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유
최복현 지음 | 휴먼드림
여유
최복현 지음
휴먼드림 / 2008년 10월 / 270쪽 / 11,000원
제1장 우선멈춤
내 그림자 감추기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 어느 날 밖에 나가셨다 오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림자가 두 개로 보이면 죽는다는데, 내 그림자가 두 개였어." 평생 시골에서 빛이라곤 해와 달밖에 못보고 사셨던 아버지는 그림자는 하나뿐이라는 인식으로만 살아오셨다. "아버지, 그림자는 빛이 여러 방향에서 비추면 여러 개로 보이는 거예요. 여긴 가로등이 있어서 양쪽에서 비추니까 그렇게 보였던 거예요."
자신의 그림자를 볼 때마다 마음에도 들지 않고 보기가 싫어져서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걸음을 빨리 해서 자신과 자신의 그림자를 떨어뜨리려 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걸을 때마다 그림자가 꼭 따라붙는 것이었다. 그는 점점 더 빨리 걸었다. 그래도 그림자는 따라온다. 그는 더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그림자는 기를 쓰고 더 빨리 따라온다. 그는 그림자를 피해 도망가다 결국 지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만일 그가 그토록 자기 그림자가 싫었다면 차라리 어떤 그늘에 숨어들었어야 한다. 그러면 그는 자기 그림자로부터 멋지게 도망칠 수 있었고, 그 그늘 아래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지나치게 일에 매달리면 그 일이 꼬여버릴 수도 있다. 열정은 일을 빨리 진행되게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이 지나칠 경우 빨리 가려고만 하는 마음, 급하게 서두르기만 하는 마음 때문에 여유가 생기지 않아 일이 더 지체될 수 있다.
길을 가다가 문득 하늘을 한번 쳐다보는 여유, 들에 나가 들에 부는 바람을 맞는 여유, 그것들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삶을 살찌우고 일에 능률을 가져다주는 자양분이 된다. 일은 어떤 물리적인 힘보다는 마음의 힘이 더 강하게 작용한다.
내가 본 나벌이 끊임없이 날개를 파닥이는 이유는 부지런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는 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덩치가 큰 새를 보면 날개를 그다지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는데도 벌보다 훨씬 빨리 그리고 더 멀리 날아간다. 참으로 편안하고 경제적으로 보이는 움직임이다.
한 사람이 혼자서 사막을 여행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마을에 도착해야만 했다. 더구나 타들어가는 목은 물 한 모금을 절실히 원하고 있었다. 오아시스라도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만, 사방을 둘러봐도 모래산뿐이다. 그는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혀 걸음을 재촉한다. 마침 사람의 발자국을 발견하고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그 발자국을 따라가면 마을이 나타나리라는 기대로 열심히 걸어갔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마을도 오아시스도 나타나지 않았다. 밤이 되자 그는 섬뜩한 생각에 그 발자국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놀랍게도 그 발자국은 자신의 발자국이었다. 그는 제자리를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바쁘게 살다 보면 때로는 자신을 망각하고 살 때가 많다. 늘 시행착오만 되풀이하며 제자리를 맴돌고 있으면서도 모른다. 우리에게 어떤 아픔의 날이 닥쳐올지 모르면서 자족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지금 어떤 모습인지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현 상태를 파악하려면 우선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는 않는다. 잠시 푸른 들판으로 눈을 돌리고 마음을 다독일 줄 알아야 한다. 지금 나 혼자만이 제대로 살고 있다고 자만하거나 자족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내 삶의 속도를 높여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행운을 찾아서 사람은 누구나 평탄하게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우리 삶에는 우여곡절이 너무나 많다. 어찌 보면 그리 짧지 않은 삶에는 평탄한 삶의 길보다는 오히려 험난하고 예기치 못한 곡절들이 더 많다. 그런 삶 속에서 우리는 행복하기를 원하며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행복을 위해 돈을 벌고 운동을 한다. 행복의 조건이 돈이라면 돈에 매달리고 건강이라면 운동에 몰두한다. 그래도 힘겨우면 그 행운을 위해 로또를 구입하기도 하고 경품응모도 해본다. 그런데 행운이란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가 우리를 약올린다. 우리가 찾아가기 전에 그 행복이란 게 우리를 찾아오면 참 좋을 텐데 말이다.
약속시간에 늦어 횡단보도 앞에 서 있을 때 기다리기라도 한 듯 파란불로 바뀌는 행운은 늘 찾아오지 않는다. 바쁘면 바쁠수록 이상하게도 빨간불이 켜져 있을 때가 더 많다. 우리의 삶은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것과 흡사하다. 우리 마음의 위험 신호, 몸의 위험 신호를 무시하고 달려 나가면 자칫 몸과 정신이 황폐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사람이다. 내 삶의 신호등은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 신호등이 파란불이든 빨간불이든 내가 만드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가 가는 곳마다 파란불이 저절로 나를 마중 나와 나에게는 늘 푸른 신호등만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가 내리면 우산을 펴서 그 비를 피하고 바람이 불면 벽에 기대어 바람을 피한다. 진흙탕이 싫으면 발에 장화를 신고 가시가 버거우면 장갑을 낄 줄 안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렇게 삶을 살아가는 지혜, 문제를 피해가는 지혜가 있다. 그럼에도 문제만 생기면 여유를 잃고 그 문제 앞에서 당황한다. 우리 삶에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내 지난 삶을 돌아볼 기회로 삼으면 되고 난관에 부딪히면 그 앞에서 내 능력과 가치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보면 된다.
우리 삶의 빨간불을 억지로 수동으로 조작하기보다는 여유롭게 그 불이 파란불로 바뀌기까지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 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자기 성찰만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무한한 잠재능력은 얼마든지 꺼내 쓸 수 있다.
제2장 일상으로부터의 탈출
휴식은 휴식답게새를 새장에 오랫동안 가두어두었다가 풀어놓으면, 한동안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제대로 날지도 못한다. 우리들도 막상 일에서 잠시 놓여 자유로운 시간을 갖게 되어도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른다. 어떤 사람은 휴가를 이용해 밀어놓았던 집 안 정리를 하기도 한다. 그것은 일의 연장이지 휴식이 아니다. 여가 시간은 철저하게 여가를 즐겨야 한다. 그렇게 끊고 맺는 훈련을 해야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자유가 주어지는 한 그 자유를 아주 보람 있고 멋지게 활용할 수 있어야 그 자유를 누릴 자격이 있다. 5일제 근무가 시작되면서 많은 이들은 하루라는 소중한 시간을 일에서 놓여 지내게 되었지만, 그 소중한 시간들을 나름대로 활용하기보다는 그냥 놀러 다니는 일로 보내고 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에게 자유 시간이 더 주어지는 것은 자기계발을 위해 쓰라는 의미이다. 쉴 때 쉬더라도 미래지향적으로 그 쉼을 누려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자유에 너무 낯설어서 보람 없는 날들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언제나 열심히 일만 하는 사람이 가진 고충은, 그들은 자유시간을 얻으려고 무리해가면서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막상 그 자유시간을 얻고 나면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서 우물쭈물하다가 소중한 시간을 다 보내고 만다"고 니체는 말한다.
일이 많은 사람일수록 휴식은 더욱 필요하다. 너무 일에만 몰두하다보면 자신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마저 불편하게 만들어서 유지되던 평화를 깨뜨릴 수도 있다. 실제로 5일제 근무가 시행된 이후로 가정의 불화가 늘어나고 가정이 깨어져 이혼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능력이 있는 사람은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바쁜 사람들이 아니라 여유를 가지고 자기 일을 묵묵히 해내는 조용한 사람들이다. 바쁜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기보다는 자기 내공을 쌓아서 아무리 바빠도 티를 내지 않으며 살아야 한다. 공치사하지 않으며 남이 알아주든 그렇지 않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나가야 한다. 자신과 주위를 위해서도 슬기로운 휴식을 가질 줄 알아야 하고, 주어진 자유시간을 보람 있게 보내야 한다. 더구나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가족 공동체 내에서 그 휴식을 어떻게 보람 있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창의적인 방법과 합의가 필요하다.
마음의 여유를 찾아주는 자신감무슨 일이든 일에 자신감을 가지면 그 일을 처리하는 방법이 쉽게 떠오른다. 하지만 자신감을 상실하게 되면 아무 생각도 없이 미련하게 그 일에 매달려 스트레스만 받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감을 갖고 살아야만 한다. 하지만 자신감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실력을 쌓을 때 생긴다. 또한 자신을 잘 다스려서 내공을 길러야만 자신감을 갖게 되고 일 처리를 아주 말끔하게 할 수 있다. 일의 양은 몸으로 때울 수 있어도 몸을 움직이는 건 마음의 일이다. 따라서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자기 내공에 달려 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현장을 시찰하고 있었다. 그가 어느 작업현장을 지나가다가 인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현장을 보니 9명이 아주 힘겹게 재목 하나를 운반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곳의 현장감독은 그냥 옆에서 지켜보고만 있었다. 워싱턴이 웃옷을 벗어놓고 가서 그 일을 열심히 도와주었다. 그러고 나서 감독관에게 이렇게 물었다. "왜 당신은 보기만 하고 일이 진행되지 않는데도 가만히 있는 거요?" 그러자 감독관은 "나는 감독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오"라고 대답했다. 그때서야 워싱턴은 자기 명함을 꺼내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다음에도 어려운 일이 있으면 불러주시오."
자신감이 있으면 아무리 남들이 천하다는 일을 한다고 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여유 있게 대처할 수 있다. 바쁠수록 가끔은 멈춰서야만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여유란 한가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쁜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당당함으로써, 자신감을 가짐으로써, 마음의 여유를 되찾아 자신뿐 아니라 모두를 편안하게 하는 존재로 살아가야만 한다.
제3장 생각의 여유
삶의 문제 자문하기 누구나 바쁠 때는 그 일에만 몰두할 뿐 주위를 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늘 제자리만 빙빙 돌며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설령 억지로 밀고 나아갈 수는 있어도 그 전진은 이내 속도가 둔화되고 결국 멈추고 만다. 자신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어야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바쁘게만 살다 보면 그것을 확인할 시간이 없다. 거울을 들여다봐야 자기 모습을 확인할 수 있듯이 자신을 들여다봐야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우선 여유가 있어야 한다. 여유를 갖고 자신에 대한 질문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현재를 알아낸다. 세상의 비밀을 알려면 자신에게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세상을 보는 눈은 바로 나 자신에게 있다. 나를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남은 참 남이 아니며 나를 아는 순간 남의 참모습도 보이게 된다. 나를 알려면 여유를 내서 자신에 대한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일하는 진정한 목적은 한가로움을 얻기 위한 것'이며 '그 한가로움은 자유로움과 자매'와 같아서 일은 마음의 자유를 얻는 도구이다. 루이 부뉴엘이란 영화감독은 이런 말을 했다. "만일 누군가가 내게 '당신이 20년밖에 못 산다면 그동안 무엇을 하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하루 두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꿈을 꾸겠다'고 답하겠다."
사람은 일할 운명을 타고난 존재이므로 일을 떠나서는 살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은 살기 위해 일할 뿐이지 일하기 위해 사는 존재는 아니다. 그러므로 일에 따르는 휴식과 일에 따르는 즐거움이 일과 조화를 이루어야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가 있다. 일하는 만큼 또한 편안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한 자문, 그것은 소중한 자기 발전의 원동력이다. 세상 그 어떤 질문보다도 가장 소중하고 필요하고 좋은 질문은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돌아보는 자신에 대한 자문이다. 그런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충분히 일을 멈추고 쉼을 누릴 자격이 있다.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우리는 다른 사람은 잘 볼 수 있지만 나 자신은 제대로 보지 못한다. 내 뒷모습을 아무리 보려고 노력하지만 볼 수가 없다. 또한 내 얼굴을 보려고 하지만 내 눈과 평행을 이루고 있어 볼 수 없다. 단지 역상으로 비치는 거울을 통해 보게 되는 내 얼굴을, 카메라에 찍히는 내 모습을 진정한 나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남에 대한 관심이 많고 남의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한 관심이나 자신에 대한 탐구는 하지 못한다. 비록 내 겉모습은 늘 역상으로밖에 볼 수 없지만 나의 속 모습은 혼자 있는 시간에 사색을 통해서라면 볼 수 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래야 진정한 나를 발견하고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길 수 있다.
로버트 슐러 목사는 "왜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다음과 같은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첫째, 당신은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이다. 둘째, 당신만의 지문이 있다. 당신만의 각인을 이 세상에 새길 수 있다. 셋째, 당신에게는 독자적인 능력이 있다. 보이지 않는 그 가능성을 발견하고 실현하라. 넷째, 당신에게는 소명이 있다. 당신은 독자적인 목적을 위해 태어났다.
누가 뭐래도 나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인 소중한 존재이다.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존재의 이유가 있듯이 신이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신이 우리를 이 땅에 소중하게 태어나게 해준 그 이유를 찾아내고 내 몫의 짐을 져야만 하며 내 몫의 의무를 다해야만 한다. 하인텔은 "자신에게 끊임없이 말해왔으나 듣지는 못했던 내면의 소리를 고요한 시간에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흥미 있는 일인가"라고 말한다. 자신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한다. 때로는 고적한 산길을 혼자 걸으며 마음의 정리도 할 줄 알아야 하고, 때로는 흐르는 물가에 앉아 그 흐름에 어울리는 생각에 잠겨 진정한 자신의 내면 모습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한다.
자가발전시골에서 살 때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곳이라 밤이면 무척 어두웠다. 맑을 때면 하늘엔 온통 은하수가 가득해서 장관이었는데 그런 밤에 좀 멀리 갈 일이 있으면 늘 자전거를 이용했다. 어두운 신작로길, 돌투성이 길이라 걸어서 가는 건 쉬워도 자전거를 타고 가려면 시도 때도 없이 넘어지곤 한다. 더구나 어둠 속에서 논두렁길을 자전거로 가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그럴 때 애용하는 것이 자전거 전조등이다. 바퀴와 연결해서 바퀴가 돌아가는 회전력에 의해 불이 켜지는 장치인데, 기름 한 방울 없이도 바퀴와 장치의 마찰에 의해 전기가 발생하여 전조등의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것이다. 자전거는 진행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불은 불대로 들어와 길을 밝혀준다.
우리 삶도 이와 같이 자가발전을 할 수 있어야 미래가 보장된다. 자신의 일을 하면서 조금만 신경 쓰면 삶의 보너스가 주어진다. 수도가 없는 마을에 머슴 일을 하는 젊은이가 있었다. 그는 아침마다 물지게를 지고 제법 먼 우물에 가서 물을 지고 와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 양동이가 닳고 닳아서 한 양동이에 작은 금이 생겼고, 물을 길어 집으로 오는 도중에 그 양동이에서 조금씩 물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 머슴은 물이 새는 것을 모르는지 날마다 늘 같은 모습으로 묵묵히 물지게로 물을 길어오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머슴이 지나다니는 길가에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 주인이 참고 참다가 머슴을 불러 이렇게 물었다. "아니 이 어리석은 사람아, 자네가 지고 다니는 양동이에 금이 가서 물이 새는 것도 모르나? 그렇게 물이 새면 헛수고 아닌가?" 그러자 머슴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네, 저도 물이 조금씩 새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그래서 저는 그 길가에 여러 가지 꽃씨를 뿌려놓았던 거예요. 길가에 핀 꽃들을 못 보셨나요? 물을 길어 오는 동안 조금씩 새는 물 덕분에 꽃씨가 싹을 내고 자라서 예쁜 꽃길이 되었잖아요. 저는 그 꽃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다니니까 일이 힘들다기보다는 즐겁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