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립사이드
아담 J. 잭슨 지음 | 흐름출판
플립사이드
아담 J. 잭슨 지음
흐름출판 / 2009년 12월 / 272쪽 / 12,000원
프롤로그오늘날 커넬 샌더스의 KFC 매장은 전 세계 82개국에서 매년 20억 명에게 식사를 제공한다. 그가 1980년에 90세의 나이로 골수성 백혈병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그는 자신이 세운 KFC 왕국을 방문하기 위해 1년에 25만 마일을 여행했다. 모든 것이 열악한 환경에 굴복하지 않기로 한 65세 노신사의 결심에서부터 시작했다. 105달러의 정부지급금과 치킨 레시피 하나로 그는 인생을 변화시킬 플립사이드를 찾았다.
할랜드가 애초에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에 기적적으로 재기해서 세계적인 외식업체를 세운 사실도 그저 운명의 장난에 불과할까? 수많은 사람들의 성공담을 관통하는 하나의 공통적인 요소가 있지 않을까? 막다른 길이나 어려운 조건을 말 그대로 '뒤집어서' 그 안에 숨은 기회를 찾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이 책의 핵심이자 주제는 크건 작건 우리의 인생에 놓여 있는 수많은 고통과 문제, 장애 안에는 그만큼, 아니면 그보다 더 큰 이익이나 기회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이익이나 기회를 이제부터 '플립사이드'라고 부르기로 하자.
플립사이드의 비밀을 찾기 위해 지난 시대의 비극과 개인적인 상처가 인생을 뒤바꾼 사건으로 변하는 여러 기적을 목격하러 과거로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그들이 인생에서 어떻게 성공과 행복을 얻게 됐는지, 어떤 시련이 닥쳐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강력한 성공의 열쇠는 과연 무엇인지 하나하나 파헤쳐갈 것이다. 플립사이드의 비밀을 찾는 여행에 동참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환영한다.
좋은소식과 나쁜 소식은 함께온다"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하지만 우리는 원망의 눈으로 닫힌 문만 바라보느라 우리를 향해 열려 있는 또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 - 헬렌켈러
사이먼 퍼첼은 자전거 사고로 치아가 몽땅 나갔다. 자전거를 타고 퇴근을 하는 중에 코너를 돌다가 돌에 걸려 그만 넘어지고 말았는데 하필 얼굴이 가장 먼저 부딪쳐 턱이 아스팔트에 뭉개진 것이다. 처음에는 이 몇 개가 살짝 금간 정도인 줄 알았지만 네 개의 이가 완전히 못 쓰게 되었다. 사이먼의 치과 의사는 그의 상태를 꼼꼼히 조사한 후 이 네 개가 심하게 부서졌고 다시 교체해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돈이 가장 큰 문제였다. 깨진 이를 고치고 완전히 금간 이를 임플란트로 박아넣으려면 적어도 2만 달러 이상의 비용이 든다고 했다.
처음에는 돈을 빌려서라도 빨리 수술을 마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헝가리에서 치과 간호사로 일했던 경험이 있는 사이먼의 아내 베로티카는 부다페스트에서 이 수술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구 사회주의 국가에서 치과 치료를 받는 것을 약간 주저했어요. 하지만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죠. 정말 훌륭했거든요. 서비스 수준과 시술이 흠잡을 데 없이 완벽했어요. 저는 모든 치료를 그곳에서 받았고 총 1만6천 달러를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영국으로 돌아와 이 사건의 플립사이드를 찾았다. 그와 베로티카는 이 경험을 사업으로 발전시키면 다른 사람들의 치료비용도 절약해줄 수 있으며 헝가리의 전문적인 치과 기술을 홍보하고 마케팅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베로니카가 헝가리인이며 정식 간호사 자격증이 있었기에 더 수월하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몇 달 후 그들은 회사 '스마일세이버'를 열었다. 스마일세이버가 승승장구하면서 사이먼은 전에 하던 IT컨설턴트 일을 그만두고 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그와 베로니카는 각자의 사업을 운영하면서 함께 밝은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
사이먼의 자전거 사고가 운명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우연에 불과했는지는 그에게도, 또 인생의 기회를 찾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넘어져 이가 다 깨진 것만으로도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리기 충분한데 2만 달러나 들여 치료해야 했으니 화도 나고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핵심은 그의 사고 자체가 아니라 그가 불운의 사고를 최고의 기회로 바꾸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하나의 전환점이었다. 사이먼은 그 기회를 움켜잡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려놓았다. 그는 이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 사건을 회상할 것이다. 그것도 가지런하고 튼튼한 이를 환히 내보이면서 말이다. 그 사고가 없었다면 지금 그가 누리고 있는 인생은 그저 꿈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축구선수에서 세계적인 팝가수로1963년 9월 22일, 네 명의 청년이 한 차로 스페인의 마야다혼다에서 마드리드까지 여행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절친한 친구로 밤늦게까지 함께 어울려 노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그날 밤 여행은 이들 인생에서 절대 잊지 못할 여행이 되고 말았다. 훌리오도 그날 밤 같은 차에 타고 있었다. 그의 꿈은 프로 축구선수가 되어 어렸을 때부터 동경하던 레알마드리드팀에 입단하는 것이었다. 그는 재능도 타고나 어렸을 때부터 축구 신동으로 불리었으며 레알마드리드와 일찌감치 골키퍼 계약을 맺고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차기 골키퍼 1순위로 주목받는 등 그야말로 탄탄대로를 밟았다. 친구들과 여행길에 오르기 전까지는 말이다. 운명이 그렇듯 그의 꿈은 그날 밤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새벽 두 시, 훌리오와 친구들이 타고 있던 차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훌리오 마드리드에 위치한 엘로이곤잘로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그는 더 이상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의사는 그에게 적어도 18개월 동안은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손상된 척수가 치유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치료를 마친 뒤에 그가 걸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의 축구 인생은 완전히 끝장났다는 사실이었다.
18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 있으면서 훌리오는 밤마다 라디오를 들으며 시를 썼다. 대부분 한 남자의 운명과 삶의 의미를 묻는 애달프고 감상적인 시들이었다. 훌리오가 쓴 시를 읽어본 병원의 간호사는 그에게 기타를 건네면서 그 시들을 노래로 한번 만들어보라고 권유했다. 당시만 해도 노래는 훌리오의 취미이자 기분풀이 정도에 그쳤다. 뛰어난 운동선수로서 필드를 가르던 행복한 시절을 잠시라도 잊게 해주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타의 기본 코드를 익히고 자신의 시에 멜로디를 붙일 수 있게 되면서 노래는 단순한 취미 그 이상이 되었다.
어느덧 18개월이 흘러갔고 훌리오는 부상에서 회복되어 무치아대학으로 돌아가 공부를 시작했다. 훗날 그는 영어공부를 위해 영국으로 떠났는데 주말에 용돈이나 벌 요량으로 에어포트펍에서 톰 존스라든가 잉글버트 험퍼딩크 혹은 비틀즈의 히트곡들을 직접 부르기도 했다.
스페인으로 돌아온 그는 본격적으로 자신이 작곡한 노래를 불러줄 가수를 찾기 시작했다. 훌리오가 작곡한 곡을 들고 마드리드의 한 녹음실을 찾았을 때다. 훌리오는 담당자 앞에서 본인이 작곡한 곡을 들려주기 위해 직접 노래를 불렀다. 담당자는 시종 고개를 갸우뚱했다. 대체 왜 훌리오처럼 뛰어난 음성을 가진 사람이 노래를 불러줄 사람을 찾는 것일까? "왜 그냥 직접 부르지 그러세요?" 훌리오가 대답했다. "전 가수가 아닌데요." 훌리오는 짙은 갈색 머리칼과 큰 갈색 눈동자, 구릿빛의 건강한 피부에 섹시한 미소까지 겸비한 그야말로 매력적인 청년이었다. 게다가 개성적이면서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훌리오는 담당자의 조언을 받아들여 스페인뮤직콘테스트에 참가해 직접 노래를 불렀다.
1968년 7월 17일, 그의 인생을 파멸시킬 뻔한 교통사고가 일어난 지 5년 만에 그는 'La Vida Sigue Igual(그래도 인생은 계속된다)'이란 곡으로 베니돔음악제에서 최우수상을 받았고 얼마 후 콜롬비아 레코드사와 정식 계약을 했다. 아마 당신은 그의 노래를 한두 뻔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쩌면 그의 음반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순간의 교통사고로 어린 시절부터 품어왔던 꿈을 잃은 그 남자는 라티 아메리카 음악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매한 가수가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이름은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다.
시련에 대처하는 방식이 삶의 모습을 바꾼다
변화의 전주곡트라우마는 인생에 있어 긍정적인 변화의 전주곡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장애물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매우 당혹스럽고 두려울 것이다. 하지만 첫인상과 달리 그 사건은 더 나은 인생을 위한 훌륭한 계기가 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우리 몸은 그것을 이길 수 있는 항체를 생성해 면역력을 갖게 된다. 또한 그 감염을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다는 경험을 통해 자신감을 얻기도 한다. 같은 맥락에서 어쩌다 운이 나빠 뼈가 부러졌다고 치자. 당시에는 고통스럽겠지만 뼈가 더 똑바른 위치로 자리 잡고, 더 단단하게 접합되어 오히려 부러지기 전보다 더 나아질 수 있다. 마찬가지다. 심리학자들은 트라우마 역시 슬기롭게 대응하면 내적으로 더 단단하고 더 성장할 수 있는 계기를 준다고 말한다.
2004년 4월, 《심리학 타임스》는 전 세계 임상심리학 전문가들을 깜짝 놀라게 한 논문을 발표했다.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의 심리학 교수인 테데스키 박사와 캘훈 박사는 지난 20년간 심각한 육체적·감정적 트라우마가 사람들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왔다. 그들이 밝혀낸 연구 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트라우마는 부정적인 결과를 만들지 않으며 오히려 반대로 작용해 긍정적인 결과를 더 많이 부른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트라우마에 대해 널리 알려진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이 트라우마에 플립사이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심리학자들이 극심한 트라우마는 반드시 육체적·심리적 장애를 일으킨다고 가정했고, 여러 심리학 연구소들이 PSTD를 치료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연구에 매진했다. 하지만 테데스키와 캘훈 박사는 트라우마를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이 예상과 달리 평생 심리적 고통을 받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극심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얼마 후 그 트라우마를 인생에 새롭게 눈뜨게 해준 소중한 경험으로 여기는 이들도 많다. 이러한 사례는 위대한 철학자와 신학자들이 몇 세기에 걸쳐 반복해서 강조한 말, 즉 인간에게 내려진 모든 고통은 더 위대한 선(善)을 위한 것임을 멋지게 증명해보였다.
이 논문에서 테데스키와 캘훈 박사는 치명적인 트라우마 사례를 주로 연구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드는 지진 같은 경험, 살아남은 사람들의 신념과 세상을 보는 관점, 세상 안에서 자신의 위치와 일상생활을 이해하는 방식까지 완전히 뿌리째 뒤흔들 만큼 강력한 경험들만을 대상으로 했다. 예컨대 배우자의 죽음이라거나 암 선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한 심각한 부상, 때로는 성추행이나 폭행처럼 상상조차 하기 싫은 트라우마들 말이다.
"성장은 뜻밖의 어둠 속에서도 도약할 때 이루어진다." - 헬리 밀러
나는 센트럴 파크 조거다센트럴 파크 너머로 해가 완전히 졌다. 1989년 4월 19일 저녁 9시 정도였다. 32명의 갱들이 공원 안을 달리고 있었다. 그중 5명은 나중에 자신들이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했다고 고백했다. 공원 안 반경 400미터 안에서 30분 동안 벌어진 이 무자비한 폭력 사태에서 그들은 자전거 타는 사람과 행인을 무차별 공격했고 쇠파이프와 돌, 펀치로 두 남자의 머리를 공격해 의식 불명 상태로 만들었다. 몇 시간 후 스물여덟 살 여성이 공원을 지나가던 중 갱들에게 발견되었다. 그저 저녁 조깅을 하던 그녀는 심한 구타와 강간을 당한 후 혼수상태에 빠졌다. 머리에 심한 타격을 받아 두개골이 파손되었고 혈액의 75퍼센트를 잃었으며 발견될 당시에는 심한 저체온 증상을 보였다. 메트로폴리탄 병원의 의사들은 처음 그녀를 보았을 때 그 어떤 희망적인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생존은 불가능하고 잘해봐야 식물인간이 될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의사들의 예상을 깨고 이 여성은 살아남았다. '센트럴 파크 조거'라는 이름으로.
성범죄로 인한 치욕과 희생자의 정신적 충격을 고려해 그 센트럴 파크 조거의 실명은 언론에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2003년 트리샤 메일리는 비슷한 범죄를 당하는 희생자를 막기 위해 자신의 이름과 정체를 밝혔고 『나는 센트럴 파크 조거다 I Am the Central Park Jogger』라는 책을 썼다. 파라머스에서 태어나 뉴저지, 피츠버그에서 자란 트리샤는 웰슬리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MBA와 MA학위를 두 개나 딴 재원이었다. 그녀는 졸업 후 월스트리트 투자은행인 살로몬 브라더스에 입사해 일했다. 이렇게 쭉 평탄한 엘리트 여성으로 살아온 그녀의 삶은 센트럴 파크에서의 그 흉포한 사건 이후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트리샤의 책은 그날 밤 사건에 대한 진술뿐만 아니라 그 후의 치유 과정 그리고 절망 속에서 일군 새로운 인생에 대한 감동적인 수기를 담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다시 일으켜 세워야 했으며 아주 단순한 것까지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예를 들어 구르기, 시간 보기, 블라우스 버튼 잠그기, 신발 끈 묶기나 간단한 물건 알아보기 등 유아기 때 모두 거쳤던 것을 다시 배워야 했다. 그녀는 이 모든 과정을 꿋꿋하게 견뎠고 그 과정에서 완전히 다시 태어났다. 그녀는 여전히 같은 사람이었지만 내적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고 어떤 면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트리샤는 현재 회복되는 동안 도움을 받았던 여러 단체를 돕는 일을 한다. 마운트시나이 병원의 성폭력 및 폭행 중재 프로그램 SAVI, 회복 기간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게이로드 병원, 그리고 그녀가 1995년 뉴욕시 마라톤 대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운 아킬레스 트랙 클럽 등이다. 근래에는 범죄희생자국립센터에서 수여한 리더십 어워드와 커리지센터의 내셔널 커리지 어워드, 뉴욕 퀸즈병원의 페이스세터 어워드, 알버트아인슈타인 의대에서 스피릿 오브 어치브먼트 어워드, 보스턴 매직 106.7 익셉셔널 우먼 프로그램에서 커리지상을 받았다. 그리고 뉴욕시를 대표해 올림픽 성화 봉송자로 뽑히기도 했다.
오늘날 트리샤는 대중 연설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북미 각지의 사업체, 대학, 뇌손상협회, 성폭력센터와 병원에서 자신의 치유과정을 사람들과 나누고 있다. 그녀는 책과 강연을 통해 개인적이건 직업적이건 경제적이건 때로는 영적인 것이건 우리 삶에 일어난 예기치 않은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관해 깨달은 바를 전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와 영감을 주어 인생의 장애물들을 극복하게 하고 다시 인생의 길에 올라서도록 한다. 그녀는 플립사이드를 말할 때 빼 놓아서는 안 될 살아 있는 증거다. 그녀는 단지 살아남지만 않았다. 물론 그것 자체로 충분히 기적적이지만 말이다. 그녀는 이 악몽 같은 경험에서도 다른 면을 찾아냈다. 그녀는 그 끔찍한 사건 안에서 무언가 긍정적인 것을 끌어내어 삶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켰고 다른 이들도 똑같이 할 수 있도록 영감과 도움을 주었다.
"어떤 조건에서도 인생의 의미는 찾을 수 있다. 아무리 비참한 상황에 놓여 있더라도 마찬가지다." - 빅터 프랭클
트라우마가 불러오는 다섯가지 긍정적인 변화한쪽에 상실과 고통이 있다면 그 뒷면에는 성장과 새로운 가능성이 숨어있다. 생명을 위협하는 병이나 교통사고, 범죄, 때로는 천재지변에 이르기까지 끔직한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은 삶에서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한다고 말했다.
첫째, 트라우마를 극복한 사람들은 전보다 더 자신감에 넘치고 자립심도 커진다. 큰 시련을 딛고 다시 일어났다는 사실이 긍정적인 에너지를 불러 어떤 일이 생겨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을 주기 때문이다. 둘째, 트라우마를 극복한 사람들은 가족, 친구, 동료들과 더 친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한다. 그들은 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더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에 대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세속적인 고민이나 불평불만 대신 매사 감사하는 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