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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김철호 지음 | 비전코리아
정성

김철호 지음

비전코리아 / 2010년 01월 / 240쪽 / 12,000원



1. 실패는 두 눈으로 보라 : 긍정적인 시각, 다시 일어설 힘이 생긴다



호떡장사에서 본죽으로


실패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지난날 우리 집 문간방에서 깨달았던 그 순간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본죽을 시작하기 전의 일이었다. 운영하던 회사를 부도처리로 은행에 넘기고 집에 돌아왔는데, 너무 힘들고 피곤했던 나머지 그만 문간방에 쓰러져 잠이 들어버렸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난 순간, 불현듯 어릴 적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러고는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이 생각났다. 몇 십 년 동안 여자 혼자 몸으로 포목점을 하며 다섯 자녀를 기르신 어머니는 집안에 일이 생길 때마다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그날 아침, 우연히 떠오른 어머니의 말씀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장에 가면 소도 보고 말도 본다.' 장에 가면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이것저것 보게 되는 것처럼, 살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기고 나쁜 일도 생기니, 모든 일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뜻이다.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고난과 행복을 맞게 된다고 하신 어머니의 말씀이 절망과 좌절이 엄습한 그 순간, 내게는 일종의 깨달음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세상 그 어떤 말보다 더 큰 힘이 되었다. 선택은 당신의 몫이다. 주저앉아 지금의 상황을 한탄하든, 일어나 이 실패가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지 고민해보고 다시 힘을 내든 모두 당신의 몫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당신만은 후자를 선택하길 바란다.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나는 항상 빈손이었다. 반복되는 실패에 절망하고 있다면, '장에 가면 소도 보고 말도 본다'는 이 주문으로 자신을 다독거려보라. 그리고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길 바란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기 위해 지금 해야 할 일 말이다. 그것만이 성공에 자만하지 않고 반복되는 실패 앞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실패는 직시할수록 덜 아픈 법

부도난 전 회사를 처리하고 나에게 남겨진 것은 승합차 한 대가 전부였다. 그것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생활비 명목으로 처분했으니, 당시 나에게 남은 재산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그래도 한때는 잘나가던 내 사업을 했는데…….' 이런 생각이 나라고 들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이 들수록 바닥까지 내려간 나의 현실, 그 실패의 현장을 직시하기가 어려웠다. 목을 조여오는 채권단들의 압박 속에서 어떻게 해야 다가올 더 큰 피해를 줄일 수 있을지 전전긍긍했다. 부도난 회사의 초라한 김사장, 그것이 나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 상황 속에서 나는 도망치지 않았다. 아니 도망칠 수가 없었다는 것이 어쩌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현실을 외면할 수 있는 기회, 잠시 해외에 나가 있다가 돌아오면 내 사업을 도와주겠다는 제안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유혹들을 뿌리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그것이 옳지 않은 해결책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적당히 상황을 봐서 다음 기회를 모색하겠다는 궁색한 계획은 세우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실패에서조차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자책을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부도난 회사의 사장'이라는 나의 실패를 담담하게 인정했다. 편법과 비도덕적인 행위로 벌어진 일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빚어진 결과이니, 부도난 회사가 부끄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철저하게 그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나를 강하게 붙잡았다. 하루 종일 은행을 오가고 나로 인해 피해 입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몇 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물론 이러한 나의 의지 탓에 고생을 한 것은 가족들이었다. 아이들 이름으로 모아둔 적금까지 모두 털어야 했고, 아내에게 변변한 생활비조차 가져다주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실패했고, 스스로 그것을 인정하고 대처하는 과정만큼은 정직했다. 비록 회사는 망했지만, 최선을 다해 청산절차를 밟았다는 사실은 지금도 자부심으로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끔찍한 순간이었지만, 그 시간들을 견뎌오며 나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실패는 직시할수록 덜 아프다.' 세상에 아프지 않은 실패, 달콤한 실패는 없다. 싫은 소리를 듣고 고개를 숙여야 하는 상황들이 생길 때마다, 맨바닥에 넘어져 생채기가 나듯 내 마음에는 상처가 생겼고 두 무릎에선 힘이 빠졌다. 하지만 그 실패를 조금이나마 덜 아프게 견뎌내려면 힘들어도 그 순간을 객관적이고 명확하게 인식하고 현실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혹시 지금 넘어져서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면, 그 상처를 지금 당장 똑똑히 들여다보기 바란다. 두 눈이 찡그려지고 손을 갖다 대지 못할 만큼 아리지만 그 상처가 아물 때쯤이면 당신은 더 힘차게 달릴 수 있을 것이다. 넘어지면서 큰다는 말은 어린아이에게만이 아닌, 절망의 순간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나,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

부도난 사업을 정리한 후 나는 생계를 위해 호떡장사를 시작했다. 지하철 4호선 숙대입구역 앞에서 친구의 도움으로 리어카를 장만해 '꿀떡개비'라는 이름으로 호떡을 팔기 시작했는데, 이때 난 항상 정장을 입고 일을 했다. 복장이 독특하다 보니 아무래도 사람들의 시선을 쉽게 끌게 되었다. 혹시 마케팅의 한 방법으로 복장에 신경을 썼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이것은 나에겐 나름의 철학이 담긴 나만의 고집스러운 표현이었다. 정장을 입고 노점상을 한다는 것. 그것은 '난 소중한 존재'라는 존엄성을 표현한 것이었다. 모름지기 사람은 어떤 옷을 입느냐에 따라 언행 또한 달라지기 마련이다. 정갈한 옷을 입고 거래처를 상대할 때와 대충 편한 옷을 입고 집 앞을 나섰을 때를 상상해보자. 우리의 행동은 무의식적으로 옷에 영향을 받아 걸음걸이, 말투, 표정까지 바뀌게 된다.

두꺼운 점퍼 차림의 복장이 따뜻하고 편할 수는 있겠지만 나를 소중하고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게 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 부도난 회사의 사장이라는 바닥에 떨어져버린 나의 존엄성을 나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이런 나름의 방법을 생각해낸 것이다. 내가 나 자신을 존엄하게 대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 역시 나를 존엄한 존재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정장을 입고 장사를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옷에 기름이 튈까봐 계속 신경을 써야 하고, 특히 한겨울의 매서운 칼바람을 얇은 정장으로 감당하는 것은 고통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호떡장사를 그만둘 때까지 나는 이 복장을 고집했다. 반드시 다시 일어서겠다고 내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한 다짐을 잊지 않으려는 발버둥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 나는 스스로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고, 삶의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자신을 남에 의해 평가하려는 것 같다. 그냥 '나'가 아닌, 누가 바라본 '나'에 집착해 그 평가로 자신의 가치를 좌우하는 것이다. 하지만 본질은 언제나 형식을 초월한다. 진주는 흙바닥에 있든 귀부인의 목에 있든 진주가 아니겠는가. 남들이 볼 땐 호떡이나 파는 노점상 아저씨에 불과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나 자신을 이미 그때부터 '외식사업가'라고 생각하고, 조그만 내 리어카를 나의 사업장이라 여겼다. 실패 앞에서도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자신이 하는 일이 '돈'을 넘어 자신과 타인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의미 있는 있이 될 것이다. 세상에 가치 없는 사람이 없듯, 의미 없는 일 역시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2. 연구와 고민은 평생의 과제 : 남들이 하지 않은 그 일에 몰두하라



관점의 차이가 콘셉트를 만든다


'왜 하필이면 죽이야?' 죽장사를 한다는 말에 사람들이 던지는 첫 반응은 '하필 그거냐'는 식의 걱정과 우려가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까지 죽이라고 하면 '환자가 먹는 음식'이라는 사람들의 인식이 강했고, 입맛을 충족시키고 배부르기 위해 먹는 음식이 아니라 소화를 위해, 건강을 위해 먹는 음식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타깃이 제한된 메뉴, 어찌 보면 승산 없는 분야라며 주위에서 만류하는 것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죽에 대한 선입견, 기존의 죽집들이 보인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양하고 맛있으며 양까지 푸짐한 죽 한 그릇을 왜 만들지 못한단 말인가. 나는 죽의 한계를 넘는 순간, 이 분야는 분명 훌륭한 음식 시장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다른 모든 사업도 그렇겠지만, 음식사업 역시 관점을 달리해서 접근하지 않으면 그저 그런 아류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무엇이든 남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고 연구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죽이 환자들이나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영양식인 죽을 일반인들의 맛있는 식사처럼 만들어보면 어떨지 관점을 달리해 생각하게 된 것이 지금의 본죽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어느 때부턴가 사회의 이슈로 '웰빙'이 떠오르며 몸에 좋은 음식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건강식인 죽이 '웰빙 바람'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간편하게 빨리 먹는 패스트푸드를 외면하고 자신의 건강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음식에 대한 관점이 변하였기에 가능한 현상이었다. 실제로 죽에 대한 인식이 최근 몇 년 사이에 급속히 달라졌다. 요즘은 많은 가정에서 소화하기 쉬운 영양죽을 음식에 가장 예민한 수험생에게 식사로 내놓기도 한다. 이는 수학능력시험 전날 가맹점 매출이 가장 높다는 것만으로도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이다.

사실, 왜 하필 죽이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솔직한 대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남들이 하지 않은 거니까요.'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모든 음식을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었고, 그런 생각들이 모여 본죽의 차별화된 장점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 잡는 지푸라기는 간절하면서도 중요한 존재다. 이때 남들이 모두 잡는 지푸라기는 뿌리가 약한 지푸라기와도 같아서, 결국 그 사람을 다시 위험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그러니 내가 잡고 일어설 지푸라기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파악해야 한다.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면, 당신의 재기를 도와줄 대상은 주위에 얼마든지 있다.

질리지 않았다면 끝까지 매달리지 않은 것

음식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손맛을 과신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대대로 이어온 손맛으로 유명해진 맛집에 찾아갔다가 기대 이하인 음식 맛에 실망한 적이 있을 것이다. 왜 맛집에 찾아갔는데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맛'이라는 것이 매우 주관적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누구 입에는 맛있지만, 누구 입에는 별로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음식점을 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요리법과 메뉴 개발이 매우 중요하다. 손이 바뀌어도 손맛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누가 해도 같은 맛을 내는 체계적인 요리법과 이를 바탕으로 한 다양한 메뉴가 필요한 것이다. 이는 가맹점이 늘어날 경우를 생각하면 더욱 중요하게 신경 써야 할 부분이다.

나의 경우, 음식점 창업컨설팅을 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6개월 이상 죽 만들기에 전념했다. 실제로 죽을 쑤고 메뉴를 개발하고 이러한 요리법을 체계화하는 일은 순전히 아내 몫이었다. 아내는 요리사이기보다는 시인이며, 지금도 시인으로 자신이 평가받는 것을 더 의미 있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6개월 이상을 매일같이 죽에만 매달렸다. 나는 아내가 만든 수십 가지의 죽들을 먹고 평가하며 개선점을 찾는 데 주력했다.

우리 부부가 메뉴를 개발하는 데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 번째는 '전통'이었다. 아무리 새로운 죽을 만든다고 해도 조상 대대로 이어온 우리의 전통적인 죽을 포기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본적인 전통죽을 몇 가지 정하여 그 죽 본연의 맛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두 번째는 '젊은 층이 즐길 수 있는 메뉴'였다. 초기부터 죽의 전문화, 브랜드화를 꿈꿨기에 가장 강력한 소비층을 확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원칙을 세우고 메뉴 개발에 착수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전통죽인 전복죽과 젊은 층을 겨냥한 해물죽, 소고기버섯죽 등을 체계화할 수 있었다.

또한, 본죽은 애초부터 주문이 들어오면 한 그릇씩 만드는 맞춤죽을 지향했다. 물론 죽을 쑤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말릴 일이었지만 나는 죽이라는 음식이 가진 약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미리 쑤어놓은 죽은 절대 팔릴 수가 없다. 비위생적이기도 하지만 죽이 금방 불어버리기 때문이다. 돈을 내고 불어버린 죽을 사먹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이 부분을 개선해내야만 했고, 이 벽을 넘어야 본죽만의 차별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다른 음식과 달리, 사람들이 죽이라고 하면 으레 '정성'을 떠올릴 만큼 그 조리과정이 무척이나 까다로워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우선 조리시간이 길고 조리하는 동안 내내 곁에서 지켜보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그러니 주문이 들어오면 맛과 영양을 살리면서 최대한 음식이 빨리 만들어지도록, 조리시간 단축에만 2개월 이상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이렇게 해서 개발된 초기 메뉴는 13가지였다. 어린이, 환자, 노인을 대상으로 한 영양맛죽 7가지와 전통건강죽 6가지가 탄생한 것이다.

제발 지금 시작한 일에 질리도록 당신의 삶을 걸고 매달려보길 바란다. 나에게 그 6개월은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없었다면 지금의 본죽은 절대 없었을 것이다. 겉핥기식의 준비는 결국 실패를 다시 한번 안겨줄 뿐임을 잊지 말자. 꿈에 나올 만큼, 지금 준비하는 그 일이 내 삶을 한동안 지배할 만큼, 지금의 일에 매달린다면 남들과 다른 내 길은 반드시 열릴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에게 새로운 미션을 제시하라

흔히 말하는 '잘나가는' 본죽 브랜드가 있음에도 우리가 새로운 브랜드 개발에 나선 것은 2006년부터였다. 생각의 출발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통음식에 대한 모순된 생각을 없애고 세계를 무대로 우리 음식을 제대로 알려보고 싶다는 꿈에서 비롯되었다. 우리의 전통음식은 뛰어난 맛과 영양의 균형 등 장점이 많이 있는데도 지나치게 홀대를 받아왔다. 그렇기에 새로운 메뉴를 만들고 이에 걸맞은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은 외면당하고 있는 우리 음식에 대한 커다란 안타까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본죽만큼 브랜드 관리가 쉬우면서 많은 사람이 선호할 수 있는 전통음식을 찾기 시작했다. 그때 마침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이 비빔밥이었다. 비빔밥은 기내식으로 공급되면서 한국인 탑승객뿐만 아니라 외국인 탐승객들로부터도 인기를 끌고 있었다. 비빔밥은 우리가 소홀하게 대하던 전통음식의 재발견이었다. 비빔밥 개발에 아내가 적극적으로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비빔밥은 조리하기에 따라서 완전식품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으로 개발할 자신도 있습니다."

그 뒤로, 아내는 본죽을 개발할 때처럼 꼬박 몇 달 동안을 비빔밥 개발에 몰입했다. 6, 7개월 후 드디어 시제품 평가를 하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나는 비빔밥의 놀라운 변신을 목격했다. 가장 먼저 비빔밥 위에 얹는 고명에 놀랐다. 고명은 단지 볶은 소고기가 전부라는 인식을 통째로 뒤집은 시제품 앞에서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마치 피자 위 토핑처럼 여러 가지 빛깔의 고명이 얹어져 있었다. 낙지를 비롯한 다양한 해산물은 물론 고기, 버섯, 김치 등이 쓰였다. 개발자의 열정과 노력 여하에 따라 비빔밥도 다양한 메뉴가 개발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회를 주재료로 하는 비빔밥, 수삼을 넣은 비빔밥, 굴을 넣은 비빔밥 등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었고 차림도 기존 비빔밥과는 확연히 달랐다.

새로운 메뉴, 새로운 브랜드를 개발하는 일은 고된 일이지만 그만큼 아내와 나에게는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매 순간 자신에게 마치 새로운 미션을 부여하듯,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며 그 안에서 일의 가치와 삶의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즐거운 일에 집중하는 것만큼 보람 있는 일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는가? 혹시 지금의 상황에 이제는 안주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에게도 오늘 새로운 미션을 제시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그 미션을 향해 다시 한 번 열정을 품고 뛰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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