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산다는 것
김상훈 지음 | 한스미디어
프롤로그 | 대한민국 직장인, 진정한 행복을 말하다누군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본다. 당신은 행복한가? 직장인의 행복은 곧 이 나라의 행복과 같다.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크다. 그러나 우리 직장인은 좀처럼 행복하지 않다. 그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압축하면 업무의 중압감, 대인관계의 갈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들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직장인의 행복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다. 행복해지기까지 앞으로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어쩌면 영영 행복감을 맛보지 못하고 눈을 감을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불행해지기까지는 찰나와 같은 시간으로도 충분할 수 있다. 그만큼 행복은 얻기 어렵고 불행해지기는 쉽다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필자는 새로 등장한 대한민국 직장인의 7대 증후군을 주목하고 있다. 이 증후군은 행복의 동맥경화를 알리는 아주 중요한 전조증상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에필로그를 통해 '리베로형 직장인'을 조심스럽게 제안한다. 모쪼록 리베로형 직장인이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행복을 선사할 수 있는 희망이 되기를 기대한다.
1. 일을 위해 태어난 사람들슈퍼맨으로 사는 사람들 - 슈퍼직장인 증후군직장이란 공간은 작게 보면 공동체이고 크게 보면 또 하나의 사회다. 따라서 약육강식의 동물세계 법칙이 어느 정도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실제 우리는 "이 세상은 약육강식의 세계다."라는 말을 너무 자주 듣고 있지 않은가? 최고경영자와 임원진의 경영철학도 사실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할 수도 있다."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직장에서 희생되지 않으려 애를 쓴다. 아니, 몸부림을 친다는 게 더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슈퍼직장인 증후군'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슈퍼직장인 증후군(The Superman Syndrome)은 이처럼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기 위해 회사와 업무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직장인의 심리를 말한다. 슈퍼직장인 증후군은 현대 직장인의 행복을 가로막는 가장 흔한 증후군이다. 이 증후군에 사로잡힌 직장인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그만큼 우리 주변에 많기 때문이다.
슈퍼직장인의 상당수는 모든 것을 잘 해야 한다고 믿는다. 자신이 이뤄놓은 업적과 성취를 능력과 동일시한다. 회사에서 그 능력을 인정해줄 때 존재감을 느끼며, 그래서 능력을 키우기 위해 자신에 대한 투자를 공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슈퍼직장인 증후군이 무조건 공격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동료와의 관계에서 수동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가령 상사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면서 동료들에게도 밉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착한사람 콤플렉스'가 있다. 왜 그럴까? 그래야 회사에서 오래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회사에서 개인적인 일이나 가정의 대소사를 언급하는 것은 불경하다는 식의 '프로페셔널 콤플렉스'도 슈퍼직장인 증후군의 일종이다. 슈퍼직장인 증후군은 이처럼 아주 다양한 얼굴로 나타난다. 그러나 본질은 같다. 회사와 업무를 우위에 둔다는 점이다.
회사는 평범한 직장인들에게 슈퍼맨을 강요한다. 그리고 정 안 되면 슈퍼맨 흉내라도 내라고 주문한다. 회사의 요구를 이행하려면 엄청난 자기희생이 필요하다. 회사는 부지런함과 성실을 최고의 덕목으로 내세운다. 조금 잔인하게 말하자면 회사는 '능력이 없으면 몸으로라도 때워야 하는 거 아냐?'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직장인들은 회사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항상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야 한다. 가정보다는 회사에, 휴식보다는 업무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그래야 회사가 '흠, 그래도 슈퍼맨이 되려고 노력하는군'이라고 생각하지 않겠는가? 슈퍼직장인 증후군은 멈출 수 없는 기차와도 같다. 아무리 "스톱!"이라고 외쳐도 기차는 그저 내달릴 뿐이다. 오히려 갈수록 스피드만 붙는다. 직장인들은 일에서 해방되고 싶다고 마음속으로 외쳐댄다. 과연 기차를 멈출 방법은 없을까?
#. 다비다의 메시지
슈퍼직장인 증후군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공포(fear)입니다. 직장을 잃을지 모른다는 공포가 큰 원인이겠죠. 슈퍼직장인 증후군을 극복하려면 애초의 공포로 돌아가 그것과 맞닥뜨려야 합니다. 직장에서 해고될 것이 두렵습니까? 그래서 원치도 않는 슈퍼맨의 삶을 살고 있는 건가요? 직장을 잃고 온 가족이 길거리로 내몰리는, 그런 최악의 가상 상황을 피하고 싶어 슈퍼직장인 증후군에 빠져 사는 건가요?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세요. 세상에 그 직업 하나뿐인가요? 지금보다 더 나은 직업을 구할 수 있습니다. 혹시 압니까?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더 나은 새로운 삶을 살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직장을 잃으면 어떡하지?"라는 최악의 가상 상황만 생각하여 불행한 직장생활을 이어가서는 안 됩니다. 실제 그 최악의 가상 상황을 현실로 불러내세요. 그 환상의 '객관적 실체'가 무엇인지 따져보세요. 스스로 만들어낸 공포의 인질이 돼서는 안 됩니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빠른 것이 좋은 것이다 - 스피드 증후군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인의 생활을 보면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들의 눈에 한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바쁜 민족일 것이다. 그러나 속도에 대한 숭배는 자칫 개인의 행복을 망칠 수도 있다. 등산을 할 때 가장 위험한 것은 험준한 바위와 가파른 계곡길이 아니다. 바로 하산길이다. 산에서 내려올 때는 속도를 제어해야 한다. 일단 속도를 내 버리면 가속도가 붙는다. 멈추고 싶어도 제어를 하지 못해 추락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쯤 되면 생명에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다. 하산길에서는 결국 속도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성과에 대한 조급증 때문에, 빨리빨리 일을 처리하려는 직장인 심리를 '스피드 증후군(The Speed Myth Syndrome)'이라고 부른다. 스피드 증후군에 빠지면 시위를 떠난 화살 위에 선 것처럼 모든 것이 급해진다.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삶의 여유도 사라지고 무조건 내달리게 된다.
스피드 증후군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여유를 잃는다. 그리고 진득하게 뭘 해보려는 의욕도 사라진다. 영어 공부를 해도 '초단기 회화 완성'이니 '100일 만에 비즈니스 회화 정복'과 같은 식의 방법을 선호한다. 더 빨리 더 쉽게 하려는 경향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것이다. 스피드 증후군은 심각한 정신장애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와 유사한 병리현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강박증이다. 강박증이란 본인은 원하지 않더라도 어떤 생각이나 장면 또는 충동이 반복적으로 떠오르거나 생겨서 그로 인해 불안감을 가지게 되는 일종의 정신장애다. 강박증은 정신분열증과 같은 기질적 정신장애가 아니다. 기질적 정신장애의 경우 증상이 명백하고 뇌의 이상으로 발생한다. 그러나 노이로제라고 부르는 신경증의 경우 명쾌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환자 자신이 그런 장애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알 수도 있지만 모르는 경우도 많다. 강박증을 비롯해 불안장애나 히스테리 등이 여기에 속한다.
스피드 증후군은 기업의 경영진 입장에서도 득보다는 실이, 이점보다는 병폐가 더 많다. 당장이야 경쟁사보다 더 빨리 성과를 낼 수도 있지만, 인지하지 못한 순간 부실은 야금야금 회사를 갉아먹는다. 그리고 언젠가는 회사의 밑단까지 부실 바이러스가 번져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야기한다. 개별 직장인에게도 이는 마찬가지다. 당장은 다른 데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오로지 일에 몰두했기 때문에 상사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자신에게 축적되는 것은 없다. 빨리 성과 내는 데만 급급했기 때문에 자기계발은 해 놓은 것이 없고 가정을 돌보지도 못했다. 성미는 급해졌고 조바심만 커졌다. 서양인들은 일을 할 때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다. 업무 결정을 할 때에도 충분히 검토하고 난 뒤 결정한다. 그러나 우리는 당장, 지금, 이 자리에서 결정하도록 알게 모르게 뇌에 각인시킨다. 지금은 그렇다 치고 10년, 20년 뒤 누구의 경쟁력이 더 크겠는가?
#. 다비다의 메시지
스피드 증후군은 과정(process)을 희생하기 때문에 빚어진 불행입니다. 사과가 자연스럽게 땅에 떨어지는 것이나 아기가 10개월을 채우고 나오는 것은 모두 정당한 과정을 거친 순리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는 이 과정을 많이 희생시키고 있습니다. 왜 무조건 '고(go)'를 외치며 빨리 가려 합니까? 미국에서는 스피드 증후군을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흰 토끼 증후군(white rabbit syndrome)'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이 동화에서 흰 토끼는 우왕좌왕하면서 '빨리빨리'를 연발합니다. 아무 것도 하는 일이 없으면서 말이죠. 스피드 증후군 또한 어느 정도 공포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에 슈퍼직장인 증후군과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개과정은 사뭇 다르죠. 스스로 노예가 되기보다는 품질과 과정을 희생시킵니다. 좋은 품질을 얻기 위해서는 정당한 과정과 그에 합당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점을 명심하시기를….
2. 사람, 사람이 가장 힘들다내 안에 나 있다 - 차단막 증후군영화관에서의 짧은 단절은 유쾌할 뿐 아니라 감정을 정화시키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단절은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기 위해 커튼을 내리면 철저히 고립된 '섬'이 된다. 어떤 직장인은 그 섬에 살면서 고독하게 자신을 반추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섬의 더욱 깊은 안쪽으로 자신을 몰고 간다. 이를 '차단막 증후군(The Drawing Curtain Syndrome)'이라고 한다. 차단막 증후군은 이처럼 직장 내부에서 상사, 부하직원 등 동료와의 커뮤니케이션을 거부하고 '나홀로' 살아가려는 심리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직무환경이 상대적으로 다른 동료 간에 많이 나타난다. 가령 상사와 부하직원, 신입사원과 기존사원, 여직원과 남자직원 사이에 대화가 단절되면서 차단막 증후군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개별공간에서 일을 하고 결과를 내도록 돼 있는 근무환경은 차단막 증후군이 자라기에 아주 좋은 토양이 된다. 이런 근무환경은 단절의식을 창출하고 다른 동료와 상관없이 자신만 성과를 내면 된다는 식의 생각이 의식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동료로부터 단절된 의식은 스스로 확대재생산을 해 나간다. 동료와 멀어지면서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인공호흡기를 대지 않고서는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약해진다. 각자 고유한 문화적 코드와 언어, 감수성을 지닌 개별적인 존재로 파편화(fragmentat-ion)하는 것이다. 파편화 현상이야말로 차단막 증후군을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파편화 현상은 상사와 부하직원간, 신입직원과 이미 입사한 직원 사이에 두드러진다. 그들은 자신이 커온 환경의 다름을 앞세워 서로간의 차이점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결국 서로에게 등을 돌리고, 나중에는 스스로 격리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는다.
세대간 커뮤니케이션 단절은 인터넷 문화에서부터 많은 부분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흔히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 또는 '커뮤니케이션의 접점'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커뮤니케이션을 억압하는 경우가 오히려 더 많다. 게시물이 오르면 그에 대한 댓글이 달리고, 그 댓글에 대한 댓글이 또 달리며 활발하게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대화와 토론을 가장한 '커뮤니케이션의 가면(persona)'일 뿐이다. 진심은 없으며 심드렁한 악의적 비판에 불과하다. 결국 '소통 속의 소통 부재' 현상이 나타난다.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거나 세대가 다르면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인터넷 폐인만 양산한다. 인터넷 폐인들은 자신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만들고 그 안에서 생활한다. 결코 자신이 만든 세계 밖으로 나가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실제 나가지도 못한다.
#. 다비다의 메시지
차단막 증후군은 한 순간에 여러분에게 들이닥치지 않습니다. 아주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여러분을 장악하죠. 격리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자신도 모르게 차단막 증후군으로 말을 바꿔 타고 있는 겁니다. 자신에게 보다 충실하고 솔직할 때 차단막 증후군은 극복이 가능합니다. 다른 증후군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차단막 증후군의 경우 스스로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당신은 스스로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현대인들의 상당수가 자신과 접촉을 별로 하지 않죠. 자신이 뭘 원하며 뭘 두려워하는지, 뭘 극복하려 하는지를 알려 하지 않아요. 막연한 추측만 할 뿐이죠. 그래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모릅니다. 자신을 '규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 치유를 더 해야 한다고 믿는 것이고, 그래서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고 숨는 것입니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의 이 명언이야말로 차단막 증후군의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인 것이죠. 스스로와 접촉하지 않으면 완성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알지만 사람 그 자체는 모른다(Know what humans doing, instead of humansbeing)'라는 말처럼 말이죠. 지금 당신은 어떻습니까?
왜 나만 갖고 그래? - 와이 미 증후군잊을 만하면 터지는 대형범죄, 특히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한 범죄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저주를 읽게 된다. 여자가 싫다는 이유 때문에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수십 명의 여성을 잔혹하게 죽인 희대의 살인마나, 세상이 싫다고 달리는 전동차에 기름을 부어 불을 지른 노인이나 모두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왜 세상은 내게만 가혹한 것이냐?"를 따져 물었다. 그들은 유독 자신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멋대로 삶을 규정했다. 불량 거울을 통해 일그러진 세상을 보면서 저주를 발견한 것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이유는 다르지만 직장생활을 불행한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직장 내에서 자신만이 유독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심리를 통틀어 '와이 미 증후군(The Why Me Syndrome)'이라 부른다. 자신은 별 문제가 없는데 상사나 부하직원이 또는 회사의 잘못된 시스템이 모든 일을 그르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직장생활이 불행한 원인도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게 아니라 외부세계에서 제공되는 것으로 믿는다.
와이 미 증후군은 성과주의 문화가 정착된 서구보다, 공동체적 기업문화와 성과주의 문화가 혼재한 국내에서 더 쉽게 볼 수 있다. 상사가 공을 가로챘을 때 항의하고 싶지만 공동체적 기업문화가 이를 가로막는다. 솔직하게 털어놓으려 할 때는 성과주의 문화가 또다시 가로막는다. 움쭉달싹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물론 서구에서도 부하직원의 공을 가로채거나 자신의 실패를 부하 직원에게 전가하는 상사가 없지 않다. 그러나 성과주의가 정착이 돼 있기 때문에 그런 부당한 대우를 강요하는 상사는 곧 조직에서 제거된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 기업의 성과를 떨어뜨리는 인물로 낙인찍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아직 공동체적 문화가 남아있어 그런 상사에 대한 문책이 쉽지가 않다. 이런 현실은 사회학자들의 표현에 따르면 '상대적 박탈감'을 가중시킨다. 상대적 박탈감이란 절대적이고 객관적으로 평등한 상태에서 생기는 게 아니다. 현실에 대한 주관적인 인식에 따라 상대적으로 생긴 박탈감이다.
상대적 박탈감은 '희생양 의식'이라는 심리로 발전한다. 바로 와이 미 증후군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어떤 프로젝트를 실패했을 때 기업에서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합리적으로 평가하고 조정을 해야 할 테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다. 상사들은 자신에게 떨어질 책임을 피하기 위해 희생양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희생양은 거의 대부분 부하직원이 된다. 이런 사례는 기업에서 비일비재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