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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 포스

양창순 지음 | 흐름출판
Force 01. 모든 일은 마음을 여는 데서 시작된다

사람에 따라서는 백일몽을 꾸기도 한다. 딜레마에 빠진 내 인생에도 마법이 일어나 로또 복권에 당첨되든지, 요정이 나타나 "당신을 구해줄게요. 소원을 말해보세요" 해주길 바란다. 정말 내 인생에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면 어떨까? 대신 요정이 소원을 한 가지밖에 들어줄 수 없다고 한다면? "뭐라고! 내 소원이 몇 가지나 되는데, 달랑 한 가지만 들어준다고? 그런 선택을 강요하다니, 차라리 고문을 하세요!" 그러나 오로지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내 선택은 정해져 있다. 나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열 수 있기를 바란다.



'마인드 오픈' 내가 남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바꿀 수 있다. 내 인생이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 성장과 발전을 향해 나아가려면 당연히 나를 바꾸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인생에 대해 마음을 열어야 한다. 물론 말처럼 쉽진 않다. 하지만 조금씩이라도 마음을 열면, 하는 일마다 순조롭게 진행된다. 마음을 열고 세상과 정면으로 마주 할수록 내면의 힘이 큰 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차츰 긍정적인 에너지가 마음을 채우는 것을 느낄 수 있고 인생 최대의 딜레마인 불안과 인간관계의 갈등에서도 자유로워진다.



상대방의 속마음을 백만 분의 일이라도 알 수 있으려면 상대방이 마음을 열기 전에는 불가능하다. 물론 짐작할 수는 있지만, 얼마나 진실과 맞아떨어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오해와 갈등이 생기고 인간관계는 여전히 난해한 과제로 남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다. 서로 마음을 여는 것이다. 즉, 관심을 갖는 것이다. 관심이 없으면 그 무엇도 보이지 않는다. 들리지도 않는다. 배추나방의 애벌레, 길가의 풀 한 포기도 내가 관심을 기울이기 전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먼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러면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사람과의 관계가 보인다.



이용진 씨는 객관적으로 흠잡을 데가 없었다. 그가 하는 이야기도 구구절절 옳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와 어울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잠시라도 함께 있으면 숨이 막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건 이래서 틀리고 저 사람은 저래서 나쁘다면서 무슨 일에나 논리나 원칙을 들이대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골프 용어에 빗대어 '벙커'라고 불렀다. 물론 그는 자신이 벙커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옳고 바른 행동만 하는 내 말을 안 듣는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다는 것이 그의 논리였다. 그의 문제는 너무나 나만의 관점, 나만의 눈으로만 세상을 재단하려는 데 있었다. 그러니 누구든 그와 있으면 숨이 막히는 것이 당연했다.



이런 의미에서 마음을 연다는 것은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넓고,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다양하며, 인생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일이 일어난다. 그런데 '이건 틀렸어, 알 필요가 전혀 없어' 하고 마음의 문을 닫으면 어떻게 될까? 그만큼 세상에 대한 시각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마음을 열면 친밀감을 느낄 수가 있다. 인생에서 무언가에 마음을 열고 관심을 기울이고 받아들이고 의미를 부여하면, 저절로 생기는 것이 바로 친밀감이다. 사는 게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바로 누군가와 따뜻한 친밀감을 나눠 갖는 때가 아닌가.



마음을 열면 좋은 점이 무척 많다. 그중 하나가 스트레스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원인은 사람마다 다르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에게는 등산이 스트레스다. 반대로 등산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사람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을 힘들게 하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는 아니다. 바로 그 일과 연관된 생각, 감정, 경험, 기억들이 스트레스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에픽테투스(Epictetus)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일어난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우리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몸과 마음이 따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몸은 현재에 있으면서 마음은 과거에 가 있기 때문에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것이다. 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마음의 지배를 받는다. 실제로 우리의 몸은 상상 속의 일과 실제로 겪은 일을 구분하지 못한다. 즉, 무서운 영화를 보았을 때 몸은 진짜 무서운 일을 겪은 것처럼 똑같이 반응한다. 그러므로 몸의 건강을 위해서도 스트레스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마음을 연다는 것은 긍정주의자가 된다는 것이다.



나를 세상과 연결하는 고리는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다. 내 눈으로 보고 내 귀로 듣고 내 손으로 세상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중한 나를 발전시켜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꽃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물도 주고 햇볕도 쬐어줘야 한다. 이처럼 유일한 나로서 빛나기 위해서는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세상이 주는 기회를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면 어느 순간 성공의 문도 활짝 열린다.마음을 여는 것은 성장하고 발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인생의 경험에 마음을 여는 순간부터 누구든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꿈꾼다. 자연스럽게 더 나은 나, 더 좋은 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지금은 돌아가셔서 뵐 수 없지만, 가장 존경하는 선생님 댁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두 번 놀랐다. 선생님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대학의 주임교수를 맡고 계셨다. 그런데 생각 외로 집이 작고 소박했다는 데 놀랐다. 그리고 집에 비해 크고 넓은 유리창 때문에 또 한 번 놀랐다. 그 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내 마음의 창이 넓다면 내가 사는 세상도 더 잘 보이고, 다른 사람이 나를 볼 때도 시원하다고 느끼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Force 02. 내 안의 긍정 에너지 되살리기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자기중심적인 존재다. 따라서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를 소중하게 여길 때 남에 대한 공감과 배려가 생긴다. 내가 없으면 이 세상도 없다. 곧 내 자아가 우주의 중심이란 의미다. 이와 같은 개념에서 보면, 이 세상 사람들은 모두 각자 그들만의 우주를 갖고 있다. 그 우주의 핵이 바로 나르시시즘이다. 따라서 우리는 각자의 나르시시즘을 존중하고 거기서부터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넓혀나가야 한다. 요즘 혈액형이나 점성술, 사주팔자 같은 것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역시 나르시시즘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사람이 태어나는 것이 우연이 아니라 우주의 기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다. 그만큼 나는 소중한 존재인 것이다. 실제로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은 없다. 그만큼 나는 특별한 존재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점이 남는다. 나르시시즘이 삶의 핵심이라면 우리는 어째서 나를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는 일에 그토록 어려움을 겪는 것일까? 어째서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나 자신에게 낙담하고 좌절하는 걸까? 그 해답 역시 내 마음속에 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쓸데없는 노폐물들이 너무 많이 쌓여 있다. 우리가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이유는 이 노폐물들 때문이다. 내 마음에 노폐물들이 쌓여 있으면 당연히 마음을 열어 보여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의 노폐물들이 보이지 않도록 꾹꾹 문을 닫아놓는다. 그렇다고 영원히 보지 않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대개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부유물이 떠오른다. 그것이 눈에 띄는 순간, 낙담과 좌절을 경험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즘 메디컬 드라마가 인기다. 특히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를 보고 있으면 의과대학 시절, 해부학이나 병리학 시간이 떠오른다. 그때 본 인간의 몸은 그야말로 하나의 소우주였다. 세포 하나하나 오묘하지 않은 것이 없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마음 역시 마찬가지다. 해부학 시간에 들여다본 몸의 구조만큼이나 마음 역시 다층적이고 오묘하다. 일차적으로 마음은 의식과 무의식으로 나뉜다. 그것을 맨 처음 발견한 사람은 프로이트(Freud)다.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함으로써 그는 적어도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다층적인지를 밝혀냈다.



그렇다면 다층적이고 복잡한 마음에 소용돌이가 지나가고 나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많은 노폐물들이 쌓인다. 우리 몸이 병들 때는 언제인가? 일차적으로 섭취한 영양분과 활동량의 균형이 맞지 않을 때 우리 몸에 여러 가지 노폐물이 쌓이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운동이나 다른 활동을 통해 적절하게 몸 밖으로 내보내지 못할 때 병에 걸린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다. 한번 마음을 들여다보라.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마치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듯이 왔다 갔다 하는지를. 밀물이 밀려왔다가 빠져나간 자리에는 쓰레기가 많이 쌓인다. 그런 것처럼 불필요한 걱정, 근심, 불안, 분노, 두려움, 공포 등 부정적인 요소가 쌓인다. 그 노폐물을 적절하게 배출하지 못할 때 마음은 병이 든다.



어느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출연자와 진행자가 서로 쉬지 않고 질문을 하는 코너를 본 적이 있다. 규칙은 딱 하나였다. 상대방이 어떤 질문을 해도 거기에 대답을 해서는 안 됐다. 속사포처럼 질문을 계속 하는 사람이 결국 이기는 게임이었다. 이 게임에서 지는 경우는 다음 질문을 생각해내지 못해서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상대방의 질문이 이 사람의 무의식적 상처를 건드리는 경우였다. 그러면 반발하거나 그것에 대해 설명하고 싶은 욕구가 생겨서 그만 멈칫하게 되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그런 순간을 경험할 때가 종종 있다. 상대방이 하는 말이나 사소한 행동, 어느 때는 단어 하나 때문에 마음이 불편해지거나 변명하고 싶은 욕구를 느낄 때가 있다. 이는 마음속에 열등감이라는 노폐물이 있을 때 그런 현상이 생긴다. 열등감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나만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자 없는 사람이 없듯이, 자기만의 비밀이 없는 사람은 없다. 실수도, 자책도 하지 않고 후회 없는 삶을 사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실수를 숨기고 비밀을 만들어 가느라 전전긍긍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나는 상처를 잘 받아요"라고 하는데, 이는 "나는 열등감이 심해요" 하는 말과 같다. 이런 사람들이 상처를 잘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남들이 하는 이야기, 눈 길 한 번, 행동 하나하나를 다 자신과 관련지어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생이라는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도 불필요한 열등감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열등감이 아주 교묘한 형태로 나타날 때도 많다. 특히 뿌리 깊은 열등감일수록 180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런 현상을 정신과 용어로 '반동형성'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남자다움에 대해 열등감이 있는 사람은 지나치게 몸을 단련하고 사내다움을 뽐내려고 한다. 불안 심리가 가장 극적으로 고조되는 때가 있다. 바로 연애할 때다. 특히 일부러 못된 짓을 해서 상대방이 자신을 떠나도록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경우도 알고 보면 반동형성 심리가 원인이다. 즉, 열등감이 클수록 상대방이 그것을 알까봐 불안해 한다. 사이가 깊어져서 상대방이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되면 분명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결국 이런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어서라도 먼저 상대방에게 못된 짓을 하고 만다.

감정이란, 나와 세상 그리고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에 대한 느낌을 말한다. 좋다, 싫다, 행복하다, 불행하다, 두렵다, 불안하다 등의 감정 역시 내가 의식을 하든지 안 하든지 간에 계속 작동한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싫은 사람은 피하고 좋은 사람 옆에는 더 다가가며,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서는 도망가고 행복감을 느끼는 일은 더하고 싶게 만든다. 그런데 이런 감정이 상황에 맞지 않게 작동하면 어떻게 될까? 마음에 노폐물이 쌓이게 된다. 감정은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진폭이 달라진다. 분명 외부의 사건으로 생긴 불안은 미미하다.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소모되는 에너지도 적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열등감을 느끼거나 다른 일 때문에 이미 화가 난 상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만큼 더 커진 감정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소모되는 에너지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즉, 감정의 폭이 넓을수록 마음이 해야 하는 일이 많으므로 노폐물이 축적되기 쉽다.



산다는 것은 하루하루 힘든 일의 연속이다. 당장 해결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들이 산적해 있을 때도 많다. 그런데 감정의 노폐물까지 문제를 일으킨다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에너지는 고갈되고 집중하는 힘도 사라진다. 그런 상태가 오래 되면 흔히 말하는 노이로제에 걸리게 된다. 독일의 정신의학자 카렌 호나이(Karen Horney)는 노이로제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노이로제란 자기가 원하는 목표와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상태를 말한다. 그런 상태에 놓인 사람은 불필요한 마음의 짐과 싸우느라 에너지를 낭비한다. 따라서 정작 현실적인 일에 에너지를 쓰지 못하므로 잠재력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것을 기대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청중 앞에서 무언가를 발표하게 됐다고 하자. 그때 발표하는 상황에만 집중하면 준비한 것들을 유감없이 보여줄 수 있다. 그런데 '청중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졸고 있는 걸 보니 내 발표가 재미없다는 건가?' 하다 보면 도대체 자기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게 된다. 그럴수록 더 집중하지 못하고 불안해 져서 결국 발표는 엉망이 되고 만다. 그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먼저 감정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야 한다. 찌꺼기가 쌓여 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그때그때 해결해야 한다. 집안 청소를 미루지 말고 제때에 해야 하는 것처럼, 마음속 노폐물들도 그때그때 처리하는 것이 가장 좋다. 부정적인 감정은 음습한 곰팡이와도 같다. 한 번 싹트기 시작하면 머지않아 전체로 퍼져나가 모든 상황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활력과 에너지도 앗아간다. 더 나쁜 것은, 나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으로까지 몰고 간다. 그렇게 되면 금세 무기력과 게으름으로 인생이 지리멸렬해진다. 우리 내면에서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가 커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현재의 감정에 대해 이차적으로 발생하는 감정 때문이다. 다시 말해, 내가 불안하다는 것 때문에 더 불안하고 우울하다는 것 때문에 더 우울해 한다.



다행히 이런 악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는 방법이 있다. 감정에도 최소최대의 경제법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즉, 에너지를 부정적인 감정에 낭비하지 않는 것이다. 기쁨을 맞이하면 누구나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인다. 그런 자연스러운 반응에는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 단순히 기뻐하면 되기 때문이다. 즉, 최소의 에너지를 가지고 최대의 효과를 내는 것이다. 반대로 부정적인 감정 앞에서는 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이기가 어렵다. 대개 그런 감정을 억누르거나 분노를 표출하거나 둘 중 하나다. 어느 쪽이든 에너지를 과도하게 쓸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비경제적인 상황이다. 우리가 최악의 상황에서도 좋은 면을 보려고 애써야 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좌절의 순간에도 1인치의 좋은 점을 찾아낸다면, 우리는 부정적인 에너지에 압도되지 않는다.



Force 03. 마인드 포스로 탄탄한 마음 만들기

마음속 노폐물을 걸러내는 데는 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방법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생각들을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노폐물들이 꽤 걸러진다. 정신과에서는 이것을 마음의 환기라고 한다. 방 안에 탁한 공기가 가득 차 있으면 우리는 창문을 활짝 열어놓는다. 그런 다음 바깥의 신선한 공기가 들어와 방 안이 환기되기를 기다린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로 환기가 필요하다. 그 작업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가 바로 언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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