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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직여행

포 브론슨 지음 | 물푸레
천직여행

포 브론슨 지음

물푸레 / 2009년 8월 / 445쪽 / 13,800원



1부 운명이 정해준 자리



달라이 라마의 편지를 받은 청년


당신이 열일곱 살 때 '궁극의 진리'를 깨달은 이로부터 편지를 받았다고 생각해보라. 그 편지에는 당신이 누구이며 앞으로 어떤 운명이 펼쳐질지 쓰여 있다. 내가 아는 사람 가운데 정말로 그런 편지를 받은 사람이 있다. 현재 서른두 살인 그는 피닉스의 캐멀백 산자락에 살고 있다. 그는 인도의 남부에 있는 난민수용소에서 자랐다. 그는 티베트 문학 교수가 되겠다는 막연한 꿈을 안고 전문학교에 등록한 직후에 그 운명의 편지를 받았다. 편지는 그가 체아오 돈덥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여섯 번의 생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가 다섯 형제와 함께 가난하고 외딴 티베트 동부지역을 다스리던 전사였다는 것이었다. 그의 다섯 형제는 몽골제국을 세운 칭기즈칸의 후예인데, 그는 전생에서 가족의 폭정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승려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평생 동안 13개의 사찰을 세웠고, 테호 지역에서 위대한 정신적 지도자가 되었다고 했다. 알리의 진짜 이름은 자 린포체Za Rinpoche이며, 이는 티베트 말로 '법왕法王'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리고 알리가 인도 북부에 있는 드레풍 사원(1416년에 세워진 티베트 불교 사찰로, 2대부터 5대 달라이 라마가 이곳에서 수도생활을 했다)에 입문하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

그 편지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내가 린포체를 만나러 가게 된 사연은 이렇다. 호기심이란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 보내는 원초적이고 진솔한 신호이다. 따라서 그 신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이 좋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가 분명하게 정해져 있다면 어떨까? 그것도 달라이 라마에게 직접 편지를 받았다니! 물론 내가 그를 만나러 간 것은 이런 궁금증 때문만은 아니었다. 마음 한편에 성자聖者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다. 그 영적인 존재가 내게 묻은 세상의 때를 씻어내고 갈 길을 일러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만난 사람은 성스럽기는 해도 우리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인간이었다. 일상적인 삶의 고뇌를 풀어내는 능력은 탁월했지만, 그 역시 날마다 고뇌하며 여느 사람들처럼 욕구와 싸우고 있었다. 자신의 운명이 적힌 편지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신이 어디에 속하는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도 삶의 문제로 부단히 고민하고 있었다.

1998년, 달라이 라마는 미국 전역을 순회하는 승려단의 총책임자로 그를 지목했다. 다른 종교를 철저히 배격하며 불교도가 아닌 사람은 모두 나쁘다고 믿었다. 한마디로 지나치게 고상하고 진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을 순회한 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어느 날 린포체는 "이것은 내 천성이 아니다"라고 폭탄선언을 하고, 아무도 자신을 거룩한 존재로 여기지 않는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대개 운명이라는 매혹적인 말에 뒤섞인 감정을 가진다. 절대적인 존재가 삶의 목적을 깨우쳐주기를 바라는 마음과 모든 역경을 헤치고 스스로 삶의 목적을 찾으려는 마음이 끊임없이 갈등한다. 린포체는 두려움이 자신의 발전을 방해한다면서 두려움은 마음의 상처와 같다고 했다. 두려움은 칼에 벤 손을 치료하듯 정성껏 치료해야 한다. 손에 난 상처를 그냥 두면 감염되어 곪지만, 약을 잘 바르면 상처가 깨끗이 아문다. 두려움도 마찬가지이다. 먼저 무엇이 두려운지 두려움의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 가난에 대한 두려움인지, 외로움이나 거부에 대한 두려움인지 제대로 판단해야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정신적 에너지'의 70퍼센트를 막연한 두려움으로 소진한다. 자신의 에너지를 다른 감정에 쏟는다면 마음의 상처는 자연스럽게 치유될 것이다.

나는 처음 그 가르침을 들었을 때는 별다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그저 '중요'라고 표시해 마음 깊이 새겨둘 가르침쯤으로 여겼다. 그러나 린포체의 그 가르침을 되새기다가 깨달았다. 나도 그 어려운 길에 도달하느라 시간을 낭비해온 것 같았다. '린포체가 그 길을 알려주려고 애썼는데도 혼자 힘으로 알아낸답시고 9개월이나 보내다니'라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어렵지만 스스로 했기 때문에 훨씬 큰 깨달음을 얻었던 것이다.

한길로 여행하는 우주항공 공학자

미국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우주비행센터로 나를 초대한 사람은 러셀 카펜터였다. 우주항공 공학자인 그는 요즘 세상에는 보기 드문 사람이었다. 러셀은 NASA의 우주선 GNC(우주선 항해를 유도하고 제어하는 분과) 소속이다. 쉽게 말하면 '나는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고 싶은가?', '어떻게 도달할까?'에 대한 답을 알려주는 업무인 셈이다. 그 일은 자신의 삶을 과감하게 조종해온 러셀의 목적 지향적인 태도에 비유할 수 있다. 그는 무작정 우주를 떠돌지 않았고, 다른 세계의 중력에 맥없이 끌려가지도 않았다. 러셀은 '어디로 가고 싶은가?'에 대한 답을 우주탐사를 할 수 있는 NASA에서 찾았다.

NASA의 엔지니어들은 유행에 민감하지 않고, 몇 년 동안 한 가지 작업을 수행하는 데 매달린다. NASA에서는 연구실은 물론 복도까지 조용하다. 그들은 느긋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문제를 풀어나간다. 그곳에서 내가 터득한 첫 번째 교훈은 '단위 기간'의 중요성이다. 기업체들은 대부분 기업의 목표를 3개월 단위로 설정한다. 그렇게 설정한 목표는 측정하기 쉽고 월급과 관계있지만, 성취 기간이 굉장히 짧다. 혹시 그런 기업 문화 때문에 직업을 자주 바꾸는 것은 아닐까? 90일 만에 위대한 일을 성취할 수 있을까? 러셀은 3개월이라는 목표 시간 동안 무언가를 급조하기 위해 재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하는 인터넷업체 종사자들을 많이 보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난 그들의 일이 멋지다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자기 무덤을 파는 사람들 같았죠. 우린 절대 그런 식으로는 일하지 않아요."

그들의 일상생활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한 예로 러셀은 자동차를 몰고 자기 숙소로 가는 법을 여섯 가지나 가르쳐주었다. 좌회전과 우회전을 해야 하는 곳, 각각의 거리와 시간, 길을 잘못 들었을 때 참고할 수 있는 도포 표지판, 최단거리 등 모든 변수를 감안해 시시콜콜 알려준 것이다. 이것이 바로 NASA에서 근무하는 공학자들이 훈련받는 사고방식이다. 그곳에서 얻은 두 번째 교훈은, 러셀은 사소한 걸림돌이 진로를 방해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경영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하면 교사나 하지" 하는 식으로 방향을 전환하는 보완책은 세우지 않는다. 그는 다른 길로 돌아가느라 늦는 한이 있어도 애초 목적지로 가는 방법을 강구한다. 그리고 그 길은 절대 순탄하지 않다. 그의 바람이 단 한 가지에 못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삶은 어느 모로 보나 모범적이다. 그런데도 그는 대단히 겸손하다. "오직 한 길만 걸어온 당신이 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걸 아세요?" 내가 물었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겠어요. 하지만 그게 자랑거리는 아니에요. 제가 늘 바란 건 근사한 일이었으니까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근사한 일이 아니라 나만의 근사한 일이죠. 만일 정말 근사한 일을 찾으면 그땐 나도 서슴없이 NASA를 떠날 수 있어요." "내가 보기에 당신은 그럴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근사한 직업만 찾아다니는 사람들을 숱하게 보았거든요. 그 사람들은 한순간의 기분으로 '근사하다'고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근사하다'는 아주 달라요." "아마 그럴 겁니다."

2부 타인의 행복



어느 이상주의자의 행복


나는 플로리다 국제대학교 창업스쿨에서 주최한 오찬회에서 아나 미야레스를 만났다. 고난을 이겨낸 쿠바 이민자들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나는 그들의 대표를 만나길 기대하면서 참석자들과 두루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쿠바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말해보라고 했어요. 그들은 전기 기술자였다, 방송 기자였다는 식으로 하나같이 과거형으로 대답하더군요. 그래서 내가 그랬죠. '여러분은 전기 기술자이고, 방송 기자예요. 지금도 그건 변함없는 사실입니다. 미국으로 이민 왔다고 정체성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라고요."

아나는 사회 활동가로서 맨 처음 리틀아바나에 재단을 설립했는데, 그것은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녀는 타임달러스Time Dollars 재단을 설립했다. 그것은 일종의 자원봉사은행으로 자신의 전문 기술을 한 시간 투자하고 대신 필요할 때 그 시간만큼 다른 사람의 전문 기술을 인출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페인트공, 회계사, 보육사, 노동자 등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그것은 비용이 전혀 없어도 얼마든지 운영할 수 있는 훌륭한 대안 경제로, 시간을 물물교환 하는 체계이다. 아나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쿠바계 미국인들이 사회복지사업을 보는 시각과 쿠바의 가족 문화에 대해 알아야 한다. 그들은 복지사업을 불신한다. 복지사업 자체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사업체는 부패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반면 쿠바인들은 가족을 신보다 귀하게 여긴다. 가족은 한시도 떨어져서는 안 된다. 공항, 축구장, 바비큐 파티 등 어딜 가든 항상 가족이 함께 간다. 열 살 때 아나는 홈스테드에 있는 쿠바 난민촌에서 일곱 살짜리 여동생을 돌봐야 하는 소녀 가장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에야 부모님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때부터 그녀의 부모님은 아나가 집안을 다시 일으켜 세워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어느 날 그녀는 한 친구에게 빈민지역 재개발사업의 담당자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가족들을 생각하면 도저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결국 아나는 못 하겠다고 말하러 갔다가, 1년 동안 하기로 약속하고 나왔다. 그러나 사회복지 활동을 하면서도 아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비영리단체 간의 경쟁, 기업체와 연방단체 간의 알력 다툼 등 끊임없이 구조적 문제들로 시달렸기 때문이다. "비영리단체들은 정치권에 영혼이라도 팔라고 요구합니다. 지원금을 받으려고 단체들 간에 경쟁이 심하거든요."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뿐 아니라 온갖 중상모략이 난무해요. 정작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에게는 관심도 없고요. 가난한 사람들을 계속 가난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더군요. 그래야 더 많은 보조금을 받거나 더 많은 자금을 확보할 수 있으니까요. 자원 활동가들에게도 문제가 있어요. 그들의 자원 활동에는 '당신들에게는 내가 필요해. 나는 선하고 당신들보다 유능해. 당신들은 내게 아무것도 줄 수 없잖아'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거든요."

아나는 마이애미, 볼티모어, 피닉스, 세인트루이스, 일본, 영국에서 타임달러스 사업을 시작했다. 아나는 여전히 삶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아나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 그녀는 사는 동안 그 이상을 위해 온몸을 바칠 것이다. 아나의 이야기는 스스로의 삶을 창조할 수 있는 특권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보여준다. 특권을 포기한 채 여느 사람들처럼 가족, 종교, 조국에서 삶의 의미를 찾을 것인가. 아니면 선택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서 산다는 이유로 특권을 마구 낭비할 것인가. "미국인들은 자유를 당연한 것처럼 여기더군요. 그러다 보니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소홀히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정체성을 찾을 기회를 갖지 못한다면 자유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부모는 자식을 위해 꿈을 포기해야 할까?

나는 이제 막 부모가 된 100여 명의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직업에 대한 두려움과 그릇된 믿음이 상당 부분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다. 마치 폭발하기 쉬운 화학 약품을 다루듯 우리는 부모가 되기를 조심스러워한다. 우리는 자라면서 부모가 겪는 중년의 위기를 직접 목격한다. 우리의 부모 세대는 결혼하면 곧바로 아이를 낳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꿈을 포기한 경우가 많다. 그러다 훗날에야 너무 쉽게 포기해버린 젊은 날의 꿈을 되살리고 싶어한다.

이 책에 소개된 사람들 가운데도 자녀가 있는 이들이 많다. 그중 한 사람이 캣 클라크이다. 그녀는 딸을 위해 자기 꿈을 포기할지 말지의 기로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목표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 참가하는 것이었다. 캣은 육상 선수로서 소질을 타고난데다 승부 근성도 강했다. 그래서 캣은 해군에 입대했다. 해군 육상부도 올림픽대표 선발대회에 선수를 출전시켰기 때문이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해군 기지에서 훈련을 하며 대회 결과를 알려줄 감독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전화벨이 울렸다. 그런데 전화를 건 사람은 감독이 아니라 선수단 주치의였다. 그는 캣에게 임신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캣은 더없이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주치의는 아이를 낳고 싶으면 되도록 빨리 훈련을 그만두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아이와 올림픽대표 선발대회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했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아이 아버지와는 상관없이 아이를 낳고 싶었다.

캣에게는 딸 말래나가 전부였다. 둘은 마치 자매 같았다. 학교 수업이 끝나는 오후 2시 30분이 되면, 캣은 잠시 짬을 내서 학교 앞으로 차를 몰고 가 딸을 집에다 데려다 주고 다시 일하러 가곤 했다. 말래나가 소프트볼 대회와 배구 대회에서 받은 우승컵들이 벽난로 선반에 줄줄이 놓여 있었다. 캣의 책상에는 온통 말래나 사진뿐이었다. 지난해까지 세월은 아무 탈 없이 흘러갔다. 뒤늦게 대학 공부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드앤자대학에 시간제 수강생으로 등록했다. 그러고 나서 육상 감독의 사무실로 갔다. 그녀는 현재의 처지를 설명하고 포환던지기와 원반던지기 선수가 될 수 있는지 물었다. 13년 동안 체중은 많이 불었지만 서른두 살의 그녀는 몇 달 만에 예전의 체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주 5일은 야간 훈련을 받았다. 컨디션이 매우 좋아서 열아홉 살 때의 최고 기록을 경신할 정도였다. 그러면서 자신감을 회복해갔다. 캣은 딸이 잠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출근하고, 잠자리에 든 후에야 훈련이나 야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갔기 때문에 모녀가 서로 얼굴조차 못 보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녀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크리스마스 이틀 전 말래나가 엄마에게 불만을 터뜨렸다 "난 너무 쓸쓸해요. 엄마는 예전과 너무 달라졌어요." 캣은 또다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딸의 불만이 이기심에서 비롯된 것이더라도 그녀는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소중한 한 사람을 아프게 한 자신이 몹시 미웠다. 하지만 지금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오지 않을 텐데 자신의 재능을 그대로 썩혀도 괜찮을까? 그녀는 그런 고민을 나에게 털어놓고 싶어했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렇게 중대한 결정에 개입한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인터뷰 후 2개월 뒤 나는 다시 캣을 만났다. 그녀는 대학 공부를 포기하고 육상 선수 생활도 정리했다. 엄마 노릇을 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다는 말처럼 들린다고 했더니 그녀가 이렇게 못 박았다. "부모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자기희생이 아니라, 아무리 해도 아이가 먹지 않거나 대화를 거부하거나 마음의 문을 닫는 거예요. 그처럼 속수무책일 땐 정말이지 무력감에 빠져요. 반대로 내가 아이의 든든한 울타리라는 자부심을 느낄 때면 더없이 큰 보람을 느끼죠." 그러니까 부모로서 자아실현은 단순히 엄마가 되었을 때가 아니라 좋은 엄마가 되었을 때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캣은 이제 달관한 듯했다. "난 말래나를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신이 준 이 선물을 비난하거나 변화시키는 일은 내 몫이 아니에요. 그건 마치 기적을 목격했을 때와 같아요. 그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든 내가 할 일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뿐이지요." 이것이 바로 몸으로 깨달은 삶의 지혜라는 생각이 들었다. 태초부터 사람들은 자녀를 양육해왔다. 남자든 여자든 역사상 위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녀를 두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일에서 성공을 거두려면 자녀를 낳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억지가 아닐까? 아이 낳기를 미루고 싶다면 그래도 좋다. 부모가 되고 싶지 않다면 반드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법도 없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해두자. 그런 태도가 일에서 성공을 이루려는 야망이 아니라 두려움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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