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MBA의 경영수업
여한구 지음 | 더난출판
학위 수집가는 사절
"하버드에서 이미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데 왜 MBA를 지원했죠?" 면접관이 안경 너머로 의아해 하는 눈빛으로 물었다. 한국의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정부 장학금으로 하버드 케네디스쿨 과정의 졸업을 눈앞에 두고 있으면서 서른을 넘긴 나이에 또 MBA 과정에 진학하겠다니 이상하게 보는 것이 당연했다. 나는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외환위기 당시 정부에서 기업 구조조정 업무를 담당하면서 제 자신이 경영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자책이 들었습니다. MBA 과정을 통해 기업 현실에 대해 공부하고 경험을 쌓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학교보다는 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보다 효율적인 방법 아닐까요?"
미국인들은 가방 끈 긴 것을 좋게 보지 않는다. 학자가 될 게 아니라면 현장에서 빨리 일을 배워 성과를 쌓아야 그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는다. 그런 미국인의 시각에서 회사에 다니면서 시간을 내어 학위를 취득하려고 하는 한국인들이 학위 수집가처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면접관의 눈초리에는 '바로 당신이 학위 수집가 아니냐' 하는 의문이 묻어 있었다. 취조 받는 것처럼 긴장된 시간이 흐른 뒤 면접관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작년에 한국 대기업을 방문했는데 세계적인 기업의 경영자들이 기본적인 영어도 못하더군요. 여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과거에는 그랬지만 앞으로는 아닙니다. 저 역시 외환위기가 없었다면 굳이 미국에서 MBA를 하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외환위기를 계기로 글로벌 경제를 배우기 위해 한국의 많은 젊은이들이 미국 MBA 과정으로 유학을 오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외환위기는 한국에게 숨겨진 축복입니다." 답변이 끝나자 면접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고, 결국 그 미소는 내게 하버드 비즈니스스쿨(HBS)에 들어가는 문을 열어주었다.
300자 안에 당신의 인생이
HBS에 입학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중 인터뷰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것이 에세이다. 수많은 경쟁자들 가운데 개인의 독특한 스토리를 드러내는 것은 흰 도화지 위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다. 입학 사정관이 큰 비중을 두며 읽는다는 사실 때문에 에세이 작성 과정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더 고통스러운 것은 각 주제에 대한 분량이 300자로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정신없이 써놓고 보면 500자, 1000자를 훌쩍 넘기기 일쑤인데, 그렇게 쓴 것을 줄이고 또 줄일 때마다 제 살을 깎아내는 아픔을 느낀다. 힘들게 줄이고 난 후에도 핵심이 전달된 것 같지 않으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체득하는 것은 치열한 비즈니스 현장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짧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훈련이다. 세계 최고의 인재가 모이는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는 30초 룰이라는 것이 있다. 고객 회사의 CEO를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나 출입구까지 내려가는 30초 동안 설득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 사실 비즈니스 관계로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미국인들은 서두에 강렬한 메시지를 던져 상대의 주의를 환기시킨 다음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어법을 많이 구사한다. 중국의 고사성어에 촌철살인이라는 말이 있다. 미국 비즈니스스쿨 입학에도 이렇게 단 300자가 중요한 것을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의 간결성을 강조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다.
세계를 변화시킬 리더를 꿈꾼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HBS)은 '세계를 변화시킬 리더 양성'을 목표로 한다. HBS는 비즈니스스쿨이지만 비즈니스계에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를 변화시킬 리더를 양성하는 리더십 학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HBS 입학 에세이를 쓸 때는 자신이 이제까지 학교와 직장에서 어떻게 리더십을 키워왔으며, 미래에는 어떤 목표를 갖고 사회에 도움이 될 리더가 될 것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입학생의 면면을 보면 학력과 경력 면에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다양하다. 실리콘밸리의 젊은 창업가, 월스트리트의 투자은행가와 컨설턴트, 종합병원 외과의사, 촉망받던 발레리나,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 AIDS 계몽활동을 폈던 인권운동가, 각기 다른 영역에서 온 이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장래 자기 분야에서 리더가 될 수 있는 가능성과 자질을 증명했다는 사실이다.
미래의 리더들을 모아 교육을 시키다 보니 현재 전 세계적으로 6만 5천 명의 HBS 동문들이 글로벌 기업, 정부, 국제기구, 비영리단체, 사회사업 등의 다양한 분야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HBS 출신의 세계적 CEO로는 GE의 제프리 이멜트, GM의 릭 왜고너, 전 IBM의 CEO 루 거스너, 이베이의 맥 휘트먼 등이 있으며, 정계에서 활약하는 동문으로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MBA 출신 대통령 조지 부시, 재무장관 헨리 폴슨,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 멕시코 대통령 비센테 폭스 등이 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 1989년 천안문 사태의 학생 리더 차이 링, 전 NASA 우주인인 윌리엄 앤더슨 등은 독특한 길을 걸은 동문이다.
품질은 우리가 책임집니다
HBS의 최고에 대한 집착은 교과과정의 설계 및 일반 회사들의 리쿠르팅에 대한 학교 방침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HBS의 교과과정은 혹독하기로 유명하다. HBS는 현대 경영학 교육에서 많이 사용되는 케이스 교습법의 발상지로 학생들은 졸업할 때까지 수백 개의 기업 사례를 분석해야 한다. 기업현장의 실제 상황들이 제시되고 학생들은 CEO의 입장에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를 난상토론한다. 평가의 절반이 수업 시간의 발표와 토론으로 결정되므로 학생들은 서로 발표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한다. 상대평가이기 때문에 과목당 10%의 학생들은 낙제점수를 받으며, 한 학기에 두 개 이상의 과목에서 낙제를 받으면 학사경고, 다음 학기에도 개선되지 않으면 학교를 떠나야 한다.
학사관리가 철저한 만큼 HBS는 학생들을 고용하려는 기업에게 성적표 제출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공식 방침을 정해놓았다. "학생들의 품질은 우리가 철저히 관리하므로 성적을 요구하지 마시오. 꼴찌도 품질을 보증합니다." 어찌 보면 오만으로 보이지만 이런 배경에는 성적을 공개하면 학생들 간의 학점 경쟁으로 인해 리더를 양성하고자 하는 MBA 프로그램 본래의 취지가 흐려질지 모른다는 우려도 작용했다. 실제로 이 규정을 어기고 학점을 요구한 몇몇 기업들이 학생들의 신고로 발각되었고, 다시는 리쿠르팅 목적으로 HBS 캠퍼스에 발을 붙일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수십 년을 내려왔던 학점 비공개 원칙도 최근 학교 방침의 변화로 사라지게 되었다. 치열한 찬반 논쟁 끝에 폐지 쪽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과연 이런 변화가 수업 분위기나 학생들 간의 팀워크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그 결과가 주목된다.
HBS의 저승사자
"Hit the screen!" 이 말은 낙제 위기에 처했다는 뜻으로 HBS가 운영하는 독특한 낙제 시스템이다. 최소기준에 못 미치는 학생은 낙제를 시켜서라도 졸업생의 평균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HBS의 학점제도는 1,2,3제로 학점을 매긴다. 1은 상위 15~20%, 2는 중간 70%, 3은 하위 10~15%의 강제분포로 평가한다. 중간 그룹에 대한 관리는 느슨한 반면 하위 그룹에 대한 평가는 혹독하다. 평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수업에서의 발표인데 전체의 50%를 차지한다. 따라서 경쟁이 매우 치열하다. 교수의 말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공중에 솟구친 50~60명의 손들을 보면 기가 질린다.
과도성취형 스타일인 HBS 클래스에서 확률상 3을 받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2학기 연속 3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바로 Hit the screen 하게 되고 학사성과위원회의 낙제 심사에 들어가게 된다. 1학년이 끝나면 슬그머니 사라지는 학생들이 있다. "회사에 사정이 생겨 돌아갔다." "가정 문제로 본국에 돌아갔다." 등의 소문이 들리지만 과연 그런 사정 때문인지, Hit the screen 한 것인지는 본인만이 알 수 있다. 이런 1학년 학생들의 노이로제를 반영해 기말고사를 앞두고 학교신문(Harbus)에 다음과 같은 기고문이 실린 적이 있다.
"어제 교수에게서 90명의 학생 중 5명 이상이 hit the screen 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은행은 매월 험악한 이자 청구서를 보내지, 커리어서비스는 내게 10억 년이 지나도 좋은 직장을 구하기 힘들 것이라고 하지.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가라고. 교수의 말은 매일 밤 엄마에게 전화해서 왜 나를 낳았냐고 불평하거나 아니면 머리로 기숙사 벽을 박아 금이 갈 정도로 크게 동기부여를 했다."
공포의 콜드콜
HBS MBA 과정에서 전설처럼 내려온 콜드콜의 전통은 케이스 수업의 불가결한 요소이다. 콜드콜이란 원래 물건을 팔기 위해 예고 없이 전화(또는 방문)를 하는 것을 말하지만 HBS에서는 수업을 시작하면서 교수가 예고 없이 학생을 지목해 질문하는 것을 말한다. 졸업생의 기억을 되살려 보면 콜드콜은 전 세계에서 몰려온 똑똑한 학생들이 90여 명의 동기생 앞에서 진땀을 흘리거나 아니면 반짝반짝 빛나게 되는 경험이다. 하루에 각각 다른 수업에서 두 번의 콜드콜을 받는 불운아, 일 년 동안 콜드콜의 포탄을 용케도 잘 피한 행운아 등 차이는 있지만 HBS에서 수업을 받는 동안 적어도 한 번은 콜드콜은 당한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과연 언제 그날이 올 것인가 하는 것이다.
HBS 학생이면 누구나 전날 밤 다른 일이 있어서 혹은 피곤해서 케이스 준비를 끝내지 못하고 깜빡 잠들었다가 아침에 눈을 떠 비명을 지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허겁지겁 학교로 뛰어가면서 오늘만은 제발 콜드콜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만약 콜드콜을 당한 학생이 대답을 제대로 못할 경우 강의실에는 순식간에 싸 하고 정적이 흐른다. 냉랭한 분위기가 수업이 끝날 때까지 계속됨은 물론이다. 이렇게 수십 년을 거쳐 내려오는 동안 콜드콜 때문에 울고 울었던 선배들의 경험은 학생들 간에 콜드콜 경험칙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히 전수되어 내려온다.
<<콜드콜 경험칙: 콜드콜의 확률이 높은 학생>>
- 케이스를 다루는 산업분야에서 일한 적이 있거나 일하기를 희망하는 학생
- 지난 두세 번의 수업 동안 한 번도 발표를 한 적이 없는 학생
- 전날 수업에 지각한 경우 다음날 콜드콜, 오늘 수업에 지각한 경우 몇 분 후 콜드콜 - 전날 수업에서 바보 같은 대답으로 교수 심기를 불편하게 했거나 전날 밤 꿈을 잘못 꾼 경우
HBS에서 미국학생들이 발표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정말 별것 아닌 것을 별것인 것처럼 유창하게 말하는 능력에 경이로움을 느낀다. 비즈니스계의 지존을 꿈꾸며 HBS로 몰려든 그들인데 오죽하겠는가? 정말 이 친구들은 물에 빠져도 입만 동동 뜰 정도로 말을 잘한다. 필자의 경우에도 타고난 한계는 어쩔 수 없지만 2년 동안 쉴 새 없이 말하는 훈련을 하다 보면 발표 능력이 놀랍게 향상되는 자신을 발견한다. 아무리 말이 안 되는 내용이라도 숫자와 비즈니스 용어를 써가며 고객의 넋을 빼놓을 정도면 MBA를 마치고 하산할 경지에 이른 것이다. HBS 출신이 주로 썰을 푸는 데 강하다는 데서 나온 하버드 헛소리 스쿨(Harvard Bullshit School) 학파는 아마도 이런 과정을 거쳐 양성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러브 스토리 in 하버드
선남선녀들이 한 섹션의 일원으로 하루하루 열정적으로 생활하다 보면 자연스레 사랑과 우정 사이의 묘한 감정이 흐른다. HBS에서는 이를 '섹션 러브' 또는 '섹션 로맨스'라고 부른다. 섹션 친구들은 70%가 미혼이다. 이들은 수업, 스터디 그룹, 클럽 및 각종 과외 활동, 파티, 무도회 등 하루에 거의 12시간 이상을 같이 보내기 때문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끈끈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HBS에서는 적어도 첫 1학기 동안은 섹션 러브에 빠지지 말라는 불문율이 있다. 힘든 MBA 생활에 적응하며 동시에 연애에 빠지는 것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1학기가 지나는 동안 나눠 마신 알코올의 누적량이 늘어나고 무도회에서 망가진 모습을 몇 번 보고 나면 여기저기서 로맨스의 연기가 피어난다. "누구누구가 서로를 보는 눈빛이 보통이 아니다." "둘이 자주 만나는 것 같다." 등의 소문도 돈다. 큐피드의 화살은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학생들의 가슴에 꽂혀 다른 나라에서 온 학생들끼리 섹션 러브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행운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90명 중 성사되는 비율은 매우 낮은 편인데 많은 학생들이 섹션 친구들이 친동생이나 친오빠 같아서 그다지 이성으로 느껴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힘든 수업에 시달리면서 세수도 못하고 머리가 쩍 달라붙은 채 하품을 하는 모습을 다반사로 보기 때문이다. 설사 공식 커플이 탄생하더라도 졸업을 하고 각자의 나라로 돌아가거나 직장 때문에 서로 다른 지역으로 흩어지게 되면 학창시절의 열정은 대부분 아름다운 추억으로만 남는다.
HBS 판 아카데미 시상식
금요일은 케이스와 콜드콜에 시달리는 한 주를 마감하는 즐거운 날이다. 금요일이 즐거운 이유는 또 있다. HBS 판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매주 금요일 수업이 끝난 후 열리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학생들이 자율로 치르는 행사지만 수십 년을 거쳐 내려오는 동안 HBS의 필수 불가결한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이 시상식에는 HBS 학생들의 기상천외한 창의력, 재치와 유머가 집대성되는데 그중 몇 가지 특징적인 상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상어상(the shark award): 한 학생의 발언이 끝나자마자 굶주린 상어처럼 달려들어 무차별하게 공격한 학생 에게 수여 ② 다이하드상(the die-hard award): 주위의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자신의 의견을 끝 까지 내세운 학생에게 수여 ③ 1학점 아부상(trying to get ONE award): A 학점을 받기 위해 교수한테 아부하는 발언을 한 학생에게 수여 ④ 그 교수를 공격하라 상(the assault the professor award): 수업이 끝날 때마다 교단 으로 다이빙해서 교수를 둘러싸고 추가 질문을 함으로써 눈도장을 받으려는 학생에게 수여 ⑤ 후입선출상(the LIFO award): 수업에 늦게 들어오고 끝나자마자 제일 먼저 뛰쳐나간 학생에게 수여 ⑥ 바람둥이상(the playboy award): 수업 중에 다음 발언을 한 남학생에게 수여 "저는 이 문제를 어젯밤 미셸과 의논했고 오늘 아침 낸시와 도 토론했는데……."
학생은 왕이다
1학년 2학기 수업이 한창 진행될 무렵 나는 서울에서 어머니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마음은 당장 서울로 달려가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일주일 이상 학교를 떠나 있어야 하는데 그 공백을 만회할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지도교수를 만나 사정을 설명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가족보다 소중한 것이 어디 있나? 학교에서 모든 사정을 고려해서 돌아온 뒤에도 어려움이 없도록 조치할 걸세." 나는 그 길로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서울에 머문 10여 일 동안 나는 학교 측의 세심한 배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내가 학교를 떠난 날부터 모든 수업이 나를 위해 녹음될 것이라는 학사담당자의 이메일이 와 있었다. 나중에 학교에 돌아왔을 때 나는 과목명과 날짜가 적힌 녹음테이프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학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