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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기술

조시 웨이츠킨 지음 | 이제
배움의 기술

조시 웨이츠킨 지음

이제 / 2007년 10월 / 280쪽 / 10,000원

체스로 세계를 제패하다



체스와의 운명적 만남

뉴욕 시내의 어느 추운 늦겨울 오후. 그때 내 나이 6살. 그날도 철봉에 매달려 원숭이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타잔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때 왠지 모를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봤는데, 대리석 체스판 위에 놓여있는 말들에 새겨진 신비로운 조각상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여러 가지 동물조각상들은 체스판 위로 금방이라도 뛰어오를 것만 같았다. 이 신기한 놀이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지만 낯설지 않았다. 며칠 후 엄마와 다시 공원을 찾았을 때 난 엄마의 눈을 피해 쏜살같이 체스판이 보이는 쪽으로 달려갔다. 그날 마침 학교에서 체스게임을 하던 아이들 옆에서 눈동냥을 했던 터라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때 난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은 듯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체스를 하고 있던 할아버지와 함께 체스말들을 움직일 때, 전에도 한번 해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이상했다. 나는 음악의 화음을 만들어내듯 말들을 조합해서 공격했고 할아버지는 내 공격을 맞받았다. 잠시 후 사람들이 체스판으로 몰려들었고, "어린 바비 피셔가 나왔어"라고들 수군거렸다. 결국 할아버지가 이기긴 했지만 난 시종일관 게임을 주도했다. 할아버지는 악수를 청하면서 내 이름을 물으셨다. 그리곤 신문에다 내 이름을 적더니 "조시 웨이츠킨이라…… 언젠가 네 이름을 신문에서 보겠구나!"라고 말씀하셨다.



그날 이후, 워싱턴스퀘어공원은 제2의 학교가 되었다. 난 체스와 사랑에 빠졌다. 방과후 축구와 야구 대신, 공원으로 뛰어갔다. 그리곤 무섭게 생긴 아저씨들 사이에 퍼더버리고 앉아 게임을 시작했다. 게임하는 동안 온몸이 오싹해지는 스릴을 맛보았다. 몇 시간이고 계속해서 체스말들을 응시하며 땀이 송송 맺힌 내 지력의 수류탄을 맹렬히 던지면서 스피드체스를 하곤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체스말들이 머리 위로 이리저리 날아다녔고, 집에 와서도 먼지 자욱한 체스판을 꺼내 아빠에게 같이 하자고 졸라댔다. 시간이 지나자 공원의 아저씨들은 나를 앉혀놓고 공략하는 법, 상대의 생각 읽는 법 등을 가르쳐주었다. 난 무서운 공원을 마음 놓고 활개쳐도 될 만큼 든든한 보호자들이 생겼고, 또한 이들의 강력한 라이벌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오후, 친구 제리와 스피드체스를 두고 있는데 구경꾼 가운데 키가 큰 어른이 한 명 서 있었다. 낯선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다시 게임 속으로 빠져들었다. 몇 시간 후, 그는 아빠에게 다가가더니 자신을 체스코치인 브루스 판돌피니라고 소개했다. 그는 내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아빠에게 한번 가르쳐보고 싶다고 제안했다. 그를 만난 후 나의 가장 큰 장애물인 성급함은 사라지고 적절한 시기에 직관력을 발휘하는 능력을 키웠다. 그는 권위적이지 않았고 내 성장의 안내자 역할을 하려 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게 아니라 토론을 통해 잘못을 스스로 깨닫도록 했다. 계속해서 질문을 던짐으로써 성급하게 말을 움직이는 내 버릇을 고치려고 했다. 좋든 나쁘든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그 이유를 물었다. 이것 말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 상대의 역공을 불러오진 않을까? 이 말을 먼저 움직이고 저 말을 나중에 움직이면 어땠을까? 그는 지식을 머릿속에 일방적으로 주입시키려 하지 않고 스스로 바른 길을 찾아나가도록 길을 열어주었다. 그는 중요한 체스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을 가르쳤고, 분석과 계산하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이해시켜나갔다. 그로부터 체스에 관한 많은 새로운 기술들을 배웠지만 무엇보다도 체스에 대한 사랑과 타고난 내 감각을 살리고 키워나가도록 도와주었다. 이러한 배움의 결과로 어느새 내 또래에선 국내 최고의 선수가 되어 있었다.



발달이론을 믿고 배우라

발달심리학자들(Developmental Psychologists)은 아이들이 어떤 것을 배우고 마스터하는 방법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왔다. 발달심리학의 권위자 캐럴 드웩 박사는 아이들의 지능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불변이론'과 아이들의 지능은 점점 발달한다는 '발달이론(학습이론)'을 제시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어려운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학습에 의해 지능이 발달된다고 믿는 아이는 자신의 게임 실력을 향상시킬 가능성이 높지만, 지능이 불변한다고 믿는 아이는 쉽게 좌절하고 중도에서 포기하고 만다고 한다. 성공을 노력과 연관시켜 생각하는 아이는 도전적인 상황에 맞서 '성취지향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자신을 똑똑하거나 멍청하다고, 아니면 잘하거나 못한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아이는 '무기력한 경향'을 보인다. 결국 아이들의 성취도는 지능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이 드러났다. 또한 어려운 도전에 직면했을 때 불변이론집단의 매우 똑똑한 아이는 발달이론집단의 덜 똑똑한 아이보다 훨씬 더 쉽게 상처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불변이론집단의 가장 똑똑한 아이들조차도 쉽게 포기하는 경향을 보였다. 왜냐하면 이 아이들은 결코 쉽게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믿는 완벽주의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수많은 어린 체스선수들을 관찰하면서 이런 주장이 맞는다는 걸 확인했다. 천부적인 체스 천재들은 궁지에 몰리면 당황하여 쉽게 자기 페이스를 잃고, 경기에 진 후에도 슬럼프에서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



불변이론 vs 발달이론은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만일 승부의 중압감을 느끼고 있는 어린 농구선수가 첫 번째 슛을 놓치게 되면 그는 당황하여 경기를 잘 풀어가지 못할 것이다. 만일 비즈니스맨으로서 사업가가 완벽함을 지향한다면 어떻게 자신의 실수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지금껏 체스선수로서 내 삶을 되돌아보면, 난 실패를 기업하고 패배로부터 많은 교훈을 얻었다. 첫 전국선수권대회에서 데이비드 아네트에게 패배한 뼈아픈 경험이 있다. 완승을 이뤄내기 1년 전 미국 주니어(21세 미만) 선수권대회 결승전에서 최대의 라이벌에게 무참히 짓밟힌 쓰라린 기억도 떠오른다. 또한 헝가리 세게드에서 열린 세계체스선수권대회(18세 미만)에서 우승컵을 놓고 러시아선수와 마지막 라운드를 치를 때 게임에 비겨 공동우승을 차지했다. 그때 승리에 너무나 집착한 난 경기결과에 너무 화가 나서 그의 악수를 뿌리쳤다. 패배는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었지만 큰 채찍이 되었다. 실패는 성공으로 이르는 길을 가르쳐줬다. 그리고 내가 꿋꿋이 한길을 가도록 지켜준 것은 '배움에 대한 사랑'이었다.

체스에 대한 이해가 점점 깊어지고 정교해짐에 따라 난 성인경기에 참가했다. 성인경기의 게임시간은 점점 길어졌고 때로는 6~8시간까지 지속되었다. 어린아이가 오랫동안 집중력을 잃지 않기란 정말 힘들다. 그래서 이렇게 과도한 압박을 받았을 때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언젠가 맨해튼 체스클럽에서 복잡한 상황에서 말을 어디에다 놓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날 아침 들었던 본 조비의 노래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게임에 집중하려고 애써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결국 본 조비 때문에 경기를 망치고 말았다. 이 문제는 곧 내 인생의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집이나 경기장으로 가는 도중 불렀던 노래가 며칠이고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괴롭혔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돌파구를 찾았다. 고수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려면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애꿎은 아빠엄마와 여동생이 훈련의 희생양이 되었다. 1주일에 몇 번 방에서 체스를 공부하는 동안 귀청이 떨어질 정도로 음악을 크게 틀었다. 또한 10대 초반엔 일부러 동네 체스상점에 들러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서 스피드체스를 두곤 했다. 물론 끊임없이 훈수와 농담이 오고가는 워싱턴스퀘어공원에서도 아저씨들과 체스를 두었다. 소음과 담배연기를 떨쳐낼 방법이 없었으므로 소란스러운 주변 환경을 창조적인 사고과정 속으로 통합할 수밖에 없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는 것은 모든 선수들의 공통된 바람이다. 난 언제나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불편함을 느낄 때에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고, 신체적으로 부상을 입었을 때도 진통제를 먹지 않고 통증을 이겨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런 훈련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순간순간 일어난다. 체스를 혼전의 상태로 몰아가서 상대보다 먼저 수를 찾아내는 것이 내 체스 스타일이다. 이런 스타일은 불확실함과 혼란스러움에 맞서 평온함을 유지하도록 스스로를 단련시켜온 나만의 방법이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라

무의식세계로 깊이 들어가면 서로 동떨어져 보이는 사물들 간에 서로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분야의 예술에 대한 통찰력이 생기게 되면 다른 분야의 예술에도 깊은 이해력이 생긴다. 우리의 직관은 파편화된 개념들을 하나의 결정체로 구체화할 수 있는 연관성을 찾아내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체스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공격체스를 공부함으로써 수비체스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모든 고도의 공격체스는 수비체스에 대한 깊은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음양의 상징이 어둠 속의 빛 그리고 빛 속의 어둠을 담고 있듯이 창조적인 도약은 기술적인 토대를 바탕으로 한다. 몇 년 후 난 무술 수련을 통해 이런 깨달음을 일상에 접목시킬 수 있었지만, 10대에는 그런 이치를 깨닫지 못했었다. 그때는 이런 세계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체스선수로서 지나온 세월을 회고해보면 배움은 내게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회색빛에 대한 탐구의 과정이었다. 선수는 배움의 과정에 충실하면서 항상 자신의 성장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더 강한 적수를 찾아야 하지만, 자신감을 유지할 만큼 승리를 계속해서 맛보는 것도 중요하다.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생각들을 버려야만 하지만, 자신의 타고난 재능마저 버려서는 안 된다. 최고가 되기 위한 항해에는 숱한 암초들이 여기저기 숨어있다. 좁은 수로의 한쪽에는 갑자기 모래톱이 튀어나올 수도 있다. 체스라는 배를 타고 가는 동안 난 여러 차례 암초를 만났다. 만일 내가 내면 깊숙한 곳에서 들려오는 영혼의 소리에 귀를 막았더라면 아마 난 그런 암초들에 걸려 그냥 가라앉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암초들은 오히려 최고를 지향하는 내 삶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태극권으로 세계를 제패하다



처음처럼 다시 시작하라

나는 90년대 중반 유럽여행 도중에 노자의 『도덕경』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도교철학에 깊이 빠져들어 자기성찰에 대한 욕구가 강해지면서 경쟁의식은 점점 약화되었다. 『도덕경』을 공부하면서 주변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 느낌을 뭐라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어쨌든 난 거친 야망을 진정시키고 물질적인 욕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예민한 내 성격을 무디게' 만들고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배움이란 '기술을 배우는 동시에 그 기술을 초월하는 기술'을 의미했다. 이런 기술을 『도덕경』에서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18살 청소년에게 『도덕경』은 그 무엇보다도 삶에 있어서 세속적인 야망과의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진실로 내게 중요한 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유럽여행을 끝내고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고대중국의 사상에 대해 좀 더 깊이 공부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다. 그래서 1998년 10월 친구의 권유로 도교철학을 명상과 무술로 구현한 '태극권'을 배우기 위해 윌리엄 첸의 도장을 찾았다. 그 당시 첸 사범은 태극권의 살아있는 전설이었다. 내가 태극권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명상과 무술을 접목시킨 그의 무술세계에 반했기 때문이다.



처음 태극권 수업을 받던 날, 태극권의 목표가 상대를 이기는 게 아니라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데 있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 후 몇 달 동안 60개의 기본적인 명상동작을 배웠다. 느린 속도이긴 하나 태극권의 언어가 자연스럽게 느껴지고 내 삶의 일부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난 매일매일 첸 사범의 수업시간이 기다려졌다. 사범님은 우리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듯 보였고, 그를 따라하면서 우리도 숭고한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첸 사범은 호흡이 자연스러워야 한다고 늘 말씀하셨다. 오랫동안 바쁜 세상을 정신없이 뛰어다니느라 나쁜 버릇에 빠져 몸과 마음이 긴장해서 자연스럽지 못했던 호흡을 되돌려놔야 한다고. 바로 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태극권을 시작한지 불과 몇 달만에 삶의 질이 몰라보게 좋아졌다. 몸을 관찰함으로써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신기했다. 웬만한 고통과 통증은 가벼운 자세만 살짝 취해도 말끔히 가셨다. 스트레스를 받아 기진맥진할 때도 태극권을 하면 평화로움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제 외부변화에 대해 몸 상태를 조절하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태극권은 분열되었던 나를 다시 결합시키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지금껏 난 체스라는 머리싸움을 했던 스포츠선수였다. 어렸을 땐 체스에 온 열정을 다 바쳤다. 열정이 너무도 강렬했기에 내 몸과 정신은 체스에서 온전히 하나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체스로부터 멀어지면서 내 육체와 정신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태극권을 통해 분열된 요소들을 체계적으로 돌려놓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1999년 초, 첸 사범은 추수 훈련을 해보라고 권유하셨다. 그때는 그것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작은 동작 하나하나에 정통하라

무술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전설이나 액션영화를 떠올린다. 한밤중에 눈에 띄지 않게 몰래 다니는 닌자 거북이와 <와호장룡>이란 영화에서 벽을 타고 공중을 나는 주인공을 떠올리고, 또 반담의 거친 발차기와 성룡의 공중회전을 떠올린다. 또한 공중에 설치된 눈에 띄지 않는 복잡한 케이블들과 요란스런 특수효과가 연출해내는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무술 고수들 간의 대결은 할리우드 영화 속에 나오는 싸움과는 아주 다르다. 그들은 좀처럼 큰 동작을 취하는 법이 없으며 상대방의 공격을 사전에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공중에서 돌려차기 하는 것과 같은 환상적인 동작은 실전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권투에서 사용하는 잽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잽은 거리가 짧고 빠르며 명중률이 높다.



무술인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다양한 기술이 잽과 같이 효과적인 공격수단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첸 사범이 싸우는 걸 보면,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적게 움직이고 쓸데없이 기를 낭비하지 않는다. 난 그가 기를 어떻게 활용하는지 자세히 알고 싶었다. 내 무술 실력이 한 단계 발전하게 된 데는 큰 동작에서 작은 동작으로의 이동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체스공부의 '숫자를 벗어난 숫자'와 비슷한 개념으로써 기를 몸 안으로 모으는 과정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는 점점 모이고 과도한 동작은 점점 줄어든다. 난 이 방법을 '작은 동작과 정교한 기술'이라고 부른다. 이 개념은 체스와 무술을 배우는 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요소이다. 이 두 분야에서 선수들은 환상적인 기술에 집착한 나머지 정교함이 배움의 양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지 못한다. 분명히 내 적수들은 나보다 태극권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알고 있는 기술을 완전히 내 것으로 소화했다. 난 적중률이 높은 작은 동작을 취한 반면, 상대선수들은 대부분 크고 불필요한 동작을 취했다. 막상막하의 경기에서 약간이라도 더 정교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 이기게 마련이다. 최고의 선수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주 당연하게 보이는 기본기에 깊이 정통하는 것이다. 언제나 깊이는 넓이를 이긴다. 왜냐하면 깊이는 만질 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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