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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성공을 부르는 포기의 힘

시모조노 소타 지음 | 아인북스
머리말

당신은 '포기'라는 말을 경멸하는가? 현대 사회는 포기라는 단어를 지나치게 비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나는 오랫동안 카운슬링에 종사해 오면서 '적절한 시기에 어떻게 적절하게 포기를 잘하느냐가 인생의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포기에 대한 편견을 버리면 마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마음이 가벼워지면 그만큼 괴로움도 줄고 새로운 인생에 눈뜨기도 쉬워진다. 적절한 타이밍에 유연하게 포기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정신적 피로도 쌓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일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거기에 얽매여 포기하지 못하고 그것에 지배당하는 사람은 포기라는 프로그램이 오작동을 일으켜 결국에는 인생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최악의 사태를 맞기도 한다. 포기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포기하려고 마음먹어도 포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포기를 생각할 때면 떠오르는 우화가 있다. 옛날 아랍에 한 왕국이 있었다. 어느 날 그 나라의 왕자가 귀한 항아리에 들어 있는 사탕을 꺼내려고 항아리에 손을 넣었다가 그만 항아리 주둥이에 손이 걸리고 말았다.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항아리를 깨서 왕자를 구하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이웃 나라 왕에게서 받은 귀중한 항아리를 깰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왕자를 구한 것은 지나가던 한 현자였다. 현자는 왕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손에 쥐고 있는 사탕을 놓으세요." 그러나 왕자는 "싫어, 싫어! 사탕 먹고 싶단 말이야!"라고 울어대기만 했다. "사탕은 제가 꼭 꺼내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현자의 그 말을 믿고 왕자가 손에서 사탕을 놓으니 손이 쏙 빠졌다. 왕자의 손이 빠지자 현자는 항아리를 거꾸로 들어 사탕을 꺼내 왕자에게 주었다. 때로는 어떤 일을 포기할 때 오히려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포기란 중요한 선택기능임과 동시에 결심기능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포기의 본질은 또 다른 선택을 위해 비효율적인 것을 버리는 일이다. 단지 버릴 때의 괴로움이 크기 때문에 모두가 포기를 두려워하는 것뿐이다. 그러나 인간이 주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런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 선택이란 어느 한쪽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포기를 결심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까지 떠안을 각오를 해야 한다. 어떤 것을 포기하면서 그에 수반되는 고통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삶, 그 자체에 대해 고민한다는 증거다. 포기를 정확히 이해하고, 우리의 인생에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음을 잊지 말자. 자, 그럼 이제부터 우리의 행복을 위해 포기할 줄 아는 삶의 방식에 도전해보자.



포기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사람들

우리는 우리의 인생과 사회, 가족, 그리고 자기 자신을 포기하지 못한다. 항상 이랬으면, 저랬으면 하는 환상과 충돌하면서 쉽게 단념하지는 못한다. 포기와 단념은 곧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두려워한다. 그러나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을 제3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리 원해봐야 절대로 손에 넣을 수 없는 것을 얻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시점에서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느껴진다면, 유연하게 '포기'라는 프로그램을 가동시킬 줄 알아야 한다. 이상만을 추구하다가는 그것이 사라져 없어졌을 때 삶 자체를 포기하려는 프로그램이 작동할 수 있다. 포기는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키워드이다. 이것이 나의 오랜 카운슬링 경험에서 얻은 결론이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어찌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포기한다. 포기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이런 일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을 질책한다. 결국 무의식 속에 '포기 = 실패, 좌절, 떠밀림, 가능성의 감소'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반대로 '포기하지 마!'라는 말은 아름다운 메아리를 가진다. '너는 할 수 있어!'라는 말은 상대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에 건넬 수 있는 말이다. 물론 이 말에 용기를 얻어 더욱 분발하는 사람도 많다. '힘내, 포기하지 마!'라는 말이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도 분명히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긴 인생에서 보면 포기해야 할 때 유연하고 과감하게 포기를 선택하는 편이 오히려 나은 경우도 많다.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과감하게 포기하자고. 포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녀석이 아니다. 오히려 포기는 좀더 가치 있는 인생을 모색하고, 마지막까지 끈기 있게 자신에게 맞는,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적절히 이용해야 할 존재다.



포기란 무엇인가?

인간은 한정된 에너지를 이용하여 식량을 구하고 생식활동을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 그렇기에 수확이 없는 일은 빨리 포기해서 에너지를 다른 행동으로 옮기기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포기 프로그램이다. 포기 프로그램을 발동시키는 목적은 '(소모적인 행동을 방지함으로써) 귀중한 에너지의 낭비를 막기 위한 것'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이익보다 손실이 크다면 하던 일을 과감하게 중지하고 다른 일을 위해 에너지를 아껴둔다. 이것이 포기 프로그램이다. 그렇다면 포기 프로그램을 발동시키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한 마디로 요약하면 '비효율에 대한 자각'이다.



우리는 다양한 일을 접하면서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다. 이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신의 능력이나 집단 속에서의 역할, 지위가 차츰 명확해진다. 역할이 결정되면 행동해야 할 방향이 서서히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이런 과정 속에서 차츰 타인과 다른 '나 자신'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다운 인생'이라는 주제에는 '포기'와 '성공' 모두가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 잡는다. 포기는 보통 부정적인 이미지를 동반하므로 포기를 거듭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실패와 패배로 얼룩진 인생을 연상하기 쉬우나, 절대 그렇지 않다. 도전을 반복함으로써 그 결과가 축적되어 나름대로 잘하는 일과 못하는 일, 자신의 장점과 단점, 가능성과 한계가 점차 윤곽을 드러내는 것이다. 성실하게, 꾸준히 이런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가 해결할 수 있는 일인지 아닌지 예측할 수 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험을 쌓고 자신의 능력을 올바르게 인식해야 한다. 이때 잊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은 자신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한계 또한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괴로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면 에너지 낭비에 지나지 않는 작업을 피하지 못한다. 자신의 가능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어떤 일에든 도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이처럼 자신의 능력이 집단 속에서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지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자신의 위치와 한계를 파악함으로써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최적의 길이 무엇인지, 사회에 가장 크게 공헌할 수 있고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자신의 활동방법이 무엇인지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감하게 포기하면 자신의 본래 모습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우리가 타인과 다르다는 것은 다양성으로 지탱되는 자연의 섭리에 일치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그때를 자신의 능력을 깨닫고 인식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노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최선을 다했지만 나에게는 맞지 않아서'라면서 포기 프로그램을 발동시킬 수 있는 찬스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최선을 다하되, 에너지 소모가 한계에 다다르기 전에 과감히 포기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처럼 포기 프로그램은 본래 우리 자신의 모습을 깨닫게 하고 에너지의 헛된 낭비를 막아주며 진화를 촉진시키고 집단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게 해주는 능동적인 프로그램이다.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

에너지가 넘칠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포기하기도 쉽고, 최적의 방법을 찾는 데도 그다지 힘이 들지 않는다. 그러나 에너지가 고갈되기 시작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한 번 전환하기에도 벅차다. 또 한 번 실패하면 정말로 모든 에너지가 다 소진될지도 모른다. 생사가 달린 일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 상태를 유지하면 여러 가지 문제가 따르기는 해도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 그러니 최후의 식량밖에 남지 않은 지금, 이것을 버리고 새로운 방법으로 전환하기가 두렵다. 고통스럽지만 어떻게든 견디면서 이대로 끌고 나가는 편이 낫다고 막연히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인은 포기 프로그램을 잘못 작동시키는 경우가 많다. 포기 프로그램은 살아가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타이밍이나 발동 계기가 어긋나면 반대로 우리 인생의 가능성 전체를 뒤흔들어버리는 크나큰 과오를 저지르기도 한다. 이런 상황을 '포기 프로그램의 오작동'이라고 부르도록 한다.



원시인에게는 에너지를 얼마나 적게 소모하느냐 하는 것이 목숨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귀중한 에너지를 결코 헛되이 써서는 안 된다는 강한 의지가 있었다. 이것이 '생명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다. 식량이 넘쳐나는 현대인에게도 이 DNA는 계승되어, 굶어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늘 인식한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 생명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우리의 신체뿐 아니라 감정이나 사고 패턴에까지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생명 에너지 보존의 법칙은 항상 '지금은 에너지 위기상태임'이라는 지령을 내린다. 그래서 어떤 일을 포기해야 할지 계속해야 할지 결정하기가 어려우면 일단은 현재의 일을 계속하는 상태를 유지하고자 한다. 중요한 사안일수록 방향 전환에 따르는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불안감이 그렇게 크지 않은데도 지금까지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는 생각 때문에 포기를 주저한다. 현대인이 포기 프로그램 가동에 실패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이 생명 에너지 보존 법칙의 영향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한 번 머릿속을 정리해보자. 포기 프로그램은 본질적으로 비용 대비 효과의 균형이 깨질 때 발동한다. 효과란 어떤 행동을 계속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며, 비용은 이 효과의 창출을 위해 지불하는 대가다.



이처럼 포기란 단순한 작업이지만, 이런 단순한 도식은 포기 프로그램의 초기 단계에만 적용된다. 진화된 포기 프로그램에서는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행동하기 전, 또는 행동하는 도중에 항상 '향후 작업의 진척 상황'과 '자신의 능력(이미지)'을 저울의 양쪽에 올려놓고 저울질한다. 저울의 움직임을 보고 자신의 힘으로 이 작업을 해낼 수 있을까 없을까를 예측한다. 이 예측이 부정적이면 그 시점에서 작업을 중단한다. 그럼으로써, 작업을 계속하면 헛되이 소모될지 모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눈에는 매우 비효율적인 작업처럼 보일지라도 본인은 자신의 능력을 믿고 할 수 있다고 느낄 뿐 아니라 그 작업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면 포기저울은 작동하지 않는다.

포기 프로그램이 어딘가에서 오작동을 하는 이유는 '미래의 포기저울'에 놓여 있는 저울추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울추 하나하나를 심사숙고해보면 우리가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자꾸 말에 토를 달아 미안하지만) 사태는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실제로는 '고통 프로그램'과 '행복 프로그램'이 포기 프로그램 저울의 움직임에 큰 변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음 장에서는 '행복과 포기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 최종 목표의 틀 안에서 포기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이해해야 비로소 포기의 활용법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과 포기의 관계

인간은 다양한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는데, 그것을 종합해볼 때 행복은 다음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순간순간 느끼는 행복으로 '자극'이나 '쾌감'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 또 하나는 '촉촉하게 젖어 오는 행복'이다.



자극과 쾌감의 행복이 가져다주는 첫 번째 유익은 고통에서 해방되는 기쁨이다. 쾌감은 항상 고통과 함께 움직인다. 그러므로 쾌감, 즉 행복을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고통을 알아야 한다. 먼저 고통 프로그램의 기본형은, 고통 프로그램의 볼륨업 기능을 이용하여 욕구를 더욱 절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고통이 커지면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행동을 취하게 된다. 만약 이 고통 프로그램의 볼륨업 기능이 없다면 우리는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사태를 감지하지 못한다. 고통은 생명 유지나 생식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항상 감시하면서 사태를 감지하고,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어 행동하게끔 만드는 시스템이다.



욕구는 넘치지만 불행히도 우리 몸은 하나밖에 없다. 여러 가지 욕구가 한꺼번에 용솟음치지만 행동할 수 있는 몸은 하나밖에 없다는 현실을 마주한 이상, 고통이 큰 순서대로 욕구를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고통의 순위 매기기 기능이다. 순위가 정해지면 가장 순위가 높은 것부터 하나씩 욕구를 해결해가면 된다. 이것은 매우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쾌감은 고통과 짝을 이룬다고 앞에서 말했다. 쾌감은 고통 프로그램의 '부족한 욕구를 우리 몸에 전달함으로써 행동을 일으킨다'는 기본 기능과 관계가 있다. 어떤 욕구가 채워지지 않을 때는 고통을, 욕구가 채워지는 순간에는 쾌감을 느낀다. 고통과 쾌감이 협력함으로써 행동을 조절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나 이런 행복에는 한 가지 한계가 따른다. 욕구가 간단히 해결되는 환경에서는 고통도 적을 뿐 아니라 만족감(행복)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쾌감의 한계상태라고도 할 수 있다.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수준(이것을 기본선이라고 부르자)이 넘으면 이런 현상이 생긴다. 생명 유지를 위한 최저 수준 이하에 놓여 있다면 그 상황에서 탈출함으로써 극적인 쾌감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부터 기본선 이상인 경우에는 욕구가 채워져도 그렇게 큰 쾌감을 느끼지 못한다. 살고 죽는 문제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현대사회는 어떤가? 모두가 더욱 편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한 결과 지금은 기본적인 고통에서 상당히 해방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풍족한 사회가 되었다. 기본선을 훌쩍 넘어선 것이다. 다시 말해, 현대인은 쾌감과 자극에서 오는 행복을 느끼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다. 그렇다고 현대인들이 늘 욕구불만에 싸여 행복을 느낄 수 없다는 말은 아니다. 촉촉이 젖어드는 행복을 맛보게 해주는 진화된 행복 프로그램을 작동시킨다면 항상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행복도 점차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비록 자극적인 생활을 하면서 일시적인 쾌감을 느끼기는 하나,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는 이런 행복이 줄어들기 시작하면 안정된 삶도 조금씩 흔들리고 만다. 이런 경향은 젊은이들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해 엄습해오는 적이다. 그래서 현대인이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자극적인 쾌감이 아니라 촉촉이 젖어드는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



꿈과 포기

먼저 우리의 행동과 꿈(목표)의 관계를 명확히 해 둘 필요가 있다. 우리 마음속에 무의식중에 존재하는 꿈이나 목표가 우리의 행동을 제약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루지 못할 꿈이나 목표를 쫓느라 인생의 귀중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그런 사례들을 수도 없이 보았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가능성 없는 꿈을 접고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꿈을 추구하며 인생을 보내는 쪽이 훨씬 행복하다는 것이다. 의식주나 안전, 성과 같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최종 목표'라고 표현하겠다. 인간의 모든 행동은 궁극적으로 이런 기본적 욕구를 채우는 것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행동들은 인간의 최종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중간목표'이다. 이런 중간목표의 존재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행동을 종종 혼란에 빠뜨린다. 중간목표는 최종목표에 좀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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