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사고력이 부자를 만든다
류우홍 지음 | 북허브
류우홍 지음
북허브 / 2009년 3월 / 240쪽 / 12,000원
Part 1 가난으로 나를 더 단련시켜라
가난은 나를 단련시켜 준 고마운 친구무한 책임감만 성공을 좌우한다 : 이제 지천명의 나이에 막 접어든 이억기 사장은 강원도 평창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집안의 재산이라곤 논 7마지기와 밭 1,500평이 전부였으나 딸린 식구는 9남매나 되었다. 그중 다섯째로 태어난 이 사장은, 집안의 기둥이니 공부라도 가르쳐야 되는 장남과 항상 귀염 받는 막내 사이에 끼어 찬밥 신세였다. 그렇다 보니 무엇이든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자연스레 몸에 배었고, 어떠한 환경에서도 살아남아 목적을 이루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 그리고 끈기가 자생식물처럼 몸속 구석구석에 퍼져 있었다. 이런 정신력이 자신을 스스로 책임지게 하였으며, 결국 그것이 지금의 그를 만든 원동력이 되었다고 이 사장은 말한다.
자식에겐 간섭보다는 자율을… : 이 사장은 9남매 가운데 다섯째였기 때문에 새 옷을 입어 볼 기회는 없었지만 좋은 점도 있었다. 그것은 행동이나 생각이 둥글어지고 언제나 중간자적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어, 모나지 않고 주변과 불화 없이 잘 융화하는 성격으로 자란 것이다. 그래서 자연스레 세상을 보는 눈이 긍정적이었고, 인간관계에서도 중재자 역할을 잘하는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러자 그의 주변에는 우호적인 우군이 많이 생겼고, 그들은 이 사장이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이 사장은 자식들을 키우면서 자식들의 결정에 전혀 간섭을 하지 않고 자율에 맡긴 아버지의 교육 방법 덕에 자신의 일을 스스로 찾아서 처리할 수 있는 강인함과 자신감 그리고 책임감을 배웠다.
자리에 충실하면 미래가 보인다 : 어제는 과거의 오늘이고 내일은 오늘의 미래이다. 오늘에 충실하지 않으면 과거도 미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성공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을 보면 오늘보다는 미래에 혹은 과거에 집착하고 오늘에 충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 사장은 지금 자신의 자리가 자기에게 걸맞지 않고 대접이 시원치 않다 하더라도, 지금의 자리에 충실하지 않고서는 더 좋은 조건의 자리가 보장되지 않는다고 강조하곤 했다.
한편 이 사장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상경하여 스카이웨이 주유소에서 기름을 파는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 이 사장은 비록 보잘것없는 주유소 영업사원이었지만, 그곳에서 최고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업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연구하다가 고정 고객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택시 회사를 찾았다. 참고로 당시에는 택시가 휘발유를 사용했는데, 밤 12시가 되면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라, 택시 기사들이 주유소를 찾아가서 기름을 넣고 기름 값을 치른 뒤 다시 회사로 돌아가 택시를 주차하고 집으로 귀가하려면 정신이 없었다.
이 사장은 여기에 착안하여, 주유표를 만들어 택시 기사들에게 건넨 다음, 전날 밤에 기름을 넣고 주유표에 기록만 하고 돌아가면, 다음 날 이 사장이 회사를 찾아가 수금을 하든지, 아니면 기사가 낮에 교대근무 중에 들러 계산할 수 있게 하였다. 그 결과 엄청난 영업 실적을 거두게 되었다.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겠다 : 2년 조금 넘도록 물불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뛰어다니다 보니, 이사장은 주변에서 자기 일을 저렇게 하면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은근히 자신의 일을 하고 싶어서 무엇을 할까 아이템을 찾던 중, 앞으로는 전자부품 사업이 돈이 될 거라는 친척의 말에, 전자의 '전' 자도 모르는 인문계 고교 출신 이 사장은 무작정 주유소를 그만두었다. 주유소 사장까지 나서 극구 말렸지만, 이 사장의 확고한 의지를 알고는 퇴직금 명목으로 200만 원을 주었다. 그 돈은 당시 보통 월급쟁이 2년 치 월급이었다.
이 사장은 이 돈을 종잣돈으로 하여 10평정도 되는 소 외양간을 빌려 공장으로 개조하고 드디어 뱀의 머리가 되었다. 5명의 직원으로 시작한 공장은 일손이 모자랄 정도로 주문이 많아, 동네 아주머니들에게 부업으로 일감을 맡겨야 겨우 납기일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쉴 새 없이 돌아갔다. 그런데 거래처에 외상도 많이 깔리고 촌놈이 개천에서 용 된 기분이 들 즈음 10ㆍ26사태가 발생했고, 이 일로 인하여 모든 채무가 동결되는 비상조치가 취해지고 경제는 급속히 위축되기 시작했다. 이 사장은 거래처에서 외상값이 들어오면 그 돈으로 다시 원자재를 구매하여 생산하는 구조로 회사를 운영해 왔는데, 갑자기 외상값이 한 푼도 들어오지 않게 되자 3개월을 버틸 수가 없었다.
외아들로 만족해야 했던 아쉬움 : 이사장은 결국 형제처럼 같이 일을 했던 직원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고 사업을 접어야만 했지만, 미련을 버릴 수 없어 관련 업체에서 일을 하며 와신상담 재기의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1984년경 사회는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았고, 이 사장은 다시 전자부품 생산 공장을 차리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마침내 1984년 서울 신정동에서 평창산업이란 상호를 걸고 다시 전자부품 생산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장의 성실함을 익히 잘 알고 있던 거래처들은 품질에 문제없고 납기를 잘 맞추는 평창산업에 주문을 하게 되었고, 너무나 바쁜 나머지 큰 사고(?)를 치고 말았다.
결혼한 지 1년 후 아들을 출산한 부인이 산후 조리를 하고 있을 무렵, 한창 회사 일에 바빠서 몸이 열 개라도 힘들 지경인데, 4일간 예비군 훈련을 받으라는 통지서가 날아왔다. 하필이면 그때 처음으로 외국 바이어가 방문한다는 연락까지 와서 도저히 공장을 비울 수가 없었다. 전후 사정을 설명하고 연기를 요청하였으나, 더 이상 연기가 불가능하며 어쩔 수 없이 예비군 훈련장으로 갔다. 그런데 귀가 번쩍하는 공지 사항이 있었으니 바로 '가족계획' 참석자는 훈련을 면제해 준다는 것이었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가족계획에 동참한다고 손을 들고 훈련장을 빠져나와 보건소가 아닌 회사로 달려가 업무를 거의 다 처리하였을 즈음, 보건소와 예비군 훈련장에서는 무단 탈영이라며 난리가 났다. 결국 이 사장은 보건소로 끌려가다시피 하여 정관수술을 받았고, 외아들 하나로 만족해야 했다.
유행은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앞서가야 한다 : 거의 10년 동안 한 가지 아이템만을 생산해 온 이 사장은 사업의 다각화를 꾀할 시간이 왔다고 판단했다. 외국에서 열리는 업무관련 전시회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꼬박꼬박 참석했다. 그러자 세상이 점차 변화하고 있음을 직감하게 되었고, 변화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첨단화되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끼게 되었다. 만약 국내에서 오로지 한 제품만이 최고라며 만족하고 자만심에 빠져 있었더라면, 결코 오늘의 이 사장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끊임없는 탐구 정신과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력으로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하고 세계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사업 품목을 잡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히 말하라 : 지금은 코스닥에 상장을 할 정도의 회사로 기술력과 재무 안정성을 갖추고 있지만, 처음 맨주먹으로 시작할 때는 오로지 정신력 하나만으로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참고로 인문계 고등학교 출신으로 기술 관련 업무를 하려니 모르는 것이 너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직원들이나 거래처에게 솔직히 모른다고 시인하고 배우는 자세로 임하자, 상대방이 그 진실함을 알아보고 기술을 가르쳐 주었고, 실수를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좀 더 발전할 수 있었다. 이 사장은 이런 솔직함과 진실성으로 주위 사람들과 잘 융화하여 어울린다.
가족은 풍성하게, 자식에겐 꿈을 : 이 사장은 대가족에서 자라 유독 가족에 대한 애착이 강한데, 자녀에게는 공부도 중요하고 건강도 중요하지만,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졸업까지는 부모가 자녀의 미래에 대해 함께 얘기하면서 꿈을 키워 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특히 훌륭한 위인들의 위인전을 같이 읽으면서 아이들에게 스스로 미래를 설계하고 꿈을 만들어 나가게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왜냐하면 그 꿈이 바로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Part 2 성공하려면 마음부터 다스려라
더불어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라돈은 냄새가 난다 : 누구나 돈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감추려고 해도 숨기고 없는 듯이 살기가 어렵다. 특히 없이 살다가 살림이 피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 많이 변했다"며 질시의 눈으로 바라보며 배 아파 한다. 그렇다면 돈을 많이 벌게 된 나 자신은 어떻게 변해 갈까? "그래, 옛날의 내가 아니야, 옛정을 생각해서 상대했더니 나를 우습게 봐? 없는 너희들끼리 잘 놀고 잘 살아라" 하면서 정을 나누었던 사람들과 하나 둘 멀어지고, 누가 나를 등쳐먹지는 않을까, 누가 해를 끼치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돈을 잘 관리하고 재산을 늘려갈 수 있을까? 또한 다른 사람들의 시기를 받기보다 계속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돈을 불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여기서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잘살면서도 돈 관리도 잘한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망한 약사에게 약국을 내주다 : 재테크에 관심을 많이 갖고 대인관계가 원만해 많은 사람들로부터 각종 정보를 얻어 회사원으로는 보기 드물게 상당한 재력을 키운 남 부장은 고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했다가 약대를 나와 약국을 하던 친구가 생활고에 시달린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다. 동창들 중에서 의리가 있기로 소문난 친구가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알아보니, 병원을 개원하는 다른 동창생의 보증을 섰다가 병원에 문제가 생겨 운영하던 약국을 정리하여 보증 채무를 갚고도 모자란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일가친척들도 그리 넉넉한 형편이 못 되고 오히려 평소에 약사 친구의 도움을 받는 처지라 어디 기댈 곳도 없다고 했다. 남 부장은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 친구를 만났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내가 자네에게 대형 약국을 하나 차려 주었으면 하는데 괜찮겠나? 조건은 서로 협의해서 결정하지." 조금 망설이던 친구는 고맙다는 말로 승낙하는 대답을 대신했다. 두 사람은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대형 약국을 차리기로 했다.
1. 모든 임대차 계약은 남 부장의 명의로 한다.
2. 남 부장 몫의 월 배당금은 매출 이익의 30% 선으로 하고, 최저 은행 금리의 1.5배를 보장한다.3. 약국에 설치하는 집기 비품은 남 부장 소유로 한다.
4. 약국에 재고로 남아 있는 약은 제약 회사에 약값을 지불하지 않았더라도 남 부장 소유로 한다.5. 남 부장은 약국의 운영에 절대 관여하지 않는다.
이러한 조건으로 합의를 본 두 사람은 약국 자리를 찾다가 경기도 부천에 보증금 1억 원, 월세 200만 원, 권리금 7,000만 원 그리고 시설비 5,000만 원 및 초기 약 구입비 8,000만 원, 이렇게 약 3억 원의 자금으로 약국을 열었다. 아마도 독자들은 매출 이익의 30% 선을 배당금으로 받기로 했다면서 어떻게 약국 운영에 관여하지 않고 매출 이익을 알 수 있을지 궁금해 할 것이다. 총 매출 이익을 정확히 알 수는 없더라도, 약국의 수입은 대부분 국민건강관리공단으로부터 통장에 입금되는 돈이기 때문에 최소한 매출 이익의 90% 정도는 알 수가 있다. 때문에 남 부장은 운영에 관여하거나 장부를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믿고 맡기기로 했다면 운영을 일임하는 것이 기본 예의일 테고, 의욕적으로 일할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서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동업해 차렸기 때문인지 약국은 기대했던 것보다 서너 배의 수입을 올렸다. 물론 자신을 돕기 위해 담보도 없이 3억 원이라는 거금을 투자한 남 부장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미래를 위해 김 약사가 열심히 일한 결과였다. 약국의 한 달 매출 이익이 5,000만 원에 달했는데, 김 약사는 남 부장에게 월 2,000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했으나 남 부장 입장에서는 너무 과한 수입이었기 때문에 정중하게 거절하고 1,000만 원만 달라고 했다.
이제 김 약사도 부채를 어느 정도 청산했고, 독립하여 약국을 차릴 만한 여유가 생겼다. 어느 날 남 부장은 약국을 혼자서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다. 그러나 김 약사는 "나는 자네에게 평생 갚아도 모자랄 은혜를 입었네. 돈으로도 갚을 수 없는 은혜지. 내가 영업을 하는 한 매월 정해진 금액은 줄 테니 보험으로 생각하고 받게" 하고 말하며 사양했다고 한다.
김 약사는 약국을 차려 주어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 남 부장을 은인으로 생각하며 좋은 친구라는 칭송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동창 모임에 나가서도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남 부장 칭찬을 하여 동창들 사이에서 남 부장의 인기가 높아졌다. 사실 그전에는 남 부장이 돈 좀 모으고 골프를 치자 동창들 사이에 좋지 않은 말들이 있었다. 그러나 김 약사를 도와준 일로 인해 동창들 사이에서 의리 있고 대범한 친구, 멋있는 사람으로 통하게 되었다. 남 부장과 김 약사의 사례는 자본을 가진 자와 자격증을 가진 자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뭉쳐서 성공한 좋은 본보기이다.
Part 3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배워라
호부 밑에 견자 없다엄격한 유교 집안에서 자라다 : 유명한 회장은 아직 마흔이 안 된 여성 사업가다. 자신의 재산을 정확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300억은 족히 넘는다는 것이 주변 사람들의 얘기다. 유 회장은 안동 하회 마을의 풍산 유 씨 가문에서 태어나 매우 엄격한 집안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전형적인 현모양처였으며, 아버지는 예의범절을 중요시 여기고 집안의 뿌리를 가르치고자 노력했는데, 아버지는 옷차림을 간섭할 뿐만 아니라, 통행금지 시간을 정해 두고 어길 경우 호되게 야단을 쳤기 때문에 유 회장은 하루빨리 아버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날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부녀지간에도 공짜는 없다 : 유 회장의 집안은 대대로 물려받은 토지가 있었기 때문에 유 회장은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어려움 없이 자랐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하자 아버지는 유 회장을 불러 앉히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까지 너를 키워 주었으니 앞으로는 네가 알아서 살길을 찾아라. 더 이상 부모에게 기대하지 말고, 앞으로 너에게 주는 학비와 용돈은 그냥 주는 것이 아니라 빌려 주는 것이니 나중에 돈을 벌게 되면 반드시 갚아야 한다." 유 회장은 설마 어머니도 같은 생각은 아니겠지 하는 생각에 어머니에게 용돈을 달라고 했지만, 어머니도 아버지와 마찬가지였다. 유 회장은 어쩔 수 없이 할머니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할머니는 어머니의 생활을 넌지시 알려 주며 유 회장의 요청을 거절했다.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보니 유 회장은 더 이상 부모님에게 손을 벌릴 수가 없었다. 유 회장은 어려서부터 어려움을 모르고 자란 탓에 당장 학비를 마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할 수 없이 차용증을 쓰고 아버지에게 학비를 빌리게 되었다.
재능이 있고 잘하는 분야를 선택해야 : 유 회장은 돈을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껏 곱게만 자라 와 보통 학생들이 하는 서빙 등의 아르바이트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고민을 하던 유 회장은 중학교 시절에 연하장과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려서 다른 학생들에게 팔아 용돈으로 썼던 기억을 떠올렸고, 그림을 잘 그리는 자신의 장점을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녀는 연하장 디자인 회사와 건축 설계 사무소, 의류 디자인 회사 등에 아르바이트 지원서를 냈다. 다행히 유 회장은 모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