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3000명에게 YES를 이끌어낸 협상
마크 도미오카 지음 | 비전코리아
유대인 3000명에게 YES를 이끌어낸 협상
마크 도미오카 지음
비전코리아 / 2009년 11월 / 224쪽 / 12,000원
chapter 1. 평범한 회사원에서 협상전문가가 되게 해준 유대인과의 만남
'삼각포지션'으로 협상 분위기 주도하기체펠린 테히니크 사의 대표는 슈미트라는 이름의 험상궂은 얼굴의 남성이었다. 눈웃음 없는 차가운 미소인 것을 보니 빈틈없는 성격의 소유자인 듯했다. 나는 회의실 안에 차분하게 놓인 검은 가죽으로 된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마이어는 내 맞은편에 앉지 않았다. 그는 내가 직접 협상할 상대는 슈미트 대표이고, 자신은 체펠린 사의 컨설턴트라는 입장을 표명한 셈이다. 보통은 슈미트 대표와 마이어가 나란히 앉아 협상 상대인 나와 직선 형태로 마주보는 2대 1 대결태세로 앉는다. 그러나 마이어는 슈미트 대표와의 거리가 나보다 약간 가까울 뿐, 마치 중립을 강조하듯 세 사람이 각각 삼각형의 꼭지가 되도록 자리를 잡았다.
앉는 위치까지 신경을 쓸 필요가 있냐고 반문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앉는 위치를 절대로 가볍게 보지 말라. 비즈니스에는 상석과 하석이라는 개념이 있고, 어떤 위치에 앉느냐에 따라 심리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다. 실제 그날 나는 협상에 임하면서도 압박감을 전혀 느끼지 않았고 편안했다. 이 협상은 양사가 제휴 여부를 놓고 동등한 입장에서 협의하는 자리였기 때문에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거래 중인 회사와 어떠한 현안을 놓고 해결해야 하거나, 제휴는 결정되었으나 조건 면에서 세부사항을 결정해야 한다면 상대방을 위압하는 분위기로 진행해야 유리할 수도 있다. 원하는 진행방식에 따라 앉는 자리까지 신경 쓰는 것이 유대인 협상가의 지혜다.
마이어의 뒤에는 화이트보드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는 일부러 화이트보드와 가장 가까운 자리를 차지했다. 이유는 즉시 드러났다. "그럼 오늘의 아젠다(검토과제)를 확인할까요?" 마이어는 슥 일어나더니 화이트보드에 안건을 하나하나 써내려갔다. 그는 어느새 협상의 사회자이자 내비게이터가 되었다. 즉 그는 따로 언급하지 않고도 '내가 이 자리를 컨트롤한다'고 자연스럽게 표명한 셈이다.
보통 협상에는 사회자가 없다. 그러나 아무리 1대 1이라도 사람이 모인 이상 어느 한쪽이 그 자리를 컨트롤하고 진행을 도맡게 된다. 내비게이터가 공평하게 진행한다고는 해도 아무래도 주도권을 쥐면 협상을 내게 유리한 순서로 진행시킬 수 있다. 토의 내용이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빗나갈 기미가 보이면 궤도 수정도 가능하다. 그만큼 협상이 유리해진다. 인원이 많은 회의라면 더더욱 내비게이터 역할을 자청하도록 하자. 내가 분위기를 주도할 기회를 확보할 수 있다. 회사에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회의만 봐도 진행자의 캐릭터에 따라 분위기가 지루해지는가 하면 화기애애하고 활발한 회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나는 이번 협상을 어떤 분위기로 이끌어가고 싶은가?' 마이어는 앉는 위치 하나로 분위기를 컨트롤하는 권한을 확보해 보였다.
복장은 회사의 얼굴, 가방은 미니오피스
외근이 많은 비즈니스맨에게 복장은 '회사의 얼굴'이다. 고가의 명품 슈트를 입으라는 말이 아니다.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복장을 해야 한다는 말이다. 나는 나만의 개성을 연출하는 차원에서 협상에는 노타이로 임한다. 대신 흐트러진 인상을 피하기 위해 노타이용 링클프리 셔츠를 애용한다. 그리고 펜은 절대 주머니에 꽂지 않는다. 셔츠 모양이 흐트러지고,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오피스용품을 가방에 거의 갖추기 때문에 펜을 꽂는 위치는 따로 있다.
서류도 마찬가지다. 사무실에서 안건을 설명할 때 필요 서류를 바로 제시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방문처에서도 사전에 서류를 준비해둔다. 필요 서류를 찾는다고 가방을 뒤적이며 "어, 분명히 여기에 넣었는데? 두고 왔나?" 하는 비즈니스맨을 '유능한 인재'로 보는 사람은 절대 없다. 특히 해외출장의 경우 "급하면 편의점에 가면 되지"라는 안이한 생각을 하는 비즈니스맨이 있는데 대안이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문에 나는 가방을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는 사무실'로 정비하고 다닌다. 그래서 가방 안에는 늘 노트북, 수첩, 휴대전화, 전자사전, 디지털카메라, USB메모리, CD-R, 흰 종이, IC리더기, 시스템노트, 샤프 기능을 겸한 2색(검은색, 빨간색) 볼펜, 리포트용지, 자, 연필형 지우개, 화이트, 포스트잇과 같은 필수품을 갖고 다닌다.
또 회의 전에 옷매무새를 확인하기 위한 거울, 칫솔, 이쑤시개, 무스, 립크림과 핸드크림도 빠뜨리지 않는다. 물론 준비물이 과해 가방이 무거워지면 역효과이니 가방은 가볍고 기능적인 제품을 사용해야 한다. 남자가방에 립크림과 핸드크림이 생소할지 모르지만, 남녀를 불문하고 손이나 입술은 그 사람의 건강상태, 생활태도를 대변한다. 대화중에 시선이 머무는 곳이 손이나 입술인 것을 감안한다면 필수 아이템이다. 이날 협상 이후 내 필기구는 몽블랑이 되었다. 이 또한 소중한 배움의 기회였다.
chapter 2. 세계 76개국에서 배운 밀리지 않는 협상 기술 '와인, 식사, 대화로 서로를 알아가는' 스페인인
스페인에는 이른 오후에 낮잠을 자는 시간인 '시에스타'가 지금도 남아있다. EU 가입 후에 마드리드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없어지는 추세이나 중소도시나 시골은 오후 2~5시까지 낮잠 자는 시간이 여전히 남아 있다. 요새 '깜빡 낮잠이 건강에 좋다'고 하는데, 스페인에서는 실제 낮잠을 자기 위해 사무실이든 상점이든 잠시 문을 닫는다.
스페인에 처음 갔을 때 스페인 남동부의 발렌시아에서 1주일 머물렀다. 이때의 협상과정은 그야말로 문화적인 충격이었다. 아침 7시 반에 상대 회사의 직원이 호텔까지 나를 데리러온 것이다. "마크 씨, 부에노스 디아스(좋은 아침입니다). 반갑습니다, 프란시스코입니다. 아침식사는 하셨나요?" 내가 호텔에서 가볍게 먹었노라고 하자 사무실로 가는 길에 카페가 있으니 맛있는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한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커피를 좋아하기 때문에 "좋네요, 갑시다"라고 두말없이 승낙하고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렀다.
지하철역의 구내매점을 조금 키운 듯한, 그다지 깔끔하지 않은 스탠드바 형식의 카페였다. 단골손님이 열 명 정도 모여 왁자지껄 잡담을 나누고 있다. "마크 씨, 진한 커피 괜찮으시죠?" 프란시스코는 내가 고개를 끄덕일 틈도 없이 카운터로 향하더니 빠른 스페인어로 주문을 했다. 그러자 카페 주인이 에스프레소 커피와 쇼트글라스의 빈 잔을 거칠게 놓더니 빈 잔에 레미 마르탱을 가득 따르는 것이 아닌가. "스페인에서는 아침에 커피에 술을 곁들여 마시는 풍습이 있죠. 이게 빠지면 아침이라는 느낌이 안 들어요." 놀라서 가게 안을 둘러보자 정말 출근을 앞둔 비즈니스맨들이 쇼트글라스와 커피를 놓고 신문을 읽고 있다. "둘 다 원샷으로 드세요. 자, 마크 씨 건배! 우리의 우정과 비즈니스의 발전을 위하여!" 작은 체구에 기운이 펄펄 넘쳐 보이는 중년남 프란시스코는 아침부터 씩씩했다. 술기운이라기보다 원래 성격이 그런 것 같았다. 우리는 커피와 레미 마르탱을 두 잔씩 마시고 사무실로 향했다.
프란시스코 상사의 자기소개를 시작으로 해서 회의를 진행하다보니 눈 깜짝할 새에 정오가 되었다. 슬슬 배가 고팠다. 그런데 12시 반이 지났는데도 상대방 쪽에서 식사하자는 말이 없었다. 1시 반이 되어도 회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본론은 언제 들어가려는지 서두가 길다. '이 사람들, 점심도 안 먹을 셈인가?' 속으로 투덜댈 무렵, 시계가 2시를 가리켰다. 드디어 "자, 점심 드시러 갑시다!"라는 말에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프란시스코 차의 조수석에 올라탔다. 이미 뒷좌석에는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 둘은 함께 회의했던 사람들이었고 가운데 있는 여성은 낯선 사람이었다.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다섯 명이 더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일행은 총 열 명이 되었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내가 차가운 화이트 와인으로 건배한 뒤에 영어로 인사했더니 프란시스코 말고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지만 다들 반갑게 환영의 인사를 한마디씩 해주었다.
식사는 '익힌 새우', '새우 바비큐', 그리고 '새우 올리브무침'으로 새우 풀코스였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나는 와인을 마시고 새우를 까고 소스를 찍어 우물우물 먹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때 식사 인원이 세 명 이상이라면 대화의 중심인물에게만 말을 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자리한 사람 모두를 일일이 쳐다보며 이야기해야 한다. 사람은 시선을 받으면 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공감하고, '나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스페인인들은 이런 대화습관을 타고났는지 모두가 공평하게 돌아가며 이야기를 한다. 스페인어를 모르는 내게도 시선을 던지고 와인을 따라주기도 한다. 보통 서양에서는 고급 레스토랑에 가면 직원이 와인을 따라주는데 스페인에서는 자기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마시고 혼자 술을 따라 마시기도 했다. 내가 상대방의 잔을 채워주자 싱긋 웃는다.
일본에서는 비즈니스 접대여도 비즈니스 손님보다 자기 상사, 즉 내 식구 챙기기에 급급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서양에서는 식사 시간이 되면 위아래가 없다. 물론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지만 모두가 친구처럼 편하게 대화를 나누고, 일부러 아랫사람에게 화제를 돌린다. 이것이 자리를 마련한 '호스트'의 역할이다. 스페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때 '호스트'는 당연히 프란시스코였다. 그러나 처음에는 열심히 영어로 통역해주던 그도 이야기가 무르익다보니 통역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도리 없이 나는 그저 묵묵히 그들을 관찰하고 와인만 들이키는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2시경에 시작된 점심식사가 3시 반이 되도록 끝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스페인인들의 대화는 점입가경이었다. 프란시스코는 윗도리는 벗어젖히고 셔츠에 멜빵 차림을 한 채 유쾌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결코 술에 약한 편이 아니다. 오히려 평균보다 잘 마시는 축에 속한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아침부터 브랜디를 원샷으로 마신 데다가 점심에도 와인을 한 병 이상 먹고 나니 술기운이 돌아 취기가 올랐다. 늦은 점심인지 이른 저녁인지 모를 그날의 모임은 5시가 돼서야 끝났다. 나는 완전히 취해 조금이라도 빨리 샤워하고 침대에 드러눕고 싶었다. '오늘은 이렇게 끝나는구나, 본론은 내일이나 협의하겠군…….' 이때 프란시스코가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마크 씨,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서 아까 하던 이야기를 마저 하시죠!"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프란시스코는 점심시간에 다른 스페인들과 나눈 내용을 알려주었다. 그들은 동종업계의 비즈니스맨들이었고, 점심식사를 하면서 스페인의 마켓정보를 공유했다고 한다. 그와 그의 상사는 식사 시간에 수집한 정보를 곁들여 나와 조건협상을 하려던 것이었다. 스페인인은 밥 한번 같이 먹으면 바로 친해진다며, 아까 함께 식사한 멤버들이 우리 회사에 호감을 느꼈다고 했다.
아무리 집중을 하려 해도 집중이 안 되는 이날 오후 협상은 8시까지 이어졌고, 차로 호텔에 바래다주겠다는 그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내 한계였다. 프란시스코가 헤어지며 말했다. "그럼 나중에 뵙시다." "네, 내일 똑같은 시간에 뵙겠……" 내 말이 채 끝나기로 전에 프란시스코는 미소 지었다. "10시 반에 올 테니 같이 저녁 드시러 가시죠!" 끼익 소리를 내며 유턴해서 사라지는 프란시스코를 나는 어안이 벙벙한 채로 배웅했다. 어중간하게 빈 시간 동안 우선 욕조에 푹 몸을 담가 술기운을 풀었다. 이후 프란시스코가 다시 나를 데리러 온 시간은 약속한 시간보다 20분 늦은 11시경이었다. 이 시간에 비즈니스 디너라니, 일본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생 햄과 빠에야(프라이팬에 쌀과 고기, 해산물 등을 함께 볶은 스페인 전통요리)를 맛있게 하는 레스토랑에서 이번에는 레드와인이었다! "오늘 점심에 마크 씨가 동참하신 덕분에 비즈니스에 대해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눴지 뭡니까! 우리 스페인인들은 다 함께 모여 식사하면서 잡담과 농담으로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약간의 비즈니스 대화를 나눕니다. 스페인에서는 점심식사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 시간을 함께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니까요!"
나는 이때 스페인인에게서 정보는 사람이 가져온다는 점을 배웠다. 편안하게 함께 식사를 나누면 비즈니스 상대의 진심을 알 수 있고 인맥도 넓힐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이 사람을 부르면서 식사 인원이 늘어나고, 이는 비즈니스의 확장으로 이어졌다. 스페인인과의 협상에서는 본론을 앞두고 이루어지는 의견 교환이 중요하다. 프란시스코에 의하면 술을 곁들여 의견을 주고받다 보면 많은 대화를 할 수 있고, 조바심을 내지 않아도 가야 할 방향으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간다고 한다. 협상을 이런 식으로 느긋하게 해도 좋겠구나, 하고 느꼈다. "자, 내일 식사 시간에는 또 다른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요!" 활기찬 프란시스코의 안내와 함께 디너를 마친 시각은 12시 반이었다. 그리고 이 늘어지는 스케줄이 스페인에 머무는 5일 내내 이어졌다.
'당해낼 재간이 없는 끈기의 달인' 유대인
유대 국가 이스라엘의 텔아비브 공항을 출국하려면 철통 심사를 거쳐야 한다. 일반적으로 국제선은 출발 2시간 전까지 탑승수속을 밟으면 되는데 이 공항은 3시간 전에 도착해야 한다. 출국심사에서 여군이 질문세례를 퍼붓기 때문이다. 방문 목적, 업무 내용 등의 질문은 이해가 간다. 그러나! "당신이 하는 일은 이스라엘에 어떤 도움을 줍니까? 협상 회사의 이름은 무엇이고 소재지는 어디입니까? 이번 수주량은 얼마나 됩니까?" 이 정도의 질문은 마치 귀국 후에 상사에게 보고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당신은 텔아비브에서 무엇을 먹었습니까? 그것은 첫날이었습니까, 이틀째였습니까? 호텔 객실 번호는 몇 호였고, 오늘 체크아웃은 몇 시에 했습니까?" 이런 질문이 30분 넘게 계속되니, 점점 짜증이 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처음에는 그냥 괴롭히는 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직원은 질문의 답보다도 반응을 보고 있었다. 무난하고 사소한 질문의 답에 일관성은 있는지, 침착하게 대답하는지를 살피며 공항이나 비행기 안에서 위험행동을 일으킬 인물인지 아닌지를 테스트하는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텔아비브 공항에서 출국하려면 매번 이런 상황과 맞닥뜨려야 했다. 나는 이를 피할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상대방의 물음에 되물음으로 대처해도 소용이 없다는 것쯤은 시도하자마자 깨달았다. 그래서 무표정으로 담담하게 대답했더니 상대방의 반감을 샀다. 최대한 밝게 대답해도 효과가 없다. 결국 참다못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 공항을 여러 차례 이용하는데 매번 다른 사람이 나와서 똑같은 질문을 하네요. 당신은 이름이 뭐요? 내 명함 뒤에 적어주시죠. 다음부터 당신을 지목하면 서로 시간 단축이 되지 않겠소?" 이러면서 명함을 건네자 그제야 직원의 험상궂은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협상 테이블에서도 마찬가지로 유대인의 끈기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 협상을 이끌어내는 끈기는 유럽의 유대인이나 미국의 유대인이나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젊은 시절 유대인을 상대로 쓴맛을 본 경험이 있다. 한번은 협상 테이블에서 경쟁사 제품과 자사 제품을 설명하는데, 대략적인 준비만 해간 내게 제품의 디테일 하나하나가 어떻게 가격에 반영되었는지를 추궁하는 것이 아닌가.
또 한번은 가격 면에서 절충이 되지 않아 회의를 중단하고 잠시 호텔로 돌아간 적이 있었다. 그때 유대인 협상가는 나를 호텔까지 바래다주면서 차창 너머로 보이는 거리 풍경을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점점 이야기의 흐름이 묘해졌다. "텔아비브의 건물은 바우하우스 양식이 많은데요. 여기 토지 풍토에 잘 맞아요. 잘 아시겠지만 처음에는 나치스의 학대로 쫓겨난 건축가가 도입한 양식이었죠. 아참, 마크 씨, 5만 달러짜리 제품을 첫 거래에서 한꺼번에 10대 구입하면 몇 달러죠?" 나는 느긋하게 관광을 즐기다말고 허겁지겁 자료를 꺼내 "아, 그…… 첫 거래니까 가격은 조금 다운시켜서……"라며 준비해둔 숫자를 댔다. "그렇게 해주시면 감사하죠. 아, 화이트시티입니다. 보이시죠?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이후로는 일본 분들도 많이 오시던데요, 그런데 마크 씨, 초년도에 5대를 한꺼번에 살 경우와 20대를 한꺼번에 살 경우, 본사 쪽에서 제시하실 수 있는 가격은 어떻게 되나요?" 중요한 질문이라 열심히 계산하기는 했어도, 하면 할수록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결국 숫자의 마법에 걸려들어 그들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합의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