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터 댄 굿(BETTER THAN GOOD)
지그 지글러 지음 | 베이스캠프
지그 지글러 지음
베이스캠프 / 2007년 10월 / 389쪽 / 14,000원
1부 '최고(better than good)'의 삶을 위한 열정
열정이 있는 곳에 열정이 머문다열정은 우리의 삶에서 그다지 중요한 요소로 취급받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위대한 업적 뒤에는 열정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평균적인 아이큐를 가진 사람이 학계에서 놀랄만한 성과를 달성하거나 평균적인 능력밖에 지나지 않은 운동선수가 우승을 하는 것은 그들의 능력보다는 열정에서 기인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람마다 열정 스타일에 차이가 있다. 어떤 열정은 사회에 큰 기여를 하는 반면 어떤 열정은 자신만을 위한 이기적인 것도 있다. 사회에 위대한 공로를 세운 사람들은 적절한 동기를 계기로 바람직한 공을 세우고,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목표를 추구한다. 조지 워싱턴 카버(George Washington Carver)가 바로 그랬다. 그가 단지 자신의 태생을 극복하고자 하는 데에만 노력했더라면 인류에 공헌하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조지는 1860년대 어느 해, 미주리 주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다. 그의 성은 당시 미국으로 건너온 독일인 이민자들의 성인 카버즈(Carvers)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민자들 중에는 수잔 카버라는 여성이 있었는데, 그녀는 노예제도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지만 아이가 없었던 탓에 메리라는 노예 한 명을 두었다. 그 노예가 아들 둘을 낳았으며, 둘째 아이가 바로 조지였다. 조지가 아직 아기였을 때 그와 어머니는 알칸사스의 게릴라병들에게 납치되었다. 그때 카버 부부는 메리 모자를 되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많은 애를 썼고, 도적들이 요구하는 만만치 않은 금액을 치렀다. 하지만 되돌아온 것은 지칠 대로 지쳐 허약해진 어린 아기뿐이었다. 조지의 어머니는 게릴라병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조지는 수잔 카버의 애정 어린 보살핌으로 겨우 살아났다. 하지만 병의 잔재가 그의 목소리에 영향을 끼쳤다. 그의 말소리는 사람들이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하지만 노예 신분으로 태어나 고아가 되고, 힘겨운 유년시절을 보낸 조지는 어떤 장애에도 굴하지 않고 담대했다. 열 살이 되자 조지는 카버 농장을 떠나 인근의 니그로 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어디에 머물러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지만, 학교에 가야 한다는 것만은 알고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학문에 대한 열정을 쏟았고 그 결과 최고 학부의 학생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게 되었다.
1881년에 카버는 부커 T. 워싱턴(Booker T. Washington)이 설립한 터스키기 기술학교의 연구원으로 일했다. 그곳 농학과의 수장으로 발탁된 그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끌며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보냈다. 카버에게 있어서 모든 피조물은 경이로움의 대상이었다. 그는 학생들과 매일같이 산책에 동행하면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난해함에 대해 세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예를 들어 평범한 잡초 하나를 꺾어 들고, 그 풀의 방부효과를 들어 면도를 하다가 난 상처 부위에 바르면 쉽게 아문다는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 젊은 학생들은 이러한 스승에게 좀더 많은 가르침을 받고자 했다. 하지만 백인과 흑인이 함께 공부하는 것을 금지한 앨리배마의 법으로 인해 백인 학생들은 카버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편지를 통해 가르침을 구했고 카버 역시 편지로 답신했다.
카버는 자연의 신비로움에 대한 연구 결과를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자 했다. 우선 그는 남부의 농부들에게 해마다 면화만 심을 것이 아니라 여러 농작물을 경작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에 따라 사람들은 땅콩을 심었고 땅콩의 수확량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카버는 땅콩을 대체할 만한 또 다른 신종 작물에 대한 연구와 더불어 땅콩을 이용한 새로운 가공품 연구에 돌입했다. 그 결과 우유, 버터, 치즈, 커피, 밀가루, 잉크, 물감, 비누, 목재 염료, 절연보드 등 땅콩을 이용한 무려 300가지가 넘는 신상품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카버의 연구가 여러 산업 분야에 걸쳐 변화를 가져오자 수천 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당시 헨리 포드는 10만 달러의 급여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조지는 이러한 기회를 모두 거절했다. 그는 오로지 자연만물에 대한 탐구에만 열정을 쏟았다.
조지 워싱턴 카버 박사의 자연 탐구에 대한 열정은 그를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자로 거듭나게 하였으며, 그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까지 멈추지 않는 활력의 근원이 되었다. 조지 워싱턴 카버는 연구에만 몰입하는 자신의 삶을 단 한 번도 지루하게 여긴 적이 없었다. 무수히 많은 연구 대상과 끊임없는 발견의 근원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아무 이유 없이 창조된 것은 없다고 믿었다. 자연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나름대로의 이유를 갖고 이 세상에 왔다고 믿었기에, 자연 탐구에 열정을 펼치고 가능한 많은 이들에게 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활용했다. 열정이 있는 곳에 열정이 머문다고 하는 내 말의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열정의 최고 유형은 열정의 대상으로 '최고(better than good)'의 것을 볼 줄 아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고(better than good)'의 삶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변화시킬 열정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삶이다.
스트레스는 열정을 훔치는 도둑이다열정의 적들은 기회만 주어지면 당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 중 좋은 것만 골라 훔치려 든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열정을 잘 훔치는 도둑은 바로 스트레스다. 스트레스는 우리를 현혹하기도 하며, 믿음을 부정하게 하기도 한다. 스트레스는 인체의 면역체계를 교란시키고 수면을 저해함으로써 모든 병에 대한 저항력을 떨어뜨린다. 그래서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면 병이 나고 병이 나면 업무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그로 인해 무능력한 인물로 평가될 수도 있고 결국 그것은 더 많은 스트레스로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그 스트레스를 얼마든지 다스릴 수 있기 때문에 우리의 열정을 지킬 수 있다. 문제는 '스트레스를 우리가 어떻게 피하는가?'가 아니라 '스트레스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어떻게 터득하는가?'이다. 몇 가지 방법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사서 근심하지 마라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스트레스를 안고 살아간다. 이를테면 아이들이 귀가 시간까지 왜 돌아오지 않는지, 일자리를 잃게 되지는 않을지 등의 근심을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계속한다. 나의 친한 친구이자 멘토인 프레드 스미스는 1942년에 전문적인 근심꾼이었다. 그는 근심을 안게 되면 잠자리까지 끌고 갔다. 당연히 잠이 올 리 없으니 커피라도 마시고 기분을 추스른 후 다시 잠자리로 돌아갔다. 그렇게 2년을 보내던 중 그는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았다. 그는 자신의 능력보다도 더 나은 일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일자리가 과분하게 여겨졌고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게 될까봐 업무의 매사가 걱정되었던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정작 일자리가 없다면 근심 걱정이 사라질까? 세상에 근심 걱정 없는 일자리도 있는가?" 그는 짧게 생각을 마무리했다. '근심을 기다려라!' 그 후부터 프레드는 최소한 근심할 일이 생겨날 때까지는 편하게 지내게 되었다.
다시 일어서라 : 보니 세인트 존 딘(Bonnie St. John Deane)은 한쪽 다리밖에 없는 스키선수였다. 그녀가 처음 장애인올림픽에 참전했을 때였다. 그녀와 같은 신체조건을 지닌 선수가 선두로 달리고 있었고 보니는 그 선수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 경쟁 선수가 골인지점을 목전에 두고 넘어졌다. 보니는 자신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달렸다. 그러나 그녀도 곧 넘어지고 말았고 결국 다시 일어선 경쟁 선수가 승리를 거머쥐었다. 친구들은 "그 선수가 너보다 조금 더 빨랐을 뿐이야"라고 위로했다. 이 말에 보니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야, 나보다 빠르진 않아. 나보다 먼저 일어났을 뿐이야!" 보니 세인트 존 딘은 최후의 승자는 가장 빨리 일어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보니는 그 후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로즈장학생이 되었으며 IBM세일즈 대표 상까지 수상했다.
쓰러지고 주저앉았다고 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다. 실패는 다시 일어서지 않는 것이다. 크게 실패하는 사람이 대체로 성공도 크게 하는 경향이 있다. 즉 인생에 있어서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는 성공했느냐 실패했느냐가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었느냐 하는 것이다. 실패는 인생의 스승이자 가정교사다. 실패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거기서 배움을 창출할 줄 아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하게 된다.
부채를 지지 말라 : 현대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혹은 허세를 부리느라 빚을 지게 된다. 하지만 그로 인한 부채는 오랜 시간 스트레스를 안겨준다. 간혹 우리는 스트레스를 풀겠다고 바람을 쐬러 나간다. 하지만 기분 풀러 나갔다가 도리어 카드만 긁고 들어와 그것을 또 어떻게 지불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머릿속만 더 복잡하게 뒤엉킨다.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원한다면 부채가 없어야 한다. 유능한 재정 카운슬러인 래리 버켓(Larry Burkett)은 카드부채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신용카드를 현금처럼 생각하며 쓰라고 말한다. 그달 이용한 카드대금은 그 달에 전액 일시불 처리하고 만약 카드대금을 지불하지 못하면, 곧바로 카드를 오븐에 올려놓으라고 말한다. 부채를 갚기 위해서는 몇 달이 걸릴 수도 있고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러나 부채로부터 벗어난 자유로움은 '최고(better than good)'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맛보게 해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 :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과 가까이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 두려움은 토네이도나 검은고양이 혹은 롤러코스터와 같은 것에 대한 두려움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는 두려움은 삶이라는 위대한 모험에 대해 내면에 잠재해 있는 감정들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 통제력을 잃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 등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미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현실에만 얽매여 산다. 이러한 인생은 한 발은 부두에 또 한발은 떠나려는 배 위에 두고 있는 형상과 같다. 미래는 누구에게나 미지의 대상이다. 우리는 미래가 '무엇을' 움켜쥐고 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누가' 미래를 움켜쥐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고 있다. 사서 근심할 것이 아니라면, 이제 벌떡 일어서라. 정직하게 살고, 빚지지 말고, 두려움 대신 믿음을 가지고 미래를 맞아라. 그리고 웃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전염시키는 사람이 되라. 그러면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게 되고, 스트레스가 감소하면 열정은 자연스럽게 증가하게 된다.
2부 '최고(better than good)'의 삶을 위한 실행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계획이 있어야 한다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진정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모두 인생을 하나의 여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에게 인생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이기에, 성취 또한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 가느냐와 관련이 있다. 우리는 앞길을 밝혀줄 서치라이트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나아가는 앞길에 놓인 굽은 길을 모두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편안한 여정이 될 것인가.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 어떤 창조성도, 지략도, 용기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최고(better than good)'의 인생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전 여정을 밝게 비춰 볼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첫발을 내디딜 곳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플로렌스 채드윅(Florence Chadwick)은 프랑스에서 영국까지 수영으로 횡단한 최초의 여성이다. 그녀는 1950년에 양국 간의 해협을 횡단했고, 그 다음해에는 영국에서 출발하여 이전과 같은 거리를 횡단했다. 그리고 2년 후인 1952년 7월 4일, 채드윅은 카탈리나 섬에서 캘리포니아 서부 해안까지 21마일을 횡단한다는 놀랄 만한 목표에 임했다. 그런데 그날은 안개가 너무 심했다. 차가운 수온도 문제였지만 안개가 너무 자욱해서 상어로부터 그녀를 보호해주기 위해 함께 동행하던 배들조차도 식별하기 어려웠다. 15시간을 멈추지 않고 나아가던 채드윅은 마침내 차가운 수온과 피로에 지쳐 자신을 호위하던 배를 불렀다. 선상위에 서있던 그녀의 어머니와 트레이너는 목표지점에 거의 다다랐으니 조금만 더 참아보라고 격려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국 물 밖으로 끌어올려졌다. 나중에 채드윅은 자신이 포기한 지점이 목표지점에서 겨우 반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채드윅을 포기하게 만든 것은 거리도 아니고 차가운 바닷물도 아닌 바로 안개였다. 그녀가 안개로 인해 시야를 잃었을 때 그녀는 계속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까지 잃었던 것이다. 두 달 뒤 채드윅은 카탈리나 섬과 캘리포니아 해안까지의 횡단을 다시 시도하여 새로운 기록을 올렸다. 물론 그날은 안개가 전혀 없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목표물이 예상치 못한 그 어떤 것에 의해 가려지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정서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러므로 목표물을 항상 시야에 고정시켜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지속적으로 진행상황을 검토하고 확인해야 한다. 목표를 세우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자신이 세운 목표가 달성될 경우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를 그려보는 것은 큰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목표물을 언제나 시야에 두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내 친구 휴 모튼(Hugh Morton)의 이야기만큼 자신의 목표를 그리는 원칙을 쉽게 설명해 줄 예는 없을 것 같다. 휴의 인생은 길고도 돌아서가는 여정이었다. 휴는 젊은 시절 승자보다는 자신의 자리를 겨우 유지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30대 후반 동창회 참석을 계기로 그의 인생은 변화하게 되었다. 당시 휴가 동창들을 만났을 때 그들 중 적잖은 이들이 의사, 변호사, 비즈니스 CEO 등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그날 충격을 받은 휴는 자신도 그들처럼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휴 모튼은 먼저 건강을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는 3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고혈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목표를 위한 첫 번째 실행으로 그랜드캐니언을 하이킹 할 것을 결심했다. 그는 이 목표를 달성하자 다시 파이크봉(Pike's Peak)에 도전했다. 그런데 그 무렵 한 일행이 에베레스트 등정에 나선다는 소식을 들었다.
1986년, 휴 모튼이 에베레스트로 떠날 결심을 했을 때, 그는 일과 부양해야 할 가족문제 사이에 서 있는 상태였다. 그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선 자신을 그려보기 시작했다. 정상에 이르기까지는 숱한 도전이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 산에 오르려는 노력과 같은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인생에서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하리라고 생각했다. 휴는 아내의 양해를 얻고 우선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고산에서 훈련에 임했다. 그는 낮은 암벽등반부터 시작하여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처럼 한발 한발 내딛기를 시도했다. 훈련을 끝내자 휴는 에베레스트 등정에 도전했고, 그로부터 5년 반이 지난 마흔네 살에는 34킬로그램이나 나가는 무거운 배낭을 등에 진 채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했다. 그리고 세계 7대륙에 분포한 최고봉을 차례로 오른 전 세계 69명 중 한 사람이 되었다.
에베레스트에서 돌아온 휴 모튼은 부동산 개발과 주택 건설업 분야에 뛰어들 목표를 세웠다. 그는 그 목표를 향한 5개년 계획을 마련했고, 계획에 따라 지속적인 발전을 이어갔다. 그는 모기지, 부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