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이겨라
새뮤얼 스마일스 지음 | 책이있는마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나를 이겨라
새뮤얼 스마일스 지음
책이있는마을 / 2010년 02월 / 256쪽 / 12,000원
풍요로운 인생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라, 인생이 즐거워진다사람에게는 저마다 주어진 인생의 몫이 있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의 영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자중 자애하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는다면 인생은 한층 즐거워질 수 있을 것이다.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얼마나 살았는가'보다 '어떻게 살았는가'를 더 중시하는 것도 인생의 의미나 가치 차원에서 중요한 기준이 된다. 중국의 어느 황제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겼다. "단 한 명이라도 일하지 않고 빈둥거리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대신한 누군가가 이 나라 어딘가에서 굶주림과 추위에 떨고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파하면서 유명한 명언을 남겼다.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마라!" 인생을 즐겁게 살기 위해 꼭 필요로 하는 것은 그다지 많지 않다. 허탈감, 무력감, 게으름의 노예가 되지 않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추구하면서 목표를 세우고 성취감을 느낄 때 우리 몸 안의 엔도르핀은 마구 생성되는 것이다.
즐거운 인생! 결코 어려운 일은 아니다. 유용한 일에 자신을 던져 혼신의 힘을 다하고 거기에서 만족을 느낄 때 인생은 얼마든지 즐거운 것이 된다. 땀을 흠뻑 흘리면서도 승리를 향해 몸을 던지는 운동선수의 환한 미소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부지런하게, 늘 공부하는 자세로 지식을 쌓고 시간을 유용하게 관리하려는 마음자세, 그것이야말로 인생을 값지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선행 조건이다. 일 년 단위로 농사를 짓는 농사꾼들을 보자. 봄여름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한가하게 보낸 사람은 가을에 할 일이 없다. 손에 쥐어지는 수확물이 없으니 겨울을 맞이하는 마음이 착잡할 것은 뻔한 이치다. 그러나 춥고 고통스러운 겨울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늘 그렇듯이 봄은 자기 차례를 건너뛰는 법이 없다.
우리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 지금은 비록 춥고 고통스럽다 해도 언젠가는 보다 나은 한 시절이 올 것이다. 단, 그것은 우리들 자신의 마음먹기에 달려있다. 노력하는 자에게 기회란 항상 열려 있는 법이지만, 게으른 자에게는 현실이 곧 지옥이요, 미래 또한 지금의 현실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 모두에게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난 잠재능력이 있다. 자기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그런 능력은 자신의 본분에 맞게 일에 몰두할 때 가장 훌륭하게 발휘된다. 사람이 아무리 머리가 좋고 재능이 뛰어나다 해도 일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 일찍이 벤저민 프랭클린도 이런 말을 했다. "백 년을 살 것처럼 일하고, 내일 죽을 것처럼 기도하라."이제껏 당신이 게으름과 타성에 젖어 인생을 허비했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고 최선을 다해 노력하라. 어쩌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성취감이 당신을 인생의 봄날로 인도할 것이다.
가정은 사회의 작은 요람인간이 태어나 소속되는 가장 소규모 집단이 바로 가정이다. 가정에서 일정 기간 성장을 거쳐 사회로 내보내지기 때문에 가정은 한 사람이 올바로 성장하는 데 정말 중요한 지식과 성격을 배양하는 무균 장소가 된다. 가족이라는 구성원들과 최초로 만나 인간관계를 맺고 자아와 타자의 관계를 인식하면서 세상에는 나 아닌 또 다른 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도 바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이다. 그래서 가정교육은 한 인간의 인격화 과정의 출발점이며, 그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들의 최초의 교육 마당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린아이의 인격 형성에 절대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사람은 부모와 형제, 즉 가족 구성원들이다. 선과 악의 구별, 도덕과 감정, 정서의 씨앗이 뿌려지는 최초의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일생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개체로서 어린이가 유년 시절에 어머니로부터 받는 영향력을 실로 엄청나다. 얼른 보면 저 혼자 크는 것 같고 천성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일평생에 걸쳐 아이가 어른이 되고 늙어 죽을 때까지 어릴 때 형성된 인격은 마음의 중심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유년 시절에 체득된 도덕의 기준은 무의식 중에 그의 기질과 습성, 인격을 형성하는 중요 인자가 된다. 아이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는 유년 시절이다. 보이는 대로 모방하면서 학습하고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기 때문이다. 한 인간이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그렇게 까다롭지 않다. 첫 번째, 생애 첫 15년이 평생을 좌우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에 겪은 갖가지 사건과 기억, 감정은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평생 동안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거울은 수시로 자신을 비추면서 긍정적 또는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시절, 청순하기 그지없는 영혼에 어떤 무늬를 그리느냐에 따라 훗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파장이 올 수도 있다. 상냥하고 착한 성품, 영악하고 교활한 눈치꾸러기, 악에 대해 무감각한 영혼은 저마다 유년 시절의 가정교육이나 가정 분위기, 이를테면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는지 눈치와 학대만 받고 성장했는지에 따라서 좌우된다. 그만큼 환경의 영향이 크다.
두 번째, 한명의 뛰어난 어머니는 백 명의 선생보다 낫다. 이 말은 가정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우는 말이다. 본을 보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무의식 중에 내뱉는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곧 아이의 성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올바른 본을 보이지 않는 어머니가 말로 백 번을 타이른들 설득력이 있겠는가, 그래서 아이를 키우는 동안 어머니는 전지전능한 신이 될 수밖에 없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소속된 울타리 안에서 모방을 통해 학습하고 성격이나 기질도 형성되어 간다. 교육은 반드시 표면적으로 두드러지는 어떤 사건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보이는 것 자체가 모두 교육이다. 가정은 기본 실습 현장이다. "우리 집 아이는 참 이상해요.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저 혼자 그렇게 공부하기를 좋아해요." 그렇다면 그 집에는 아마 책도 많고 부모 중의 누군가가 자주 책상에 앉아 책 읽는 습관을 가졌을 것이다. "아무래도 우리 애는 정서불안인가 봐요. 여태까지 손톱을 깎아줘본 적이 없어요. 온통 이빨로 다 물어뜯어서요. 또 어떨 땐 심하게 한쪽 눈을 깜박거리거나 다리를 떨기도 해요. 왜 그럴까요?" 그렇게 묻기 전에 부모는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보라. 설령 손톱을 물어뜯거나 눈을 깜박이는 버릇이 없다 하더라도 자주 부부싸움을 한다거나, 부모 중 한 사람이 성격이 급해 소리를 잘 지른다거나, 독단적이라서 집안 분위기를 심하게 억압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정신적인 억압과 공포 분위기를 이겨내기 위한 어린 자녀의 자구책이 여러 가지 이상한 습관이나 버릇으로 돌출될 수 있다는 점을 늘 염두에 두자.
귀감이 된 부부사랑17세기에 정치가로 험난한 생을 살았던 러셀은 사형당하는 순간까지 아내의 사랑에 용기를 잃지 않은 행복한 남편이었다. 비록 정치적인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고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감옥 밖에서 벌인 아내의 석방 노력은 역사에 기록될 정도로 헌신적이었다. 설마 했던 재판에서 남편이 사형을 선고받자 아내는 사력을 다해 변호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그만큼 권력의 반감을 샀기 때문에 죽음은 피할 수 없는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이제 남편의 최후를 지켜보는 도리밖에 없다고 생각한 아내는 과감히 떨치고 얼어나 용기백배하여 남편을 격려하였다. "여보, 당신의 신념은 훌륭했습니다. 그 기백은 우리 자손들에게 두고두고 귀감이 될 거예요. 비록 당신이 오명을 쓰고 사형당하더라도 부디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을 사랑해요. 전 당신의 뜻을 누구보다도 잘 알아요. 자, 힘을 내세요!"
드디어 자녀들을 앞세우고 남편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순간이 왔다. 남편의 착잡한 심정을 헤아린 그녀는 침착함과 의연한 태도를 잃지 않고 눈물을 삼켰다. 남편이 마지막 가는 길에 슬픔을 심어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조용하게 최후의 포옹을 마친 가족들은 숙연하게 자리를 물러났다. 러셀은 그런 아내와 자녀들을 보면서 말했다. "이제 나에겐 죽음의 고통 따윈 사라졌다!" 인생의 동반자로서 배우자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슬펐겠지만 러셀의 아내는 훌륭하게 제 역할을 해냈다.
스위스의 생물학자인 휴버의 경우는 조수로서 일했던 아내의 공이 특히 두드러진다. 17세의 나이에 실명한 휴버는 시력장애자임에도 불구하고 날카롭고 섬세한 관찰이 생명인 생물학 연구에 몸바치겠다는 결심을 했다. 그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대상을 들여다본 것처럼 섬세하게 관찰하고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아내의 눈 덕분이었다. 그녀는 남편이 생물학 연구를 통해 자신의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고 끊임없이 그를 격려하였으며 연구실에 함께 출근하기 시작했다. 아내가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어떤 생물체에 대해 묘사하면 남편은 그것을 받아 적고 도표를 만들어 일지를 작성해나갔다. 두 사람은 말 그대로 일심동체가 된 것이었다. 연구가 일정한 단계에 올라서고, 어느새 휴버 자신도 시력이 없어도 부자유스럽지 않다고 느껴졌을 때는 이런 농담까지도 했다. "지금 만일 내가 시력을 되찾게 된다면 오히려 비참한 기분이 들지도 모르지!" 휴버가 저술한 『벌』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벌의 생태에 관한 관찰 기록과 박물지가 수록된 책을 읽다보면 대단히 뛰어난 시력을 가진 사람이 썼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될 정도다. 실명한 지 25년이나 지난 사람이 쓴 글이라고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아내의 역할은 이렇게 다양하다. 좋은 아내는 남편의 조력자인 동시에 마음에 커다란 위안을 주는 존재다. 남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어도 그를 아끼는 마음은 시들 줄 모르고 늘 가슴을 훈훈하게 밝혀주는 등불이 된다.
아름다운 만남을 위하여
타인은 내 마음의 렌즈에머슨은 타인을 두고 이르기를 '우리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읽는 렌즈'라고 표현하였다. 저마다 하나씩 갖고 있는 렌즈를 통해 우리는 타인을 지켜보고 판단하며, 마음이 끌리면 가까이 다가서고 싶어한다. 결국 내가 선택한 타인, 즉 친구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알려면 그 친구를 보라는 말이 생겨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친구를 사귈 것인가. 특히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기에는 어떤 친구를 사귀느냐에 따라 인생의 행로가 바뀔 수도 있다는 점에서 좀더 신중을 기해야 한다. 바이런이 말하기를 우정은 '날개 없는 사랑의 신' 이라고 했다. 내게 깃들이는 사랑의 신이 행운과 의리와 신뢰를 가져다주길 원치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리 교제의 폭이 좁은 사람이라 해도 나름대로 주변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은 있게 마련이다. 사람이란 외모가 제각각이듯 성격이나 가치관도 가지가지다.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는 만큼 선택의 폭도 그만큼 넓다. 능력은 있지만 인간미가 없는 사람, 법 없어도 살 정도로 선량하지만 무능한 사람, 사귈수록 신뢰가 가는 사람도 있는 반면 경멸과 혐오감만 불러일으키는 형편없는 사람도 있다. 또 성격이 독단적이고 이기적인가 하면 남을 배려하느라 제 실속을 차리지 못하는 유형도 있다. 더 자세히 분류하자면 자신의 세계에 갇혀 있는 편협한 사람에서부터 지나치게 원대한 꿈만 좇는 허황되기 짝이 없는 사람까지 실로 다양한 성격의 소유자들이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타인의 렌즈에 어떤 유형으로 비치길 원하는가? 어차피 인생은 더불어 사는 것이다. 이 사람은 이래서 좋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고 일일이 가리면서 교제를 하자면 주변에 남아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이다. 문제는 나 자신이다. 나부터 목표를 정하는 것이다. 그래야 내 마음속의 렌즈도 항상 '맑고 갬'을 유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매사 의욕에 넘치면서 부족한 지식을 쌓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인생의 수많은 고개를 넘어갈 때 고통이나 역경을 피하기보다는 경험으로 생각하고 거기에서 교훈을 끌어내는 자세가 중요하다.
훌륭한 인격은 어떤 상황에 놓이든지 빛을 발하게 마련이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용기를 얻고 희망을 가질 수 있다면,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많은 타인들 속으로 과감히 뛰어드는 것도 현명한 방법이다. 또 다른 사람들이 나를 동일시의 모델로 삼고 나와 비슷해지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그 파급 효과는 배가할 테고 이 세상은 빛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인격자는 자기 스스로 자신을 좋게 말하지 않는다. 이미 남들이 알아주고 인정하기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묵묵히 제 할 도리에 충실할 뿐이다.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고 성실하게 세상을 살아간다. 백 마디의 설득보다 단 한 번의 실천이 훨씬 감동적이다.
어리석은 사람과 현명한 사람의 차이
성경의 잠언을 보면 '어리석은 자의 퇴보는 자기를 죽이며, 미련한 자의 안일함은 자기를 멸망시킨다.'라는 구절과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현달함은 욕이 되느니라'라는 구절이 있다. 두 구절을 잘 음미해보면 어리석음이 얼마나 사람을 퇴보시키며, 그런 반면 지혜는 얼마나 인생에 있어 큰 재산인가를 깨닫게 해준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의 무지를 감추려 들지만, 현명한 사람은 모르면서 아는 체하지 않는다. 모르면 알기 위해 끝까지 노력한다. 그것이 현명한 사람과 어리석은 사람의 차이다. 모르는 것은 창피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르면서 아는 체하다 들통나는 것이 더 곤혹스런 일이다.
영국의 문필가인 버튼 여사는 사람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다음과 같이 역설하였다. "무식하면서 무식함을 모르는 사람은 바보니까 그는 피하고, 무식하면서 무식함을 아는 자는 그저 단순하니 그는 가르쳐라. 또 유식하면서 유식함을 모르는 자는 잠을 자고 있으니 그를 깨우라. 끝으로 유식하면서 유식함을 아는 자야말로 현명한 자니 그를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옛말에 '목소리는 크고 볼 일이다', '아니다 싶어도 끝까지 우기면 통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이 무지하면 자꾸 억지를 쓰기 때문에 그만큼 목청만 높아지는 것이다. 무식과 무지는 엄연히 다르다. 무식한 사람은 단지 배우지 못했을 뿐이요, 무지한 사람은 배워도 그 뜻을 깨우치지 못하는 사람이니 이보다 더 어리석을 수는 없다. 실수를 했을 때 깨끗이 승복하고 자기의 실수를 인정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다. 서양 금언에 보면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한테서도 배울 것이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한테서도 배울 것을 취하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물론 사람은 자신의 실수나 무지를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습성이 있다. 자기애가 너무 강한 탓이다. 자신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데서 비롯되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지혜는 현명함의 또 다른 이름이다. 솔로몬 왕의 경고를 새겨듣고 그대로 행하려고 노력할 때 당신도 현자가 될 수 있다. 현명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한테서도 배울 것이 있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한테서도 배울 것을 취하지 못한다. 자신의 실수를 깨끗이 인정하는 것도 하나의 지혜다.
외강내유형과 외유내강형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것은 본능을 억제할 줄 아는 자제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자제는 모든 미덕의 근본이다. 만약 매사를 충동적으로 행동해 버린다면 이미 정신적인 자유를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인간이 보다 인간다워지려면, 즉 정신적인 자유를 마음껏 누리기 위해서는 본능을 억누르는 절제와 인내가 필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육체와 정신을 구분하는 기준이며, 우리 인격의 기초를 탄탄하게 다져주는 출발점이다. 흔히 인간을 두 가지 유형으로 표현할 때 셰익스피어의 '햄릿형'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형'을 예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