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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스미스 씨의 인생역전

릭 스미스 지음 | 파이카
평범한 스미스 씨의 인생역전

릭 스미스 지음

파이카 / 2010년 4월 / 223쪽 / 12,000원



1. 정말 잘 했네, 하지만 자넨 해고야




나는 스펜서 스튜어트라는 업계 1, 2위를 다투는 헤드헌트 회사의 직원이었다. 나는 성실했지만 탁월한 직원은 아니었다. 설상가상으로 일에 대한 열정이 없었다. 하루하루가 똑같고, 그 일이 그 일이었다. 그때 나는 완전히 길을 잃은 기분이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눈만 감고 냅다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일에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회사가 재미없어도 때려치울 수는 없으니, 퇴근 후나 주말을 이용하여 인생의 활력을 되찾고 싶었다.

나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비즈니스에 관한 책이란 책은 다 읽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일은 성공하는 사람들의 비결을 파헤친 책이었는데, 나도 이런 책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쓰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2003년 8월 『성공한 커리어의 다섯 가지 패턴』이라는 책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언론과 인터뷰도 하고 수천 명의 청중 앞에서 강연도 할 수 있었다. 하늘을 둥둥 떠다니는 기분을 만끽하고 있을 무렵 사장님의 호출을 받았다. "릭, 지난 몇 달간 자네 커리어에서 가장 좋았던 것이 뭔가." 사장실에 들어서자 그가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성공한 저자로서의 새로운 삶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그러자 사장님이 말했다. "자네 열정은 대단하네. 천직을 찾은 것 같군. 회사에서는 자네를 전폭적으로 지지하려고 하네. 퇴직금은 두둑이 챙겨줄 테니 걱정 말게나." 퇴직금이라고, 순간 나는 내가 회사에서 잘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졸지에 실업자가 된 나는 수많은 회사에 지원했다. 모두 깜깜 무소식이었다. 무료한 하루하루가 하릴없이 지나갔다. 그때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인적 네트워크 단체 중 최고 경영진이나 권위있는 전문가들의 모임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현대 사회는 인맥이 실력이라고 하는데, 대체 왜 직급이 높아질수록 이런 모임의 기회가 적어지는지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사업 기획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핵심은 간단했다 전 세계 최고경영진을 위한 영향력 있는 네트워크 그룹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중역들은 위한 모임이니 연 회비는 몇 만 달러 정도로 책정해도 무리 없을 것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리더들의 모임 초안은 이렇게 탄생했다.

나는 우선 7년 전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났던 이스트먼 코닥의 최고 마케팅 책임자 칼 구스틴에게 기획서와 함께 한번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다. 별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놀랍게도 1시간 만에 답장이 왔다. 내가 만든 단체에 가입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는 내용이었다. 나는 복권에 당첨된 사람처럼 한 시간 동안 이메일을 읽고 또 읽었다. 다음 날 집으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이스트먼 코닥 회계 팀입니다. 저희 최고 마케팅 책임자께서 World 50에 지불하실 돈이 있다고 하셨는데, 아직 청구서를 못 받아서요. 팩스로 보내주세요." 이 전화 한 통이 World 50의 시작이었다. 나는 6개월 만에 50명의 전문가를 확보해서 World 50의 첫 번째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얼마 되지 않아 두 번째, 세 번째 네트워크가 구축되었다. 사업은 명백한 성공이었다. 사업 시작 2년 만에 나는 잭 웰치, 마사 스튜어트, 앨런 그린스펀 등 수십 명의 유명 인사를 만나서 정치·경제 전반에 걸친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를 얻었다. 누구도 가능하지 않다고 했던 일들이 보란 듯이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World 50에 내가 쏟은 열정은 대단했다. 하루 12시간을 일해도 힘들지 않았고, 아침에 눈을 뜨는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달콤하고 열정적이며 특별한 나날이었다. 지루하게 반복되던 일상을 끊고 힘껏 뛰어오른 대가는 상상 이상의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모험을 회피하며 변화를 두려워하며 스스로 죽을 만큼의 노력도 하지 않은 내가 어떻게 이런 상상도 못할 만한 인생역전을 거둘 수 있었을까? 이 책에서 그 수수께끼에 대한 답을 찾아보도록 하자.

2. 팩스와 팬티스타킹



사라 블레이클리는 로스쿨 진학을 희망했으나 입학시험에서 떨어졌다. 이후 디즈니월드에서 구피 옷을 입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가 키가 너무 작다고 퇴짜를 맞았다. 결국 그녀는 단카오피스이미징이라는 회사에서 팩스를 파는 영업사원이 되었다. 이곳에서 사라는 능력을 인정받아 친구들보다 훨씬 높은 연봉을 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월급봉투를 받는 것을 빼고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루하루가 지루하게 느껴졌다. 일상을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코미디언이 되는 것과 사업을 생각했다. 그녀는 밤마다 코미디 클럽을 돌아다니면서 자신의 끼를 시험했다. 클럽을 전전하면서 사업 구상도 계속했다. "어떤 제품을 만들어 어떤 서비스를 제공하면 좋을까?"

어느 날 그녀는 저녁 모임에 나가기 위해 옷장을 뒤지다가 하얀색 바지를 발견했다. 속옷을 입으면 안이 비쳐 한 번도 입지 못했던 바지였다. 이 바지를 파티에 입고 나가려고 했다가 도로 걸어놓은 적이 많았다. 짜증이 난 그녀는 가위를 꺼내 출근할 때 입었던 보정용 팬티스타킹의 발목 부분을 잘라 버렸다. 그런데 이 발목 없는 팬티스타킹을 신고, 그 위에 하얀 바지를 입으니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사라는 가만히 서서 생각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입고 싶은 바지를 못 입고 옷장에 처박아두고 있을까?'

그녀의 패션 왕국은 이렇게 탄생했다. 당시 사라는 경영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제품을 만들려면 생산 공장이 필요했지만 현금은 5천 달러밖에 없었다. 그녀는 특허법을 독학으로 공부하여 직접 특허 신청서를 작성하고, 자신의 상품에 스팽스라는 이름도 붙였다. 제품을 착용하면 때리고 싶을 만큼 엉덩이가 예뻐 보인다는 도발적인 이름이었다. 남은 숙제는 생산 공장 확보였다. 그녀는 스타킹 제조 공장 몇 군데에 찾아가서 견본을 만들어 줄 것을 요청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하지만 보름 후 사라는 한 공장장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아이디어를 상품화해보기로 결심했다는 것이다. "저한테 딸이 두 명 있는데, 당신의 아이디어가 전혀 터무니없지 않다고 하더군요."

생산 문제가 해결되자 이제 고객을 창출할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사라는 니만 마커스(고급 브랜드만 취급하는 미국의 백화점)를 직접 공략했다. 사라는 니만 마커스 구매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제품을 선전했지만 구매 담당자는 퉁명스런 목소리로 답했다. "더 할 이야기가 없는 것 같네요. 혹시라도 직접 면담을 원하시면 15분 정도 시간을 내어드릴 수 있습니다만…." 사라는 이 말을 듣자마자 제품 견본을 가지고 텍사스로 날아갔다. 그녀를 본 구매 담당자는 당황한 모습이었다. 사라는 간단히 자기를 소개한 후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없으신 것 같으니 일단 화장실로 따라오세요." 사라는 어리둥절해 하는 담당자의 손을 잡고 여자 화장실로 향했다. "제 뒷모습을 보세요." 사라는 평범한 팬티스타킹을 신고 그 위에 하얀 바지를 입었다. 그녀의 속옷이 바지 위로 적나라하게 비쳤다. 그 다음 다시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제품 스팽스를 입고 밖으로 나왔다. 구매 담당자는 아무 말 없이 사라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소리쳤다. "훌륭하군요! 얼른 우리 백화점에 이 제품을 들입시다."

백화점 납품에 성공했지만 사라는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다. 2년 후 사업이 궤도에 오른 후에야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한편 스팽스에 대한 소문은 오프라 윈프리의 귀에 들어갔고, 오프라쇼에서 제품이 소개되자, 판매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후 스팽스는 거침없이 성장해 오늘날 매출 2.5억불에 달하는 대표적인 여성 의류 기업이 되었다. 그렇다면 사라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사라는 성공을 위해 평범한 자신을 뜯어 고치지 않았다.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루지도 않았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스타킹 제조 공장장의 딸, 니먼 마커스의 구매 담당자, 입소문을 내 준 친구들, 오프라 윈프리 등)의 도움을 받았다. 그녀는 성공을 위해 모험을 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가진 돈 5천 달러 이상을 투자하지 않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회사도 그만두지 않았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라의 인생역전이 결코 어렵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3. 숨을 것인가? 나갈 것인가?



"왜 하필 전가요?" 1966년 봄, 프란시스 헤설바인은 그녀가 다니던 교회 사람이 불쑥 집에 찾아와 존스타운 지역 걸스카우트 단을 맡아 달라고 제안하자 이렇게 말했다. 그때까지 그녀의 인생은 평범했다. 지역 신문 편집자와 결혼하여 아이 한 명을 낳고 바깥 활동은 교회 자원봉사가 전부였다. 그녀는 조용한 인생을 방해받을 수 없기 때문에 걸스카우트 단을 맡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분이 나중에 또 저희 집에 오셔서 간곡히 부탁하는 거예요. 걸스카우트 단이 단장이 없어서 해체될 위기에 놓였다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6주만 맡을 테니 그 사이 다른 후임자를 물색해 달라고 대답했어요."

어느 월요일 저녁, 프란시스는 교회 지하 강당에서 소리를 치며 뛰어다니는 30명의 어린 소녀들을 처음 만났다. 이후 그 꼬마 숙녀들이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프란시스는 여전히 걸스카우트 단을 지키고 있었다. 걸스카우트 단을 맡은 지 6년 후 그녀는 어느 점심 모임에 초대되었다. 은행장, 자선단체 지부장, 방송국 사장 등 저명한 지도자들과 함께한 자리였다. 그녀는 자신이 왜 그런 자리에 초대되었는지 의아했다. 그러던 중 사회자가 지역 걸스카우트 연맹의 새 사무총장을 찾았다는 발표를 했다. 바로 프란시스였다. 이번에도 그녀는 자신이 자격이 없다면서 거절했지만 사람들의 강력한 권유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사무총장에 취임하였다.

그로부터 4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녀는 걸스카우트는 지역 여자 아이들의 꿈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자신이 맡은 존스타운 연맹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녀는 탁월한 공적을 인정받아 걸스카우트 국내 이사회와 세계 이사회의 회원으로 임명되었다. 1976년 7월 그녀는 미국 걸스카우트 연맹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 미국 걸스카우트는 단원 225만 명, 자원봉사자와 직원이 65만 명에 달하는 방대한 조직이다. 그녀는 재임 기간 동안 이 거대한 조직을 눈에 띄게 변화시켰다. 걸스카우트를 백인 중산층 사회를 위한 단체에서 인종이나 사회 경제적 지위에 관계없이 모든 여자 아이들을 위한 단체로 변화시켰다. 기존의 하향식 명령체계를 허물고 권한을 위임하는 조직체계를 구축하여 대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의 요구에 빠르게 부응하는 유연한 조직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천부적인 리더십은 세계적 명성을 떨쳤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강의를 하는가 하면 비즈니스위크지 표지 인물로 실리기도 하였다. 그녀가 은퇴할 무렵 현대 경영 이론의 대부 피터 드러커가 그녀에게 비영리 리더십 재단을 맡아줄 것을 부탁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단정하게 빗은 짙은 머리와 세련된 옷차림을 한 이 여인은 전 세계를 누비며 리더십의 철학을 전파하고 새로운 세대에게 봉사의 가치를 불어넣고 있다.

40년 전 존스타운의 걸스카우트 단장 자리를 제안받았을 때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 바뀔 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그녀는 조그만 시골 마을에 사는 전업주부였다. 평생 동안 리더십 교육을 받은 적도, 내세울 만한 경력도 없었다. 그녀는 인생역전을 위한 기회를 스스로 찾으러 다니지도 않았다. 아니, 기회가 제 발로 찾아오는 족족 거절하기 바빴다. 한 마디로 그녀는 '특별한 인생'을 갈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머뭇거리며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씩 전진했을 뿐이다. 그녀의 인생역전은 바로 이 한 발자국부터 시작되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과거와의 고리를 끊어버리고 화려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눈치만 보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정답은 없다. 이유는 사람마다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와 사라, 프란시스가 걸어온 여정에는 하나의 법칙으로 정리될 수 있는 공통 패턴이 있다. 이제부터 내가 스미스식 인생역전이라고 이름 붙인 이 패턴의 3가지 단계(① 당신의 원색을 찾아라. ② 크고 착하고 단순한 아이디어를 만들어라. ③ 연속해서 스파크를 일으켜라)를 소개하겠다.

4. 원색: 재능과 열정이 만나는 지점



2002년 2월 어느 날, 제프 그레이는 애틀랜타에 있는 사무실에서 산더미처럼 쌓인 일들을 처리하고 있었다. 그는 안정적인 직업과, 높은 연봉, 화목한 가정 등 성공의 기준을 모두 충족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불안했다. 이런 화려한 조건들이 자신의 인생을 어디로 이끌고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브루스 딜이라는 목사를 알게 되었다. 목사는 애틀랜타 빈민들을 돕기 위한 봉사단체를 운영하고 있었다. "노숙자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온 교인들과 어울려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여기에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봉사를 하면서 그는 노숙자들의 참혹한 상황이 사회에서 철저하게 무시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러한 인생의 전환을 맞으면서도 제프는 본업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주중에는 컨설팅 업무, 주말에는 봉사 활동을 하느라 매일 매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보호시설에 사무실까지 갖게 되었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봉사에 할애하면서 보냈다.

하루는 그의 고객이 충고를 했다. "제프, 아예 컨설팅에서 손을 떼고 보호시설에서 정식으로 일하는 것은 어떤가요? 내가 보기에 당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컨설팅이 아닌 것 같아 그래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프는 가슴 속에 묵혀둔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았다. 그는 주저 없이 컨설팅 업무를 그만두고 자신의 원색에 맞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봉사단체에서 받는 월급은 가족을 부양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했다. 오랜 시간 고민하다 그는 수년 전에 잠시 손을 댔던 출장요리 회사를 본격적으로 키워 보기로 마음먹었다.

제프는 출장요리 회사를 운영하면서 2백만 달러의 자본을 들여 '180도 치킨'이라는 출장요리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자본금 유치에 난항을 겪었고 주변에서 걱정이 많았지만 제프는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유감없이 발휘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80도 키친'은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을 위한 식사제공을 주된 업무로 삼는다. 제프는 이 단체가 보호시설의 재활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끝마친 노숙자들에 의해 운영된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했다. 노숙자들의, 노숙자들에 의한, 노숙자들을 위한 사업인 것이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지난 몇 년 동안 제 능력과 열정을 아낌없이 발휘하며 살아왔습니다. 마치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가 해야 할 일을 찾은 기분입니다."

당신도 제프처럼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을 하라. 그러면 당신을 괴롭히는 모든 장애물들이 알아서 사라질 것이다. 인생역전은 원색을 찾는 것부터 시작된다. 생각해보라. 재능에 맞는 일은 자신이 잘 하는 일이다. 열정에 맞는 일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 하는 일에는 모든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그리고 그 노력은 인생을 변화시킨다. 원색은 재능과 열정뿐 아니라 노력, 의지, 진로 등 모든 요소들이 조화를 이루는 지침이다.

원색을 찾으면 당신은 2가지 변화를 겪게 된다. 첫째, 업무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지고 높아진 집중력이 뇌의 구조를 바꾼다. 인간은 생각, 통찰, 심상, 공포 등 어떤 정신적 활동에 오랜 기간 집중하면 그에 관련된 뇌 기관이 활발히 움직이고, 뇌의 구조에 물리적인 변화가 생긴다. 원색에 맞는 일을 함으로써 향상된 집중력이 당면 과제를 잘 해결할 수 있는 방향으로 뇌를 재구축하는 것이다. 둘째, 성공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높아진 기대가 현실을 바꾼다. 기대가 현실을 반영하는 플라시보 효과는 당신의 인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일단 재능과 열정에 맞는 일을 찾으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기대를 갖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신감과 성공에 대한 기대가 높아진다. 자신감과 기대가 높아지면 우리를 일상에 꽁꽁 묶어두는 현재의 덫이 힘을 잃고, 뇌의 구조가 성공을 향한 방향으로 재구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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