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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의 달인

한창욱 지음 | 눈과마음
설득의 달인

한창욱 지음

눈과마음 / 2008년 4월 / 279쪽 / 12,000원

머리글 아! 이방원이 설득의 달인이었더라면…….

고려 우왕 14년인 1338년, 요동 정벌을 위해 출정했던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군사를 돌려 개경으로 향했다. 이른바 '위화도 회군'이다. 이성계 일파는 우왕과 최영을 추방하고 정치적 실권을 장악했다. 이후 창왕과 공양왕을 차례대로 왕위에 올린 뒤 끌어들일 사람은 끌어들이고 문제의 소지가 있는 사람은 잡아 가두거나 처단하는 숙청 작업에 들어갔다. 새 나라를 세우기 위한 편가르기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난해한 장벽에 부딪친다. 정몽주라는 거목. 그는 외교에도 능통한 데다 백성들과 신하들로부터 신임을 얻고 있는 인물로, 끌어들이기만 한다면 나라를 세우는 데 여러모로 힘이 되리라. 그러나 이성계는 포은 정몽주의 꼬장꼬장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자신과 맞서기 위해서 반대 세력을 끌어 모으고 있다는 사실도 짐작하고 있었다. 제거하기에는 아깝고 그대로 두기에는 위험한 인물, 포은. 그를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이성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다섯째 아들인 이방원(훗날 '왕자의 난'을 거쳐 조선의 3대 임금인 태종이 된다)이 자신이 한번 설득해보겠노라고 나섰다. 딱히 대안이 없던 이성계로서는 대사를 이방원에게 맡기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이방원에게 맡긴 것이 왜 실수였을까? 이방원은 정몽주에게 시조 <하여가>를 보낸다. '이런들 어떠하며 저런들 어떠하리 /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 우리도 이같이 얽혀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 이 시조에는 이방원(당시 20대 중반)의 마음은 잘 드러나 있긴 하지만 정몽주(당시 50대 중반)의 처지나 속사정은 조금도 헤아리지 않은 일방적인 사랑 고백이다.



군자란 자고로 대의명분이 있어야 몸을 움직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하여가>에는 혁명에 대한 대의명분이 없다. <하여가> 하나로만 본다면 이방원에게 있어서 역성혁명은 백성을 위해서도 아니요,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아니다. 오로지 개인의 부귀와 안락을 위한 방편일 뿐이다. 이런 논리에 동조한다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다. 정몽주는 종1품 문화시중을 지낸 인물이다. 권력이나 재물도 이미 누릴 만큼 누린 사람에게 시정잡배 다루듯이 접근했으니, 어찌 그를 설득할 수 있었겠는가.

정몽주는 <단심가>로 화답한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 임향한 일편 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그리고 얼마 뒤, 선죽교에서 죽음을 맞았다. 조선의 정치 이념은 성리학이다. 성리학의 대가였던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가 개국공신이 되어 학식을 마음껏 펼쳤다면 조선의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정몽주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리고 죽음을 끌어안았다. 이방원의 <하여가>를 접할 때마다 아쉬움을 달랠 길 없다. 이방원이 설득의 기본만 알고 있었더라도 정몽주를 살릴 수 있었을 텐데…….



마음을 흔들어라



훌륭한 참모는 리더의 마음을 읽을 줄 안다 : 설득은 상대의 마음을 자신의 구미에 맞게 움직여야 하는 고난도의 기술이다. 무릇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마음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중국의 고전『삼국지(三國志)』에 등장하는 조조는 전국의 인재를 중용(重用)할 줄 아는 명석한 주군이었다. 그래서 그의 휘하에는 끊임없이 수많은 인재가 모여들었다. 군주로서의 카리스마를 타고난 조조는 모사가의 기질 역시 겸비한 인물이기도 했다. 이런 인물은 확신이 섰을 때도 쉬이 마음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어지간히 지혜가 깊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심중을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한마디로 모시기 어려운 상전이다. 그러한 조조의 참모 가운데 곽가(170~207)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스물일곱 살 때 순욱의 소개로 조조와 만난 이후 참모로 평생을 함께한 인물로 그 누구보다 조조의 속마음을 꿰뚫어 보았다. 조조는 곽가보다 열다섯 살이 많았지만 그의 능력을 알아보고 자신의 최측근에 두었다.



조정을 등에 업고 활개를 치던 동탁이 죽고 한나라 황제의 권위가 추락했을 때다. 각지에서 황건적의 잔당들이 날뛰면서 나라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동탁의 부하였던 이각과 곽사는 이러한 난세를 틈타 황제를 위협해 실권을 손에 넣기에 이르렀다. 난세에는 천하의 주인이 따로 없는 법이다.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천하를 호령하는 주인이 된다. 다른 사람이 천하를 가로챌까 안달하던 조조로서는 몹시 초조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장안성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던 조조에게 마침내 이각과 곽사가 서로 싸우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입안이 바싹바싹 말라 들어간 조조는 불안감을 달랠 길 없어 곽가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곽과 곽사의 싸움을 어떻게 보는가?"

"주공(조조)을 향해 부는 바람입니다. 천하는 주공께 의지하게 될 겁니다. 만약 주공께서 군사를 일으키신다면 두 사람은 힘을 합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천자를 등에 업고 있는 그들이 유리합니다." "이유는 단지 그뿐인가?"

"주공께서는 스스로를 천하에 바치고자 하십니까, 천하를 얻고자 하십니까?"

잠시 생각하던 조조가 대답했다. "자네가 짐작하고 있는 그대로일세."

"천하를 얻고자 하는 자라면, 스스로 다가가는 패기도 있어야 하지만, 때로는 천하가 제 발로 걸어올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기다려야 합니다." 조조는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

전쟁이 일어나면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은 평지가 아닌 지대가 높은 곳이다. 높은 곳을 선점해야만 적의 동태를 훤히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누군가를 설득하려면 그의 마음부터 선점해야 한다. 곽가는 조조의 최종 목적이 천하 제패라는 사실을 꿰뚫어 본 것이다. 이후 곽가는 조조에게 11년 동안 충성하다 서른여덟에 병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조조가 곽가를 천거해준 순욱에게 보낸 편지에는 곽가를 잃은 조조의 심정이 잘 드러나있다. "……날이 갈수록 잊히는 게 아니라 그리움만 깊어가는구려. 남을 안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인데, 그는 나를 잘 알고 있었소." 곽가는 조조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며 좋은 참모를 얻는 것이 리더에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를 보여준 인물이었다.



백 마디 거짓말보다 한마디 진실이 효과적이다 : 상대를 설득하는 데 있어서 진심처럼 확실한 무기는 없다. 진심 앞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무방비 상태가 된다.



불복종, 비폭력, 비협력, 무저항주의라는 독특한 운동으로 인도의 독립 운동을 이끌었던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변호사 출신이다. 삶의 전반에 걸쳐 진실을 추구했던 간디의 면모는 여러 일화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비록 내성적인 성격으로 인해 훌륭한 변호사로 활약하지는 못했지만 설득의 기본은 알고 있었다.



어느 날, 중년의 여인이 소년을 데리고 간디를 찾아왔다. 그녀가 간디에게 말했다.

"제 아들이 사탕을 너무 좋아해서 이가 모두 썩었습니다. 사탕을 못 먹게 타일러도 보고, 온갖 방법을 써봤지만 소용이 없습니다. 이 아이가 다른 사람 말은 듣지 않아도 선생님 말씀은 들을 겁니다. 제 아들에게 사탕을 먹지 말라고 말씀 좀 해주세요."

간디는 몹시 곤혹스러워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4주 뒤에 데리고 오십시오. 그때 가서 말해주지요." 여인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니, 왜 지금 말씀해주시지 않고……."

"그 이유도 그때 말씀드리겠습니다." 여인은 더 이상 캐묻지 못하고 돌아섰다.

4주 뒤 여인이 다시 아들을 데리고 간디를 찾았다. 간디는 그제야 무릎 꿇고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뒤에 말했다. "얘야, 더 이상 사탕을 먹지 말려무나. 사탕은 먹을 때는 달콤하지만 몸에 좋지 않단다. 이가 다 썩어버리면 맛있는 음식을 눈앞에 두고도 못 먹지 않겠니?"

간디는 아이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한 뒤에 신에게 축복을 빌어주었다. 아이가 밖으로 나가자 여인이 물었다. "선생님, 4주전에도 지금처럼 말씀해주셨으면 됐을 텐데 왜 다시 오라고 하신 건가요?" 간디가 대답했다. "실은 저도 사탕을 좋아해서 4주전에는 사탕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아이에게 사탕을 먹지 말라고 할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말을 잘해도 진심이 담겨 있지 않으면 강물 위를 떠가는 나뭇잎 같다. 확신이 서 있는 사람의 말 한마디는 확신 없는 사람의 말 백 마디보다 효과적이다.



인간의 뇌는 호기심에 목말라 있다 : 설득의 달인이 되기 위해서는 호기심을 자극하여 설득하는 방법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호기심을 느낄 때 집중력이 높아진다. 또한 호기심을 느끼면 마음속 방어 체제가 한순간에 해제된다.



춘추전국시대(BC 8세기에서 BC 3세기에 이르는 고대 중국의 변혁기) 중엽, 제나라의 대부 정곽군(BC 3세기경 인물로 제나라 재상을 지냄. 설 땅의 영주. 민심을 헤아릴 줄 아는 인자한 영주는 아니었다)은 설 지방에 성을 쌓으려고 했다. 측근들이 입을 모아 반대하였으나 그는 좀처럼 고집을 꺾지 않았다. 반대 여론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정곽군은 측근들을 모아놓고 엄포했다. "앞으로 이 문제를 언급하는 자와는 대면조차 하지 않을 것이니, 내 앞에서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라!" 그러던 어느 날 한 사람이 찾아왔다. "대부를 만나게 해주시오. 딱 한마디만 하리다. 만약 그 이상 말을 보탠다면 나를 끓는 가마솥에 넣고 삶아 죽여도 좋소." 시종의 이야기를 전해들은 정곽군은 호기심이 일어 사내를 만났다.



"그대가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가?"

"바다 속의 큰 물고기(海大漁)!"

사내는 그 말만 하고는 미련 없이 돌아서서 나가려 했다. 잠깐 생각해보던 정곽군이 다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거기 멈추어라! 대체 그게 무슨 뜻이냐?"

사내는 다급히 손바닥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괜찮다. 말을 해도 너를 벌하지 않을 터이니 '바다 속의 큰 물고기'가 무슨 뜻인지 말해보아라." 그제야 사내는 손바닥을 떼고 입을 열었다.

"대부께서는 바다 속에 큰 물고기가 살고 있음을 알고 계시지요? 그런 물고기는 너무 커서 그물로도 잡을 수 없고, 작살로도 잡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어도 물을 벗어나 올라오면 잡은 벌레들의 먹이가 될 뿐입니다. 제나라가 물이라면 대부는 대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만 떠나지 않는다면 그 안에서 천하를 호령하며 권세를 떨칠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께서 성을 쌓아 왕의 의심을 사려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성이 하늘에 닿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정곽군은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성 쌓는 일을 중단시켰다.



어지간한 풍랑에도 끄떡하지 않을 것 같은 정곽군의 마음을 흔든 것은 다름 아닌 호기심이었다. 정곽군은 호기심 때문에 '성을 쌓는 문제는 이미 확정됐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만다. 그 틈을 이용해서 '왜 성을 쌓지 말아야 하는가?'를 이야기하자 자신이 쳐놓은 논리의 그물에서 잠시 벗어나 그제야 득보다는 실이 많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감정이나 행동을 결정하고 나면 정당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생각과 행동이 불일치를 보일 때 끊임없이 갈등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정곽군을 설득한 남자는 그의 갈등상황을 이해하고, '일관성의 법칙'에 사로잡힌 뇌를 환기시켜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무기를 이용하라



열정은 설득의 훌륭한 무기이다 : 인간은 상대가 자신에게 베풀면 그에 상응하는 무엇인가를 베풀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는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상호성의 법칙'이라고 한다. 또한 인간은 스스로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을 때 기꺼이 마음을 열어준다. 그것은 외부의 강요와는 다르다. 이때, 열정은 인간의 마음을 여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유럽 예술계를 사로잡은 한 여인이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사도라 던컨(1878~1927, 미국의 무용가), 무용계의 이단아이자 혁명가였다. 기존 무용의 큰 줄기를 이루던 줄거리를 과감히 제거하고 인간의 희로애락과 상상력을 춤에 불어넣은 던컨은 또한 기존의 발레 음악 대신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작품 같은 순수 음악을 사용하였다. 전통 무용복이나 토슈즈 대신 스카프처럼 얇은 그리스 튜닉을 두르고 맨발로 춤을 추는 그녀의 몸짓은 신화 속 여신을 연상케 했다. 코르셋과 무용복, 토슈즈로부터 해방된 그녀의 춤은 '자유' 그 자체였다. 획기적이다 못해 파격적이기까지 했던 변화를 단행한 것에 대해 그녀는 춤의 여신처럼 당당하게 말했다. "무용은 어디까지나 자연적인 것이어야 해요. 자연의 아름다운 육체를 그대로 무대에 올려놓을 때만이 살아 있는 무용이 되죠."

이사도라 던컨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태생이다. 그녀는 자신의 조국에서 프로 무용가가 되고 싶었지만, 청교도사상에 젖어 있던 미국은 그녀의 춤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유럽행을 결정했다. 그것은 그녀가 춤으로 날 수 있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던컨은 뮌헨에서의 공연을 킨스틀러 하우스에서 하고 싶어했다. 그곳은 당시 뮌헨 문화생활의 중심지로, 매일 저녁 문화 예술계의 거장들이 모여서 철학과 예술을 논하는 예술의 장이기도 했기 때문에 가장 적합한 곳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한데 세기말의 화가이자 당시 뮌헨 아카데미 교수였던 프론츠 폰 슈투크가 던컨의 공연을 반대하고 나섰다. 킨스틀러 같은 신성한 예술의 전당에서 감히 춤판 따위를 벌이게 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던컨은 슈투크를 설득해야 독일에서의 공연이 순조롭게 진행되리라 예감했다. 고민하던 그녀는 일단 슈투크를 만나서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무작정 그의 집을 찾아갔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었지만 슈투크 역시 남다른 예술적 재능을 지닌 여인의 방문을 거절할 수만은 없었다. 던컨은 준비해 간 옷으로 갈아입고 오로지 그만을 위해서 춤을 추었다. 그런 다음 네 시간 동안 춤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결국 슈투크는 킨스틀러 하우스에서의 공연을 허락했다. 그는 나중에 친구들에게 이렇게 고백했다고 한다. "올림포스 산에 사는 숲의 요정이 불쑥 나타난 줄 알았어!" 던컨의 뮌헨에서의 데뷔 공연은 수많은 화젯거리를 불러일으켰고 당시 유럽 예술계에서 최고의 예술적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던컨이 슈투크를 찾아간 상황을 잠시 떠올려보자. 젊고 아름다운 던컨이 찾아가서 오로지 자신만을 위해 춤을 추었을 때, 슈투크는 마음속으로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리라. 물론 던컨이 상호성의 법칙을 알고 있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전부인 춤으로 슈투크를 설득하려 했으리라. 예술의 장으로 인정받는 곳에서 공연을 하고 싶은 간절한 바람은 춤에 대한 던컨의 열정에서 비롯되었다. 상호성의 법칙에 사로잡힌 슈투크로 하여금 결정타를 먹인 것도 바로 그녀의 열정이 아니었을까?



잠재의식 속에 숨은 전문가를 이용하라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소수의 움직임보다는 다수의 움직임을 좇는 경향이 있다. '다수의 행동은 옳다'는 인식이 무의식 속에 배어 있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사회적 인정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제3자의 말에 귀가 솔깃해지는 까닭 역시 여기에 있다. 상대를 설득해야겠는데 백 마디 말이 아무 소용없을 때는 그 방면의 전문가를 동원하라.



앙리 마티스(1869~1954. 프랑스의 20세기 표현주의 화가)는 초상화가인 외젠 카리에르가 강의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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