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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믿는다는 것

나다니엘 브랜든 지음 | 스마트비즈니스
나를 믿는다는 것

나다니엘 브랜든 지음

스마트비즈니스 / 2009년 2월 / 232쪽 / 11,000원



성공의 정답은 당신 안에 숨어 있다



당신은 스스로를 믿고 있는가


분노와 좌절, 스트레스, 성공에 대한 두려움, 알코올 중독, 공부나 일에 있어서 저조한 성적, 배우자를 구타하는 일, 자식에 대한 지나친 간섭, 성 기능 장애나 미숙, 자살이나 폭력 범죄에 이르기까지 선천적 생물학적 장애가 아닌 정신적인 문제는 대개 빈약한 자신감이 원인이다. 자신감은 '자신의 능력에 대한 생각'과 '자신의 가치에 대한 생각'이라는 두 가지 요소로 이뤄진다. 바로 '자기신뢰'와 '자기존중'이 합쳐진 것이다. 자신감이 높다는 것은 스스로 지금의 삶을 받아들인다는 확신이 있음을 의미한다. 반면 자신감이 낮다는 것은 스스로 지금의 삶을 잘 받아들이지 못함을 의미한다. 자신감은 늘 정도의 문제다. 나는 자신감이 전혀 없는 사람도, 자신감을 기를 능력이 아주 없는 사람도 결코 본 적이 없다. 자신감을 키우는 것은 "나에게 살아갈 능력이 있으며 행복할 가치가 있다"는 확신을 기르는 것이다. 결국 자신감을 키우는 것은 행복해지는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건강한 자신감은 삶의 즐거움을 준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신뢰'와 '자기존중'을 자신의 내면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고 있다. 그런 식의 추구는 실패로 이어지기 쉽다. 훌륭한 자신감은 일종의'영적인 성취'로서'의식의 발전에 따른 승리'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처럼 자신감을 일종의 의식상태로 이해하기 시작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야만 좋은 자아관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이 틀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경제적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면, 사랑하는 멋진 애인이 생긴다면, 더 큰 차를 살 여유가 된다면 등등. '그렇게만 되면 정말이지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할지 모른다. 과연 그럴까? 그러나 이런 추구는 언제나 '조금만 더'라는 갈망만을 부추길 따름이다.

자신감의 본질은'경쟁력이 있다', '비교 우위에 있다' 등의 평가 또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한다'라는 자기미화가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오만함과 허풍, 자신의 능력에 대한 과대평가가 자신감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그릇된 자신감일 뿐이다. 그렇다면 자신감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건강함'이다. '스스로도 대립하지 않고 남들과도 대립하지 않는' 건강함을 말하는 것이다. 건강한 자신감은 일, 사랑, 여가 등 삶의 모든 기회에 있어서 능동적이고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능력이며, 삶을 즐기게 해주는 '영혼의 평온함'이다.

자신감은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



자신을 받아들이는 연습


불안, 고통, 질투, 분노, 슬픔, 수치심, 두려움 등 정면으로 바라보기 힘든 느낌이 있는지 잠깐 동안 내면을 살펴보라. 그러한 감정이 있다면, 그 감정이 불러일으키는 것을 상상하여 그 감정을 분명히 바라보라. 그런 다음 몸을 열 듯 그 감정을 들이마셔라. 거부하지 않고 전부 받아들이면 어떻게 느껴질지 상상해보라. 시간이 좀 걸려도 그 체험을 계속 따라가라. '지금 이렇고 이런 느낌(어떤 느낌이든)이 들고 있으며 이를 전부 받아들인다'고 생각하는 연습을 하라. 처음에는 어려울지 모른다. 그래도 계속하라. 마음을 집중하고 근육의 긴장이 풀린다고 상상하라. '사실은 사실이고, 그러면 그런 거야. 그런 감정이 존재하면, 존재하는 거라고.' 이렇게 생각하면서 그 감정을 계속 응시하라. 그리고 그냥 거기 놔두겠다고 생각하라.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하거나 없어질 거라고 일부러 생각하려 들지 말라. 내 경우를 보면 이런 생각이 도움이 된다. '나는 지금 두려움이나 고통, 질투나 혼돈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다.' 이제 당신은 자기수용의 세계를 탐험하게 될 것이다.

정직함만이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

다음 세 가지 예는 자기를 받아들인 경우와 자기를 내버려두는 경우 중 한 가지를 택한 사람들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이웃집 여자를 받아들인 남자의 경우를 보자. 증권회사에 다니는 루시안은 자신이 이웃집 여자에게 성적으로 이끌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처음에는 스스로를 질책했다. 하지만 고민 끝에 '생각만으로도 죄가 된다면 모를까, 자책만 한다고 머릿속에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 그냥 날 이해하련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내면에서 그 부인에게 성적 매혹을 느끼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다. 더욱이 이웃집 여자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주목하면서, 자유롭게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았다. 그랬더니 머지않아 그 감정이 자신이 새로운 자극에 목말라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내에게 싫증이 난 것이 아니라 일에 싫증이 나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그가 아내에게 말했다. "아까 오후에 말이야, 마당에 혼자 앉아서 이웃집 여자와 여덟 달 동안 관계를 가져봤어." "그래요? 어땠는데요?" 루시안은 아내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실망스러웠어. 너무 밋밋하더라고. 하지만 진짜 대답은 이거야. 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봐야겠어."

아이들의 거부를 받아들인 엄마의 경우를 보자. 이혼하고 나서 아이들이 아버지와 살겠다고 했을 때, 지나는 절망했다. 지나는 자기가 직장생활에 쫓겨 참을성 없고 아이들을 잘 돌봐주지 않는 엄마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남편은 자기보다 아이들을 잘 키우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너무 괴로웠기 때문에 그런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었다. 아이들이 가버리고 나자 지나는 혼자 지난 일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생겼다. 지나는 마침내 스스로를 받아들였다. '사실 난 엄마가 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었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엄마가 됐던 거야.'지나는 스스로를 책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조용히 과거의 선택들에 대해 명상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지나는 아이들이 아버지와 지내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내 지나는 아이들이 전 남편과 살겠다고 한 것이 기뻤다. 처음으로 자유롭고 해방된 느낌이었다. 지나는 아이들과 가끔 만나기도 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애정이 넘치는 엄마가 되어 있었다. 친구나 친지들이 엄마답지 않은 것에 대해 죄의식을 심어주려고 하면 지나는 조용히 그들을 쳐다보기만 할 뿐 자신을 변호하려 들지 않았다. "나는 과거의 실수를 후회하고 있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다시 내 욕망과 바람을 접어 두고 가족들에게 희생하는 것이 날 되찾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후회가 없다면 항상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한다

몇 년 전 진실로 사랑했던 아내 페트리샤가 죽었다. 내 의식은 우리 관계를 오랜 시간에 걸쳐 끝도 없이 되새기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행동했거나 퉁명스럽게 대했던 일도 생각났다.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그런 기억들을 멀리 밀쳐내곤 했다. 시간이 흘러 지금의 아내 데버스와 재혼해 살면서, 내가 그때 떠올렸던 생각 없는 행동을 되풀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내가 가르쳤던, '과거의 행동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으면 반드시 그런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는 것을 상기했다. 그래서 페트리샤가 내 이해나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제대로 응답하지 못했거나 참을성 없이 굴었거나 아니면 너무 일에만 마음을 썼거나 사랑이 끼어들 틈도 없이 퉁명스럽게 굴었거나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이전 결혼생활에서 내가 저지른 많은 몇 가지 행동을 스스로에게 인식시키는 데 많은 시간을 쏟기 시작했다. 다시 그런 체험을 하고 자세히 기억해내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당시 행동을 직시하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나를 동요시켰다. 하지만 참고 계속하면서 데버스와의 결혼생활에서 내가 하는 행동에 대해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일과 결혼생활 두 가지 일이 가능해보였고, 더 완전해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후회할 행동도 덜 반복하게 되었다. 이제 당신도 스스로 후회하고 있는 행동에 대해 생각해보자. 자신을 원망하지 않고 그런 행동을 했던 경험을 되새길 수 있는가? 당신이 삶의 어느 땐가 그런 행동을 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며 어떤 느낌이 드는가? 이 같은 정직함은 어떤 느낌을 주는가? 자신감에 대해서는 무엇을 깨달았는가? 잘못을 기꺼이 직시한다면 높은 자신감으로 이르는 사다리를 오르게 된다.

자신을 진실로 인정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심리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 중 일부는 자기가 자신감이 없다는 사실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그러면 나는 그 사람이 잊고 있는 쪽으로 화제를 돌려 문장 만들기를 해보라고 한다.

ㆍ자신을 내심 얼마나 좋아하고 있는지 솔직히 인정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을까봐 걱정스럽다. 당황할 것이다. 외면하고 있던 큰 고통을 겪어야 할 것이다. 놀랄 것이다. 겁이 날 것이다. 가족들이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수동적으로 행동할 구실이 없어질 것이다. 내 인생을 내 손으로 꾸려갈 수 있을 것이다.

ㆍ나를 싫어하는 척해서 좋은 점은…

다른 사람들의 기선을 제압할 수 있다. 핑계가 생기게 된다. 아무도 나한테 뭔가를 기대하지 않는다. 동정을 받을 수 있다.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 편이 더 쉽다. 그게 부모님이 내게서 기대하시는 것이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

ㆍ어떤 단점이 있든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인정할 용기가 있다면…

자유로워질 것이다. 진실을 말하게 될 것이다. 가족과 헤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존중하게 될 것이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일 것이다.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내 앞에서 세상이 열릴 것이다. 새로운 희망이 생길 것이다.

시간을 내서 연결된 문장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이 말들은 당신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는 소중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자기수용은 가장 형편없는 자신감을 지닌 사람한테서도 끌어낼 수 있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자기혐오에 사로잡히지 않게 한다. 마주하기 가장 두려운 그 무엇과 마주할 수 있는 힘을 준다. 무엇을 성취했고 어떤 실패를 했든, "모두가 훌륭한 자신감을 지녀야 한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자신감이라는 문제 전체를 흐려놓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전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 사람들은 몇 가지 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자신감과 무조건적일 수 있는 자기수용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나를 돕는 건 오직 나 자신뿐이다



남의 잣대로 스스로를 비난하지 마라


우리의 목표는 남들이 동의하든 말든 전문적인 지식이 있든 없든, 강하고 긍정적인 자아관을 갖고 이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려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고, 어떤 맥락에서 보느냐 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하다. 자기를 비난하는 성향이 있다면 더욱 그러하다. 죄책감은 긍정적인 자신감을 해친다. "나는 누구의 기준에 따라 판단하고 있는가?" 스스로의 행동을 판단하기 전에 반드시 이런 의문을 가져야 한다. 루시는 얼마 전에 결혼했다. "전 스스로를 질책했어요. 왜냐하면 시어머니를 모시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거든요. 저는 시어머니를 좋아하지 않는데, 시어머니도 절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분명히 표현하시곤 하죠." 루시는 시어머니와 자신과의 다름에 관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우리는 잘 지낼 수가 없어요. 시어머니가 우리와 함께 살게 되면, 그건 제게도,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들에게도 지옥 같을 거예요. 그래서 그럴 순 없다고 말씀드렸죠. 이제 다른 가족들도 제게 아무 말 안 해요. 저는 이렇게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해요. 물론 그 결과도 받아들일 생각이고요." 모든 가치는 주관적이며 도덕은 단순히 어떤 개인이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합리적이고 현명한 자기존중의 윤리다. 하지만 사람들은 타인의 가치관에 밀려 자신의 생각과 욕구, 자신감을 저버리고 만다.

잘못된 것은 당신이 아니다

가끔 사람의 본질적 특성을 일반화하여 자신감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기도 한다. 마틴도 그런 경우다. "저는 사회적 기형아입니다. 사람들과 말하는 게 서툴러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마틴은 스포츠에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그래서 직원들이 사무실에 모여 축구 경기에 대해 토론을 벌일 때면 멋쩍음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축구에 관심이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꼭 축구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잠시 생각해보다 웃고 나서 이렇게 대답했다. "물론 아니죠." 대학생인 체스터는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저는 겁쟁이에요." "그렇다면 '저는 겁쟁이에요'라고 말하는 것과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생각을 하면 불안해져요'라고 말하는 것의 차이점이 뭐죠?" 체스터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문제가 작아지는군요." 나는 어떤 상황에서는 자신감에 넘치면서도 다른 상황에서는 상당히 위축되는 사람을 많이 봤다. 체스터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말하는 법을 배우려고만 한다면, 그는 쉽게 그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를 겁쟁이로 일반화시키면 자신감을 해칠 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용기가 있어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왜 죄의식에 집착할까? 죄의식은 새로운 행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무기력함 속에 우리를 가둔다. "나는 죄를 지었고 좌절했어요. 늘 이래 왔어요. 삶이란 게 그런 거죠 뭐." 다시 말하면 '나한테서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라', '불행은 친숙하다'는 것이다. 신나지는 않더라도 익숙하기는 하다. 재난이 특유의 안락함 같은 것을 주는 반면, 행복은 오히려 그 나름의 방식으로 많은 것을 요구한다. 깨어 있는 정신 상태, 에너지, 훈련, 헌신 그리고 성실함 같은 것을 말이다. 어렸을 때 부모의 사랑이나 보살핌을 받지 못해 자기가 나쁜 아이라고 생각하며 자란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의 자신감을 희생하면서까지 부모가 '옳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부자관계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부모가 죽은 다음에도 내면의 작용에 따라 오랫동안 이런 감정은 지속된다. 따라서 자신을 죄책감에서 해방시키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정직해야 하고, 인내심이 있어야 하며, 독립을 받아들여야 한다. 아울러 의식을 갖고 진실하게, 책임감을 갖고 능동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가능하다.

건강한 자신감으로 진짜 나를 찾아라

장점에 대해 변명을 하거나 죄책감을 느끼는 곳이라면 어디든 죄책감과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따라다닌다. 그러나 단지 소속감을 갖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속하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감을 희생하면서까지 소속감을 얻으려 한다면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죄책감이나 고립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은 우리가 가장 흔히 겪는 고통 중 하나다. 당신에게 이런 면이 있다고 생각된다면, 다음 이야기를 잘 생각해 보기 바란다. 당신에게 사랑하는 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가 예쁘고 건강하며 머리가 좋고 창조적이라면, 그리고 어른이 되어 성공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아이가 그러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길 바라는가? 그 아이가 살아 있다는 사실에 대해 죄의식을 갖길 바라는가? 이런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이유는, 스스로에 대해 생각할 때 혼란에 빠지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심리 상태를 상상 속의 아이에게 투사하면 혼란에서 벗어나는 것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내면에서 최선의 상태와 기쁨을 누린다고 해서 거만해지거나 거드름을 피우거나 떠벌리게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우리가 누구며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자신이나 남을 속일 필요는 없다. 남들이 우리를 질투하는 데 대해 미안해하거나 그런 마음을 달래주려 할 필요도 없다. 건강한 자신감은 그런 항복을 용납하지 않는다. 결점뿐만 아니라 장점에 대해서도 정직하려면 똑같은 용기가 필요하다.

멋진 인생을 위한 열쇠, 나를 믿는 힘!



자신감,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얻는 평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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