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에너지
웨인 다이어 지음 | 21세기북스
생각은 에너지다
"가장 위대한 업적도 처음 한동안은 꿈이었다. 참나무는 도토리 속에서 잠자고, 새는 알 속에서 잠자며, 영혼의 가장 원대한 꿈속에서 깨어 있는 천사가 돌아다닌다. 꿈은 현실의 씨앗이다."
- 제임스 엘런
규칙과 습관에 얽매인 일상과 만족스러운 생활을 원하는 꿈의 격차는 생활에서 마주치게 되는 중대한 불균형이다. 이 불균형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가슴앓이, 우울증, 질병, 불안 등 분명한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옆에 달라붙어 '뭐 잊은 건 없느냐'며 쉼 없이 속삭이는 귀찮은 존재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베일에 싸인 귀찮은 손님은 계속해서 관심을 끌고 우리를 성가시게하면서 균형을 되찾아주려고 애쓴다.
꿈꾸는 대로 살고 싶은 바람은 생각 에너지에 속한다. 꿈과 일상생활의 균형을 찾으려면 이 에너지를 잘 활용해야 한다. 먼저 생각 에너지와 새로운 관계를 다져야 한다. 그런 다음 우주를 향해 불균형을 바로잡을 기회를 달라고 외쳐야 한다. 그러면 현실에는 한계가 있지만 상상의 세계는 무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꿈과 현실이 조화된 환경에서 살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현실의 새싹들은 무한한 상상의 힘을 통해 뿌리를 내린다.
오스카 와일드는 "우리는 모두 시궁창 속에 있지만 더러 별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내 목표는 소외된 어린이를 돌보기 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라는 생각은 우주로 보내는 메시지다. 이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이곳에 왔다는 강렬한 기분을 느낀다면 그 꿈에 부합하는 에너지를 만들어야 한다. 상황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경제적인 형편도 중요하지 않다. 부정적인 사람들도 당신을 흔들리게 하거나 소명에 대한 이끌림을 의심하게 만들 수 없다. 생활을 꿈과 조화시키는 동안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이 공동의 창조를 시작한다.
공동 창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에 있는 생각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세상에서 하는 일을 순수한 창조의 에너지와 완벽하게 조화시킨다. 당신은 최대한 창조의 에너지와 비슷해지려고 노력하면서 그것을 모방한다. 우주는 '끌어당김의 법칙'을 따른다. 적당한 사람, 적당한 돈 등 당장 꿈을 현실로 만들 동시적인 사건들을 끌어당기려면 당신과 하나가 된 우주를 바라보아야 한다. 이처럼 정신세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생각과 조화를 이룰 때 적극적인 협력을 끌어낼 수 있고, 그때야 비로소 생활의 적극적인 에너지와 조화를 이루는 기쁨을 즐길 수 있다.
나사렛 예수만큼 이 문제를 잘 표현한 이도 없다.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면 얻을 것이다." 이처럼 조화로운 지혜를 거스르며 살아갈 이유가 있는가?
풍요의 법칙
"신은 우리가 모든 것을 갖기를 바란다. 우리가 인생을 살며 신이 정한 풍요의 법칙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은 물질이 풍부하게 있다고 믿을 때 즉, 신의 선물은 모두 공기와 햇볕처럼 자유롭고 충만하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뿐이다." - 어니스트 홈스
등불을 찾아야 할 때 멀리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어둠뿐이다. 어두운 곳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허비하고 어둠 속에서 발버둥친다고 불을 찾을 수는 없다. 성공에 대한 소망과 현실의 빈곤 사이에는 틈새가 존재한다. 빈곤의 문제는 무한한 풍요와 연결되어 있던 본래의 관계에서 자신의 믿음을 떼어내고 궁색하게 살기 시작하는 단순한 과정에서 발생한다. 이 빈곤은 '어둠'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풍요의 불빛을 바라는 소망과 생활방식 간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 변화해야 한다.
풍요를 끌어당기려는 바람은 매우 정신적인 것이다. 불균형은 풍요를 바라기는 하지만 적절하지 않은 생각을 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다. 다음은 가장 흔하게 풍요를 가로막는 7가지 생각이다: 첫째, "신은 풍요를 가져다주지 않는다." 둘째, "풍요는 제한되어 있다." 셋째, "나는 자격이 없다." 넷째, 나는 능력도 재주도 없다. 다섯째, "나는 불행하다." 여섯째, "나는 늘 이 모양이다." 일곱째, "나는 풍요를 생각하는 방법을 모른다."
앞에 인용한 어니스트 홈스의 말을 이해하기 쉽게 풀이하면, 신이 만든 풍요의 법칙을 이행하면서 각자의 인생을 살라는 것이다. 당신의 존재는 풍요라는 풍부한 근원에서 온 선물이다. 조화롭게 존재한다는 것은 이런 인식을 생각으로 확산하면서 인생을 사는 것과 같다. 기대감은 적절하게 조화를 이룬 생활을 앞당기는 데 도움을 준다. 수피파의 위대한 시인인 루미의 메시지는 근원으로부터 오는 메시지에 마음을 열고, 높은 기대라는 파장으로 하루를 시작하라고 설득한다. "새벽의 미풍은 당신에게 전할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다시 잠들지 말라."
나는 아침에 잠에서 깨면 늘 이 글을 기억한다. 새로운 날의 새벽에는 미풍이 내게 비밀을 알려준다. '조화로운 삶'은 그 비밀의 하나이다. 시도해 보라. 무엇을 하든 다시 잠들지 말라.
인생의 속도를 조절하라
"신에게 가까이 갈수록 세상에서 해야 할 의무는 줄어든다." - 라마 크리슈나
마음의 평화를 얻고 싶은 욕구와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성공하고 싶은 욕구 사이의 균형을 잡아주는 열쇠가 있다. 스트레스라는 것은 없으며, 단지 스트레스로 가득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뿐이라는 인식이 그것이다. 스트레스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단순히 행동을 바꾸는 것만으로는 조화로운 생활로 돌아가지 못한다. 사람들의 요구를 거절하고 꽉 짜인 살인적인 일정을 정리한다 하더라도 "나중에라도 그들의 요청을 들어줘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의 주파수에 반응한다. 이것은 두려움과 허무감을 부르는 끌어당김의 법칙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가장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이 바라는 것과 그것을 끌어당기기 위해 선택하고 있는 생각이나 진동 에너지를 하나로 만드는 방법이다.
평화는 생활의 속도를 줄일 때 최종적으로 얻는 산물이 아니다. 깨어 있는 순간 마주치는 모든 충돌과 사건에서 느끼고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가슴속 깊은 곳에 그릇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모든 생각이 흘러나온다고 상상해 보라. 이 그릇 한가운데에 촛불이 있다. 모든 생각을 담고 있는 이 불꽃은 눈앞에 최악의 상황이 닥쳐도 깜빡거리지 않는다. 당신은 어디를 가나 이 내면의 그릇을 가지고 다닌다. 사람들로부터 강요를 받거나, 주눅이 들거나, 고통이나 분노를 일으키는 상황이 발생할 때 당신은 내면에 있는 평화의 촛불을 바라보며 계속 불타게 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이런 태도는 조급증으로 고통받지 않는, 평온하고 평화로운 존재가 되고자 하는 당신의 소망과 일치한다. 급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닫게 되면 주위 사람들이 보이는 스트레스의 증상을 감지할 수 있다.
평화로운 사람은 주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평화롭게 살려고 결심한 사람과 같이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 때문이다. 평화는 더 높고 신속한 에너지이므로 평화로운 사람의 존재 자체가 주변 사람의 불안과 긴장을 한순간에 없앨 때가 많다. 실제로 이런 상황은 당신에게서 측정할 수 없는 에너지인 페로몬을 생성시킨다. 이 호르몬은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며, 그들은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눈치 채기도 전에 평화로운 존재가 된다. 당신의 생활에 균형을 회복하게 해주는 이 원리의 비결은 '스스로 평화가 되고 소망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타오르는 내면의 촛불로 평화로운 존재가 되기 위한 다음과 같은 3가지 훈련법이 있다: 첫째, 자신이 아닌 타인의 평화를 기원하라. 평화에 대한 생각만이 내면의 그릇에 담겨 있다고 상상하면서 어디서든 평화의 에너지를 주려고 노력하라. 둘째, 구하라. 성 프랜시스의 기도를 평화로운 존재가 되게 해달라고 구하는 데 이용하라. "나를 평화의 도구로 삼으소서." 이 기도와 함께 자아를 확장하여 더 높은 수준의 영적인 에너지가 자신의 균형을 조절하는 데 동참하게 하라. 셋째, 느리게 살아라. 마음을 느긋하게 먹음으로써 의식적으로 느리게 살려고 노력하라. 지금 살고 있는 그 자리에서 인생을 즐기기 위해 좀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라. 자연세계의 모든 것들을 바라보고 느끼라. 그런 다음 모든 사람들에게 느린 에너지를 전달하라. 아이들과 장난을 치고, 생각을 듣고, 책을 읽어주면서 가족과 함께 하라. 가장 사랑하는 이와 산책하며 당신이 그를 얼마나 아끼는지 말하라. 줄을 설 때는 다른 사람을 앞에 세우라. 노란 신호등이 켜지면 지나치지 말고 정지선에 차를 세우라. 2분 더 일찍 도착하겠다고광란의 질주를 하지 말고 일부러 느긋하게 운전하라.
이러한 훈련을 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의 증상을 덜 경험하므로 자신의 몸이 조화로워졌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균형은 삶을 더 생산적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어린 시절 이후 처음으로 평화가 찾아오고 생활에 풍요로움이 넘쳐흐를 것이다.
타인에게 비춰진 자신을 바라보라
"거짓된 모습으로 사랑받느니, 참모습으로 미움 받는 게 낫다." - 앙드레 지드
1970년, 웨인 주립대학교에서 여름학기 강의를 하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날 학생들은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었는데, 발표 중인 학생들의 행동을 보고 다른 학생들이 수군거리며 웃어대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이 우스운지 몰랐던 나는 학생들이 하나 둘씩 내 반응을 살피기 시작했을 때에야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학생들은 내 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한 학생이 허리띠를 아래로 밀어 내리고 배를 내밀며 사뭇 근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또 다른 학생은 칠판에 통 알아볼 수 없는 글자를 써놓고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하며 요란한 몸짓을 보였다.
그것은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혹은 내가 세상에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 일은 3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내 머릿속에 남아 있다. 내가 튀어나온 배를 집어넣고 미끈한 몸매로 가꿔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그 일이 있고 난 뒤였다. 웃음거리가 되고 나서야 강의실에서 독재적이지 않은 교수가 되는 방법을 어렵사리 배웠던 것이다. 물론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만족시키느냐에 존재의 의미를 둘 필요는 없다. 그러나 조화로운 사람은 만족스럽지 않은 평가를 마주하면 언제든지 스스로를 고치겠다고 결심한다.
당신의 목표는 매일의 행동과 상호작용을 통해 밖으로 보여주는 것과 내적인 진실 간의 조화를 이루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다음 요소들을 살펴봄으로써 자신의 균형 검사를 해보기 바란다: 첫째, "나는 사랑스러운 사람이다." 둘째, "나는 친절한 사람이다." 셋째, "나는 즐겁고 행복한 사람이다." 넷째, "나는 너그러운 사람이다." 자신의 모든 행동과 감정을 점검하는 동안 그것들이 당신의 자아상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면 불안해질 것이다. 그러면 자신의 소망에 일치하도록 습관을 바꿈으로써 생활의 균형을 찾겠다고 결심하기 바란다. D. H. 로렌스는 이렇게 말했다. "직관적으로 바라는 것은 실현될 수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나의 직관적인 소망은 내가 세상에 보여주는 모습과 같은가?" 그렇다면 당신은 균형을 회복하게 되며 그 보상으로 자기만족을 얻을 것이다.
건강을 끌어당기는 생각
"육신을 소홀히 여기지 말고 잘 보살피라. 육신은 신의 거처이며 신이 증명되는 유일한 장소이다." - 니사르가다타 마하리지
"열정을 다해 믿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창조할 수 있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은 우리가 열정적으로 소망하지 않는 것들이다." - 니코스 카잔차키스
건강 상태는 오로지 식습관이나 운동 부족 때문일까? 아니다. 그것은 믿음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열정적으로 믿으라고 설득한다. 소망은 믿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조르바는 열정적인 인물로, 처음에는 보디빌더와는 거리가 먼 몸을 가지고 있다. 건강한 몸으로 살아가고픈 소망은 갈망할 때만 실현된다. 자신이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의 행동과 믿음의 무게로 기울어진 저울의 균형을 바로잡으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디팩 초프라는 이런 말을 했다. "당신의 뇌는 행복에 관한 소식을 5200만 개의 세포 하나하나에 전달하는데, 이 세포들은 다 함께 기뻐한다." 지금 뜨거운 초콜릿을 얹은 아이스크림이나 생일 케이크 한 조각을 먹을 수 있다고 상상해 보라. 행복한 기분이 드는가, 아니면 한 입 베어 먹기도 전에 죄책감과 걱정이 앞서는가? 부정적인 믿음은 두뇌가 느끼는 기분 좋은 소식을 신체의 다른 부분으로 전달하지 못하도록 막을 수 있다. 그것은 행복하고 건강한 세포가 아니라 불행한 지방 세포가 되게 하는 믿음이다.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음식 섭취와 운동보다는 음식과 생활방식에 대한 믿음을 평가하고 변화시키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지금 하려는 행동이 자신의 몸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확신한다면, 그것도 카잔차키스의 말대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열정적으로 믿는 것과 같다.
다음은 현대 심리학의 아버지 윌리엄 제임스가 한 말이다. "심리학에는 법칙이 있다. 마음속으로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그리고 그 그림을 늘 간직한다면 머지않아 그 생각대로 된다는 법칙이다." 우리의 생각은 이처럼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신이 만든 건강하고 행복한 인간이다"라고 생각하고, 말하고, 믿으라.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건강하지 못하다는 예전의 생각이 남아 있더라도 그렇게 말하라. 그러면 존재하지 않는 것을 열정적으로 믿는 과정이 시작된다. 말로 표현한 소망을 확인하고 내면에서 현실화한다면 그와 똑같이 새롭고 자동적인 결과가 나타난다. 이런 과정을 거치고 나면 지금까지 생활 속에서 균형의 일부가 되지 않은 것들, 산책, 조깅 등을 자연스럽게 시작할 수 있다. 믿음에 따라 행동하므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도 그런 것들을 하게 된다. 당신은 음식이나 운동량이 아니라 생각 속에서 태어나는 자신에 대한 믿음에 따라 변모한다.
증오는 증오를 사랑한다
"악한 자를 바라보고 귀 기울이는 것이 악의 시작이다." - 공자
"네가 가진 선은 모두 신에게서 왔다. 네가 가진 악은 모두 너 자신에게서 왔다." - 코란
우리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세상이 온통 뒤죽박죽으로 돌아가고, 사악한 자들이 온 세상에 퍼져 있으며, 테러가 일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람들은 점점 더 폭력적으로 상대를 죽이기로 결심한 것 같으며, 신의 이름으로 자살 폭탄을 터뜨릴 어린이를 모집한다. 라디오, 텔레비전, 온라인 뉴스는 비인간적인 살상, 파탄 난 가족, 학교에서 살인을 저지르는 10대, 기차역에서 신성한 장소에 이르는 모든 곳에서 땅의 의식을 흔들어 깨우는 테러 집단에 관한 소식을 쉬지 않고 퍼 나른다.
언론의 보도가 날로 포악해지는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려는 소망은 정신적으로 조화로운 소망이다. 소망을 실현하려면 그 소망의 에너지와 일치하는 생각들을 자꾸 만들어내야 한다. 증오심은 당신이 바라는 평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없애고 싶은 것이 있으면 오히려 그것을 점점 더 끌어당기게 되는 법이기 때문이다. 수익을 올리는 데 혈안인 언론이 뉴스를 내보내는 중에도 당신은 미움에서 자신을 분리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미움에 빠져드는 쪽을 선택하는데도, 자신의 의무를 기억하고 자신의 일을 확인하며 조화롭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 '나는 신성한 창조물이야. 나의 모든 생각과 행동이 신성함에 연결되는 쪽을 선택하고 싶어.'라고 결심해야 한다. 자살 폭탄에 대한 대응으로 부상자를 보살피고 사망자를 애도하는 것은 좋다. 친척과 생존자들의 고통을 사진으로 상품화하지 말고 함께 슬픔을 나누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