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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설공주는 왜 난쟁이 집으로 갔을까?

모봉구 지음 | 눈과마음
백설공주는 왜 난쟁이 집으로 갔을까?

모봉구 지음

눈과마음/2008년 10월/271쪽/12,000원



긍정 - 긍정의 힘을 전파하는 바이블: '백설공주'와 연애하고 사랑하라


옛날 옛적 아름다운 왕비가 여자아이를 낳아, 눈처럼 하얗다는 뜻으로 이름을 '백설공주'라 지었다. 그러나 백설공주를 낳고 오래지 않아 왕비가 죽고 계모가 새 왕비로 들어온다. 새 왕비는 자기보다 아름다운 여자는 눈뜨고 보지 못하는 성미였다. 그녀는 마법의 거울에게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하고 물었다. 거울은 백설공주가 천 배나 더 아름답다고 말한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왕비는 사냥꾼을 불러 백설공주를 숲으로 데려가 죽이라고 했지만, 사냥꾼은 공주를 그냥 숲에 내버린 채 돌아온다. 숲을 헤매던 백설공주는 일곱 난쟁이가 사는 오두막으로 들어가 그들과 함께 살아간다. 백설공주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안 왕비는 변장을 하고 오두막을 찾아가, 백설공주에게 독 사과를 먹여 쓰러뜨린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 한 왕자가 유리관 안에서 잠자던 백설공주를 발견하여 유리관을 옮기는 중, 목에 걸려 있던 독 사과 조각이 목구멍에서 튀어나와 공주가 깨어난다. 왕자는 기뻐하며 백설공주를 자신의 나라로 데리고 가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그리고 결혼식에 초대된 계모 왕비는 벌로 불에 빨갛게 달궈진 쇠 구두를 신고 춤을 추다 죽는다.



인류의 전 역사, 현존하는 여성, 신화와 전설 그리고 동화 속에서 가장 널리 알려지고 영향력 있는 여성을 꼽으라면 단연 백설공주와 신데렐라일 것이다. 사실 〈백설공주〉도 현대인들에게 많이 왜곡되어 이야기되고 있는 동화 중의 하나다. 그중 일본의 작가들이 패러디한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그림동화》라는 책에서는 〈백설공주〉이야기가 자신의 친어머니와 근친상간적 경쟁을 벌이는 이야기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로렌 슬레이터라는 심리학자가 신작 《루비 레드》에서 백설공주에게 독 사과를 먹인 사람이 계모가 아니라 친 엄마였다는 뚱딴지같은 왜곡도 하고 있다. 그러나 백설공주 이야기는 인류가 수천 년의 삶을 이어오면서 거듭 다듬어서 만들어진 과학적인 이야기인 것이다.

백설공주의 눈처럼 흰 피부는 깨끗하고 순수하며 부드러움이 조화된 긍정적인 태도, 피처럼 붉은 입술은 따뜻하고 진실한 위로와 격려의 말, 숯처럼 검은머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상징한다. 이 세 가지가 바로 긍정적인 마음의 핵심으로, 이를 종합한 캐릭터가 바로 백설공주(Snow White)이다. 반대로, 사람들 마음속의 자기학대적인 부정적인 마음이나 습관적인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상징하는 캐릭터가 계모로 들어온 왕비이다. 계모의 가장 큰 특성은 전처의 자식을 괴롭히거나 혹사시키고 매사에 부정적으로 대하는 측면이다.



드워프(Dwarf)는 북유럽 신화에 기원을 둔 난쟁이 족으로 백설공주에 나오는 난쟁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인간의 열등감 속에 내재되어 있는 잠재적인 힘을 상징하는데, 이들이 땅속에서 보물이나 광물을 쉼 없이 캐내는 모습은 사람들의 열등감이 땅속이 상징하는 인간의 잠재적인 능력을 쉼 없이 계발하고 있음을 상징한다. 난쟁이들은 일곱 개의 산 너머 깊은 산 속에 있는데, 이는 열등감이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 존재함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백설공주가 난쟁이들과 오랜 세월을 같이 지내는 것의 의미는 긍정적인 마음이 열등한 상태에 놓인 채 난쟁이들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인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90퍼센트 이상이 느끼고 있다는 인간의 열등감은 사람을 가만두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이게 하여, 오히려 그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게 만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백설공주와 왕자가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며 새 출발을 하는 날, 계모는 불에 달군 쇠 신을 신고 춤을 추다 죽는다. 한 개인의 마음속에서 긍정적 마음이 자리를 잡고 부정적인 마음이 죽어가는 모습이란 이런 것이다.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태도, 표현이 실천될 때 그동안 한 사람을 이끌어온 부정적인 인격은 불에 달군 쇠 신을 신은 사람처럼 어쩔 줄을 모르며 길길이 날뛰게 마련이다. 그동안 부정적으로 살아온 자신과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긍정적인 삶이 실천될 때마다 마치 뜨끔뜨끔하며 심리적으로 당황하다가 신발이 식듯이 차츰 익숙해지면서 부정적인 마음이 소멸된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살아오면서 긍정적인 마음과 부정적인 마음이 삶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반복해온 경험을 〈백설공주〉이야기 속에 집대성해놓았다. 이로 말미암아 인간의 삶을 패배주의나, 소극적인 삶으로 만들고 전염시키는 부정적인 성격이라는 나쁜 바이러스는 인류가 이미 발견해놓은 백설공주라는 백신프로그램에 의해 백 퍼센트 치유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매일 같이 백설공주와 연애하고 사랑하라!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관계를 맺고 진정한 기쁨을 느껴야만 긍정적인 사고방식의 힘과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결단력 - 인간관계와 처세의 신 헤르메스 : '금도끼 은도끼'를 거부하는 지혜

옛날, 한 나무꾼이 나무를 하다가 도끼를 연못에 빠뜨렸다. 그때 헤르메스 신(神)이 나타나 왜 우는지를 물었다. 나무꾼이 사정을 이야기하자, 헤르메스 신은 물속에 들어가더니 금도끼를 갖고 나와 나무꾼에게 물었다. "이것이 네 도끼냐?" 나무꾼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다시 헤르메스 신이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은도끼를 보여주며 물었다. "그럼 이것이 네 도끼냐?" 이번에도 나무꾼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이번에는 헤르메스 신이 쇠도끼를 들고 나와 물었다. "그럼 이 도끼가 네 도끼냐?" 이에 나무꾼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헤르메스 신은 정직함을 칭찬하며 세 개의 도끼를 모두 주었고, 나무꾼은 그것을 팔아 부자가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욕심 많은 친구가 일부러 연못에 도끼를 던져버리고 헤르메스 신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헤르메스 신이 나타나 금도끼가 네 것이냐고 묻자, 욕심쟁이 친구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화가 난 헤르메스 신은 금도끼와 은도끼를 주기는커녕 쇠도끼마저 돌려주지 않고 사라져버렸다.



우리가 어려서부터 알고 있던 〈금도끼 은도끼〉는 원래 그리스의 이솝우화가 전래된 것이다. 그리고 익히 알고 있듯이 이 이야기가 주는 메시지는 '살아가면서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서도 항상 정직하면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정직함'에만 포커스를 맞추어왔기에 이 이야기의 알맹이인 '결단력'의 힘을 간과해왔다. 도끼는 나무를 찍어 넘어뜨리거나 장작을 팰 때 사용하는 도구로, 힘을 한 곳으로 모아서 단호하게 내리찍는 결단력을 상징한다. 결단력이라는 것은 어떤 일이나 상황 하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대상물을 판단하고 선택하는 행위와 관련되어 있다.



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가치를 상징한다. 따라서 이 이야기 속의 금도끼는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결단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나무를 자를 때는 쇠라는 금속이 가장 적절하고 효율적이다. 항상 최고의 것이 최상의 효율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나 처세에서 항상 최상의 결단력만을 고집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항상 완벽하고 최상의 결단력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물정을 모르고 최상의 결단만을 추구하며 우물쭈물하다가는 막상 결단을 내렸을 때 이미 그 사업은 물 건너가기가 십상이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나 많은 선택과 결단을 강요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동통신 회사 하나를 선택할 때도 통화 품질, 사용요금, 부가서비스 등을 살펴서 과감한 선택을 해야 하고, 오늘 점심을 무엇을 먹을까, 신혼여행은 어디로 갈까, 대학과 학과는 어디로 선택할까, 새 차나 주택을 구입하는 문제, 재테크, 진로 변경에 이르기까지 선택과 결정을 계속해서 해야만 한다. 사람이 살아가는 것 자체가 선택 과정의 연속이기 때문에 쉴 새 없이 밀려드는 결단의 대상들을 신속하게 처리하지 못하고 항상 금도끼적인 최상의 결단에만 집착하면, 결국에는 침체되고 우유부단한 인간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아브라카다브라(Abracadabra,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질지어다). 아브라카다브라는 질병이나 불행으로부터 지켜달라고 자비로운 성령의 도움을 기도할 때 사용한 주문(呪文)이다. 말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매사에 결단력을 내리지 못하고 쩔쩔맬 때 이 〈금도끼 은도끼〉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설화의 아브라카다브라 주문을 생활 속에서 외워보자! 그럼 쇠도끼적인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무꾼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듯이 때로는 덤으로 얻는 금도끼, 은도끼 같은 최고의 결단으로 성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반드시 명심해둘 것이 있다. 욕심쟁이 나무꾼이 그랬듯이 금도끼는 항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대상이며 끊임없이 당신을 유혹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과감한 결단력의 소유자가 되는 첫걸음은 바로 이 금도끼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일임을 가슴 깊이 새겨두라!



일 - 단순한 진리로 꿰뚫는 생의 목적 : '개미와 비둘기'의 공생하는 법

개미는 오전 내내 열심히 일을 하다가 목이 말라 시냇가로 갔다. 그런데 그만 발이 미끄러져서 물속에 빠지고 말았다. "살려주세요!" 그때 하늘을 날고 있던 비둘기가 나뭇가지를 꺾어 개미에게 던져주었다. "이 나뭇가지를 붙잡도록 해." 개미는 나뭇가지 위로 기어올라가서 간신히 살아날 수 있었다. 얼마 후에 사냥꾼이 비둘기를 발견하고는 화살을 겨냥했다. 비둘기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으나, 이 광경을 본 개미는 비둘기의 위험을 알아차리고 최대한 빨리 사냥꾼이 있는 곳으로 기어가 있는 힘을 다해 사냥꾼의 발을 깨물었다. "아야!" 깜짝 놀란 사냥꾼은 비명을 지르면서 활을 떨어뜨렸고, 그 소리를 듣고 비로소 사냥꾼을 발견한 비둘기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이 동화가 표면적으로 말하는 것은 타인을 도와주면 언젠가는 자신도 타인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된다는 교훈적인 내용이다. 그러나 동화 속에 등장하는 동물이나 상징물을 분석해보면 좀 더 소중한, 전혀 다른 의미가 숨겨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개미는 일이나 일꾼을 상징한다. 개미가 물을 마시러 가서 빠진 거센 물살은 새로 생긴 잔뜩 불어난 일거리이며, 비둘기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높은 정신 자세의 상징이고, 사냥꾼은 예고 없이 다가오는 불행을 상징한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도대체 일을 얼마나 해야 하고 또한 취미생활이나 휴식은 얼마나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생각한다. 그러나 뚜렷한 지침이나 안내자는 있을 수 없다. 그것이 곧 각자의 삶의 방식이고 가치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삶의 방식에 맞게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워커홀릭과 같이 일에 미친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지만, 간혹 일만 알고 쉴 줄 모르는 사람들이 중병에 걸려서 기나긴 인생 항로에서 좌초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매사에 힘이 없고 어깨가 축 늘어진 수백만 명의 실직자들을 생각해보라. 일거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일거리가 있어야 생활할 수가 있고 나와 가정의 행복, 나아가서는 행복한 사회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개미가 물을 마시러 간 곳은 며칠 전에 내린 비로 인해 물이 잔뜩 불어나 있었고 물살도 거세다. 이것은 직장인들이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하는데, 공교롭게도 새로운 일이 냇물처럼 잔뜩 불어나고 거세게 밀려오는 모습이다. 평소에 자신이 맡은 일의 두 배, 세 배 되는 일이 한꺼번에 밀려오면 사람들은 일의 서두를 잡지 못하고 당황하고 갈등을 일으킬 여지가 많아진다. 직장 상사가 나에게만 어려운 일감을 맡겼다고 불평불만을 쏟고, 다른 사람들은 노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허우적거리던 일 속에서 벗어날 수가 있는가? 그 답을 비둘기가 준다.

비둘기가 나뭇가지를 부러뜨려서 개미에게 던져 구해주는 것이다. 여기서 나뭇가지는 일이 많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기보다 그만큼 회사나 직장상사가 내 실력을 알아주고 신뢰하기 때문에 일을 많이 준 것이므로 행복하다고 여기는 생각의 전환이다. 일에 치여서 허우적거릴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일이 많아서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 우리는 허우적거리던 일 속에서 역으로 벗어날 수가 있다. 즉, 짜증을 내기보다 일이 많아 행복하다고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이런 객관적인 시선을 통해 매사를 보면 자신에게 잔뜩 부여된 많은 일들이 결코 회사가 나를 골탕 먹이려는 의도로 맡긴 것이 아니며, 오히려 나의 실력을 알아주고 신뢰하여 맡긴 것임을 인지할 수 있다. 이렇듯 일이 많아서 행복하다는 승화된 태도를 지니게 되면 일의 강박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예기치 않았던 사건 사고나 큰일로 인하여 불행한 삶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경우를 수도 없이 본다. 가족이나 자신이 암 같은 불치의 병이 걸렸는데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하거나 경제 불황으로 자신이 다니던 회사가 폐업을 하거나, 혹은 구조 조정을 할 수도 있다. 비둘기가 아무것도 모르고 벌레를 먹고 있을 때 살금살금 다가와 화살을 겨누는 사냥꾼처럼 불행은 사람들이 행복을 향유하고 있을 때 눈치 채지 못하게 다가온다. 이런 예기치 못한 불행을 막고 행복을 지키기 위한 가장 확실한 보험은 지금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것이다. 일을 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개인 사업이나 직장에서 돈이 따르고 인정을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미지에 다가올 수 있는 불행에 대해 충분히 대비할 수 있다. 무시무시한 사냥꾼을 쫓아버릴 수 있는 힘이 그 작은 개미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허위 - 아이의 눈에 비친 욕망의 초상 : '벌거벗은 임금님'의 딜레마

옛날에 새 옷 입기를 아주 좋아하는 임금이 살았다. 어느 날 사기꾼이 와서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멋진 옷을 만들 수 있다고 떠벌였다. 그리고 그 옷은 신비로운 힘을 갖고 있어 바보 같은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금은 사기꾼에게 많은 돈을 주고 옷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드디어 사기꾼이 옷을 다 완성했다고 고하자, 임금은 대신들을 거느리고 옷을 보러 갔다. 그러나 그곳에는 실오라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신하들은 자신들이 바보라는 사실을 남들이 알까 봐 두려워하여 보이지도 않는 옷을 칭찬하며 임금에게 말했다. "임금님, 태어나서 이렇게 아름다운 옷감은 처음 보았습니다." 그러자 아무것도 안 보이는 임금님은 '내가 바보란 말인가?'라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들이 알까 봐 역시 거짓말을 한다. "오, 참으로 아름답구나." 그리하여 보이지 않는 새 옷을 입은 임금이 시종들과 함께 행진하자 사람들이 모두 이렇게 말했다. "저것 좀 봐. 임금님의 새 옷이 정말 근사한데." 그런데 갑자기 한 꼬마가 이렇게 외쳤다. "하지만, 임금님은 아무 옷도 입지 않았잖아요." 그러나 임금님은 벌거숭이인 채로 더욱 당당하게 행진을 계속했다.



이 이야기는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작품 중에서도 풍자와 해학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극적인 재미와 감동이 있고 교훈적이면서도 주제의식이 잘 녹아 있는 까닭이다. 어른들의 허위의식과 아이들의 순수함, 순진함이 대비되어 오늘날에도 커다란 즐거움을 안겨주는 것이며, '권위와 허영'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욕망 구조를 잘 그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임금은 어떠한 한 분야나 영역을 다스려나가는 최고 권위자를 상징한다. 박사나 선생님, 여러 직종의 전문가 등을 상징하는 것이다. 옷은 자신의 학문적, 사상적, 문화 예술적 권위 등을 치장해나가려는 권위자들의 허영심을 나타낸다.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에 올라 있는 권위자들에게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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