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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

하비 맥케이 지음 | 북폴리오
프롤로그 : 나의 비밀



당신이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나는 해고당한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 해고가 내게는 천우신조의 기회였다! 직장에서 꿋꿋하게 살아남는 법에 관한 책들을 써서 1,000만 부 이상을 팔았던 나, 하비 맥케이도 해고당한 적이 있다. 나는 이제 골방에서 벗어난 자유인이다. 내 경력에 오점을 감추려고 변명하려는 것이 아니다. 해고가 내 삶을 수렁에 빠뜨릴 정도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얼마 전 나는 해고당했던 당시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물론 해고 자체가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내가 해고의 결과로 터득한 교훈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해고당했을 때 나는 창피하고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거의 반세기 동안 해고에 아무런 의미도 부여하지 않으려고 애써왔다. 하지만 이제부터 솔직하게 말해보겠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였다. 나는 세인트폴의 중심가에 있는 깔끔한 남성복 가게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AP통신 기자였던 아버지의 연줄로 구한 일자리였다. 나는 아버지 덕분에 아르바이트를 쉽게 구했기 때문에 여름 방학마다 그런 편한 일자리를 구하려는 아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여기에 바로 문제가 있었다. 아버지는 그 상점의 고객이기도 했지만 주인을 비롯한 많은 관련자들의 절친한 친구이기도 했다. 따라서 나를 '소공자'로 대해야 한다는 쑥덕거림도 있었다. 실제로 내가 점심 시간을 조금 넘겨도 그들은 나를 꾸중하지 않았다. 내가 아침마다 몇 분씩 늦게 출근하고, 때로는 퇴근 시간보다 좀 일찍 나가도 그들은 내게 한 마디도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여하튼 다른 사소한 잘못들이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내 등뒤에서 궁시렁대는 불평이 없을 수 없었다. 그렇게 소공자는 귀찮은 사람이 되었다. 아버지가 주인과 친한 덕분에 일자리를 얻은 녀석, 감사할 줄 모르는 망나니 같은 녀석에 대한 불평은 점점 커져 갔다. 그리고 그 불평은 내 목덜미를 향해 가차없이 다가오고 있었다. 물론 상점 주인은 나를 불러 꾸짖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를 찾아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바로 그날 아버지는 노기띤 목소리로 내게 분명히 말했다. "실망했다! 넌 아버지를 실망시켰다. 너 자신에게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아버지는 실수를 통해 배워야 한다고 내게 충고했다.

해고당하여 불필요한 사람으로 낙인찍힌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쉬운 일이 아니다. 전적으로 내 잘못으로 해고당하더라도 말이다. 나는 부끄러웠다. 가족에게도 부끄러웠다. 해고를 통해 나는 평생 잊지 못할 8가지 원칙을 배웠다. 이 원칙대로 행동한다면 당신은 편한 일자리에서 절대 해고당하지 않을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당신이 원하는 일자리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ㆍ친척이나 친구의 연줄로 일자리를 얻으면 당신의 능력 덕분에 그 일을 하게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

ㆍ매장과 창고 정리를 도맡아라.

ㆍ5분 일찍 출근하고 5분 늦게 퇴근하라.

ㆍ일자리를 구했다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ㆍ가능하면 친구를 빨리 사귀어라.

ㆍ임시직이나 아르바이트라 하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이 과외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심어줘라.

ㆍ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임시직으로 일할 때는 휴가를 잊어라.

ㆍ당신이 게으름을 피워서 가장 크게 손해를 보는 사람은 고용주도 아니고 당신 자신도 아니다. 당신에게 그런 일자리를 무모하게 소개해준 사람이다.



다행히 나는 실수를 통해 이런 교훈을 확실히 얻었다. 그후로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해고는 엄청난 '수업료'를 요구하는 혹독한 학교였다. 이런 점에서 나는 해고당한 것에 감사할 뿐이다. 해고는 값비싸면서 고통스러운 교훈이었다. 나는 이 책의 독자들, 특히 젊은이가 이 메시지를 정확히 깨닫기를 바란다. 이 메시지를 가슴에 깊이 새기며 해고의 슬픔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비록 삶이 가혹한 교훈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일부러 형극의 길을 택할 이유는 없다. 가능하다면 고통을 최대한 줄이면서 교훈을 얻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이제부터 당신은 고용의 정글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해고당한 사람들, 해고의 태풍을 감지했지만 그 파도를 비켜가지 못한 사람들, 배신자라는 누명을 쓰고 회사를 떠나야 했던 사람들, 한 마디 이유도 없이 해고 통지를 받은 사람들이 소개된다. 젊은 나이에 해고당한 사람들도 있고, 은퇴를 얼마 안 두고 해고당한 사람들도 있다. 중년을 맞아 한참 활동할 나이에 해고라는 벼락을 맞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누구도 해고로 좌절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용기를 내어 다시 일어섰고, '해고'라는 위기를 인생 최고의 기회로 만들었다!

피바디 상 수상자 - 래리 킹



래리 킹을 언론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래리 킹이라 하면 유력 대권 후보자에서 할리우드의 대스타들, 가택 연금 처분을 받았던 마샤 스튜어트에 이르기까지 누구와도 거침없이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명사회자, CNN의 간판 스타를 떠올린다. 그런 래리 킹도 1970년, 풋내기 언론인 시절 <마이애미 해럴드>에 쓴 기사 때문에 해고당한 적이 있었다. 래리 킹 라이브에 할리우드 스타급 여가수가 초대 손님으로 등장하기 전, 나는 세트장에서 래리와 해고란 뼈아픈 경험에 대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나는 래리에게 해고 전에 징크스 편집국장이 어떤 암시라도 주었는지 물었다. 래리는 그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멜빵을 고쳐 메면서 대답했다. "아니오. 어느 날 갑자기 부르더니 칼럼에서 손을 떼라고 하더군요. 국장은 내가 신문 지면을 지나치게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운다고 생각한 거죠. 나는 많은 사람들과 친분을 유지하며 종종 같이 어울리곤 했죠. 그러면서 이 인물들에 대해 칼럼에 쓸 만한 기사거리를 찾곤 했죠. 그런데 국장은 내가 기삿감이 될 인물들과 필요 이상으로 어울려 다닌다고 판단한 겁니다. 그리고 결국 나를 쫓아낸 거죠."



나는 래리의 말에 흥미를 느끼며 질문을 던졌다. "인간관계가 지나치게 좋다고 해고당했다는 말인가요?" 래리는 놀라우리만큼 솔직히 얘기를 털어 놓았다. "하비, 인간관계 때문이 아닙니다. 내 친구이기도 한 사람들에 대해 쓴 것이 화근이었습니다. <마이애미 해럴드>는 내 칼럼을 일종의 홍보성 기사라고 보았던 겁니다. <마이애미 해럴드>는 이 점에서 매우 엄격합니다. <뉴욕 타임스>만큼이나요. 해고당했을 때는 꽤 힘들었지만, 신문사 탓이라고만 할 수는 없지요. 따라서 어떤 악감정도 없습니다."

나는 래리의 부도와 개인 파산을 다룬 기사를 언급하면서 래리에게 물었다. "당시 매우 힘들었으리라 생각되는데, 경제적 문제가 상황을 더 악화시켰겠군요?" 래리는 영양제 한 알을 디카페인 커피와 함께 삼키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 Q : "누가 정신적인 버팀목이 되어주었나요?"

A : "펌페닉 델리카트슨의 소유주인 찰리 북바인더였습니다. 아주 훌륭한 친구였습니다. 그의 레스토랑에서 인터뷰를 하게 해주면서 다시 시작할 발판을 마련해주었으니까요. 그는 항상 내 편이 되어주었습니다."



■ Q : "넉다운당해 링에 쓰러졌다가 정말 위대한 복귀를 하셨는데요. 개인 파산을 선언해야 했을 때의 기분은 어땠습니까?"

A : "말도 할 수 없이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시 뮤추얼 브로드캐스팅에서 전국에 방송되는 토크쇼 진행을 맡고 있었습니다. 일일 토크쇼로 전국 방영은 처음 있는 일이죠. 따라서 돈이라면 남들 버는 정도는 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변호사들은 내게 파산 선언이 불가피하다고 결정을 내리더군요."



■ Q : "그러니까 파산 선언이 고육지책이었다는 뜻인가요?"

A : "파산 선언은 일종의 탈출구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반드시 빚을 갚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빚을 갚았습니다."



■ Q : "결국 해고 통지가 새로운 길에 발을 들여놓도록 하는 삶의 전환점이 되었던 거로군요?"A: "나에겐 오뚝이 기질이 있습니다. 하비. 때로는 해고가 기회일 수 있습니다. 해고는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해고가 끔찍한 비극일 수 있겠지만 '내일은 일을 하러 가지 않아도 되니 다른 일에 시간을 쓸 수 있겠군. 다른 길을 찾아봐야지. 어차피 시간도 많으니 말이야.'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닥친 비극적인 일이 아니라 그 비극에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것입니다. 물이 반쯤 담긴 컵 이야기 같다고나 할까요."



■ Q: "이제는 래리 킹이 해고당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갈수록 노련미를 더해가고 있으니까요. 무슨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A : "한 번도 열정을 잃은 적이 없습니다. 인터뷰의 진행 순서를 미리 짜본 적도 없습니다. 누군가에게 흠집을 내거나 상처를 주겠다고 의도해본 적도 없습니다. 그냥 배우고자 할 뿐입니다. 방송을 지겹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습니다. 지금도 방송 일이 좋습니다. 물론 나도 지칠 때가 있고 방송 진행이 원만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방송을 하는 시간은 내게 편안한 피난처입니다.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방송을 할 때면 모든 것이 내 손안에 있죠. 내 시간입니다."

베스트셀러 작가 - 마크 빅터 한센



'버키'라 불리는 벅민스터 풀러는 20세기의 가장 저돌적인 지성인 중 하나로, 반구형 건축구조인 지오데식 돔을 개발한 천재였다. 하버드 대학에서 두 번이나 쫓겨난 풀러는 우여곡절 끝에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육군성의 수석 엔지니어가 되었다. 서던일리노이 대학교에 갓 입학한 마크 빅터 한센은 열렬한 파티광이었다. 하지만 2년 후 그 애벌레는 파티 조명과 맥주통을 던져버리고 거의 모든 과목에서 A학점을 받는 나비가 되었다. 마크를 일깨워준 사람은 그곳 교수로 있던 버키였다. 마크는 버키를 '내 우상!'이라 불렀다.



그런데 대격변이 일어났다. 1970년 봄, 베트남 전쟁으로 뒤숭숭한 상황에서 켄트 주립대학 총격사건이 터지자 서던일리노이 대학교에서도 학생들이 학교를 점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주 방위군이 진입하고 최루가스가 캠퍼스의 하늘을 자욱하게 뒤덮었다. 대학은 5월 중순에 휴교에 들어가 여름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교문을 닫았다. 버키는 일곱 명의 조교를 불렀다. 한 명씩 연구실로 들어갔고 훌쩍대며 연구실을 나왔다. 마크가 마지막으로 연구실에 들어갔다. "교수님은 '자네가 세상에 나가 모든 사람을 이롭게 할 일을 하기 바라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교수님,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다시 말하지. 자넨 해고됐네. 우리 특별 프로그램의 예산 지원이 끊어졌네. 큰 일을 하고 싶다면 개인이나 기관에 의지할 생각을 버리게.' 나는 결코 떠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학에 남아 교수가 되고 싶었으니까요. 하지만 연구실을 나왔습니다. 훌쩍이면서 말입니다."



이때 마크는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버키는 분명한 교훈을 주었다. 외부에서 지원을 받아 꿈을 실현할 생각을 버리라고! 그런 지원에 의지한다면 덧없는 욕심 때문에 눈앞이 뿌옇게 흐려질 것이라고! "나는 그 분이 하셨던 일과 비슷한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마크는 지오데식 돔 건설을 시작했다. 그리고 3년 후 마크의 작은 회사는 2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그런데 1974년 석유 파동이 일어나면서 상황은 급격히 악화되었다. 마크는 순식간에 빈털터리가 되었다. "내게는 파산 변호사를 고용할 300달러조차 없었습니다. 비참한 상황이었죠. 그래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혼자서 파산 처리법을 공부했습니다."



마크의 인생에서 두 번째 위기를 겪은 셈이었다. 그럼 무엇이 마크에게 희망을 주었을까? 바로 '전국 강연자 협회'의 설립자 캐빗 로버츠의 동기부여 오디오 테이프였다. 로버츠는 마크의 정신적 스승 중 하나가 되었다. "우연히 테이프가 무릎에 떨어졌습니다. 그야말로 운명적 만남이었습니다. 나는 그 테이프를 287번이나 들었습니다. 테이프를 틀 때마다 플라스틱 케이스 위에 금을 그었습니다. 여기에서 내가 얻은 교훈은 '내가 파산을 초래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삶은 앞으로 나아가기 마련이다. 마크의 형편도 조금씩 나아졌다. 그리고 동기부여 강연자가 되었다. 마크는 잭 캔필드와 함께 책을 써보기로 작정했다. "1989년 잭이 비벌리힐스에서 대규모 강연을 끝낸 후 우리는 함께 책을 쓰기로 했습니다. 가슴을 울리고 영혼을 흔드는 이야기로 가득한 책! 그리고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Chicken Soup for the Soul』라는 제목도 생각해냈습니다. 우리는 미국인의 영혼이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영혼을 달래주고 싶었습니다."



고귀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크와 잭의 계획은 순조롭게 풀렸을까? 천만에! 33곳의 출판사에서 거부당했다. 세 번째 해고인 셈이다! 에이전트는 그들을 버렸지만 마크와 잭은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닭고기 수프'는 최고의 책이 되었다. 1998년까지 '닭고기 수프' 시리즈는 2,800부나 팔렸다. 2004년에 마크가 추산한 바에 따르면 1억 부 가량을 팔았다. 소매 가격으로 10억 달러가 넘는 액수이다. 매년 평균 1,500만 부 이상을 판 셈이었다.



"내가 파산했을 때 내 친구들은 몽땅 사라졌습니다. 내게는 나를 도와줄 전문가를 구할 돈은 고사하고 밥 먹을 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가상의 지원 팀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월트 디즈니, 존 F. 케네디, 앤드류 카네기, 마크 트웨인, 그리고 에이브러햄 링컨이었습니다. 매일 밤, 나는 한 시간씩 지도자 모임을 갖고 내가 존경하는 그 거인들이 내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상상했습니다. 나는 머릿속에서 회의를 열어 내가 가치 있는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그들에게 도와달라고 청했습니다."

거부의 두려움을 이겨내려면 위험을 감수하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마크를 '위험감수의 대가'로 여긴다. 무엇이 마크에게 위험을 감수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우리 삶에는 두 가지 문이 있습니다. 하나는 기회의 문이고 다른 하나는 안전의 문입니다. 안전의 문으로 들어가면 둘 다 놓치고 맙니다. 물가에서 머뭇거리지만 말고 물속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것도 머리부터 거꾸로!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지만, 당신을 뛰어오르도록 돕는 팀이 있다면 위험은 별거 아닌 일이 됩니다."



그리고 마크는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많은 사람이 안전을 쫓다가 낭패를 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내 소득을 두 배, 세 배, 네 배, 아니 백 배로 증가시킬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리는 우리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득을 늘리는 유일한 방법은 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는 겁니다."



우리는 마크에게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1) 해피엔딩을 원한다면 다른 사람이 당신 대신 쓰기 전에 당신의 성공 스토리를 직접 써보라.2) 거부당하고 싶지 않다면, 당신의 일을 갖고 싶다면,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비참하게 만들도록 허락하지 마라.

3) 기회를 멀리하고 안전을 선택한다면 기회와 안전 모두를 잃게 될 것이다.



세계 챔피언 헤비급 복서 - 무하마드 알리



알리는 알라와 폭풍우, 그리고 험악한 비행기 여행을 두려워하지만 연간 200일을 비행기 안에서 시간을 보낸다. 두려움에 맞서 두려움을 날려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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