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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흥행의 법칙

정초신 지음 | 끌레마
인생흥행의 법칙

정초신 지음

끌레마 / 2009년 9월 / 247쪽 / 12,000원



1부 시나리오 쓰기



인생의 시나리오를 써라 :
우리의 인생에는 전환점이 되는 결정적인 사건들이 있게 마련이다. 예상치 못한 일들을 계기로 인생의 방향이 바뀌고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때마다 사람들이 왜 인생을 '한 편의 영화'라고 하는지 깨닫게 된다. 영화를 만들고 있는 나 역시 인생이라는 영화 속에서는 주인공이다. 1997년 2월, 첫 딸이 태어날 예정이었다. 사실 그때 나는 썩 능력 있는 남편이 아니었다. 그런데 딸은 뭐가 불만인지 출산 예정일을 며칠 앞두고 몸을 옆으로 틀어버렸다. 결국 제왕절개를 하기로 결정하고 수술 날짜를 잡았는데 문제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자연분만을 계획하고 있던 우리에게는 수술비가 없었던 것이다. 답답한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영화의 프로듀서를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나는 시나리오를 읽는 둥 마는 둥 넘겨보다가 내처 영화사 대표를 찾아갔다. "이 영화, 제가 맡겠습니다. 서울 관객이 30만을 넘지 못하면 잔금을 받지 않겠습니다. 대신 개런티의 2/3를 계약금으로 주십시오. 바로 오늘." 순간 그의 얼굴에 스톱모션이 걸렸다. 하지만 당시의 관례를 따르자면 아내는 수술을 할 방법이 없었다. 영화사 대표의 스톱모션은 좀체 풀리지 않았다. 어떤 제작자라도 '이놈 뭐야?' 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설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고, 나는 아마 온몸으로 그것을 어필하고 있었을 것이다. 드디어 그가 옆에 놓인 전화기를 들어 경리과 직원에게 송금을 지시했다. 그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계약금을 내준 사람이 바로 태원엔터테인먼트의 정태원 대표고, 내가 '서울 30만'을 약속한 영화가 바로 <할렐루야>다. 인생이란 이렇게 드라마틱하다.

본격적으로 영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이 시나리오를 완성하는 것이다. 시나리오는 영화의 과거이며 미래다. 시나리오를 쓰고 각색하는 작업은 한마디로 피를 말리는 과정이다. 영화감독이나 프로듀서들은 시나리오를 작업할 때 이미 마음속으로 영화를 찍는다. 물론 시나리오에 오랫동안 정성을 들이고, 시나리오의 완성도가 높다고 해서 영화가 모두 흥행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남남북녀>를 위해 나는 6개월 동안 작업실에 틀어박혀 시나리오를 썼고, 다른 작가에게 각색을 넘겨 그가 또 1년 6개월을 씨름했다. 시나리오는 완성도 높게 마무리되었고, 촬영 당시 거의 모든 스태프들이 흥행을 자신했다. 주연배우인 조인성과 김사랑도 최선을 다해 연기했고, 영상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영화는 흥행에 참패하고, 비평가들에게는 뭇매를 맞았다. 급기야는 관객들로부터 환불을 요구당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영화계에서는 '좋은 시나리오에서 나쁜 영화가 나올 수는 있지만 나쁜 시나리오에서는 결코 좋은 영화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영화의 흥행에는 수없이 많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만큼, 어느 누구도 성공을 약속할 수는 없다. 그리고 똑같은 이유로 인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것이 좋은 시나리오를 만드는 일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기나 긴 준비의 시간과 완벽한 시나리오가 필요한 것처럼, 인생이라는 영화를 멋지게 완성하려면 인생의 시나리오도 오랜 시간에 걸쳐 정성스럽게 매만지고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 인생이란 '벤츠 S클래스를 타고 싶다'고 종이 위에 적어두고 날마다 들여다보면 언젠가는 그 차를 타게 될 것이라는 '기약 없는 긍정'이 아니라, 언제 벤츠를 탈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취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매우 치밀하고 현실적인 작업인 것이다. 시나리오는 충분히 좋았지만 인생은 그에 못 미칠 수도 있다. 하지만 형편없는 시나리오로는 절대 좋은 인생을 만들 수 없다. 하물며 시나리오조차 없다면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보려면 구체적인 계획이 필요하고, 그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시나리오부터 써야 한다. 인생은 흔히 영화에 비견되곤 하지만 실제로는 100억짜리 블록버스터보다 더 값지고, 소명의식으로 만들어낸 저예산 다큐멘터리보다 더 고귀하다. 무엇보다 먼저 당신만을 위한 시나리오를 써야 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주인공을 지혜롭게 만들 멘토를 투입하라 : 요즘은 사회가 워낙 변화무쌍하고 불안해서 그런지 인생의 멘토로 삼을 만한 스승을 찾아 헤매는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멘토란 원래 번개에 맞듯, 우연히 만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남가주대 대학원에서 내 영화 인생의 멘토를 만났다. 책이라면 속독이라도 할 수도 있지만 영화 한 편을 보려면 적어도 상영시간 2시간은 꼬박 할애해야 한다.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한 나는 집중하는 것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볼 때는 온 신경을 집중해 화면만 응시했고, 아무리 재미있는 영화를 봐도 웃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영화 제작을 공부해보고 싶어서 들어간 곳이 남가주대 대학원이었고, 나는 그 첫 수업에서 소위 말하는, 인생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맞게 된 것이다. 남가주대 대학원 영화제작학과의 학과장 로렌스 터먼은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명작 <졸업>의 프로듀서로, 내가 수업을 받던 당시에는 <리버 와일드>를 프로듀싱 중이었다. 터먼이 첫 수업에서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그동안 본 영화 중 가장 재미있는 영화와 가장 슬픈 영화가 무엇인가?"였다. 영화광만 모여 있는 그 강의실에서 제대로 된 대답은 단 한 건도 나오지 않았다. 그들 역시 나처럼 영화를 분석적으로 계산하며 본 탓에 순수한 관객으로서 영화에 빠져서 웃거나 울어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터먼은 이 평범한 질문을 통해 우리가 그동안 영화적으로 얼마나 오만했던가를 단적으로 깨닫게 해주었다. 자신이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주제에 어떻게 다른 사람을 웃기고 울리는 영화를 만들 수 있겠느냐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영화를 분석하면서 보는 습관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내기를 1년, 수백 편의 영화를 보며 훈련하고 훈련한 뒤에야 비로소 나는 영화를 보면서 울고 웃을 수 있게 되었다. 로렌스 터먼 교수는 내 영화 인생의 멘토다. 물론 그가 수업 중에 던진 질문은 나 하나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터먼 자신은 내가 그를 멘토로 삼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첫 수업은 내가 영화인으로 살게 된 결정적 순간이 되었다.

멘토는 스치듯 지나가는 인연이거나 평생 단 한 번의 만남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배역의 비중으로 평가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영화 속 주인공에게는 성취해야 할 임무가 주어진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며 대개의 경우, 주인공은 자신이 왜 그것을 해야만 하는지조차 확신하지 못한다. 주인공은 그 답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자신에게 침잠하며, 미약한 자신을 이끌어줄 현자를 갈구한다. 멘토는 바로 그때 등장한다. 주인공이 변화의 욕구에 몸부림칠 때, 간절한 기다림 속에서 자신을 단련하고 있을 때 운명은 최소한의 동정심을 발휘해 멘토를 투입한다. 제다이로 태어났지만 그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스타워즈>의 루크 스카이워커도 그렇다. 제다이가 되고 싶다는 욕망은 있지만 현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그는 회의감에 빠져 혼란스러워한다. 바로 그때 오비원 캐노비가 등장하고, 루크 스카이워커는 제다이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아직 인생의 멘토를 만나지 못했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삶을 역동적으로 바꿔주는 한마디를 듣지 못했다고 서운해 할 필요도 없다. 아직 멘토를 만나지 못했다면 당신이 당신의 인생에 대해 아직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는 증거이며, 또한 당신이 멘토를 만날 때에 이르지 않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끊임없이 삶의 방향을 모색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고민할 때 멘토는 반드시 등장한다. 멘토를 만나기 위해 당신이 준비해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다.

클라이맥스는 영화 후반부에 위치한다 :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 가장 잘나가던 시절, 가장 풍요로웠던 때를 자신의 클라이맥스, 즉 전성기라고 부른다. 불과 몇 년, 짧으면 몇 달밖에 되지 않는 기간을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하고 이제 다시는 그런 시절이 오지 않을 것이라며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인생의 전성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 시절이 아닐 수도 있다. 65세 노인이 전 재산을 털어 여관을 샀다. 남은 인생 여관을 운영하면서 나름대로 편안한 노후를 보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세상은 이 노인이 편안하게 살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지역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도로가 들어서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이 노인의 여관 위로 선이 그어진 것이다. 노인은 몇 푼의 토지수용 보상금만 손에 쥔 채 편안한 노후를 위한 보루였던 여관을 내놓아야 했다. 하지만 노인은 주저 않지 않고, 평소 즐겨 먹던 닭튀김을 파는 식당을 차리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닭 튀기는 기계를 자동차에 싣고 동업자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동업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마침내 노인은 혼자서 가게를 차리게 된다. 'KFC(켄터키 프라이드치킨)'라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만든 할랜드 샌더스의 이야기다. 그는 72세에 200만 달러를 받고 1년에 25만 달러의 로열티를 받는 조건으로 전 켄터키 주지사이자 한때 보스턴 셀틱스의 소유주였던 존 브라운에게 KFC의 판권을 넘기게 된다.

더 드라마틱한 이야기도 있다. 평범한 아줌마가 이혼을 당하고 혼자 아이를 기르고 있었다. 나라에서 주는 돈으로 간신히 입에 풀칠만 하던 아줌마는 아이에게 먹일 음식도 맘 편히 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멍청히 앉아 공상하는 것이 전부였다. 매일 공상으로 시간을 보내던 그녀는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재미있을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구식 타자기로 손가락이 아프도록 소설을 쓴 그녀는 출판사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줄 출판사는 없었다. 그렇지만 이 아줌마는 포기하지 않고 더 많은 출판사를 찾아다녔고, 수십 번을 거절당하고 지칠 대로 지칠 무렵 작은 출판사에서 책이 출간되었다. 조앤 롤링의 『해리 포터』가 세상의 빛을 본 순간이다.

세상의 눈으로 보자면, 예순 살이 넘은 노인과 서른 살이 넘은 이혼녀의 인생은 단 한 차례의 전성기도 없이 끝나가는 것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달랐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자신의 손으로 전성기를 만들어냈다. 이처럼 인생이라는 영화는 언제가 시작이고 언제가 끝인지 세상의 잣대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영화가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경우도 얼마든지 있다. 당신 영화의 클라이맥스도 아직 멀었다. 그러니 그동안 아쉬워하던 과거의 전성기 따위는 잊어버려야 한다. 이제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면 당신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가장 화려한 클라이맥스를 인생이라는 영화의 후반부에 배치하고, 그날을 향해 달려가자. 인생의 클라이맥스는 그렇게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2부 연기하기



인생의 주연배우는 당신이다 :
건국대병원 흉부외과 전문의 송명근 박사는 후배들에게 엄하기로 유명하다. 송 박사는 후배들에게 수술할 때 왼손까지 쓸 수 있게 하기 위해 왼손으로 식사를 하게하고 밤마다 왼손으로 방석을 꿰매는 연습을 시킨다. 수술 현장에서 실수를 한 의사에게는 욕설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이런 송 박사의 행동 이면에는 100% 완벽해야 한다는 신념이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이런 신념은 스스로에 대한 가혹한 엄격주의를 요구한다. 자신이 그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다면 어느 후배나 제자가 그 혹독한 시험을 달게 받겠는가. 수술은 초인간적인 집중력과 체력을 요구하는 작업이다. 오른손잡이 의사들은 오른손만 사용한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왼손을 사용해야 할 경우까지 미리 준비하게 하는 것이다. 왼손이 필요한 상황이 언제 닥칠지 알 수 없지만 이미 숱한 연습으로 단련된 왼손은 항상 준비된 조력자인 셈이다. 송 박사야말로 피나는 노력과 혼신의 힘을 쏟아 자신의 배역을 가장 훌륭하게 소화해내는 최고의 배우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 주인공이 연기를 못하면 사람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비난을 쏟아낸다. "걔는 연기가 그게 뭐냐? 발로 해도 그거보단 낫겠다." 이렇게 해서 그 유명한 '발 연기' 시리즈가 탄생했다. 하지만 이제껏 영화를 하면서 배우가 연기 연습을 하지 않고 촬영장에 오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주연은 물론이고 조연, 혹은 단역 배우들도 자신의 배역을 열심히 연구하고 대사를 외워서 촬영장에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기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관객들은 '그따위 발 연기 때려치우라'며 조소를 보낸다. 그렇다면 인생이라는 중요한 영화의 주인공인 우리는 연기 연습을 얼마나 하고 촬영장에 나가는 것일까. 가수는 무대에 서기 전에 같은 노래를 300번쯤 부른다고 한다. 감독은 영화를 찍기 전에 시나리오를 300번쯤은 읽는 것 같다. 최고의 배우도 촬영장에 나가기 전에 적어도 대사를 300번은 되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은 가수가 부르는 한 곡의 노래보다 위대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감독이 찍는 한 편의 영화보다 고귀하다. 일생에 대한 계획도, 10년 혹은 1년에 대한 준비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우리도 언젠가 '발 연기' 논란에 휩싸일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라면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혼자 연기하지 말고 상대와 함께 연기하라 : 씨름판의 제왕이었던 강호동은 한 사람이 두 영역을 석권한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언젠가 '심리의 달인'이라는 사람이 <스타킹>에 나와서 어떤 게임이든 이길 수 있다며 호언장담을 한 적이 있다. 호탕한 웃음과 속사포 같은 목소리의 강호동이 도전을 했다. 그는 씨름판을 호령하던 기세를 되살려 강한 승부욕을 내비쳤고, 다른 출연자들과 달리 심리의 달인을 거뜬히 이겼다. 나는 그의 놀라운 '순간 집중력'에 무릎을 쳤다. 예능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강호동은 혼자 떠드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상대방의 연기에 집중하고, 상대방의 말에 몰입한다. <무릎팍도사>를 보고 있으면 강호동이 얼마나 상대방의 연기에 잘 맞추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그는 초대된 인물의 말에 완벽하게 몰입한다. 더러는 우스꽝스럽게, 더러는 당사자보다 더 흥분하고 감격스러워하며 추임새를 넣는다. 상대방이 연기할 때 그 힘을 맞받아 연기하는 것, 절대 상대방보다 앞서나가지 않는 것, 그것이 오늘의 강호동을 만든 저력인 것이다.

강호동과 더불어 예능 프로그램을 양분하고 있는 유재석은 한술 더 뜨는 인물이다. 그는 강호동처럼 과장된 제스처나 큰 목소리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대신 더없이 부드럽고 편안한 웃음으로 상대방을 제압한다. 유재석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 유재석은 결코 빛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유재석이 없다면 그 프로그램이 빛날 수 없다. 누군가 말했다. 별이 빛나기 위해서는 깜깜한 밤이 있어야 한다고. 유재석은 수많은 별을 빛나게 해주는 밤 같은 사람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모든 별이 스스로 빛을 죽이고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에게는 상대방의 빛, 상대방의 연기를 흡수하는 능력이 있는 것이다. 유재석은 상대의 연기를 받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상대에게 빛나는 자리를 내주면서 자신의 빛을 만든다. 이 기술에 통달하면 가장 쉬운 방법으로 자신을 부각시킬 수 있다. 강호동과 유재석은 바로 그 기술에 능통한 사람들이고, 그들이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것은 그래서 당연한 일이다.

영화는 혼자 찍을 수 없다. 연극에는 모노드라마가 있어도 영화에는 모노드라마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인생의 영화를 촬영하고 있는 세상도 반드시 누군가와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곳이다. 때문에 이 넓은 촬영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타인의 삶을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상대방이 자신의 연기를 하고 준비해온 대사를 하는 동안 진득하게 기다려주지 못하고 자신의 대사를 쏟아낸다. 이런 식으로 상대의 연기를 자르고 들어가 그 맥을 끊어버리면 상대 배우는 물론이고, 관객들에게도 비난을 받게 된다. 그래서 영화에서는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또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기더라도 NG로 처리되어 편집되고 만다. 그러나 인생에서는 컷을 주는 사람이 따로 없으니 자칫 잘못하다간 혼자서 모노드라마를 찍는 일이 종종 생기게 된다. 이런 식의 모노드라마는 상대의 외면과 관객의 비난으로 끝을 맺게 되어 있다. 부디 인생은 모노드라마가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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