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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 하면서 먹고살기

양병무 지음 | 비전과리더십
좋아하는 일 하면서 먹고살기

양병무 지음

비전과리더십 / 2009년 8월 / 248쪽 / 12,000원



프롤로그_ 억지로 하는가? 좋아서 하는가?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있었다


인간개발연구원에서는 매주 목요일 아침에 사회 각 분야의 저명인사를 초빙해 기업인과 전문가들을 위한 조찬 강연회를 열고 있다. 강연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하나같이 자기 분야에선 내로라하는 고수들이어서 매주 행사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큰 공부가 된다. 출신도 다르고, 생김새, 성격, 자라온 환경, 학벌도 다 제각각이지만 소위 '성공한 사람'인 그들은 다음과 같은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첫째, 아주 긍정적이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둘째, 뚜렷한 목표 의식이 있다. 셋째,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알아서 한다. 마지막으로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점인데, 성공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즐기고 있었다'는 점이다.

지지자 불여호지자 호지자 불여낙지자(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뜻이다.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즐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다면 그 사람은 성공에 한발짝 성큼 다가섰다고 할 수 있다. 어디 세속적인 성공뿐이겠는가. 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장, 나 자신이 누구인가를 말해 주는 직업의 세계에서 내가 즐거운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내가 행복하다는 것을 말해준다고 할 수 있다.

꿈의 직업을 가진 사람은 20% 미만이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자신도 행복하다. 누군가는 인생에서의 성공을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 뛰는 그런 일을 하는 삶으로 정의했다. 그렇다고 모두 지금의 일자리를 박차고 나오라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일이 견딜 수 없다면 좋아하는 일을 찾아 떠나고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좋아하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존재들이다.

1부 꿈의 직업을 찾은 사람들



초등학교 때의 간호사 꿈을 이룬 김수지 총장


"한국의 나이팅게일", "한국의 간호학 박사 1호" 서울사이버대 김수지 총장에게 붙여진 이름이다. 김 총장이 간호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초등학교 때의 일 때문이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여순반란사건이 일어났는데 그녀는 우연히 한 간호사가 부상당한 청년을 밤새도록 간호하여 살려내는 것을 보게 되었다.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일이라는 생각에 이때부터 간호사의 꿈을 키웠다. 그녀는 학교수업이 끝나면 곧장 후송병원으로 달려가 부상당한 군인들에게 온 위문편지의 답장을 대필하고 담배 심부름도 하고 또 군 간호사들의 잔심부름을 하면서 '꼬마 간호사'란 별명을 얻었다. 중ㆍ고등학교 시절에는 방학만 되면 고아원을 찾아가 5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을 돌봐주었다. 그녀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화여대 간호학과에 입학했다.

어릴 적부터 꿈이었던 간호학 공부는 너무 재미있었다. 눈을 감으면 전공 책이 뚜렷하게 펼쳐질 정도로 간호학에 푹 빠져 지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밤을 새도 힘들지 않다는 말을 실감했다. 얼마나 재미있었으면 집에서 어린 동생들을 앉혀 놓고 그날 배운 내용들을 조곤조곤 설명해 주곤 했을까. "당시 '재건대'라는 소위 넝마주이를 위한 수용 시설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매주 봉사를 갔어요. 남자 일색인 그곳에서 여자는 나 혼자뿐이었어요. 보건간호학 시간에 배운 성병이나 보건위생에 대해 강의를 했어요. 사실 그곳 사람들이 성병에 많이 걸려 있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겁도 없이 참 당찼던 것 같아요."

1978년, 그녀는 마침내 미국 보스턴대학에서 간호학 박사를 받아 우리나라 1호 간호학 박사가 되었다. 임종과 죽음에 관심을 갖고 1979년에는 국내 최초로 '임종간호 워크숍'을 개최하면서 호스피스 확산을 위해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펴 나갔다. 이화여대 간호학과 교수로 재직 중에 UNDP(유엔개발계획)로부터 지원을 받아 힘들게 살아가는 만성 정신장애인들을 위한 재활간호를 하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사회복지 정책 및 관련법에 대해 알아야 되겠다는 생각에 2004년 서울사이버대학의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학을 했다. 졸업과 동시에 취득한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봉사 활동의 폭을 넓히고 사회적 지원에 보다 더 실질적이고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김수지 총장은 2001년 간호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국제간호대상을 수상하여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이화여대 교수직에서 서울사이버대 총장으로 부임할 수 있었던 것도 또 하나의 봉사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의 꿈을 따라 간호사가 되었고 간호학 박사를 취득하고 호스피스 활동과 아름다운 노후를 위한 웰빙(well being)뿐만 아니라 웰 다잉(well dying)의 중요성을 전파하는 김 총장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열정이 넘치며 행복을 느끼는 전형적인 모델이다.

고졸 핸디캡을 이기고 새로운 길을 찾은 송미정 씨

송미정 씨가 고졸 학력의 핸디캡을 이겨 내고 서울시 인재개발원 교수 요원이 된 원동력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다. 송 교수는 홀어머니 슬하의 5남매 중 막내다. 여고 2학년 어느 날 어머니가 시집간 큰언니에게 하소연하듯 털어놓는 이야기를 잠결에 듣고 말았다. "혼자서 살림을 꾸려가려니 너무 힘들구나. 미정이라도 얼른 고등학교 졸업해서 날 좀 도와주면 좋을 텐데…." 이미 언니, 오빠가 대학에 다니고 있던 터였다. 어린 마음에도 자기까지 부담이 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공부를 곧잘 했지만 대학 진학의 꿈을 접고 인문계 학교에 개설된 상과반으로 옮겼다. 하지만 원망까지 다 없어지진 않았다. 책가방에 주판을 넣고 등하교를 하면서도 어머니에게는 상과반으로 옮겼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곤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대한생명 사무직 여직원 공채에 합격해 서울의 구로지점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그 후 그녀는 10년간 조퇴, 결근 한 번 없이 근무하며 고졸 여직원으로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업무를 섭렵했다. 나름대로 회사에서 인정받고 안정된 생활을 누리던 참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사건이 터졌다. 은행에서 돈을 찾아오다 오토바이 날치기를 당한 것이다. 9천만 원 가까운 큰 돈이었다. 당시 뉴스에도 나올 정도로 큰 사건이었다. 회사에 큰 손실을 입혔지만 오히려 윗분들이 '차라리 가방을 내주지 그렇게 미련하게 맞고 있었냐'고 위로해 줄 정도여서 업무에 복귀하는 데 큰 문제는 없었다. 문제는 정작 본인 자신이었다. "병실에 누워 있으면서 제 삶을 찬찬히 돌아봤어요. 가슴속에 간직해 왔던 작은 덩어리가 점점 단단해지는 걸 느꼈어요. 마음속에서 누군가 소리치고 있었어요. '이대로 안주하기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요."

막상 사표를 내고 나니 막막했다.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무엇이 하고 싶은지조차 막연했다. 당시 그녀는 방송통신대학 교육학과에 다니고 있었는데 마지막 학기에 화성시립도서관으로 평생교육사 실습을 나가게 됐다. 그런데 그곳에서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지역 주민들을 위해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홍보하는 일을 옆에서 거드는데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몰라요. 지금까지 제가 회사에서 해왔던 일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어요. 짧은 실습이 끝나자 헤어지는 게 너무나 아쉬웠어요. 제가 먼저 '자원봉사라도 하고 싶다'고 졸라 계속 그 일을 하게 됐어요. 초등학생 대상 독서 토론 수업, 영어 교육, 부모와 함께 신문 만들기 등 갖가지 아이디어를 짜내서 강의를 만들고 모니터링도 하며 신이 나서 뛰어다녔어요. 강사가 갑자기 펑크를 내면 제가 대신 들어가 수업을 진행할 정도였으니까요. 제가 워낙 열심히 하니까 도서관 측에서 미안했는지 공공근로를 제안해 신청하게 되었고 그 뒤론 한 달에 70만 원씩 받으며 일을 했어요. 전에 다니던 직장 월급과는 비교도 안 되게 푼돈이었지만 마음은 훨씬 풍요로웠어요. 2년쯤 지나면서 제 자신의 한계를 느낄 즈음 우연히 신문에서 숙명여대 여성인적자원개발대학원 학생 모집 광고를 보게 됐어요."

당시 나는 이 대학원 주임교수였는데 면접을 보러 왔던 송미정 씨를 또렷이 기억한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아이가 셋이나 딸린 주부가 뒤늦게 야간 대학원에 들어오겠다고 하니 나는 속으로 '출석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했다. 그런데 웬걸, 수업은 물론이고 학교 지원으로 말레이시아, 미국 등 해외에서 열리는 인적자원개발 학회에도 참석하고 수도권 대학 특성화 사업인 여성 HRD연구센터에서 연구원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며 자신의 역량을 키워 나갔다. '저런 자세라면 어디에 가서도 제 몫을 하겠다'는 나의 예상대로 그녀는 졸업 후 서울시교육청 평생 교육사를 거쳐 높은 경쟁률을 뚫고 서울시 인재개발원 교수 요원으로 발탁돼 현재 서울시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평가한다. 그녀의 얼굴에는 늘 웃음이 떠나지 않고 온몸에서 활기와 에너지가 넘쳐 난다. 조만간 박사과정에 도전해 공부도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던 내성적인 소녀가 아니다. 누구보다 당당하고 자신 있는 태도로 이렇게 고백한다. "누가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지금이 행복해요."

2부 하고 있는 일을 꿈의 직업으로 만든 사람들



마법의 1만 시간


발레리나 강수진 씨의 못생긴 발이 한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나도 인터넷상에서 삐뚤빼뚤 휘고 울퉁불퉁 옹이가 진 지독히도 못생긴 그녀의 발을 보고 깜짝 놀랐다.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모습만 상상하던 사람들은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못생긴 발을 보고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못생긴 발이 지독한 연습의 결과라니 더욱 놀라웠다. 무대 위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아한 춤을 추기 위해서는 무대 아래에서 그렇게 발이 으스러지도록 연습에 연습을 거듭해야 한다니 세상에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무슨 일이든 보통의 수준을 넘어 탁월한 수준에 이르려면 어느 정도의 연습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것은 재능의 문제와는 별개이다. 이와 관련해 유명한 연구결과가 있다. 캐나다 맥길 대학의 다니엘 레비틴 교수는 "어느 분야에서든 탁월한 수준의 전문가가 되려면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는 이른바 '1만 시간의 법칙'에 관한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작곡가, 야구선수, 소설가, 스케이트 선수, 피아니스트, 체스선수, 숙달된 범죄자, 그 밖에 어떤 분야에서든 연구를 거듭하면 할수록 이 수치를 확인할 수 있다. 1만 시간은 대략 하루 3시간, 1주일에 20시간씩 10년 간 연습한 것과 같다. 물론 이 수치는 '왜 어떤 사람은 연습을 통해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얻어 내는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못한다. 그러나 어느 분야에서든 이보다 적은 시간을 연습해 세계 수준의 전문가가 탄생한 경우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두뇌는 진정한 숙련의 경지에 접어들기까지 그 정도의 시간을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미국 뉴요커 기자 출신인 말콤 글래드웰은 이와 관련해 매우 설득력 있는 책을 썼다. 『아웃라이어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이라는 책이다. 그의 주장 역시 간단하다. "1만 시간은 위대함을 낳는 마법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가 책에서 제시한 수많은 사례들 가운데 영국의 록밴드 비틀즈의 예를 인용해 보겠다.

1960년, 비틀즈가 그저 열심히 노력하는 고등학교 록 밴드에 불과할 때 그들은 독일의 함부르크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당시 함부르크에는 스트립 클럽이 많았는데 이 클럽에서 막간을 이용해 음악을 연주해 손님을 붙잡아두는 역할이었다. 그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급료가 제대로 나온 것도 아니고 음향이 훌륭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관객은 귀를 기울여주었을까? 그렇지도 않았다. 특별한 것은 단지 그들이 엄청난 시간을 연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비틀즈는 함부르크에서 1년 반에 걸쳐 27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밤 8시간 이상씩 연주했다. 무려 1,200시간의 라이브 공연을 소화한 것이다. 오늘날 어떤 밴드도 전체 경력을 통틀어 그만큼의 연주를 하지 않는다. 그룹 초창기 리버풀에서는 어땠는가. 고작 하루에 1시간만 연주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가장 잘하는 곡만 반복해서 연주했다. 하지만 함부르크에서는 연주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곡들과 새로운 연주 방법을 시도할 수밖에 없었다. 함부르크에 가기 전 비틀즈는 무대 위에서 그렇게 좋지 않았지만 돌아온 뒤에는 아주 훌륭해졌다. 그들은 차별화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글래드웰의 주장은 이러한 차별화된 연습을 바탕으로 비틀즈가 1964년에 첫 히트곡을 냈으며 40여 년이 흐른 지금도 그들의 음악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든 성공하기 위해서는 남다른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따로 설명을 보탤 필요도 없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려고 한다.

비틀즈가 함부르크에서 그랬던 것처럼 누구든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루 8시간 이상의 공연을 기꺼이 소화할 수 있을까? 어두컴컴한 곳에서 때로는 관객들의 야유를 받으며 월급은커녕 끼니도 제대로 못 챙긴 채 종일 서서 연주를 한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고역일 것이다. 게다가 한참 피가 젊을 때 아닌가. 나가서 놀고 싶은 유혹은 또 얼마나 강렬했을까. 그런데 비틀즈의 멤버들은 그 모든 것을 참고 하루 8시간의 연주를 감수했다. 어떤 일을 하든 그것을 직업으로 택하게 되면 중간에 힘든 과정이 있게 마련이다. 누구나 능숙해지기까지 힘든 훈련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 일이 싫지만 않다면 능숙해지기까지 열정을 바쳐 힘써 보길 권한다. 그러다 보면 날마다 일로 성장하고 탁월한 성과를 낼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일을 좋아하고 즐길 수 있다.

위대한 일을 하게 만드는 소명 의식

천직을 다른 말로 하면 소명 의식이다. 소명이란 원래 '신의 부름을 받았다'라는 뜻이다. 서양에서는 직업을 'Calling'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이 바로 직업이란 뜻이다. 즉,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우연히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계획에 의해 부름을 받아 정해진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런 직업관이 확립돼 있어서 그런지 비교적 직업에 귀천이 없는 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사농공상이라고 해서 직업에 귀천을 따지는 인식이 뿌리 깊이 박혀 있다. 그러나 지식정보사회에서 이런 직업의식은 바꿀 필요가 있다. 인간은 누구나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있다. 다만 그 사명을 제대로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성공한 사람은 누구인가?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확고한 사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일하는 자세가 다르다. 한 가난한 정원사 청년이 있었다. 그는 틈만 나면 나무 화분에 열심히 조각을 했다. 청년은 퇴근 시간 이후에도 정원에 남아 조각에 몰두했다. 그의 손길이 스쳐 간 나무 화분들은 멋진 조각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느 날 주인이 청년에게 물었다. "너는 정원만 가꾸면 된다. 조각을 한다고 임금을 더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수고를 하느냐?" 청년은 웃으며 말했다. "저에게는 이 정원을 아름답게 꾸밀 의무가 있습니다. 나무 화분에 조각을 하는 것도 저의 업무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청년의 투철한 책임감에 탄복한 주인은 청년에게 장학금을 주어 미술학교에 입학하도록 했다. 결국 청년은 세계적인 화가로 성장했다. 그의 이름은 미켈란젤로이다. 미켈란젤로가 맡은 일은 그저 정원을 가꾸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소명을 좀 더 높은 차원에서 바라보았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정원을 가꿔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기쁨을 선사하겠다는 원대한 목표가 있었다. '아름다움을 가꾼다'는 소명 의식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피에타>, <다비드> 등의 세계적인 조각품과 <천지창조>, <최후의 심판> 등의 위대한 벽화를 남길 수 있었다. 소명 의식을 가진 삶이란 단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도 아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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