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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에이티브 마인드

허버트 마이어스 , 리처드 거스트먼 지음 | 에코리브르
크리에이티브 마인드

허버트 마이어스 · 리처드 거스트먼 지음

에코리브르 / 2008년 4월 / 352쪽 / 18,000원

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 - "세상을 보는 창을 열다"

미국 최고의 사회·정치 기자로 손꼽히는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20세기 후반에 일어난 주요 사건과 21세기가 직면한 도전을 충실히 기록해왔다. 신문기자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후 미국 민권 운동의 태동기를 취재했으며, 《뉴욕타임스》의 베트남전 기사로 퓰리처상을 받았다. 미국이 거쳐온 각 시대의 의미와 본질을 포착해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가장 우수하고 똑똑한 자들(The Best and the Brightest)』을 비롯해 『권력 당국(The Powers That Be)』, 『1950년대(The Fifties)』,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 업계(The Reckoning)』 같은 저작들로도 이름이 높다.

내가 생각하는 창조적인 사람이란 관습적인 환경에서는 왠지 거북스러워하며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매일 9시부터 5시까지 사무실에 앉아 있을 수 없는 사람이다. 뭐든 스스로 파악해야 하며 제도와 획일성을 떠나 자신만의 질서를 갖춘 사람이다. 창조성이 있는 곳에는 고도의 개인주의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본능을 믿어야 한다. 창조적인 사람은 주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한 육감이 있고, 여기에 지성과 감성이 어우러져서 다른 사람들은 지니지 못한 재능으로 작용한다. 어떤 선택을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선택하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 원하는 것과 원치 않는 것을 머릿속으로 따져서 가르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그 까닭은 다른 게 아니라, 직관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선택과 자유를 극대화하고 자신에게 남다른 소질이 있음을 아는 게 중요하다. 그리고 그 소질을 잘 간직한 채 최대치를 끌어내야 한다. 돈이 창조성을 자극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창조성을 타고난 사람은 결국 창조적인 일을 하게 되는데, 다른 일은 도저히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창조적인 사람이 일을 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다. 내가 보기에 "유명해지고 싶다"거나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바람을 품은 사람은 그다지 창조적인 일을 하지 않는다.



하버드대학 시절에 나는 <하버드 크림슨> 주필이었다. 나는 그 일에 능했고 상황 판단이 빨랐다. 내가 잘하는 거라곤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졸업 후에 처음으로 얻은 직업도 미시시피에 있는 작은 일간지의 기자였다. 기자로서 일하면서 사회의 정치 역학이나 일상생활에 내 지식을 활용하면서 상대방의 심중을 읽고 인물을 간파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내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이 자명해졌다. 나는 저널리즘이 좋았고, 그 방면에 재능도 있었다. 그러나 금전이나 풍족한 생활을 위해서 그 길을 가려는 것은 아니었다. 저널리즘에 투신하는 이유는 일단 그 일을 사랑하고, 자존심과 자의식이 그것을 원하며, 무엇보다 다른 일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일은 감옥 같고, 끔찍할 정도로 지루하다. 만약 대기업에 들어갔다면 나는 그다지 유능한 직원이 못 됐을 것 같다. 나는 지시를 받고 주어진 일을 처리하는 데 능숙하지 못하다. 그렇기 때문에 저널리즘만이 내 유일한 티켓이라는 걸 알았고, 그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던 것이다.



이처럼 자신이 잘할 수 있는 한 가지에 몰두하는 일은 창조적인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조건이다. 자신이 탁월하다는 것을 아는 분야, 기회가 빈번하지 않은 그런 일을 해야 한다. 아마 창조적인 사람이라면 대부분 비슷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 창조성은 이른바 '전부 아니면 전무'일 때가 많다. 창조적인 사람들은 좋아하는 일에 맹렬하게 달려드는데, 좋아하니까 그렇기도 하겠지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감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니 사실상 그 한 가지 일에서 멋지게 성공하느냐 아니면 나머지 전부에서 처절하게 패배하느냐, 양자택일의 상황인 것이다.



에드워드 올비(Edward Albee) - "무의식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에드워드 올비는 미국 연극의 지평을 바꿔놓은 작품과 주제 의식으로 유명하다.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동물원 이야기(The Zoo Story)>, <키 큰 세 여성(Three Tall Women)>과 <샌드박스(The Sandbox)>를 비롯한 이름 높은 희곡은 대부분 현대인의 삶을 깊이 통찰한 역작이다. 그의 작품에 담긴 독창성은 그를 동시대 다른 작가들과 구분되는 독보적인 존재로 만들어준다. 올비는 퓰리처상을 세 차례나 받았고, 토니 평생공로상과 국가예술훈장을 비롯한 많은 상을 수상했다. 대학 강단에도 자주 서며 작가와 예술가들의 쉼터 역할을 하는 에드워드 F. 올비 재단의 회장이기도 하다.



나는 창조성이 우리 뇌 속 신경 회로의 어떤 장난스런 변덕에 따라 좌우된다고 확신한다. 지능이나 감수성,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한 관심 정도에 따라 다르긴 하겠지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살면서 똑같은 경험을 한다. 그런데도 창조하는 사람이 있고 창조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 까닭은, 창조하는 사람은 단순히 경험한 것에 만족하지 않고 기어이 발언을 하기 때문이다. 이때 창조적이지 않은 사람을 창조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 창조력은 유행을 따르는 게 아니라 경험에서 스스로 자극을 받을 때 북돋울 수 있다. 주변에서 벌어지는 것들을 흡수하고 그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는 능력은 스스로 간직해야지, 어딘가에서 가져와서 심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같은 맥락으로, 나는 극작가가 되는 법 역시 가르쳐줄 수 없다. 다른 사람들처럼 희곡 쓰는 방법을 가르쳐줄 수는 있어도 극작가가 아닌 사람을 극작가로 만들 재간은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극작가의 소질을 가진 사람이 그 소질을 더 잘 발휘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뿐이다.



나는 한 희곡에 대해 줄곧 생각해왔다는 걸 어느 날 문득 깨닫는다. 상당히 오랫동안 무의식에서 그것을 생각해왔던 것이다. 그러다 느닷없이 그 생각이 의식의 영역으로 전이된다. 무의식에서 진행되던 생각을 포착해서 의식의 영역으로 옮기는 것, 그것이 내 창조 과정이다. 나에겐 이 방법이 효율적이고, 그걸 특별히 대수롭게 여기지도 않는다. 사고 과정은 상당 부분 직관적이다. 그 과정에는 두 가지 일이 일어난다. 작품의 직관적인 전개는 대체로 무의식에서 일어난다고 나는 확신한다. 하지만 극적인 효과를 높일 목적으로 미학과 주제를 통제하는 데는 고도의 '의식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그래야 무의식과 의식 양쪽이 서로 열띤 반응을 일으킨다. 나는 아이디어가 곪을 때까지 오래 나뒀다가 그 다음 종이에 옮긴다. 그러기까지 여섯 달이 걸리기도 하고, 2년이 걸리기도 한다. 다른 일을 하면서 그게 잘 진전되도록 놔둔다. 아이디어도 그러길 원하는 것 같다. 그 과정을 차단하거나 틀에 가두는 일은 없다. 처음 떠오른 아이디어에 스스로 다시 개입할 여지를 끊어버리기 때문에 도중에 뭔가 흥미로운 것이 떠올라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완벽하게 준비가 될 때까지 글을 쓰지 않는다. 물론 작업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중요한 건 이를테면 무의식에 머리를 달아줘서 말을 걸게 하는 것이다. 작업을 무의식에 일임해서 대신 진행하게 나둬라. 즉 무의식이 원하는 것에 제약을 가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것도 강요하지 말고.



에리카 종(Erica Jong) - "내 안의 악마를 유혹하다"

작가이자 교수인 에리카 종은 미국의 명성 높은 여자 단과대학인 바너드대학교를 졸업하고 콜롬비아대학교 대학원에서 18세기 영국문학을 전공했다. 그녀는 총 여덟 편의 소설을 썼고, 그 가운데 1973년에 발표한 『비행 공포증(Fear of Flying)』 등 몇 권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여러 대학에서 문학과 작문을 가르쳐온 그녀의 작품은 세계 도처로 번역되어 미국과 서유럽뿐 아니라 동유럽, 그리고 일본과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1998년에는 UN에서 선정하는 우수문학상을 수상했다.



내 경우에 창조성을 유발하는 힘은 순전히 근성인 것 같다. 말이 저절로 흘러나오고 시간이 멈춰버리는 몰입 상태는 상대적으로 드물다. 100일에 하루 올까 말까 한 그런 날이면 지구상 최고의 축복을 받은 듯하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날은 순전한 고문이어서 마치 내가 산꼭대기로 바위를 굴려 올리는 시시포스처럼 느껴진다. 그런데도 계속하는 이유는 시간의 흐름에서 벗어나 지상천국에 와 있는 듯한 그 드문 순간들 때문이다. 그리고 또 그것이 내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그 작업을 통해 세상에 기여하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고, 그 일을 할 때 진정한 내가 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누군가 "있잖아, 어느 날 이런 기발한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그걸 원고지든 캔버스든 메모장이든 아무 데고 옮기기로 결심했거든. 그랬더니 내가 예상했던 것과 딱 맞아떨어지는 결과를 얻었지 뭐야!"라고 말한다면 그는 재능이 없는 사람이다. 진정한 능력과 재능을 갖춘 사람이라면 결코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작품을 창조하는 과정은 발견, 즉 자신의 안과 밖을 두루 탐험하는 발견의 과정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되는 것도 아니고 어디서 나오는지도 모르는 그 과정에 투항하면 발견을 하게 된다. 영 내키지 않더라도 마침내 그 모든 과정의 끝에 이르면, 당신은 뒤돌아보며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아, 저기가 내가 가려던 곳이었군." 그러나 도달하기 전까지는 결코 알 수 없다. 사실 나는 아이디어를 찾아 나서지 않는다. 아이디어가 내 안에서 샘솟는다. 적절한 형식을 찾지 못한 채로 몇 년이 흘러갈 때도 많다. 내 소설 중 상당수는 공책에 적어놓고도 그 다음을 어떻게 전개할지 갈피를 못 잡던 몇 줄에서 시작되었다. 그렇게 적어놓고 5년쯤 뒤에 다시 공책을 넘겨보면 불현듯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흔히 창조성이라고 하는 과정은 이렇듯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진다. 어디서 오는지 결코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 창조성이 그토록 흥미진진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반적으로 '창조성'의 영역에서 활동하는 데 따르는 최대 난관은 일부 창조적인 사람들이 너무도 치졸하고 쩨쩨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남이 안 되기를 바란다. 이른바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 남의 불행에 안도감을 느끼며 기뻐하는 마음을 뜻하는 독일어)' 심보가 팽배하다. 아마도 그런 게 예술가로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어떤 작품이 더 월등한지는 동시대인들이 결정할 사항이 아니다. 그 작품과 거리가 너무 가깝기 때문에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지녔는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모차르트 시대 사람들은 <마술피리(The Magic Flute)>가 얼마나 위대한 오페라인지 알았을까? 그 작품의 초연 장소는 가벼운 코미디를 주로 공연하는 허름한 무대였다. 셰익스피어는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쓴 작품이 많다. 그런데 아버지가 삼촌에게 살해당하고 어머니가 삼촌과 재혼하는 덴마크 왕자에 대한 길고 복합한 희곡은 왜 쓴 걸까? 누군가 셰익스피어를 찾아가 "당신은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있군요!"라고 말했다면 그는 『햄릿』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모든 문제를 핵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조지 부시의 멍청한 짓거리로 세상이 조만간 폭발하지 않고 200년 후에도 인류가 살아있다면, 아마 그때 가서는 누군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최고 희곡이 무엇인지 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는 우리와 거리가 너무 가깝다. 그래서 나는 작업을 하는 동안에는 내 작품이 미칠 영향력 따위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건 사람들이 내게 사실을 말해준 다음의 얘기다. '아, 이 책은 이러저러한 사람들에게 이렇고 저런 영향을 미칠 거야.' 이런 식으로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글쓰기에 철저히 몰입할 뿐이다. 내 책 중에는 세간의 사랑을 받아서 대형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있고, 그만큼 팔리지 않은 것들도 있다. 어쨌든 작업하는 동안에는 이런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나 스스로에게 부여한 소명과, 그 소명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만 생각한다.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 - "삶을 단순화시키는 발명"

스티브 워즈니악은 1976년에 스티브 잡스와 함께 애플 컴퓨터를 세웠다. 이어서 1970년대 중반에 애플Ⅰ과 애플Ⅱ를 세상에 선보인 그는 퍼스널컴퓨터의 발명가로 인정받고 있다. 워즈니악과 애플 컴퓨터는 엔지니어로서 쌓은 경험과 더불어 발견에 대한 집요한 의지로 세상을 바꿔놓았다. 이후 워즈니악은 거물 투자자로 변신했으며, US 페스티벌을 통해 콘서트를 홍보하고 자선사업에도 힘써왔다. 미국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 등재되었고, 국립기술훈장과 하인츠 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을 수상했다.

내 창조성의 원천은 수줍음 많은 성격과 컴퓨터에 대한 애정, 이 두 가지이다. 워낙 부끄러움이 심해서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직업은 애초에 바라지 않았다. 남들과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 길을 가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는 접근법으로 차별성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컴퓨터는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다. 고등학교 가서는 컴퓨터 설계에 매달리다시피 했다. 칩을 더 적게 쓰면서도 성능이 뛰어난 컴퓨터를 개발하는 걸 나만의 게임으로 삼았다. 고등학교 졸업반이 될 때까지 나는 끊임없이 컴퓨터 설계를 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내가 컴퓨터 설계를 직업으로 갖게 되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 그냥 재미 삼아 했을 뿐이다. 동기는 내면에 있었다. 이 작은 게임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추려고 안간힘을 썼던 이유는 승자의 기분을 맛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일로 보수를 받고, 명예를 얻고, 심지어 상을 타거나 요트를 소유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게 즐거웠고, 그 일이 컴퓨터 설계였을 뿐이다. 그저 컴퓨터의 작동 방식을 사랑했고, 나만의 컴퓨터를 설계하고 싶었다. 나는 누구나 구입할 수 있는 가격대의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고민했다. 부품들을 구해서 그걸 어떻게 연결해야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 고심했다. 결합된 부분들이 너무 많으면 그 설계는 폐기해버렸다. 작고 짧고 단순해야 했다. 사물을 단순화시켜 바라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내 창조성의 가장 큰 원동력일지도 모른다.



나는 전자공학 중에서도 좀 더 독특한 분야에서 일하는 걸 좋아하는데, 누군가 "그건 그런 게 아니지, 거긴 이 칩을 써야지"라고 지적하거나 경쟁해야 하는 상황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나는 한 번도 경쟁하고 싶었던 적이 없다. 내가 선택한 일, 내가 옳다고 믿고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다고 판단한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하는 걸 불편해하지도 않는다. 칩이 어떤 식으로 작동해야 한다고 누군가를 납득시킬 필요도 없다. 내게는 적절한 기술이 있고, 그것을 이용해서 뭔가 의미 있는 걸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 일은 내게 자신감과 행복을 주고, 다행히 나는 그런 능력이 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다. 뭔가를 생각해냈는데 옆에서 "아니지, 아니야. 그 방법은 틀렸어"라며 고개를 젓더라도 그 사람들 말에 개의치 말고 혼자 힘으로 진실에 도달할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사람들은 나를 평가할 때 남다른 사고방식을 지닌,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두려워하지 않는 창조적인 엔지니어라고 한다. 나는 늘 유용하고 실용적이면서도 값은 아주 싼 물건을 만드는 걸 최대 목표로 삼고 살아왔다. 그리고 PC가 우리의 생산성을 올려주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더 행복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사람들이 목표에 도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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