼성은 결코 세계의 일류기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변해야 하는가? 삼성은 수많은 사람으로 구성된 기업 집단이다. 이 말은 삼성이 일시에 돌변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 개인이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하는 일은 가끔 있다. 장발장은 미리엘 신부를 만나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하여 거의 성자에 가까운 사람이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 이건희는 여기에서 매우 식상한, 그러나 만고불변의 진리인 솔선수범이라는 말을 떠올렸던 것 같다. 먼저 나부터! 먼저 CEO인 나부터 변해야 한다!
나부터 시작하라. 그러나 마음으로부터, 진심으로부터 시작하라. 연출된 마음, 남에게 보이는 쇼로는 오래갈 수 없다. 변하는 것 같아 보여도 그것은 변화가 아니다. 그것으로는 결코 차원을 높일 수 없다. 진짜로 변해야 한다. 죽었다가 깨어날 정도로 변해야 한다. 그러나 어떻게? 어떻게 변화의 동력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 이미 말했다. 더 높은 데 올라 바라보라. 더 넓게 보는 시야를 길러라. 그때 지금껏 보이지 않던 위험이 보이고, 다시 그 위험을 대적할 만한 용기가, 그리고 그 위험을 이겨낼 수 있는 지략이 샘솟을 것이다.
경쟁 - 라이벌의 성공을 축하하라라이벌을 경쟁자가 아니라 제3의 시각에서 공정하게 바라보고 찬탄하는 것. 그것은 물론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질투를 이긴 대장부의 당당한 행동은 우리를 감동시킨다. 그리고 그 감동을 모차르트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매우 유명하다. 그는 다섯 살 때부터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다. 작곡가로서의 그의 천재성은 음악 역사상 그 어떤 작곡가도 미치지 못할 만큼 대단한 것이었다. 서른네 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무려 600여 곡에 이르는 방대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그렇지만 그는 불운하게도 당대에는 실력에 비해 천재성을 널리 인정받지 못한 편이었다. 그가 바흐, 베토벤과 함께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낭만주의 시대가 펼쳐진 이후, 특히 멘델스존이 그를 드러내어 널리 알리기 시작한 다음이었다.
모차르트는 동시대의 음악가 중에서 하이든과 가장 깊은 친교를 맺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하이든은 모차르트에 비해 거의 두 배나 되는 나이(49세)였지만, 그 같은 나이 차이는 그들의 우정을 키우는 데 아무 문제도 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성격 또한 매우 대조적이었다. 모차르트는 전형적인 천재형의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서 조울증을 자주 드러냈다. 그의 변덕스러운 기분은 때로는 경쾌한 흥겨움을 느끼는 쪽으로 기울다가 어느 순간 발작적인 분노를 폭발시키곤 했다. 그러나 하이든은 평온한 기분을 잘 유지했고, 유머 또한 일품이었다.
다른 어느 날, 누군가가 모차르트의 〈C장조 4중주〉에서 화성의 법칙을 대담하게 무시한 것에 대해 놀라움을 표시했다. 이에 하이든은 날카롭게 응수했다. "만약에 모차르트가 그렇게 썼다면 거기에는 틀림없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요." 이로써 보더라도 하이든은 진정으로 남의 공적을 부러움 없이 찬양하는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는 모차르트를 위해 자신을 깎아내리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친구들은 자주 나에게 천재가 있다고 아첨을 하는 모양이지만, 모차르트는 나를 훨씬 능가하는 인물이다. 앞으로 100년 동안 세계는 이 같은 천재를 갖지 못할 것이다."
그의 인격적인 경지를 가늠해보는 질문은 이것이다. "그의 친구가 성공했을 때 진정으로 기뻐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인격적인 경지란 대체 왜 필요한 것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이것이다. "남의 성공을 기뻐할 수 있다면 그는 자주 기쁨을 누릴 것이다. 내가 성공하는 것보다 남이 성공하는 일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기뻐할 일이 매우 많다는 것, 그의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질투를 이기는 것은 행복을 늘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행복을 늘린 사람에게 반드시 성공이 찾아와 인사를 건네는 법이다.
우정 - 든든한 지지자를 확보하라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라는 뜻의 지기(知己)는 친구의 다른 이름이다. 그렇다. 친구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다. 사람은 외로운 존재다. 왜냐하면 사람은 '저마다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가 아니고, 그대는 내가 아니다. 나는 나, 너는 너, 이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 조건이다. 그리하여 나는 외롭다. 인간의 생존 조건이 나는 나, 너는 너라는 것은 나에게 닥쳐오는 모든 문제의 최종 책임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해 '외로움'은 '책임'의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게 마련인 외로움은 어떻게 치유될 수 있는가. 그 대답이 바로 친구다. 왜냐하면 친구는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친구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나의 능력과 함께 나의 무능력을 안다. 나의 장점과 함께 나의 약점을 안다. 그리하여 나의 능력에 대해 그것을 알아 일으켜 세워주고, 나의 무능력에 대해 그것을 감싸 위로해준다. 그리하여 친구는 제2의 나다. 가장 나 같은 나가 바로 친구다. 이 점에서 친구는 차라리 부모형제보다 나은 점이 있다. 부모형제가 나를 그 자신처럼 사랑해주는 것은 혈연 때문이다. 그러나 친구는 나와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피가 섞인 이들보다 더 나를 이해하고, 나를 감싸주고, 나를 아끼고, 나를 부축해주는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는 귀하다. 나는 이런 친구와 함께라면 사막처럼 건조한 이 세상을 함께 걸어갈 수 있다.
춘추전국 시대. 지금의 중국 동부 해안에 있던 제(齊)나라에 관중(管仲: 이름은 이오夷吾, 중仲은 그의 자)과 포숙(鮑叔)이라는 두 젊은이가 살고 있었다. 처음 두 사람은 친구로서 서로 약속했다. "나중에 먼저 출세한 사람이 아직 출세하지 못한 사람을 이끌어주기로 하자."
당시 제나라 임금은 양공(襄公)이었는데, 많은 후궁에게서 난 자식들이 있었다. 그들 중 공자 규(糾)와 소백(小白)이 자질 면에서 가장 뛰어났다. 관중과 포숙이 보기에 두 공자 중 한 사람이 다음 임금이 될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은 두 공자를 나누어 맡아 모시기로 결정했다. 얼마 뒤 양공이 죽었다. 무주공산이 된 제나라. 이제 두 공자 중에 먼
저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사람이 왕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두 공자는 서둘러 고국을 향해 출발했다. 그런데 규를 모시고 가던 관중이 생각해보니, 이럴 것이 아니라 고국으로 가기 전에 경쟁자인 공자 소백을 없애버리면 될 일이었다. 관중은 인사를 하는 체하고 다가가 마차에 탄 소백을 향해 활을 쏘았다. 화살은 소백의 허리에 명중했고, 소백은 배를 움켜쥐며 마차 안에서 쓰러졌다. 그렇지만 소백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화살은 그의 배가 아니라 그의 혁대를 맞혔던 것이다. 경쟁자가 죽었다고 생각한 관중과 규 일행은 마음 편하게 제나라로 향했다. 그렇지만 위기를 넘긴 소백에게는 이것이 좋은 기회였다. 그는 밤낮없이 길을 재촉하여 규보다 먼저 제나라에 도착했다.
승리는 소백이 차지했다. 패배한 규는 자기 어머니의 나라로 도망쳤다가 죽었다. 규를 돕던 관중은 소백의 부하들에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환공은 처음 자기를 죽이려 했던 관중을 죽이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환공을 포숙이 말리고 나섰다. "훌륭한 사람은 큰일을 위해 작은 원수를 잊는 법입니다. 저 관중은 한 번 죽이고 나면 다시는 얻을 수 없는 천하의 가장 뛰어난 인재입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이렇게 하여 얼마 뒤에 관중은 환공 앞으로 불려갔다. 환공은 전에 관중이 자기에게 한 일을 잊고 그와 대화를 나누었다. 관중은 나라를 다스리는 문제의 모든 분야에 대하여 자기 생각을 말했고, 마침내 환공은 관중이 천하제일의 인재임을 인정했다. 그는 곧 관중을 상경(上卿)에 임명했다. 이렇게 되어 포숙은 관중보다 낮은 직위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관중을 불러들임으로써 자기가 올랐어야 할 국무총리 자리는 관중의 것이 되고, 자기는 장관 자리에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관중이 다스리던 때 제나라는 정치와 군사 면에서만이 아니라 경제 면에서도 큰 발전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공적은 포숙이 관중을 자기 윗자리에 추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 점을 관중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 고마움을 관중은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젊었을 때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하면서 번번이 내 몫을 더 많이 챙겼지만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비난하지 않았다. 나는 벼슬을 살다가 임금에게 세 번 쫓겨난 적이 있지만 포숙은 나를 못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전투에 나갔다가 세 번이나 도망쳐온 사람이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며 비웃지 않았다. 이렇게 볼 때 포숙은 얼마나 좋은 친구인가! 아아, 나를 낳아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인 것이다!"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음미해보기 위해 관포지교(管鮑之交)의 전말을 옮겨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