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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盡心), 마음을 다하라

이고운영 지음 | 더숲
진심(盡心), 마음을 다하라

이고운영 지음

더숲 / 2009년 11월 / 231쪽 / 12,900원



1. 첫 월급 22만 원에서 연매출 2,800억 원 1인 기업으로 성장하다



넘치는 것보다 부족한 게 낫다


나의 첫 방송 생활은 성우로 시작했고, IMF 경제위기가 닥치기 전까지 그 일이 내 천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쇼핑호스트가 되었고 의외로 일이 술술 풀려나가 맡게 되는 물건마다 거의 실패가 없었다.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알게 모르게 자만심이 커졌다. 내가 최고라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하루는 방송이 끝난 뒤 송도순 선배가 나를 불러 방송국 쉼터 계단에 가서 앉더니, 나에게 술을 사오라고 했다. 선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편의점으로 가서 맥주를 사온 나에게 그분은 자신의 옆자리를 권했다. 땀을 식히며 앉아 있으려니 선배가 두 개의 종이컵에 맥주를 따르기 시작했다. 한 잔은 찰랑찰랑 넘칠 만큼 가득 따랐고, 한 잔은 마시기 좋을 만큼 적당하게 채웠다. "고운영, 이 두 잔 중에 네가 마시고 싶은 잔을 선택해봐. 너라면 어떤 잔을 택하겠니?" 당연히 후자 쪽을 선택하고 싶었다. 맥주가 넘친 종이컵은 아무래도 눅눅할 테니 말이다. "아무래도 약간 빈 게 좋겠죠." "그래, 그렇지? 너도 그게 좋겠지? 운영아, 너 요즘 넘쳐. 그것도 많이 넘쳐. 운영아, 왜 배한성 씨가 오랜 시간 인정받는 줄 아니? 그분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아. 어떻게 보면 약간 부족하다 싶지. 그러니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그 부족함을 채워주고 싶어 하는 거야. 그런 사람이 더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니?"

송도순 선배의 충고는 가장 화려한 시절에 스스로의 교만을 경계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또한 물건을 잘 파는 데 급급하기보다 방송인으로서의 자세를 잊지 않았는지 되돌아보라는 뼈아픈 조언이었다. 그날 밤 나는 두 가지 결심을 했다. 첫째, 죽는 날까지 첫 출근 때의 마음 자세를 잊지 말자는 것과 둘째, 현재의 자리에 안주해 안일한 삶을 살지 말자는 다짐이었다.

서른두 살에 또 다른 인생을 시작하다

나는 성우 시절 단역 전문이었다. 그러다가 기회가 왔다. 평화방송 라디오 DJ로 발탁된 것이다. 한인경 선생님과 함께 진행하는 〈할아버지, 할머니 건강하세요〉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한 선생님과 방송을 진행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데 〈할머니, 할아버지 건강하세요〉를 5년쯤 진행하다 보니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창 젊음을 누릴 나이에 아직 살아보지 않은 세대의 이야기를 하려니 문득 괴리감이 느껴졌던 것이다.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는 국장님께 이 일이 너무 힘들고, 하기 싫다고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러자 고맙게도 국장님은 어깨를 툭툭 치며 흔쾌히 알겠다며, "고운영, 다음 개편 때 좀 더 젊은 프로그램을 해보자고!"라고 말씀하셨다. 6개월 뒤에 주부 프로그램을 할 예정이니 등급도 한 단계 올려주고 프로그램 진행도 맡기겠다는 약속이었다. 이후 나는 방송 일을 시작한 후 처음으로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하지만 행운은 그리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한 번 푹 쉰다는 게 쭉 쉬게 되었다. 얼마 안 가 IMF가 터진 것이다. 1998년 봄 무렵이 되자 정말 할 만한 일이 없었다. 그즈음 친구로부터 이벤트 회사를 같이 해보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나에게 이벤트 진행이야 그리 어려울 게 없었다. 그런데 일을 시작하고 얼마 뒤 덜컥 문제가 생겼다. 내가 어음으로 받은 2,600만 원이 부도를 맞은 것이다. 결국 그 돈은 고스란히 내 빚으로 남게 되었다. 한 달에 몇 십만 원 수입으로 2,600만 원이라는 빚을 어떻게 갚을지 막막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아침에 집에 들어가는데 현관 앞에 놓인 신문에서 엘지 홈쇼핑 공채 쇼핑호스트 모집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예사롭지 않은 느낌을 받았다. 내가 유심히 신문을 살피니 옆에 있던 동생이 곁눈질로 신문을 보다가 갑자기 신이 나서 말했다. "오빠, 이거야 이거! 이건 오빠를 위한 일이잖아. 오빠는 말을 잘 하잖아. 그러니 같은 물건을 팔아도 오빠가 팔면 더 잘 팔지 않겠어? 여기 꼭 시험쳐봐."

나는 동생의 지지에 힘입어 쇼핑호스트에 도전하기로 했고, 그날부터 홈쇼핑 채널을 보고 또 보며 쇼핑호스트들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내 일상에도 변화가 생겼다. 시장에 가면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말을 더 귀담아 듣게 되었다. 그 속에 어떤 보석 같은 말이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식당에 가서 순대국밥 한 그릇을 시켜 먹어도,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일부러 재래시장을 찾곤 했다.

무서운 호랑이를 웃겨라

드디어 1차 면접이 시작되었다. 다섯 명씩 팀을 이루어 면접을 보러 들어갔다. 내 차례는 네 번째였다. "쇼핑호스트가 된다면 어떤 준비를 하시겠습니까?" 첫 번째 면접자의 답변이 들렸다. 이 회사에 대학 선배가 있으니 그 선배를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고 대비하겠다고 했다. 두 번째 면접자는 적극적인 인터넷 활용을 이야기했다. 세 번째 면접자는 먼저 국회 도서관에 가서 자료를 꼼꼼히 훑어 보겠다고 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앞사람들이 책에 나옴직한 정답들을 모두 맞혀 버려, 나는 그들의 질문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가장 솔직해지기로 했다.

"만약, 제가 쇼핑호스트가 된다면 혼자서 무박 3일 동안 술만 진탕 마시겠습니다." 갑자기 피식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중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분이 나에게 이유를 물었다. "평화방송에서 일한 것이 8년 가까이 됩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라디오 프로그램을 해왔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아직 제 머리와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제가 술을 좋아합니다. 혼자서 무박 3일 동안 술만 마시렵니다. 지난 7~8년의 시간을 되돌아보며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비울 것은 비우면서 내 마음을 깨끗하게 만들어놓은 뒤에, 새롭게 출발하는 각오를 다지렵니다. 그다음 24시간 동안 푹 자겠습니다. 그다음에 쇼핑호스트에 대한 모든 걸 준비한다면 너무 늦는 걸까요?" 말이 끝나자 면접관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삼구(39) 홈쇼핑도 있는데 왜 엘지에 왔습니까?" "그동안 두 회사 프로그램을 볼 만큼 봤습니다. 삼구에는 유 라는 쇼호스트가 있는데, 이 사람 느낌이 참 좋더군요. 물건을 파는 것을 보니 제가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그러다가 엘지 홈쇼핑을 보니 이 라는 친구가 있더군요. 이 친구는 열심히 하면 따라잡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여기서는 챔피언 해먹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왔습니다." 내 말이 끝나자 다시 한 번 웃음바다가 되었다. 물론 난 1차에 합격했고 실기 테스트를 준비해야 했다. 프레젠테이션 상품을 준비해 오라는 주문이었다. 2차 면접 당일이 되자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

한손에는 커다란 피자팬을, 다른 한손에는 겹겹이 보자기에 싼 체중계를 보물단지처럼 들고 회사로 향했다. 최종 면접을 보기 위해 온 사람은 단 두 명. 한 사람은 스키장 리프트 할인권이라며 봉투 하나를 가져왔다. 내 차례가 되었을 때 테이블을 준비해달라고 요구했다. 내가 보자기를 펴자 여기저기서 키득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기분 좋은 신호였다. "전 뭘 가져와야 할지 몰라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피자팬이라는 프라이팬을 가져왔습니다! 보이시죠. 피자팬! 여기에 고기를 구워 먹으면 백배는 맛있답니다. 소고기는 3분의 1 이상 핏물이 올라왔을 때 확 한 번 뒤집어야 맛있고, 돼지고기는 여러 번 뒤집어야 제 맛이죠! 이 정보는 우리 집 앞에 있는 고깃집 아줌마가 가르쳐준 비법입니다. 피자팬에 고기를 구워 드시면 기름기가 쏙 빠지기 때문에 담백하고 살찔 염려도 전혀 없지요. 믿지 못하시겠다면 고기 먹고 체중계 한번 올라가보시라고 체중계를 사은품으로 드립니다. 뚱땡이 고운영이도 고기 먹고 한번 올라가볼까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륜 있어 뵈는 면접관 한 분이 "야, 너 한번 웃겨봐" 하고 대뜸 반말을 했다. "여기 쇼핑호스트 뽑는 곳 아닌가요? 개그맨 시험도 아니고 웃기라니요? 한데 웃기라면 또 웃겨야겠죠." 또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사투리 버전을 사용해 넉살 좋게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얼마쯤 너스레를 떨었을까. "저 친구 방 위치 알려주고 라커 열쇠 줘!" 나보고 웃겨보라던 그분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날로 합격이 된 것이다. 600명 응모자 중 합격한 사람은 나 혼자였다. 세월이 흘러 이제 내가 면접관이 되어 후배 선발에 참여하다 보니 당시 내가 뽑힌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웃을 것 같은 넉살 좋은 인상과 유머 때문이었다.

월급 좀 깎아주세요

합격을 해놓고도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인사팀장이 대략 연봉 책정을 해보니 3천만 원 정도가 나왔다고 했다. 그 정도 액수는 당시에도 적은 금액이 아니었다. 갑자기 그 금액이 나에게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때 나는 한인경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분은 나의 말을 주의 깊게 들으시고는 상황에 맞게 조언을 해주셨다. "새로운 방송 패턴이긴 해도 넌 잘해낼 거야. 하지만 연봉 3천은 아닌 것 같다. 너무 부담스럽게 시작하는 게 아닐까? 이렇게 해봐. 6개월 정도 테스트를 거친다 생각하고, 연봉을 네가 깎는 거야. 내 판단에는 2,400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싶어. 그리고 6개월 뒤에 재협상을 하자고 해." 곰곰 생각해보니 선생님의 충고가 맞았다.

나는 다시 인사팀에 전화를 걸었다. "죄송한데요. 연봉 조정을 다시 해야겠습니다." "예상하신 것보다 연봉 책정이 적게 되었나요?" "아니, 그게 아니고요. 너무 높게 주셨네요. 600 정도 깎아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요." "네?" 그다음 날 상무실에서 호출이 있다고 해서 갔더니 상무님이 날 보자마자 호탕하게 웃었다. 그분이 나에게 반말을 했던 심사관 김성수 상무였다. "고운영 씨 연봉 깎았다면서? 말도 안 되는 일을 했어. 좋아요. 그럼 6개월 뒤에 재평가를 하고 다시 조정합시다."

그 후 나는 러닝머신을 파는 것으로 첫 방송을 시작했다. 첫 방송 때 러닝머신을 판다는 것을 알고 나는 별다른 준비를 하지 않았다. 직감적으로 러닝머신을 어떻게 팔아야 할지 감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쇼핑호스트는 자신의 모습이 화면에 잡힐 때는 뛰는 척하지만, 아닐 때는 잠자코 서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니 얼굴에 땀 한 방울 흐르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내가 만약 운동 기구가 필요해 상품을 장만하려고 하는데, 땀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은, 그러니 당연히 제대로 운동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운동기구를 사고 싶겠는가?

그런 이유로 나는 내 식대로 방송을 해보기로 했다. 먼저 목에 수건을 하나 두르고 빨간색 스포츠 시계를 찬 다음 두 시간 내내 죽기 살기로 뛰었다. 당연히 숨이 가쁠 수밖에 없었다. 뛰면서 말도 열심히 했다. 숨차면 숨찬 대로 말하고 힘들면 힘들어 죽겠다고 엄살도 피웠다. 그날 아마 몸무게가 3~4킬로그램은 감량되었을 것이다. 내 예상은 적중했다. 다이어트는 해야겠는데 운동할 시간은 없고, 헬스장에 가려니 귀찮은 사람들에게 러닝머신이야말로 최고의 운동기구라는 사실을 말보다 행동으로 증명해 보인 것이다. 주문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판매율이 올라가도 쉬지 않았다. 뛰다가 주저앉기를 반복하며 두 시간 프로그램을 마쳤다. 지금 되돌아봐도 짜릿한 첫 방송이었다. 내가 진심을 다하니 그 진심이 보이지 않는 시청자들에게 통한 것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나와 시청자들 간의 친밀한 교감이었다. 방송이 끝나고 담당 PD와 신석한 MD가 다가와 지금까지 자신이 만나고 싶었던 쇼핑호스트가 나 같은 사람이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좀 어리둥절했지만 그 칭찬이 무척 고마웠다.

그렇게 6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내가 맡는 상품마다 나름의 대박 행진을 했다. 처음 약속처럼 6개월 뒤에 다시 연봉협상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번에 책정된 금액은 3,150만 원이었다. "상무님, 처음에 3천만 원을 주기로 하셨는데 그럼 150만 원 더 올려주시는 건가요?" "아, 그랬죠. 그럼 좀 더 반영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여 나는 회사에 입사한 지 6개월 만에 연봉이 3,800만 원으로 올랐다. 내가 스스로 연봉을 깎은 것은 내 가능성을 한 번 시험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미래의 발전 가능성이 그것이다. 나는 남이 만들어놓은 길을 편안히 걷기보다 나의 길을 개척해나가고 싶다. 나이 50, 60, 70이 되어도 이 의지는 꺾이지 않을 것이다.

작은 씨앗이 열매를 맺기까지

나를 주부들에게 각인시킨 최초의 사건은 모 회사 제품인 연수기를 진행했을 때다. 한번은 상품 담당 후배가 연수기를 가져와 고민을 털어놨다. 모 방송에서 하는 〈중소기업을 살립시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업체 제품이라는데, 그 회사 사장이 그 제품을 개발하느라 몇 십억 정도의 빚만 지고 창고에 물건이 잔뜩 쌓여 있다는 것이다. 상품 하나 값이 9만 9천 원인데 아무리 열심히 물건을 팔아도 하루에 200개, 많이 나가야 300개 정도니 업체 사장의 얼굴이 말이 아니라고 했다.

이를 지켜보던 후배 이진아 쇼핑호스트조차 애가 타는지 내게 연수기를 가져와 "선배, 선배가 한 번 도와주면 안 될까. 선배가 재밌게 방송을 하면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중간에 아주머니들이 나오니까, 선배도 이때 함께 참여해서 현장 분위기를 띄우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요모조모 자세히 물건을 살펴보니 괜찮은 상품이었다. 사장을 만나본 뒤에는 상품에 대한 신뢰도가 더 높아졌다.

드디어 방송일이 다가왔다. 나는 게스트로 출연하기로 하고 여유 있게 진행 상황을 살펴보고 있었다. 방송이 시작되자 내가 봐도 잘 믿기지 않는 내용이 메인 멘트로 나가고 있었다. 멘트의 요지는 이랬다. 연수기가 물에 함유된 철이나 마그네슘처럼 거친 성분을 걸러줘 부드러운 물이 나오고, 그 물을 사용하면 화장도 잘 지워지고 머리카락도 잘 감긴다는 것이었다. 방청석 쪽에 서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무대 쪽으로 뛰쳐나갔다. "잠깐만요! 이의 있습니다!" 방송에 태클을 건 것이었다. 나의 돌발행동에 김명화 PD가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방송 중 죄송한데 말이 되는 말씀을 해야 믿지요. 여자들 화장 한 번 지우려면 얼마나 번거로운지 다들 아시죠? 클렌징로션부터 클렌징폼, 비누 세안까지 꼼꼼하게 하고도 화장솜에 스킨 묻혀 얼굴 닦으면, 거기에 또 파운데이션이 묻어나던데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라고요? 과연 믿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일단 저부터 못 믿겠습니다."

갑자기 방송 분위기가 냉각되는 게 느껴졌다. "저도 오늘 방송이 있어 화장을 했는데요. 그럼 제가 직접 한번 해볼까요? 비누 세안 후 물수건으로 닦아보겠습니다. 연수기 물이 화장 지우는 데 효과적이라면 파운데이션이 묻어나진 않겠죠. 한번 사실을 확인해보도록 하죠." 정말 조마조마한 순간이었다. 만에 하나 화장품이 묻어나면 처음부터 과장된 홍보를 했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결과는 대박이었다. 연수기 물로 화장을 지우고 나니 물수건으로 문질러도 파운데이션이 전혀 묻어나지 않았다. 만약 화장이 제대로 지워지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는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거의 본능적인 감각으로 그 상품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렇다면 백 마디 말이 필요 없었다. 나는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으로 소비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지 직감적으로 판단했다. 그것은 나 역시 소비자의 입장에서 그 방송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2. 최고를 희망하고 최악을 준비하라



인생이라는 학교


방송을 하는 사람에게 멘트는 중요하다. 한번은 프라이팬을 팔 때 주꾸미 이야기를 했다. 흔히 주꾸미를 먹을 때 양념 맛으로 먹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주꾸미는 그 특유의 맛을 살려 고소하고 담백하게 먹어야 제 맛이다. '프라이팬 팔면서 웬 주꾸미 얘기?'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면 평소 요리에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다. 요리에 관심이 없으면 프라이팬은 그저 평범한 프라이팬일 뿐이다. 하지만 요리를 즐겨 하거나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똑같이 보이는 프라이팬이라도 회사마다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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